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넘는 작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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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넘는 작가들

녹색 거주증의 고려인 작가 한진

강진구


▲ © 조규익·김병학 『카자흐스탄 고려인 극작가 한진의 삶과 문학』

  한진(韓眞, 1931-1993)은 한대용의 필명이다. 그는 1931년 8월 17일 극작가 한태천(韓泰泉, 1906-1975)의 장남으로 태어나 평양 제일고급중학교를 졸업하고 1948년 김일성종합대학 노문학과에 입학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인민군 하사로 입대하여 서울-인천 전선에 투입되었으며, 소위로 근무하던 1952년 여름 국가유학생에 선발되어 소련 모스크바 전연맹국립영화대학교(Всесоюзный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институт кинематографии) 시나리오과에 입학했다. 구한말 의병장이었던 왕산 허위(許蔿, 1854-1908)의 손자였던 허웅배(허진)와는 유학 동기생이자 평생의 동지였다.
  1953년 이오시프 스탈린 사망 이후 니키타 흐루쇼프 주도로 행해진 스탈린 격하 운동은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에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소련 주재 북한 대사였던 이상조를 비롯한 이른바 ‘연안파’는 스탈린 격하 운동을 계기로 김일성 개인숭배 문제를 제기했다. 북한은 이를 빌미로 ‘소련파’와 ‘연안파’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을 단행했다. 또한 유학생들의 동요를 막고자 재소 조선인 동양회 등을 통해 사상 통제를 강화했다. 이 같은 북한의 태도에 유학생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심지어 1957년 11월 27일에 개최된 제8차 ‘재소련조선유학생동향회’에서는 연설자로 나선 허웅배가 공개적으로 김일성 개인숭배를 비판하기까지 했다. 사건 직후 북한 대사관에 체포되어 평양으로 송환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탈출한 허웅배는 소련 당국에 망명을 신청했다. 허웅배의 주장에 동조하지 말라는 부모님의 눈물겨운 설득과 북한 당국의 회유에도 불구하고 한진은 허웅배를 지지하면서 동료 유학생들과 함께 1958년 8월 소련으로 망명했다.
  망명자로서 삶을 선택한 한진은 대학을 마치고 소련 바르나울시 텔레비전 방송국 책임 편집위원으로 부임했다. 망명자로서의 불안, 부모님에 대한 죄송함 그리고 동지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외로운 나날을 보내던 한진은 그곳에서 러시아 문학을 전공한 지나이다 베르로바를 만나 가정을 이뤘다. 1963년 9월 《레닌기치》 문화 생활부 문예 담당 기자로 부임한 것을 계기로 고려인 사회의 일원으로 정착했다. 조선극장 문예부장으로 재직하면서부터는 고려인의 삶과 애환을 담은 다수의 희곡 작품과 소설을 창작함으로써 명실공히 고려인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의부 어머니」(1964), 「고용병의 운명」(1967), 「량반전」(1972), 「봉이 김선달」(1974), 「산부처」(1979), 「토끼의 모험」(1981), 「폭발」(1985), 「나무를 흔들지 마라」(1987) 등의 희곡이 있고, 「그 고장 이름은?」(1990)과 중편소설 「공포」(1989) 등을 발표하기도 했다.
  1993년 위암으로 사망하기까지 한진이 고려인 문학에 남긴 영향은 지대했다. 그는 1988년부터 카자흐스탄 작가동맹 관리위원회 위원 및 조선어분과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면서 『꽃피는 땅』(1988), 『행복의 고향』(1988), 『해돌이』(1989), 『오늘의 빛』(1990) 등의 공동 창작집 발간 작업을 통해 고려인의 삶과 문화를 후대에게 전달하려 했다.
  강제 이주를 직접 경험한 1세대 고려인 작가들이 ‘소비에트’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강조한다면 한진은 소비에트 자리에 ‘민족’을 넣었다. 그는 사막에 팽개쳐진 고려인들을 소비에트 공화국의 일원으로 따듯하게 품어준 중앙아시아와 그곳 사람들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연성룡 등의 선배 세대와 달리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에서 이야기를 찾았다. 「양반전」, 「봉이 김선달」, 「토끼의 모험」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전쟁 중 남북 군인의 대결과 화해를 그린 「나무를 흔들지 마라」 등을 통해 고려인 사회에 분단된 민족의 현실을 보여주려 했던 것도 여전히 망명자로서 민족의 끈을 놓지 않고 있음을 증명한다.

   모든 일이 시작과 마지막이 중요하듯 사람도 마찬가질 게야. 죽는 일도 중요한 일이지 그런데 말이다. 사람이 태어난 곳은 고향이라는데 사람이 묻히는 땅은 뭐라고 하느냐? 그곳을 뭐라고 부르는지? 그것도 이름이 있어야 할 거야. 고향이란 말에 못지않게 정다운 말이 있어야 할 것야…….

―「그곳을 뭐라 하는지?」 중에서

  인용문은 단편소설 「그곳을 뭐라 하는지?」의 일부이다. 한진은 페레스트로이카를 통해 소련 사회가 개혁·개방의 길을 걷자, 「공포」와 「그곳을 뭐라 하는지?」를 통해 강제 이주로 인해 고려인 사회가 겪어야만 했던 역사를 형상화한다. 그는 「공포」에 등장하는 ‘리선생’과 ‘검둥이’ 에피소드를 통해 소비에트 사회주의 붕괴라는 급변하는 시기, 어떠한 행위가 민족을 위한 올바른 길인지를 묻는다. “우리말이 없어지면 문학도, 극장도, 신문도 다 없어지게 될 것”이라며 우리말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한진이 「그곳을 뭐라 하는지?」를 통해 모어(母語)를 잃어버린 고려인 사회의 세대 간 단절을 보여준다는 점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태어난 곳과 묻히는 곳이 다를 수밖에 없었던 강제 이주 1세대 어머니는 스스로 망명을 길을 선택해 녹색 거주증으로만 자신을 증명해야 했던 한진의 삶을 닮았다. 카자흐스탄 알마타시 외곽 브룬다이 공원묘지에 묻힌 한진이 부디 그 이름을 찾았기를 소망한다. 고단한 망명자의 삶을 끝내고 영원한 안식이 그와 함께하기를…….

참고자료

조규익·김병학, 『한진의 삶과 문학』, 글누림, 2013.

김필영, 「소비에트 카작스탄 한인문학과 희곡작가 한진(1931-1993)의 역할」, 《한국문학논총》 27, 2000.

박명진, 「중앙아시아 고려인 文學에 나타난 民族敍事의 特徵: 劇作家 한진의 텍스트를 중심으로」, 《어문연구》 32(2), 2004.

임환모, 「중앙아시아 고려인 단편소설의 지형도」, 《한국문학이론과 비평》 57, 2012.

필자 약력

1969년생,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대학원(문학박사)을 졸업했다.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원 학술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한국문학의 쟁점들: 탈식민, 역사, 디아스포라』, 『한국문학과 코리안디아스포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