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K-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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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K-문화

한·독 디아스포라의 음악적 서사와 노래기억

윤신향

1. 들어가며

  독일 대학교에서 한국 문화를 가르치노라면, 학생들의 주된 관심은 고전보다는 K-팝, K-드라마와 같은 대중예술에 쏠려 있다. 현지 청년들의 K-문화에 대한 관심은 재외한인 차세대의 사고방식과도 맞물려 있다. 그러면 재외동포에게 작금의 K-문화란 무엇일까? 단지 한국인이 수행하는 예술을 K-문화라고 할 수 있을까?
  문화란 여권상의 국적이 아니라 문화적 국적으로 규정되어야 한다. 요컨대 독일어가 모국어인 한·독 가정의 자녀가 판소리를 부른다면? 여기서는 문화 수행의 주체가 아니라 수행의 객체인 장르가 기준이 된다. 즉, 공연을 수행하는 주체와 객체, 그리고 관객 사이의 인터액션이 중요한 것이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재외 ‘한인음악’은 서술의 주체에 따라, 대상이 전문인(단체)이냐 아마추어(단체)냐에 따라 다르게 서술될 수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순수한 재외 ‘한인음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필자가 독일어권에 거주했거나 하고 있는 한인 음악을 ‘한·독’ 디아스포라 음악이라 칭하는 이유는 바로 두 문화 사이의 인터액션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1)

2. 한·독 디아스포라의 첫 신화

  식민치하의 20세기 전반, 3·1 독립운동에 참여했다가 상하이를 거쳐 1920년 독일로 망명한 한 청년이 있었다. 그는 바로 이미륵(1899-1950)으로, 뮌헨대학교에서 동물학 박사학위를 받고 동양학 강사로 활동했고, 1927년 2월 브뤼셀에서 열린 세계 피압박민족대회와 나치 저항운동에도 참여했다. 해방 직후 자전적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Der Yalu fliesst)』(1946)를 독일 문단에 발표하면서 작가 활동을 개시했으나, 한국전쟁 발발 직전 지병으로 독일 땅에 묻혔다. 이 소설은 그가 고향에 대한 ‘기억’을 독일어로 채색했다는 의미에서, 한·독 디아스포라 예술의 첫 서사를 구성했다고 할 수 있다.
  이미륵과는 달리 식민 시기 유럽으로 유학했다가 잔류했던 음악인도 있었으니, 그는 바로 국내에서 평가가 엇갈리는 애국가의 작곡가 안익태(1906-1965)이다. 안익태는 1921년부터 일본에서 유학하다가 1930년 미국으로 건너갔으나, 1937년 유럽으로 건너가 헝가리 부다페스트 음악원에서 수학,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베를린을 포함한 유럽에서 지휘자로 활동하다가 전후(戰後) 스페인에 정착했다. 애국가는 원래 작곡가 개인의 노래였지만, 해방 후 남한의 국가(國歌)로 지정됨으로써, 재외한인은 애국가 부르기를 통해 고국의 집단기억을 소환한다. 따라서 안익태의 삶도 한·독/유럽 디아스포라 예술의 서사에 기여했던 것이다.2)

3. 20세기 후반의 한·독 예술인들3)

▲ 백남준, 윤이상 [© Internationales Musikinstitut Darmstadt, 사진: Hans Kenner]

