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넘는 작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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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넘는 작가들

역사의 명암과 삶의 본질을 표출하는 압도적 캐릭터의 창조자 양석일

조수일

   양석일(梁石日, 1936- )은 재일 코리안 집주 지역인 일본 오사카(大阪) 이쿠노(生野, 옛 지명은 이카이노(猪飼野))에서 태어난 재일 코리안 작가이다. 그의 부모님은 오사카로 이주해 온 제주 사람이며, 그의 본명은 양정웅(梁正雄)이다.
   1952년, 오사카의 고즈(高津)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우치나다 투쟁(内灘闘争, 한국전쟁 발발 이후 1952년부터 미군 포탄 시범 사격장이 이시카와현(石川縣) 우치나다 사구(沙丘)에 건설되었고, 이에 반기지 운동의 선구가 되는 우치나다 투쟁이 일어났다. 미군은 1957년에 철수)을 알게 되었고, 선배들과 반기지 투쟁에 참가하기도 했다. 학창 시절에는 마르크스, 엥겔스 등의 사회주의 관련 책을 탐독했고,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발자크, 체호프, 모파상, 나쓰메 소세키, 아리시마 다케오, 하기와라 사쿠타로, 가네코 미쓰하루 등의 소설과 시를 애독했다. 1955년, 입원해 있던 친구에게 문병 갔을 때, 우연히 같은 방에 입원해 있던 시인 김시종(金時鐘, 1929- )을 만났고, 김시종이 주재하고 있던 오사카의 시인 그룹인 ‘진달래(ヂンダレ)’에 참가하여 시 세계에 눈을 뜨게 된다. 그의 창작 시는 1980년에 출판한 유일한 시집 『몽마의 저편에(夢魔の彼方へ)』에 담겨 있다. 한편, 구두 가게, 철물을 모으는 고물상 등에서 일을 하다가 26세 때는 인쇄 회사를 창업했으나, 막대한 빚을 지고 도산한다.
   이곳저곳 전전하던 양석일은 1972년부터 생활의 거점을 도쿄(東京)로 옮겨 1982년 2월까지 택시 기사를 하는데,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광조곡(狂躁曲)』(후에, 『택시 광조곡』으로 제목 변경)을 발표했고, 이 작품이 호평받으며 전업 소설가의 길로 들어선다. 이 작품은 재일 코리안 영화감독인 최양일(崔洋一, 1949-2022)에 의해 1993년에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月はどっちに出ている)〉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었고, 양석일의 작품이 다시금 주목받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1998년에 자신의 아버지 양준평(梁俊平)을 모델로 하여 김준평(金俊平)이라는 폭력의 화신이자 괴물 같은 인물의 생애를 그린 대표작 『피와 뼈(血と骨)』를 발표했고, 양석일은 이 작품으로 제11회 야마모토 슈고로상(山本周五郎賞)을 수상한다. 양석일은 한반도와 일본 열도를 둘러싼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 『피와 뼈』를 통해 김준평이라는 일본 제국의 식민지적 폭력이 만들어 낸 비극적이며 압도적인 캐릭터를 강렬한 필치로 형상화함으로써 인간이란 무엇인가, 역사란 무엇인가, 가족이란 무엇인가, 신체란 무엇인가라는 원초적인 질문을 독자에게 던졌다. 이 작품 역시 최양일 감독에 의해 2004년 영화화되었고, 일본의 유명 코미디언이자 감독인 기타노 다케시(北野武, 1947- )가 김준평 역할을 맡아 화제가 되었다.
