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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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하와이 이주와 《태평양잡지》

전해수

1

  지난 2004년에 하와이 한인문학동인회에서 102편의 시를 수록한 『하와이 시심(詩心) 100년』을 간행했다. ‘102’는 하와이 이주의 역사를 기억하는 의미 있는 숫자라 할 수 있다. 이 책에 수록된 102편의 시는 1902년 12월 제물포에서 출발하여 1903년 1월 하와이에 도착한 102명의 첫 이민자의 수와 동일하다.
  『하와이 시심(詩心) 100년』에 수록된 첫 번째 시는 하와이 이주의 심경을 쓴 최초의 시 「이민선 ᄐᆞ던 전날」인데, 1905년 4월 6일자 《국민보》에 실렸던 이홍기의 시이다. “가만히 도모하는 행리”(이하 「이민선 ᄐᆞ던 전날」에서 인용)에 “만 가지 생각”이 든다고 토로한 시인은 “돌아올 때는 넉넉히 봉운한 몸을 지으리”라 다짐하고 있다. 그러나 이홍기 시인은 이 당시 대다수의 하와이 이민자가 그러했듯 처음의 뜻과는 달리 고국으로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하와이에 묻혔다.
  또한 이 책에는 익명씨의 「하와이 흥부가」, 최용운의 「망향」, 한인기숙학교 「국혼가」와 「대한혼가」가 수록되어 있으며, 현재 활동 중인 하와이 거주 한인문학동인회의 시들 가운데 대표작도 포함되어 있다. 「발간사」를 통해 “선조들의 거룩한 얼이 깃든 하와이에서 100년이 된 시심(詩心)의 발자취를 기록”하여 “하와이 이민문학을 집대성”하고자 하는 출판 의도를 밝혔다. 그런데『하와이 시심(詩心) 100년』발간 이후 어느덧 20년이 더 흘렀으니, 이제 하와이 한인 이주의 역사는 120년을 경유하고 있다.
  이 글은 최초의 한인 사회를 형성한 ‘하와이’에서 발행된 《태평양잡지》를 주목한다. 1) 1913년에 간행된 《태평양잡지》는 초기 하와이 이주와 맞물려 있다. 초기 이민자들은 1904년 이주 후 일제 치하에 놓인 고국을 바라보며 식민지 디아스포라의 현실을 체감했다. 그들은 태평양 건너 먼 이국땅에서 《태평양잡지》를 발간하여 결속을 다지며 어떤 방식으로 조국의 독립에 참여할지 고민했다. 특히 《태평양잡지》는 식민지 디아스포라의 집결로써 초기 이민문학의 한 특징을 잘 보여준다. 《태평양잡지》의 발간 목적에 대해서는 1915년 《신한민보》에 실린 「ᄐᆡ평양잡지 발ᄒᆡᆼ」이라는 기사를 통해 알 수 있는데, “(태평양잡지)는 (이국의 땅에서) 동포의 학력을 양성하기 위해 정치, 문학, 소설, 내지소식 등을 실었다”고 적시하고 있다.

<자료 1> 《태평양잡지》 한글 표제와 영문 표기 및 목차

  이처럼 1913년 9월부터 1930년 10월까지 약 18년간 하와이에서 간행된 《태평양잡지》는 우선 정치적, 종교적 성향을 띠면서 사회, 교육, 여행, 문학 등에도 관심을 둔 종합지였던 것이다. 영문 제호로 “The Korean pacific magazine”을 사용했고, 영문 목차도 함께 수록했다. 실제로 《태평양잡지》의 내용 가운데 “문학, 소설”의 경우는 “정치, 내지소식”에 비해 제한적이었으며, 조선의 식민지 문제, 자치권 문제, 독립운동 고취를 위한 글 등이 주로 실렸다. 구체적으로는 이민 생활에 직접 영향을 끼친 「이민문제」(1913년 4월호),「외국인과의 혼인」(1924년 7월호),「미국시민권」(1924년 7월호),「영어와 국어」(1930년 5월호),「국기해설」(1930년 7월호), 「하와이 섬 여행기」(1914년 6월호) 등 이민자 생활에 도움이 될 만한 글들이 앞서서 게재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민문학’과 관련하여 주목해 볼 점은 하와이 이민 사회의 특별한 공동체 정신이 《태평양잡지》 문예란에도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2

