경계를 넘는 작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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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넘는 작가들

에스니시티의 운명과 향수의 시인 전달문

김홍진

(출처: ©필자 제공)

   전달문 시인(1938-2017)은 평양에서 태어나 1·4 후퇴 때 부친을 따라 제주도로 피난해 살며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다. 이후 중앙대 철학과를 졸업, 1961년 《한국문학》과 《심상》을 통해 등단한다. 1981년 미국 이주, 다음 해 LA에서 ‘미주 한국문인협회’를 결성하고 미주 한인 문학 최초 종합 문예지 《미주문학》을 창간한다. 1987년 ‘재미 시인협회’를 창립하고 1989년 시 동인지 《외지》, 1999년 ‘재미수필가협회’를 창립하고 동인지 《재미수필》을 창간한다. 이러한 적극적인 활동으로 “LA 한국문학의 대부”(김광한)로 평가받고 있다. 시인은 “이민 문학의 정립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한”(『망향유곡』 서문)을 푸는 일이라 술회하는데, 이처럼 그는 미주 한인 문학에 투신하는 삶을 살았다.
   개인 시집으로 『전달문 사화집』, 『섬의 입김』이 있고, 이주 후 『꿈과 사랑과 바람의 시』, 『두 개의 바다』, 한영시선집 『망향유곡』 등을 발간했다. 그의 시는 “우도가 제2의 고향”, “평양 출신 제주인”(김광한)이라는 수식처럼 제주도와 우도의 원체험에서 비롯한다. 그의 시에 빈번히 출현하는 “바다 이미지나 섬의 상상력”(이형권)은 이러한 원체험에 기반한다. 말하자면 “이민족 틈에 끼어든”(「기다리는 사람들」) 이민자 의식과 고향 제주의 섬과 바다를 향한 향수를 짙게 표백한다. 대체로 그의 시는 회고적이며 전통 서정시 문법을 따르는데, “바람 따라 밀려와 고국을 삭이는/실향인”(「망향유곡」)으로서 고향 제주, 바다, 섬, 친지 등에 대한 향수 어린 음색이 주조를 이룬다.
   향수는 디아스포라 시문학의 핵심 기제인데, 고향의 자연과 유년의 회상은 곧 동일시 욕망의 산물이다. 요컨대 우도, 제주도, 바다, 섬으로 상징되는 고향에 대한 강렬한 그리움의 정서는 자기 동일성의 욕망에서 비롯한다. 그래서 시적 시간은 유년의 기억을 지향하고, 공간은 제주 섬과 바다에 머문다. 전달문의 시에서 노스탤지어의 세목들은 “이마와 이마를 마주 대인/가슴과 가슴이 감싼/바다 그 노래, 그 餘韻”(「꿈과 사랑과 바람의 시」)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섬과 바다에 연관한 원체험을 통해 구체화된다. 이를 통해 모국과 자신의
   동일성을 확인하고, 이로써 이방인으로서의 현실적 고통을 위무한다. 노스탤지어는 근원에 대한 그리움이다. 이것은 디아스포라의 보편적인 정서를 구성한다. 이런 정서를 표백하는 전달문 시는 모국과 고향에 대한 향수로 짙게 물들어 있다. 이는 “이국어에 휘말린 무거운 몸”과 “벙어리의 거동을 닮은” 이주민으로서 소외와 갈등, 불안과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심리적 방어기제의 작동으로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경계인으로서 겪을 수밖에 없는 “냉혹과 번민과 자학이 범벅된”(「그래도 고국은 아직 봄이네」) 고통과 상실감을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모국 고향의 자연과 동일시를 통해 보상받고자 하는 심리가 강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노스탤지어는 에스니시티(ethnicity)와 불가분 관계이다. 미국 사회에서 한인은 소수 비주류에 속하며, 그에 따라 소외와 불안 의식은 강할 수밖에 없다. 그가 “슬픈 상흔을 안고”(「仁者의 땅 1」) 사는 이방인으로 자신을 인식할 때, 유랑의 상흔은 시적 형질을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로 기능한다. 이방인, 소수자 혹은 이중 정체성이 불러오는 소외와 불안 의식은 상수에 가까운 것이다. 미국에서 오랜 시간 정착해 살아왔지만, 다인종의 “표정 속에/동화되어 가고 있”지만 마음은 늘 “불안과 초조/갈등”(「기다리는 사람들」)에 시달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리하여 “밤마다” “내가 버린 내 안의 그 섬”(「내가 버린 내 안의 섬 우도」), “가난한 이웃들이 모여 사는/그리움의 바다”(「두 개의 바다」)를 떠올리는 것이다. 이는 외래성과 타자성, 경계인과 이방인으로서의 실존적 운명에서 비롯하며, 동시에 회상 공동체와의 동일시는 이민 생활이 파급하는 고통을 치유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전달문은 소수 이방인으로서 고향과의 동일성 내지는 정체성 확인 과정을 통해 현실적 회의와 갈등을 넘어선다. 즉 그가 모국과 고향, 제주와 우도 섬과 바다를 호명하는 일은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는 행위이다. 이런 이유로 회의와 갈등은 이질성에 대한 반감이나 부정적 의식보다는 “두 개의 이질적인 바다와 화답”(「두 개의 바다」)하거나, “블랙파워의 할렘가” “저주도/이젠 다스한 눈매 짓는 구원”(「이국풍정 2」)의 세계를 열망하는 화해와 사랑의 시선으로 봉합된다. 결국 전달문 시에서 고향 제주와 연관한 호명은 주류 문화의 압력으로부터 자신의 동일성을 확보하고 정체성을 지켜내려는 이방인의 의지적 노력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필자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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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저서로 『부정과 전복의 시학』, 『풍경의 감각』, 『시선의 고현학』, 『언어 사원의 사제들』 등이 있다 한남대학교 국어국문⦁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