   또, 양석일은 『택시 광조곡』과 『피와 뼈』 외에 『족보의 끝(族譜の果て)』(1988), 『밤을 걸고(夜を賭けて)』(1994), 『어둠의 아이들(闇の子供たち)』(2002), 『바다에 가라앉는 태양(海に沈む太陽)』(2008), 『시네마 광조곡(シネマ狂騒曲』)(2009), 『다시 오는 봄(めぐりくる春)』(2010), 『크게 될 때를 바라며(大いになる時を求めて)』(2012) 등 다수의 장편소설을 발표했으며, 평론집 『아시아적 신체(アジア的身体)』(1990), 소설가 다카무라 가오루(高橋薫, 1953- )와의 대담집 『쾌락과 구제(快楽と救済)』(1998), 평론가 미야자키 마나부(宮崎学, 1945-2022)와의 대담집 『살아가는 힘(生きる力)』(2000), 수필집 『비우면 가벼워지는 인생(一回性の人生)』(2004)을 출간하기도 했다. 한편, 양석일은 재일 코리안 작가 유미리(柳美里, 1968- )의 1997년 제116회 아쿠타가와상(芥川賞) 수상 작품인 『가족 시네마(家族シネマ)』가 박철수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을 때, 아버지 역할로 영화에 출연한 이색적인 경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양석일의 문학은 기본적으로 재일 코리안을 둘러싼 역사의 질곡, 자신의 굴곡진 삶의 체험과 인간관계를 모티프로 삼은 서사로 이뤄져 있으며, 당연히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재일 코리안이다. 『크게 될 때를 바라며』는 시인 김시종을 모델로 한 작품이다. 양석일 문학의 등장인물들은 옛 지배자의 땅에서 차별을 받으면서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는, 재일 코리안 문학에 새로운 지평을 여는 캐릭터로 평가받는데, 양석일이 말하는 ‘아시아적 신체’ 담론이 바로 그러한 인물 조형에 응축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근대의 획일화・제도화・규범화를 부정하는 신체, 강렬한 개성 혹은 이질성을 띠는 경계적 신체는 일본 문화의 공동화(空洞化), 폐쇄성과 차별성, 나아가 근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자 ‘앎의 세계’에 대한 반역으로서 기능한다.
   일본의 평론가 히라오카 마사아키(平岡正明, 1941-2009)는 평론집 『양석일은 세계 문학이다(梁石日は世界文学である)』(1995)를 통해 양석일 문학이 가리키는 세계 문학이란 “제국주의의 안팎을 그려내는 문학”이라 말한 바 있지만, 그의 문학 세계는 『피와 뼈』가 그리는 강렬한 부자 관계, 특히 김준평이라는 캐릭터의 흉폭함과 냉혹함, 타자에 대한 불신과 호색한적인 측면, 철저한 고독함으로 점철된 폭력적이며 가부장적인 재일 코리안 아버지의 전형만이 강조되는 경향이 없지 않다. 하지만 김준평이라는 한 재일 코리안의 일생에는 한민족이 겪은 질곡의 역사는 물론이거니와, 인간의 욕망과 고립, 한 개인으로서 삶을 살아내는 것의 의미, 황금만능주의의 폐해와 인간 불신 등 삶의 본질을 파고드는 문제의식이 아로새겨져 있는바, 양석일이 창조한 캐릭터들의 개별성과 보편성, 그들의 삶이 길항해 온 세계와 역사의 명암에 주목한 다시 읽기와 사유가 요구된다.

  • 2000년 초 도쿄의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양석일 선생의 모습.
    (출처: ©양석일 선생 제공)

  • 1990년 초 요코하마의 어느 바에서 촬영한 양석일 선생의 모습.
    (출처: ©양석일 선생 제공)

  • 2019년 2월, 양석일 선생 자택에서
    (왼쪽부터) 필자, 양석일, 김환기(동국대 교수), 조동현(‘제주도 4・3 사건을 생각하는 모임・도쿄’ 회장).(출처: ©필자 제공)

  • 2010년 4월, 도쿄 닛포리. 제주 4・3 사건 62주기 추도 집회 〈기억과 진실〉 당시
    (왼쪽부터) 조동현, 최양일, 양석일, 김석범.(출처: ©조동현 ‘제주도 4・3 사건을 생각하는 모임・도쿄’ 회장 제공)

필자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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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출생. 현재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HK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김석범의 문학: 죽은 자와 산 자의 목소리를 잇다』(이와나미서점, 2022, 일본어)가 있으며, 김석범의 소설집 『만덕유령기담』(보고사, 2022, 공역)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