  우선 《태평양잡지》를 통해 1910-1930년대에 하와이에서 발표된 문학은 창가, 시, 장편소설, 단편소설, 번역소설, 희곡 등 다양한 장르로 그 성격 및 특징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 시기 이민이 문학에 끼치는 영향 관계는 식민지 디아스포라의 성격과 의의를 내정하고 있다.
  잘 알려진바, 하와이는 1902년 12월 정책적인 공식 이민으로 시작되었으며, 1903년 1월에 본격 개시되어 1905년 8월 8일에 미국 이민이 금지되기까지 7300여 명의 이민자가 하와이로 이주했다. 이처럼 초기에 하와이로의 집단 이민을 가능하게 한 것은 영어를 구사하는 선교사들이었는데, 선교사 존스(George H. Jones)를 중심으로 감리교에서 선교의 확장을 도모하는 방편으로 하와이 이민을 적극 권했다. 그런데 당시의 이민은 가족 이민보다는 독신 이민이 많았으며, 1905년 이민 금지 정책 이후에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않고(혹은 돌아오지 못하고) 미국 본토로 건너가는 이주민들이 오히려 더 많았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하와이는 조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거점이 되었으며, 하와이 이주민과 하와이 이민 사회는 자체적으로 독립운동 단체를 조직하고 독립을 위한 자금 모금과 외교 선전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은 《태평양잡지》에 수록된 단편소설 『토이기샹민』의 내용에서도 드러난다. 이 소설에서 통상, 여행, 파견 등 주로 외국을 드나드는 상인 이야기가 전제된 것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과도 연관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후로 하와이는 유학생, 망명자, 노동 이민자, 상인들의 주요 이주지가 되었던 것이다.
  이민 사회의 정착 후 필연적으로 도래하는 것이 ‘이민문학’이다. 이민문학은 모국어와 영어, 번역어 등 자국 언어에 대한 구체적인 인식으로 형성된다. 이민문학은 정치, 경제, 사회적 원인으로 고국을 떠나, 다른 나라로 이동한 이민자들이 쓰거나 향유하는 문학을 일컫는다. 하와이 이민사 120년에 달하는 현시점에서, 하와이 이민문학을 다양한 관점으로 재조명해 볼 수 있겠지만, 1900년대의 이민 초기에는 조선어로 쓰인 한인문학이 이민자에게 주는 역할은 특별한 것이었다. 이 시기 《태평양잡지》문예란처럼 한글로 쓰고 읽힌 이민문학은 이민 사회 형성과정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와이 이민문학이 형성된 과정에는 ‘이민자의 현실에서 바라보는 문학’이 존재한다. 근대 초기의 이민문학은 태평양 건너 하와이의 이민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일제 치하 식민지가 되어버린 고국과 낯선 이국 사이를 방황하는 이주민의 정서적 문제를 들 수 있는데, 본국으로 되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감정에서 싹트게 된 ‘망명 의식’이 있다. 이민문학을 망명문학과 같은 의미로 보는 입장은, 내용, 소재, 표현 등의 상이함에서 오는 지역적 차이를 우선 염두에 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민문학 연구 초기에는 조동일, 김영철 등이 만주 지역 한인들의 문학을 망명(지)문학으로 명명했으며, 그 저간에는 이러한 인식이 자리한다. 그러나 개인적 도피나 유민의 관점이 아니라 하와이 이주처럼 정책 차원의 공식적인 이민으로 태동한 초기 하와이의 이민문학은 망명문학과는 다른 의미를 띠고 있다.
  또한 이민문학과 근접한 개념으로 ‘유이민(流移民) 문학’이 있는데, 윤영천은 만주를 비롯하여 해외 거주 동포들을 ‘유이민’으로 파악하고, 정치, 경제, 사회적 원인들을 근거로 하여 그들의 시문학을 분석한 바 있다. ‘유이민자’들은 자신들이 일시적으로 해외에 머무는 것으로 인식하여 상황이 호전되면 고국으로 귀환하리라 여겼다. 그러나 하와이 이민자들의 경우 귀환의 순간에도 자의적, 타의적 이유로 하와이에 그대로 머무르거나 샌프란시스코, 워싱턴 등 미국 본토로 이주하는 ‘선택’을 했다. 조규익은 하와이 이민은 ‘망명’이나 ‘유민’ 혹은 ‘유이민’을 모두 포괄하는 것으로 이해했는데, “원래 살던 나라와 옮겨가는 나라라는 두 장소가 있어야 이민이 성립되므로 이민의 입장에서 보면 그 두 장소는 각각 구세계와 신세계로 대비되는 것이며, 이 공간은 체험의 전이와 대조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가는 가치지향적인 공간”으로 설명한다. 이민문학은 이러한 장소의 이동으로 발생하는 두 세계 간의 이질적인 체험이 충돌하면서 문학적 형상화를 자극하는 원동력이 되거나, 문학적 원형으로서의 동화(同化)와 갈등(葛藤)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표출된다.
  특히 하와이 이민문학의 형성은 개화기의 망명문학이나 앞서의 유이민 문학과는 성격이 다른 것인데, 급변하는 근대 전환기에 겪은 ‘식민지 디아스포라’와 세계 밖의 이질적인 체험의 충돌과도 연관되기 때문이다. 1903년에서 1905년 사이의 구한말에 머나먼 태평양을 건너 하와이 이민을 선택한 이들의 일탈(逸脫)은 분명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그들은 이민 이후에 예기치 못한 일제강점기를 나라 밖 외부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 이민자로서의 정신적 충격과 갈등적인 태도를 보인다.
  1910년부터 1930년대에 이르는 이 시기에 《태평양잡지》의 문예란은 그러한 이민문학의 성격을 잘 드러내고 있다. 유학이나 도피행각과 달리 경제적인 이유로 혹은 종교적인 목적으로 선택된 하와이는 ‘해외 노동 이민’이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처럼 지식인 유학생이 아니라 ‘노동자’와 기독교 감리교 ‘선교사’가 중심이 된 하와이 이민 사회의 형성은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초기 이민문학의 특징을 결정지었다.
  당시의 이민은 경제적으로 궁핍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보다 나은 땅을 찾아 나선 선택지였으나, 하와이 정착 후 이들은 식민지가 되어버린 고국을 바라보며 예기치 못한 ‘실향 의식’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점은 하와이 초기 이민문학의 중요한 지표라 할 수 있다. 특별한 실향 의식이 실제로 《태평양잡지》의 문예란에 반영되어 나타나고 있다.

