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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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야기

오사카 이카이노: 제1부 조선 시장의 형성

정성희

  이카이노(猪飼野).
  이 지명은 재일 코리안의 삶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일제강점기 때 건너온 조선인들이 이 이카이노에 모여 가난 속에서 살아온 곳이기 때문이다. 이카이노의 지명은 돼지를 사육하는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다는 것에서 유래되었다. 오사카시 이쿠노구(生野区)에서 히가시나리구(東成区)에 걸친 곳과 히라노강(平野川) 일대를 가리키는 말인데, 1973년 행정상의 이유로 이 지명은 사라졌다.1) 그러나 지금도 이 마을 곳곳에서는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히라노강 (출처: 필자 제공)





마을 곳곳에 남아 있는 이카이노 흔적들 (출처: 필자 제공)

  19세기 말, ‘동양의 맨체스터’라고 불릴 정도로 거대 공업 도시로 발전해 가던 오사카에 일본 식민지인 조선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찾아 건너왔다. 조선인들은 1915년쯤부터 이카이노에 살기 시작했고, 당시 이카이노는 공장노동자들의 초기 취락이 있었다. 1919년에 이르러 히라노강의 개수 공사를 실시했고, 그에 따라 많은 조선인 노동자들이 개수 공사에 참여하여 종사하고 있었다. 이어서 1923년에 제주도와 오사카를 왕래하는 정기연락선인 ‘기미가요마루(君が代丸)’가 취항하자, 많은 제주도 사람이 오사카로 건너왔다. 시간이 흘러 해방 후인 1947년에는, 제주도에서 일어난 ‘제주 4·3 사건’으로 인해, 목숨을 걸고 일본으로 도망쳐 온 조선인들이 늘어났다.
  ‘조선 시장(朝鮮市場)’의 형성 계기는, 1926년 츠루하시 공설 시장(鶴橋公設市場)의 개설이다. 당시 이쿠노쿠에서 생활하는 재일 코리안들은 골목에서 음식 등을 팔고 있었는데, 전쟁이 격해지자, 미유키도오리 상점가에서 장사하던 일본인 점주들이 지방으로 이주하기 시작했고, 이에 재일 코리안들이 일본인 점주가 떠난 그 빈 점포들을 소유하게 되어 조선 시장을 형성하게 되었다.2)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일본의 고도 경제 성장(高度経済成長)의 영향을 받은 조선 시장은, 한국 음식과 물품들이 한자리에 모인 상가를 형성하게 되었고, 한국 식재료를 구하기 위해 일본 전국에 거주하는 재일 코리안들이 찾아왔다. 또한 이 당시 이카이노에서는 ‘헵샌들’이 재일 코리안의 주요 사업이었다. 헵샌들은 영화 〈사브리나(Sabrina)〉(1996)의 주연으로 출연한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이 신었던 발뒤꿈치의 착용감이 높은 샌들을 일컫는다. 당시 가내수공업이 번성했던 이쿠노쿠에는 집집마다 샌들을 만드는 소리와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가 비좁은 골목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지독한 시너 냄새를 맡으며, 낮은 품삯에 작업량 또한 일정치 않아 불안정한 삶을 이어가는 심신이 고된 업무였다. 특히 시너 냄새가 너무 심해 시너에 중독된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3) 당시 재일 코리안은 그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고 살아야만 했던 처지였다. 다시 말해 직업을 선택할 수 없는 현실이었고, 그렇게 힘든 일을 해야만 돈을 벌 수 있는 현실이 그들의 역사를 잘 나타내고 있다.

헵샌들 (출처: 오사카 코리아타운 역사자료관)

참고자료

1) 猪飼野保存会, 『猪飼野郷土誌』, 猪飼野保存会, 1997.

2) 八木寛之·谷富夫, 「生野コリアタウンは「韓流ブーム」にのって: 阪神圏商店街実態調査から」, コリ アンコミュニティ研究, 5号, こりあんコミュニティ研究会, 2014.

3) 정성희, 「재일코리안과 한국 전통예술의 재창조: 창작 판소리 〈4월 이야기〉를 사례로」, 《日本文化學報》 99, 2023, 149-167쪽.

필자 약력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전문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글로벌문화콘텐츠 학과에서 학위를 받았다. 재일코리안과 한국전통예술, 공립학교 속의 민족교육 등을 비롯한 재일코리안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대표 논문으로 「재일코리안과 한국 전통예술의 재창조」, 「재일코리안 집중거주 지역의 언어경관」 등이 있으며 공동 역서로는 『재일조선인미술사 1945-1962』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