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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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떠도는 밀짚모자

김순희

   밀짚모자가 하늘을 떠돈다, 바닥에서 고공으로 휘익 날아오르다가 다시 급격히 아래로 떨어진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아슬아슬해서 손에 땀을 쥐게 한다. 하지만 떨어질 듯 말 듯 하면서 끝내 추락하지 않고 끝없이 하늘을 떠돈다.
   1980년대에 본 일본 영화 「인간의 증명」의 마지막 장면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젠 기억에 희미하지만 처량하고 애절한 <밀짚모자의 노래>는 지금도 귓전을 맴돈다.
   들판에 버려진 찌그러진 밀짚모자나 바람 세찬 들판에 외발로 서 있는 허수아비가 쓴 구멍 난 밀짚모자를 보면 유명 패션디자이너인 주인공이 자기의 부와 명예를 지키기 위해 버린 밀짚모자가 생각난다. “어머니, 저의 그 밀짚모자는 어떻게 됐을까요?” 하는 주인공의 절절한 대사가 메아리친다.
   밀짚모자는 모성애를 잃은 부평초의 상징이다. 우리 주위에는 부모에게 버림받은 부평초 같은 아이가 꽤 많다.
   나는 어른이 되어가는 시작점에서 아버지가 할머니의 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막연하게나마 할머니가 다른 할머니들보다 푸근하지도 않고 우리 손녀들한테 야박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한 번도 그런 쪽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기에 이 사실은 나의 열세 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크나큰 충격이었다. 그러면서 그동안 도무지 풀리지 않던 수수께끼들이 하나둘 풀리기 시작했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하던 어린 시절, 쩍하면 엄마를 붙잡고 물었다.
   “엄마, 나는 어디서 나왔어?”
   엄마는 그냥 시물시물 웃으면서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고 대답하는데 그때마다 아버지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을 어슴푸레 느꼈다.
   나는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는 엄마의 말을 믿지 않았고 내가 엄마 아빠 사이에서 태어났음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으면서도 그저 호기심에, 확인을 하고 싶어 자꾸 물어본 것이었다. 아버지가 양자라는 것을 알았으면 그때 그런 유치한 질문을 해서 아버지의 마음을 허비지 않았을 것이다.
   그 무렵 아버지는 농한기만 되면 간다 온다는 말도 없이 며칠씩 사라지고는 했다. 짧으면 사흘, 길면 열흘이었다. 아버지가 떠난 날이면 엄마는 머리에 수건을 동이고 드러누우셨다. 집안 분위기는 초상난 집처럼 스산하고 음침했다.
   ‘아버지는 돌아오실까? 아버지가 없으면 어떻게 살지?’
   이런저런 걱정을 하며 어린 내가 한숨을 풀풀 내쉴 때쯤이면 아버지는 더 마르고 더 작아져서 돌아오고는 했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버지는 그때마다 친부모의 행적을 찾아다녔던 것이다. 양부모들이 아버지가 친부모를 찾아갈까 봐 꽁꽁 숨기는 바람에 아버지는 여기저기서 귀동냥한 정보를 갖고 친부모를 찾아다녔다.
   몇 년을 돌아다니며 아버지가 알아낸 사실은 이러했다. 엄마는 두 아들을 두고 일찍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는 새장가를 들기 위해 작은아들인 아버지를 아이를 못 낳는 할머니네 집에 보냈다는 것이다. 그때로부터 아버지는 다시는 말없이 사라지는 일이 없었지만 더 외롭고 쓸쓸해 보였다. 이 불편한 진실을 알기 전에는 막연한 꿈과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있었지만 알고 난 뒤에는 실망과 허망함뿐이었을 것이다.
   스무 살 나던 해에 아버지는 자신보다 일곱 살 어린, 열세 살 나이의 철없는 소녀와 결혼했다. 어쩌다 보니 줄줄이 딸 다섯을 낳았지만 이 모든 게 아버지 뜻이 아니었고 아버지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겉으로는 아무 일 없어 보였지만 늘 뿌리 없는 나무처럼 이리저리 흔들리고 불안해 보였다.
   천성적으로 몸이 허약한 엄마는 쩍하면 머리에 흰 천을 동이고 누워 있었고 아버지는 혼자 일곱 식구를 먹여 살려야 했다. 게다가 키워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양부모님에게도 효도를 다 해야 했다. 그 시절 아버지는 얼마나 막막하고 아득했을까? 나는 감히 아버지의 외로움에 다가갈 수는 없었지만 어렴풋이 느낄 수는 있었다.