3

  하와이 이민자들은 낯선 서방에서 《태평양잡지》와 같은 종합지를 통해 자주독립에 대한 열망과 독립운동에 가담하는 나름의 한 방식으로 문필(문학)을 접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의 이민문학은 《태평양잡지》에 수록된 문학작품의 장르와 특징을 통해서도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예컨대 《태평양잡지》에 수록된 문학작품은 편수는 적으나 거의 모든 문학 장르가 등장한다. 번역소설, 연재소설, 단편소설, 시, 창가, 노래 가사, 희곡 등 다양한 장르가 모두 수록되어 있다. 이처럼 《태평양잡지》는 근대 초기 이민문학의 성격과 의의를 문학 장르에 대한 인식을 통해서도 규명해 볼 수 있다.
  《태평양잡지》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발간이 중단된 시기를 고려하더라도 일제강점기인 1910년대에서 1930년대까지를 아우르고 있다. 물론 《태평양잡지》에 반영된 초기 이민문학은 문학이 예술의 고유한 차원으로 향유되지 못하고, 하와이 이민자의 정착 및 일제강점기 이민자의 공동체적인 입장과 목적을 위해 (문학이) 동원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초기 이민자들에게 이민문학은 예술성보다는 다만 흩어진 이주민을 결집하는 데에 더 효과적인 수단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다음은《태평양잡지》에 게재된 문학작품을 발표 시기별, 장르별, 특징별로 정리한 것이다.