1) 상이한 두 개의 신화: 윤이상과 백남준

  두 예술 지망생이 1956년 같은 해에 유럽 유학길에 올랐다. 식민지 한반도에서 태어난 윤이상(1917-1995)과 백남준(1932-2006)이 그들이다. 먼저 프랑스 파리로 유학한 윤이상은 1957년 베를린 음대로 옮겨 1958년 졸업한 후, 고국의 가족이 그가 1960년대 초에 거주하던 프라이부르크에 합류하면서부터 한 이주가정의 가장으로서 작곡 활동을 펼치게 된다. 반면, 먼저 일본 동경대를 졸업한 백남준은, 같은 해 독일 뮌헨대학에서의 짧은 수학기를 거쳐, 1957년 프라이부르크 음대 작곡과에 입학했으나, 스승의 권유로 곧 쾰른 서독방송국의 전자음악 실험실을 드나든다.
  두 예술가는 또한 1958년 같은 해에 당시 젊은 작곡가의 등용문이었던 다름슈타트 현대음악 여름학교를 방문하는데, 동양 미학에 기초한 미국의 전위작곡가 케이지로부터 자극받아 각기 의 방식으로 자신의 예술언어를 찾아간다. 윤이상은 도나우에슁엔에서 「예악」(1966)을 발표한 후 작곡가로서의 국제적 위상을 갖게 되었으나 1967년 동백림 사건 이후 망명 작곡가로서의 고단한 삶을 작품으로 승화한 반면, 백남준은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1963)을 부퍼탈에서 전시한 후 미국으로 이주, 1980년 전후부터 국제무대에 비디오 예술가로 우뚝 선다.4) 사후 국내에서 엇갈리는 평가를 받으며 소환되고 있는 이들의 이주 서사는 식민 잔재와 분단 한국의 특수성과 무관하지 않다.

2) 이주하는 시어(詩語): 박영희

2015년 7월 22일, 제 27회 유럽교회음악제 수상자 박영희(왼쪽)와 슈베비쉬 그뮌트(Schwäbisch Gmünd) 시장 리하르트 아르놀트(Richard Arnold) [© 박응래]

  한국의 한 여성 음악도가 1974년, 현대 음악을 선도하던 독일 프라이부르크 음대로 유학했다. 그녀는 동양 여성 최초로 유럽에서 작곡가로 정착한 박영희(1945- )이다. 동양의 궁중음악에서 영향받은 윤이상과는 달리, 농악과 민속 어법을 선호한 박영희의 작곡관은 이주와 여성적 자의식으로 점철되어 왔다. ‘이주’의 코드는 추방당한 인물을 소재로 하는 「이오」(2000), 「달그림자」(2005/2006) 등의 작품들에서, ‘여성성’은 「만남」(1977), 「소리」(1980) 등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코드화되어 있다.
  ‘이주’와 ‘여성성’의 코드는 박영희 특유의 시적 상상력과 결합하는데, 김광균의 「설야」, 김지하의 시집 『황토』의 서정시들, 정철의 시조뿐만 아니라, 괴테(J. W. von Goethe), 고트프리트 켈러(Gottfried Keller), 로제 아우스랜더(Rose Ausländer), 안나 아흐마토브(Anna Achmatova) 등의 시들도 그녀에게 음악적 영감을 주었다. 말하자면 국적을 초월한 시어(詩語)들이 그녀의 작품을 통해 유동하고 교차한다. 정철의 시조시에 기초한 여성 독창 「마암(ma-am)」(1990)에서 나타나듯이, ‘마음’이라는 소재는 지금까지 다양한 편성의 작품으로 형상화되어 오고 있으며, ‘님’이라는 단어는 그녀의 음악에서 독특한 유기성을 띤다. 앞의 두 남성 예술가가 각기 관현악, 음악극, 비디오 공연을 매개로 한인 디아스포라의 이주 서사를 썼다면, 박영희는 시적 상상력에 기초한 이주 아시아 여성의 음악적 서사를 현재까지 써내려 가고 있다.