   어느 추운 겨울날, 나는 오줌 누러 나갔다가 마당에 우두커니 서서 긴 한숨을 쉬며 넋두리를 하는 아버지를 보았다. 아버지의 모습이 원래 저랬던가? 어쩐지 어깨가 더 구부정해 보이고 더 좁아 보였다. 그것이 자신의 의지대로 살 수 없는 막막함을 하소연할 길이 없어 혼자서 삭이는 당신만의 의식이었음을 내 나이 오십이 넘어서야 알았다. 동지섣달에 산에 땔나무 하러 갔다가 오른손에 동상을 입어 오른손 엄지만 내놓고 네 손가락을 다 잘라야 했던 아버지, 생산대원경지에서 일하다 뱀에게 물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겨우 살아난 아버지, 남의 일을 도와주고 삯전을 받았다는 이유로 조리돌림을 당하고 개패를 달고 투쟁을 받던 아버지……. 아버지는 세상의 풍파에 몸을 맡긴 채 어둠인지 밝음인지도 모르고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며 휘청거리며 사셨다. 부모에게조차 선택받지 못했던 아버지가 살면서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는 그저 운명에 순응하면서 무기력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 마음이야 어떻든 간에 지금의 할아버지가 우리 친할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 나는 친할아버지가 우리 앞에 나타나기를 오매불망 기다렸다. 친할아버지가 우리 삶을 개변시켜 줄 것 같았다.
   어린 시절, 기차역은 우리들의 유일한 놀이터였다. 역에서 놀음에 탐했다가도 기적소리가 울리고 기차가 서서히 역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면 나는 모든 걸 내치고 마중을 나온 사람들 속을 비집고 앞으로 나가고는 했다.
   나는 출구를 빠져나오는 사람들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어쩌다 낯모를 노신사가 걸어 나오면 아래위로 참빗질을 했다. 어디에 아버지를 닮은 구석이 없나? 나는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 번도 보지 못한 친할아버지를 그리워했다. 우린 친할아버지를 어느 한 곳이라도 닮은 데가 있을까? 있어 보이고 점잖아 보이는 얼굴이 내 머릿속에서 수없이 그려졌다 지워지고는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친할아버지가 나타나 내 고단한 삶을 마술처럼 변하게 해줄 것 같은 기대감으로 설레고는 했다. 그러나 친할아버지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그분은 나에게 영원히 상상 속의 인물로 남았다.
   나는 철이 들고 잘 자리 잡아가면서 친할아버지가 더는 궁금하지 않고 기다려지지도 않지만 아버지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어쩌면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친부모가 궁금하고 친부모를 만나고 싶었을지 모른다.
   가을 들녘에 밀짚모자를 쓴 허수아비가 서 있다. 남루한 옷차림에 구멍 난 밀짚모자를 쓴 채 외다리로 몸을 지탱하고 있다. 밀짚모자를 쓴 허수아비가 그대로 서 있는데 내 눈에는 휘휘 떠돌아다니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몇 년 전부터 밖에 나갔다가는 집으로 가는 길을 잊어버리고는 하셨다. 혹은 나무 그늘에서 잠들어 있는 것을, 혹은 십자로에서 헤매이는 것을 동네 분들이 보고 모시고 와서 다행히 별일은 없었다. 아버지는 집으로 가는 길을 잊어버린 것이다. 어쩌면 아버지는 원초적인 그 집을 찾아 헤맸을지 모른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엄마가 절벽 가에서 아들의 밀짚모자를 던질 때 시청자들의 마음도 밀짚모자를 따라 아래로 날려가지만 땅에 떨어지지는 않는다. 여전히 떠도는 느낌이랄까?!
   밀짚모자, 어머니가 들판에 버린 찌그러진 밀짚모자가 어딘가를 떠돌며 외로움에 흐느껴 울고 있다.
   아버지도 친부모가 놓아버린 밀짚모자처럼 둥둥 떠다니다 원망하면서도 그리워했던 친부모의 품으로 날아갔으면 좋겠다. 거기에서 그동안의 슬픔과 외로움을 다 토로하고 마음의 안식을 찾았으면 좋겠다.

필자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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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1963년생.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연변 조선어 프로그램 역제중심 프로듀서, 중국작가협회 회원, 연변작가협회 이사. 수필집 『마흔살즈음의 어느 비오는 날』, 『꿈 꾸는 빨간 구두』, 『꽃을 버리다』 출간. 제일제당상, 중국조선족수필상, 진달래문예상, 두만강문학상, 도라지문학상, 화신문화상, 해외동포문학상 등 수상.
* 사진제공_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