장르 구분 작품명 저자 게재일 및 기타 정보
1 번역소설
(총 6회연재)
하멜의 일긔 헨리 하멜
(Henry Hamel)
역자 표기 없음
1913년 11월호-1914년 4월호
(1913년 12월호는 누락됨)
2 전진가 저자 미상
(블라디보스토크 동포가 지은 것이라 소개함)
1914년 1월호
(새해에 축사로 사용됨)
3 단편소설 ᄇᆡᆨ셜과 홍월계 저자 미상 1914년 3월
4 단편소설 토이기샹민 저자 미상 1914년 6월호
5 3·1절 공동묘지에서 저자 미상 1923년 3월호
(3·1절 기념시로 사용됨)
6 번역소설
(3년간연재)
금낭비결 스폴딍 여사 저
태평양잡지사 번역
1923년 6월호-1925년 7월호
(총 13편이 누락됨)
7 장편소설
(총 3회)
흰누이 저자 미상 1925년 8월호-1925년 10월호
8 종소리 하태용 1925년 8월호
9 장편 희곡
(총 6회)
피의잔 흰옷 1930년 4월호-1930년 9월호
(총 4회 보존/3호(1930.6)와 5호(1930.8)는 누락됨)
10 우리쳥년혈성ᄃᆡ 리정암
(곡조-콜럼비아)
1930년 5월호
(총 3연/후렴 있음/악보 없음)
11
(창가)
망향가 리정암
(곡조-Swanee River)
1930년 7월호
(총 3연/후렴 없음/ 악보 없음)