4. 이주 음악 문화의 가교들

  모든 디아스포라에게, 개별 예술인과 집단으로서의 이주 사회를 연결하는 고리는 국적과 종교를 불문하고 모국어에 대한 집단기억이다. 그래서 개별 예술가 백남준의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1963), 윤이상의 이중 오페라 「꿈들」(1965/1968), 박영희의 「황토」(1989)와 같은 작품들이 이주노동자들의 집단기억과 관련이 있다5)독일은 2차 세계대전 후 노동력을 보완하기 위해 한국으로부터 노동자들을 초청했다. 1963년부터 광부들을, 1966년부터 간호사들을 집단으로 받아들였다. 이주한 노동자들은 뜻있는 유학생들과 문화를 공유하는 공동체를 결성하는데, 독일의 한인 이주 음악 문화에서 간과할 수 없는 장소는 성가대를 가지는 한인교회들이다. 1969년, 이주노동자를 중심으로 베를린에 독일 최초의 한인교회가 설립되었고, 이어 설립된 대도시들의 한인교회들은 모국어로 된 예배음악을 통해 언어 공동체로서의 유대감을 형성하고 있다.
  모국어에 대한 집단기억은 대개 언어를 공유하는 합창을 통해 소환된다. 간호사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베를린의 여성합창단, 쾰른의 여성합창단, 재독한인여성합창단은 모국어로 된 노래들을 공유하는 기억공동체이다. 이들의 노래 기억은 노년층이 된 이들이 문화 기억을 차세대에게 전수하는 역할도 한다. 또한, 한독문화교류협회 주관으로 2019년부터 매년 베를린 기억의 교회에서 개최되는 한반도 평화음악회나, 2022년 함부르크에서 개최된 ‘평화의 물결’과 같은 음악회는 청년 음악가들과 기존 세대가 공연자와 관객으로 만나는 가교로서, 세대와 계층의 갈등을 표용하는 장이 되기도 한다.

5. 교차하는 세대와 노래 기억

  독일 한인사회의 노동 인력은 21세기에 들어오면서부터 광부와 간호사 중심에서 예술가를 포함한 전문직, 서비스업과 같은 다양한 직종으로 변화하고 있다. 여기에는 이주가정의 자녀뿐만 아니라, 독일어권 대학을 졸업한 뒤 현지의 교향악단, 오페라단, 합창단 등에서 활동하거나 한국에서 바로 해외로 진출한 음악인들도 포함된다. 전자의 예로 아시안 아트 앙상블을 이끌고 있는 정일련, 앙상블 Su~를 이끌고 있는 신효진과 김보성을, 후자의 예로 서예리, 임선혜, 이유라 등과 같은 성악가들과, 진은숙, 조은화, 여계숙과 같은 작곡가들 및 멀티미디어 예술가를 들 수 있다. 또한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같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음악 영재들도 줄을 잇고 있다.6)
  도르트문트 시립극장의 전속 테너 김성호가 올해 6월, 영국 BBC 카디프 성악 콩쿠르에서 김성태의 「동심초」를 한국어로 불러 우승을 차지했는가 하면, 한·독 어린이합창단이 알파벳으로 전사(轉寫: transcription)한 한국 동요를 부르기도 하고, 독일어가 모국어인 청년이 정서적으로 내면화하지 않은 판소리를 애창하기도 한다. 영미권을 비롯한 독일 가곡, 이탈리아 가곡 중심의 노래 문화 시대가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7)이는 서양 근대에서 촉발된 ‘클래식’이 K-클래식으로 거듭나면서 K-문화의 일부가 되었다는 사실과, 재외 한인사회의 정체성 또한 재조정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독일의 한인 노동이주 60주년이 되는 올해 4월, 차세대가 주축이 되어 이를 기념하는 자선음악회가 베를린 대성당에서 열렸다. 지난 6월에 지지부진해 오던 재외동포청이 발족되었다. 재외동포청에 주문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해외 예술시장의 사각지대에서 고군분투하는 유능한 예술 인재 발굴과 아울러, 노년층 이주노동자들의 문화예술 복지에 대한 관심이다. 그 일환으로 이들의 애환과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 ‘한·독 이주음악극’8)과 같은 공연 축제의 창설을 제안한다. K-문화는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 세대와 계층을 아우르는 포용의 문화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참고문헌

Shin-Hyang Yun, Klänge des Widerhalls. Koreanisch-deutsche Komponistinnen und Komponisten unterwegs, Berlin: LIT, 2022.

