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넘는 작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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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넘는 작가들

미주 한인 문학의 모던 리얼리스트 고원

이형권


▲ [ⓒ 필자 제공]

  고원(高遠, 1925-2008)은 충북 영동군 학산면 박계리 587번지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고성원(高性遠)으로 아버지 고명철(高明哲)과 어머니 권인례(權仁禮)의 무녀독남으로 출생했다. 고향인 영동의 양산보통학교와 전북 전주의 북중학교(전주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하여 1948년 혜화전문학교를 거쳐 동국대학 전문부 문학과를 졸업했다. 이때 모더니즘 교수로 있던 당대 최고의 모더니즘 시인이자 이론가인 김기림 교수에게 사사했다. 1954년에는 시 전문지 《시작》을 창간하고 1956년까지 6집을 내는 동안 편집 주간으로 활동했다. 고원은 1950년대 시인으로서 창작 활동뿐만 아니라 문예지의 발간에도 관여했다. 하지만 1956년 유네스코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1년 동안 영어를 수학했다. 이후 옥스퍼드대학교 여름학기에 현대 영시 강습회를 수강하고, 퀸메리런던대학교(Queen Mary University of London) 영문학과에서 1년간 수학했다.
  영국에 다녀온 뒤 1958년에 동국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1963년에 필리핀의 실리만대학교(Silliman University)의 문예 창작 강습회를 수료했는데, 그때 강사로 온 아이오와 대학의 폴 엥글(Paul Engle) 교수와 인연을 맺는다. 1964년 아이오와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하여 문예 창작에 관한 공부를 시작하여 1966년에 영문학 석사(MFA)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에도 학업을 계속 이어가면서 1974년에는 뉴욕대학교에서 비교문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박사학위를 취득하면서 뉴욕에 있는 브루클린대학(Brooklyn College), 새크리드하트대학교(Sacred Heart Univ.),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California State Univ.) 등에서 오랫동안 문학 교수로 생활했다.
  고원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하면서 동포 문인들과 함께 한글 시 창작 활동을 왕성하게 전개해 나갔다. 1986년에는 로스앤젤레스에 글마루 문학원을 설립하여 시 창작 교실을 운영하면서 많은 신인을 발굴하기도 했다. 또한 1988년에는 문예지 《문학세계》를 발간하면서 미주 지역 문단의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문학세계》는 특정한 모임과 관련된 기관지 형태가 아닌 순수 민간 문예지로서는 선구적인 사례에 속하는 것이었다. 그는 1988년부터 1989년까지 미주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한인 문학 단체인 미주한국문인협회 회장을 맡아 활동했다.
  그의 문학적 성과는 첫 시집 『새움』(1946)을 비롯하여 『시간표 없는 정거장』(1952, 장호·이민영과의 3인 공동 시집), 『이율(二律)의 항변』(1954), 『태양의 연가』(1956), 『눈으로 약속한 시간에』(1960), 『오늘은 멀고』(1963), 『속삭이는 불의 꽃』(1964), 『미루나무』(1976), 『북소리에 타는 별』(1979), 『물너울』(1985), 『새소리』(1992, 박남수·마종기와의 3인 공동 시집), 『다시 만날 때』(1993), 『정(情)』(1994), 『무화과나무의 고백』(1999), 『춤추는 노을』(2003) 등에 집적되어 있다. 모두 열세 권의 개인 시집과 두 권의 공동 시집을 발간한 것이다. 또한 시조집으로 『달 둘이 떠서』(1995), 『새벽별』(2001), 영시집으로 The Turn of Zero(1974), With Birds of Paradise(1984), Some Other Time(1990) 등을 발간했다. 2006년에는 그의 문학을 총정리한 「고원 문학 전집」(총 5권)이 발간되었다.
  그의 문학은 한국문학인 동시에 한인 문학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1964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 그는 시인으로서 한국문학의 한 영역을 담당했다. 1950년대 초부터 1960년대 초까지 그의 시는 당시의 역사적 사건들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즉 6·25전쟁이라든가 4·19혁명과 관련된 시대적 상처를 드러내는 시를 창작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1964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후에는 그곳에서 미주 한인으로서 디아스포라 의식과 관련된 시편들을 다수 창작한다. 한편으로는 순수 서정시나 언어 실험시 경향을 보이는가 하면, 국내외의 정치적, 사회적 사건에 대한 비판적인 시를 다수 발표한다. 특히 5·16쿠데타, 5·18광주민주화운동이나 1990년대 초의 LA 폭동과 관련된 시편들은 고도의 리얼리즘 정신을 보여 주었다.
  고원 시인은 순수 서정시에서부터 모더니즘적 실험시, 리얼리즘적 비판시 등 실로 다양한 영역을 아우른다. 또한 시인뿐만 아니라 문학 교수, 문학 평론가, 문학 교육자, 문예지 편집인 등의 역할에도 충실했다. 실로 그의 문학 활동은 그의 생활이 한국과 미국을 넘나들던 것처럼, 장르나 시적 경향에서 아주 폭넓은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는 미국이라는 열악한 언어 환경 속에서 한글 시를 창작하고 보급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또한 미국의 로스앤젤레스 지역에서 한인 작가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면서 미주 한인 문단의 수준을 향상하는 데에 일조를 담당했다. 한국문학과 한인 문학의 다양성, 그리고 셰계화를 위한 그의 이러한 활동은 반드시 기억될 필요가 있다.

필자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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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권. 충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이자 문학평론가이다.
디아스포라 웹진 《너머》 편집을 주간하며 문예지 『시작』, 『시와시학』 편집위원, 국제한인문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타자들, 에움길에 서다』, 『한국시의 현대성과 탈식민성』, 『발명되는 감각들』, 『공감의 시학』, 『미주 한인 시문학사』 외 다수의 저서를 집필하였다.
1998년 『현대시』 문학평론 부문 우수작품상, 2010년 편운문학상 문학평론 부문 본상, 2018년 시와시학상 평론가상, 2021년 김준오시학상을 수상하였다.
* 사진제공_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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