  《태평양잡지》에는 창간 시기인 1913년 9월에서 얼마 지나지 않은 1913년 11월호에 「하멜의 일긔」가 먼저 번역되어 연재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이민문학의 출발은 번역문학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하멜의 일긔」는 17세기에 네덜란드 선장인 ‘하멜’이 낯선 조선 땅(제주도)에 표류한 후 13년 20일간의 기록을 일기 형태로 작성한 것이 훗날 문학작품으로 탈바꿈한 『하멜표류기』이다. 「하멜의 일긔」가 《태평양잡지》에 실린 것은 낯선 하와이에 이주한 이주민이 느낀 ‘표류 의식’과도 연관된 것으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하멜의 일긔」는 총 6회로 게재되었는데, 1913년 11월부터 1914년 4월까지 연재되다가 중단되었다. 이후 번역소설 『금낭비결』의 경우는 약 3년간 장기 연재되었다. 소실되고 누락된 내용이 많아 내용 전개 및 내용 분석에 많은 아쉬움이 남지만, 보존된 것만으로도 그 내용 일부를 살펴볼 수 있다. 요컨대『금낭비결』은 “연애와 모험과 외교와 애국”을 다룬 이야기임을 부제로 밝히고 있다. 등장인물과 이야기 구조가 하와이 이민의 사정에 맞게 번안되었으며 개작되었다.
  이외에도 《태평양잡지》에는 장편소설 『흰누이』가 3회 연재되었는데, “활동사진으로 세계에 유행한 소설/ 이탈리아 이야기(연애, 종교, 모험)/ 창자를 끈으며 가삼이 터지고 사샹을 높이는 긔담”을 다룬 소설임을 제1회에서 예고편의 내용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 창작소설이 아니라 당시 유행했던 이탈리아 소설을 번안해서 수록했음을 알 수 있다.
  창작소설로는 단편소설 「ᄇᆡᆨ셜과 홍월계」(1914년 3월호)와 「토이기샹민」(1914년 6월호)이 있다. 번안소설이 연재물인 데 반해서 창작소설은 단편이라는 점이 대조적이며 특징적이다. 단편소설 「ᄇᆡᆨ셜과 홍월계」, 「토이기샹민」은 모두 작자가 밝혀져 있지 않아 독자 투고로 짐작되며, 독자 투고는 이민문학의 한 특징을 드러낸다.
  이 시기의 이민 사회에서 중요시했을 것으로 생각되는 것은 우애와 우정, 통상(상업) 등으로 여겨진다. 예컨대 「ᄇᆡᆨ셜과 홍월계」는 장화와 홍련을 연상시키는 ‘자매의 이야기’인데, 이 소설은 자매로 태어난 ᄇᆡᆨ셜과 홍월계의 우애와 효심을 주로 다루고 있다. 반면에「토이기샹민」은 황금이 담긴 감자항아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을 내용으로 하는데, 황금을 훔친 범인을 색출하는 재판의 과정을 섬세하게 다룬 법정소설이라 할 수 있다.
  소설과 달리 시의 경우는 《태평양잡지》에 수록된 작품이 매우 적은 편수이다. 창가, 노래 가사까지 모두 포함하여도 총 5편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 통해 초기 이민문학에서의 시 장르는 수록 편수가 적고 또한 시의 서정성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는 등 개인의 문학적 예술성보다는 공공의 노래로써 동원된 점을 엿볼 수 있다. 시는 집단적 목적을 위해 사용되고, 이를 전파하기 위해 노래로 불릴 수 있도록 고려했음을 알 수 있다(악보가 함께 실리기도 했다). 「전진가」, 「우리청년혈성대」등은 비록 몸은 고국을 떠나 있으나 고국의 자주독립을 위한 적극적인 참여를 위해 독립운동을 지지하고 협력하려는 모습을 시로써 형상화하고 있다. 요컨대 시의 경우는 식민지의 충격적인 체험과 나라를 잃은 상실의 정서가 나라 밖 머나먼 하와이 이민 사회에서 예술적인 요소로 작동하기보다는 ‘공동체 의식’을 더욱 중요시 여겨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역시 모두 저자를 알 수 없으며(이 시기의 이민문학은 구태여 저자는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순수 창작물이 아니라 구전된 혹은 집단적으로 향유되는 노래 형태로 불리는 창가 등을 통해서 표출된다. 시는 소설보다 쉽게 접근이 가능하고 전파력을 지닌 운문 장르였기에 개인의 서정보다는 오히려 집단의 이익을 위해 활용되고 있는 점이 특징적이다.
  그 밖에도 《태평양잡지》에는 희곡이 수록되어 있다. 무대와 등장인물, 대사와 지문 등 희곡적인 요소를 완벽하게 갖춘 작품인 「피의잔」은 주인공 ‘박금란’을 둘러싼 사랑과 이별, 질투와 술수 외에도 왜병의 처단(결말)이라는 개인적, 정치적 사건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작품이다. 특히 여주인공 ‘박금란’은 후반부에 남편을 떠나 여승이 되는 등 신분의 변화를 보여주는데, 기독교 성향이 짙은 《태평양잡지》로서는 의외의 설정과 결말이 아닐 수 없다. 짐작건대 이민자의 향수와 공감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법당’과 ‘여승’을 등장시킨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처럼「피의잔」은 《태평양잡지》에 실린 유일한 희곡작품으로서 주제 및 대사에서 전달되는 메시지와 주인공의 역할로 표출되는 인물의 캐릭터가 식민지 디아스포라의 한 양상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논의해 볼 만하다. 이 작품은 저자가 밝혀져 있는데, ‘흰옷’이라는 가명(假名)이 사용된 점이 또한 특기할 만하다. 아마도 필명일 것인 저자명은 흰 저고리와 흰 치마로 상징되는 조선을 연상시키며, 고결하고 염결한 자주정신을 ‘흰옷’이라는 명명으로 드러내고자 한 것으로 여겨진다. 당시의 이민 사회에서는 누구의 작품인가보다는 어떤 작품인가가 중요하게 인식되었으며, 작품을 통해 전달되는 상징적 의미와 파급력이 더욱 중요한 문제였음을 알 수 있다. ‘흰옷’으로 적시된 작가의 상징성을 이와 연관하여 해석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희곡 「피의잔」에는 전(前) 경상감사였으나 현재는 왜병의 정라(앞잡이)가 된 ‘구츄세’와 미모의 부인인 ‘박금란’이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박금란’은 지금의 경상감사인 ‘김츙션’의 아내가 되었지만 예전에는 ‘구츄세’의 연인이었던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과거에 ‘구츄세’는 ‘금란’에게 사랑의 징표로 ‘금잔’을 선물했는데, 이 ‘금잔’이 2막에서는 파국을 알리는 ‘피의 잔’이 되고 만다.