-----, “Poesie, Image und Stimme bei Younghi Pagh-Paan im Fokus auf dem Gesangstext der ‘Herz-Serie’(1990-1998)” in: Auf dem Weg zur musikalischen Symbiose. Die Musikwelt von Younghi Pagh-Paan, Mainz, 2020, 116-129.

윤신향, 「식민지 근대와 한인 디아스포라의 노래의식」, 『音·樂·學』 39, 서울: 한국음악학학회, 2020, 87-118쪽.

-----, 「한인 이주예술의 장르구성과 젠더구성」, 『音·樂·學』 31, 서울: 한국음악학학회, 2016, 161-186쪽.

각주

1) 독일어권인 오스트리아와 스위스에 거주하는 한인도 ‘한·독’ 디아스포라에 포함할 수 있다. 역사적 맥락이 다른 이 지역의 한인 음악인에 대해서는 별도로 다루기로 한다.

2) 상세한 내용은 필자의 다음 논문에 서술되어 있다. 윤신향, 「식민지 근대와 한인 디아스포라의 노래의식」, 『音·樂·學』 39, 서울: 한국음악학학회, 2020, 87-118.

3) 이 장의 기초가 된 논문은 윤신향, 「한인 이주예술의 장르구성과 젠더구성」, 『音·樂·學』 31, 서울: 한국음악학학회, 2016, 161-186; Shin-Hyang Yun, “Poesie, Image und Stimme bei Younghi Pagh-Paan im Fokus auf dem Gesangstext der ‘Herz-Serie’(1990-1998)” in: Auf dem Weg zur musikalischen Symbiose. Die Musikwelt von Younghi Pagh-Paan, Mainz, 2020, 116-129.

4) 미국 이주 후에도 독일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던 백남준은 1979년 뒤셀도르프 아카데미의 교수직을 맡으면서 두 대륙에서 거주으므로, 엄밀히는 아시아-유럽-미주 사이의 인터콘티넨털, 또는 글로벌 예술가라고 하는 것이 타당하다.

5) 필자는 이 두 범주의 상관관계를 최근의 저서에서 언급한 바 있다. Shin-Hyang Yun, Klänge des Widerhalls. Koreanisch-deutsche Komponistinnen und Komponisten unterwegs(반향의 음향들. 길 위의 한독작곡가들), Berlin: LIT, 2022.

6) 한인 2세대와 3세대 음악가들은 고전음악의 본거지인 오스트리아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올해 2월 결성된 재오스트리아 한인음악협회는 이들의 활동과 이에 대한 청중의 수요가 늘어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7) 이러한 노래문화는 이미 시어를 전사(轉寫: transcription)한 박영희의 성악 작품들이 선취다고 할 수 있다.

8) 어디까지나 가제이고, 필자는 지난 9월 서울에서 개최된 아르코 한국창작음악제 15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신크론 음악극’을 제안한 바 있다.

필자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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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음악학, 철학, 독문학 석사과정을 수료한 뒤, 2001년 독일 쾰른 대학교에서 음악학 박사학위(Dr. Phil.)를 받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소에서 박사후 연수를 했고, 계명대학교 음악 공연예술대학 초빙교수를 지냈다. 2010년 베를린 예술대학교 객원연구원으로 체류한 이후, 베를린 예술대학교,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 라이프치히 대학교, 본 대학교 등에서 강의하면서 연구와 비평 활동을 해왔다. 저서로 『윤이상: 경계선상의 음악』, 독문역서로 『자연에서 풍류를 즐기다: 한국 전통음악과 그 악기들』이 있으며, 2022년 독문 저서 『반향의 음향들: 길 위의 한독 작곡가들(Klänge des Widerhalls: Koreanisch-deutsche Komponistinnen und Komponisten unterwegs)』이 마리안 슈테그만 재단의 지원으로 독일의 인문학 출판사 LIT에서 출간되었다. 현재 바이마르 음대 강사로 있다.
* 사진제공_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