벽두
연약ᄒᆞᆫ 월계화도 가시가 잇고 온슌ᄒᆞᆫ 쇼약국도 츙렬이 잇다 약ᄒᆞᆫ자의 고개를 갓ᄒᆞᆫ자이 벌ᄋᆡ라도 약ᄒᆞᆫ자의 영혼이야 아모딘들 죽을쇼냐 육신으로 지난자ᄂᆞᆫ 졍신으로 승리ᄒᆞ고 물질로ᄂᆡ이ᄂᆞᆫ자 도덕으로 패ᄒᆞ노라
아-발가벗고 환도찬 세셩의 야만들이 사천년 반도 영광 압죠에 능욕ᄒᆞ니 의리에 짓고짓든 문명의 근원이야 아모려도 살아잇다 죽기언들 엄숙으리 인도가 잇ᄂᆞᆫ곳에 텬리가 웨업으랴 쥭엄에서 일어나서 패무ᄒᆞᆫ자 승리ᄒᆞ리

연극의인물
구츄세 전 경상 감사로 지금은 왜놈의 정라
김츙션 ᄒᆡᆼ인, 경상감사
박금란 김츙션의 부인, 그후에ᄂᆞᆫ 녀승
류졍련 녀승
시비
하인
상로 아ᄒᆡ
흑뎐 왜대장
가등
송평 귀족

뎨일막
배경(일) 경상감영이 멀리 보히ᄂᆞᆫ곳
표장을울리자 그뒤에서 몸이ᄂᆞᆫ것은 녀승들의 념불하ᄂᆞᆫ쇼래다
산비탈에 돌틈으로 업헤서 아해 하나이 머루를 ᄯᅡᆫ다
일병한ᄯᅢ가 사로잡은 사람 하나를 결박ᄒᆞ여 달이고지난다
구츄세가 들어셔며 휘휘 둘러본다 그래자 저먼곳 념불소래가 들린다
-「피의잔」 1회 도입부 부분(1930. 4)

  인용문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희곡 「피의잔」의 도입부에는 등장인물과 무대장치를 설명하는 시공간이 모두 제시되어 있다. 「피의잔」은 두 개의 무대를 보여주는데, 그중 하나가 경상감영에 도착하기 직전 여승의 “념불소리”를 들으며 과거의 박금란을 추억하는 구츄세(왜병의 정라)의 모습이 드러난 제1막의 무대이다. 희곡 속의 구츄세가 회상하는 박금란은 “미인”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금란은 지금의 경상감사인 김츙션의 아내가 되었으며, 금란의 남편 김츙선은 “일본에 반대하는” 조선인이었기에 구츄세는 자신이 왜병의 정라로서 그간의 공로를 세운 점을 내세워 지금이라도 금란을 데려올 생각에 젖어 있다. 전개 부분에는 구츄세의 그간의 삶이 밝혀지는데, 구츄세는 제주 사람으로 일본에서 성장한 이력을 지녔다. 또한 구츄세는 왜장 ‘흑뎐’의 앞잡이로 살아온 내력과 연관된 부분이 작품 속에서 드러난다.

(박금란) (빗겨 안즈면서) 술이 진ᄒᆞ면 진ᄒᆞᆫ 것이 술인지 사랑이 진ᄒᆞ면 진ᄒᆞᆫ 것이 사랑인지 아즉이야 말할 수 잇습니가. 술에도 독이 잇고 사랑에도 가시가 잇습니다
(흑뎐)이게 무슨 소리냐 아! 내가 속앗구나 (벗적 니러서려다가 픽 곡굴어진다)
(박금란) 이잔은 구츄세가 나에게 선사한 잔인데 이 잔은 ᄎᆞᆷ 나의 남편과 나의 나라를 위ᄒᆞ여 큰 공이 잇구나 이 잔으로 먹은 술은 우리 세 사람의 마즈막이다
(흑뎐) (박금란 다려) 아! 내가 당신한테 속기는 ᄒᆞ엿으나 나는 당신을 용서ᄒᆞ고 당신을 사모합니다 (구츄세 다려) 일본에서 너갓흔 개를 쓰기는 ᄒᆞ지만은 너갓흔 개는 열 번 죽어싸니라
(구츄세) 오냐 죽는 놈이 무슨 소리를 못ᄒᆞ겟느냐 너 멋대로 다 짓거려다 내가 김츙선에게 좆겨난 후에 그놈에게 긔어히 셜치를 ᄒᆞ려고ᄒᆞ다가 그것은 셩취를 ᄒᆞ엇으나 내가 일평생 생각기를 여자가 남자의 놀림감으로 알앗더니 지금 저 계집 (박금란을 바라보면서)에게 속앗다만은 내가 본래 일본의 세력을 빌어 나의 목적을 셩취ᄒᆞᆫ 후에 일본을 반항하려 ᄒᆞ엿스니 그전에는 내가 알지못ᄒᆞ고 일본을 친ᄒᆞ엿더니 지난 3년동안 일본놈들 속에 가셔 살아본즉 일본놈은 귀쳔을줄든하고 사괴일 수 업는 놈인줄도 알앗다
(박금란)철이나자 죽는고나 회개가 발셔 느즌 모양이다
(흑뎐)아이구!
(구츄세)아이구! 머리 몹시 압흐다 여보시오 김부인 살녀쥬시오 물 한그릇쥬시오
(박금란)우리 대감 죽일 때에......, 아이구 나무아미타불
(구츄세, 흑뎐)나무아미타불
-ᄭᅳᆺ
-「피의잔」3회 결말 부분(1930. 9)

  「피의잔」은 총 6회 가운데 3회(1930. 6)가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결말이 보존되어 전체적인 구성을 파악할 수는 있다. 「피의잔」의 두 번째 무대는 경상감영 내의 별당이다. 위 인용문(결말)은 별당 내에서 독이 든 잔을 나누어 마신 세 사람이 등장한다. 왜장 흑뎐과 왜의 앞잡이가 된 과거의 연인 구츄세는 금란이 건넨 금잔이 독(毒)잔인 줄도 모르고 마시며, 그릇된 세상을 회의(懷疑)하면서 마침내 여승이 된 금란은 독이 든 ‘피의 잔’을 두 사람에게 건네어 세 사람 모두 죽음에 이르는 파국이 결말을 통해 드러난다.
  희곡 「피의잔」은 비록 멀고 먼 하와이로 노동 이민을 온 이민자의 신분이지만 일제 침략을 묵인할 수는 없으며 더욱이 맞서 싸울 의지의 분출을 문학작품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기독교 선교사의 근대 의식을 접하면서 차츰 기독교화되어간 하와이 이민자들의 종교 의식은 이민 사회 전체의 공감을 형성하기 위해 과거의 종교적 분위기를 부인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하와이 이민 사회 뒤편에 내재된 고국을 향한 애정과 정신적인 지원(독립운동)은 희곡 작품을 통해 구체적인 결집의 방향성을 드러내면서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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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평양잡지》에 실린 문학작품의 특징들이 말하고 있듯 자신이 처한 이민자의 입장으로 표출되는 자기 경험이 공동체 경험과 맞물려서 역전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특별하고도 절실한 하와이 이민문학이 지닌 소통의 방식으로 여겨진다. 하와이 이주를 통해 가치 전환의 장소 이동이 ‘이민’이라면 ‘이민문학’은 구세계를 버리고 신세계로 이동하여 환경적, 사회적, 정신적인 모색을 내면화하고, 타자의 문학(번역문학)을 우선 받아들이는 모습으로 표출되었다. 또한 《태평양잡지》에 게재된 문학 장르는 번역소설, 연재소설, 단편소설, 시, 창가, 노래 가사(노래시), 희곡 등 매우 다양하며 공동체 지향적이다. 하와이 이민문학은 다양한 문학 장르를 모두 수용하여 활용한 측면이 있으며, 공동체의 결집을 도모할 뿐만 아니라 식민지에 처한 고국에게 동포애를 보여주고 있다.
  소설의 경우는 연애와 모험, 종교를 부각하여 식민지 디아스포라의 현실을 다소나마 극복하려는 내용으로 삼고 있다. 실제로 현순은 5년간 하와이에서 통역관으로 체류한 자기 경험을 「포와유람기」(1909)로, 육정수는 「송뢰금」(1911)으로 하와이로의 이주 과정을 반영하여 변화하는 사회상을 소설을 통해 육화시켰다. 특히 육정수는 하와이 이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소설을 통해 드러내어 1세대 이민자의 세계관을 드러내었다.
  이러한 개인의 활동에 비견하면, 《태평양잡지》에 게재된 소설은 작자 미상의 작품으로 보편적 연애를 토대로 한 이국적인 모험과 종교가 적용된 이야기를 선취했다. 번안소설을 통해 우선적으로 한인 사회가 공동체 의식을 발휘하여 소통하고 점차 개선되길 바란 의도가 엿보인다. 이처럼 《태평양잡지》의 소설들은 이민 사회에서의 분열을 타파하고 공동의 정서를 환기하여 보편적 대상으로서의 이야기를 모색한 점이 당시 이민문학의 면면이라 할 수 있다. 시의 경우는 정서적 결집의 방편으로 혹은 사회적 선동과 추진을 기획하려는 대상으로 시가 선택되었다. 창가는 사회적 궐기와 참여를 이끌려는 것이었고, 노래시는 곡조에 맞추어 부름으로써 집단의 목표를 주지하고자 선택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희곡의 경우는 단 한 편이지만 이민 사회의 보다 구체적인 정치성, 현장성을 잘 드러낸다. 희곡 「피의잔」은 독립운동에 대한 구체적인 행위가 연애의 삼각관계를 통해 표출하되 그 이면에는 조국애와 자주독립의 염원을 갈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듯 하와이 이주민이 겪은 식민지인의 실향 의식은 《태평양잡지》의 문예란을 통해 귀향의 욕망은 일시적으로 잠재우고, 이민자들 간의 다양한 협력을 모색하여, 낯선 장소에서 새롭게 이민 사회를 결집하며 추구해 나아가려는 노력의 일환을 보여주고 있다.

참고자료

1) 이 글은 두 편의 졸고 『일제강점기 《태평양잡지》에 반영된 이민문학』, 《인문사회21》 제10권5호, 아시아문화학술원, 2019과 『가치전환으로서의 장소이동과 이민문학의 메타모포시스-하와이 《태평양잡지》를 중심으로』, 《국제한인문학연구》 제25호, 국제한인문학회, 2019를 참고하여 작성되었다.

필자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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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동국대학교 연구교수 및 숭실대학교 HK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상명대학교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시로여는세상》 편집위원이며 《한국현대문예비평학회》 전공이사(현대비평)를 역임하고 있다. 평론집 『목어와 낙타』, 『비평의 시그널』, 『푸자의 언어』가 있으며, 대표 연구서 『1950년대 시와 전통주의』, 『메타모포시스 시학』등과 그 외에 다수의 공저가 있다.
* 사진제공_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