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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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사 대학, 정지용과 윤동주 시비 - 2부 일본의 윤동주 시인 추모

홍용희

  1995년 2월 16일 윤동주 사후 50주기를 맞아 동지사 대학 교정에 윤동주 시비가 건립된다. 조총련과 민단 계열이 반목을 넘어 통합된 동지사 대학 한인 동창회 ‘코리아 클럽’의 노력, 반전과 평화의 가치에 공감한 동지사 대학의 뜻이 함께 모인 산물이었다. 이것은 다르게 말하면, 윤동주의 삶은 이념과 국경을 넘어 화해와 평화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모두 함께 기리고 선양해야 할 대상이라는 것을 반증한다.
  윤동주 시인은 1917년 12월 30일 만주 명동촌에서 태어난다. 1935년 평양 숭실중학교에 다닐 무렵 《숭실활천》에 이미 시 「공상」을 발표하며 문학도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1938년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면서 자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준비한다. 시집 간행을 위해 마지막으로 1941년 11월 20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다”고 고백하는 「서시」를 쓴다. 그러나 일본 관헌의 검열을 염려한 스승 이양하의 권유로 시집 출간은 무산된다. 이후 1942년 일본 유학을 결행한다. 3월에 동경 릿쿄 대학에 입학했으나 같은 해 10월 교토 동지사 대학 영문학부로 편입한다. 그러나 일본에 온 지 1년이 조금 지난 1943년 7월 14일 일본 경찰에 체포된다. 1944년 4월 13일 윤동주는 그의 고종 사촌 송몽규와 함께 2년 형의 징역을 선고받는다. 죄목은 ‘치안유지법 위반 피고 사건(조선 독립 운동)’이었다. 그의 판결문에는 민족의식 양양에 대한 지적을 중심 내용으로 하는 11개의 죄상이 서술되어 있는데, 문학적 세계관을 지적하는 부분도 있어 더욱 눈길을 끈다.

   문학은 어디까지나 민족의 행복 추구의 견지에 입각하여 상기의 민족적 문학관을 강조하면서 민족의식을 유발시킬 것을 부심했다.

  윤동주는 복역 중이던 1945년 2월 16일 금요일 오전 3시 36분 “외마디 소리를 높이 지르면서” 절명하고 만다. 열흘이 지나 아버지 윤영석과 당숙 윤영춘이 후쿠오카 형무소로 찾아간다. 사인은 뇌일혈이라고 했다. 그러나 “푸른 죄수복을 입은 20대의 한국 청년 근 50여 명이 주사를 맞으려고 시약실 앞에 쭉 늘어선 것이 보였다”라는 윤영춘의 회고록에서 보듯, 규슈 대학 의학부 생체 실험과 관련 있는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1945년 3월 6일 고향에서 장례를 치르고 ‘시인 윤동주 지묘’라고 새긴 묘비를 세운다. 장례식에는 윤동주가 연희전문학교 졸업 무렵 썼던 「자화상」과
  「새로운 길」이 낭독되었다. 시적 언어가 너무도 맑고 순정하여서 더욱 슬펐다. 지금도 윤동주의 시비 앞에는 한국인은 물론 일본인들의 참배가 줄을 잇는다. 그의 시어에 배어 있는 부끄러움과 속죄양 의식이 일본인들에게도 시대를 넘어 지속적으로 자기 성찰의 계기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참배객들은 반전과 평화의 소중함을 저절로 되새기게 되는 것이다. 한편, 일본에 세워진 윤동주 시비는 이외에도 지금은 교토조형예술대 다카하라 교사가 설립된 시모가모 하숙집 집터 앞에 세워져 있다. 여기에는 ‘윤동주유혼지비(尹東柱留魂之碑)’라는 글씨가 새겨진 비석과 「서시」를 한글과 일본어로 새긴 시비가 함께 있다.



  • 시모가모 하숙집 집터 앞 윤동주 시비와 비석

  또한, 그가 마지막으로 동지사 대학 동창들과 소풍을 갔던 곳으로 알려진, 우지(宇治)의 ‘아마가세 쓰리바시’(아마가세 구름다리) 아래에 윤동주 시비가 세워져 있다. 일본 교토에서 멀지 않은 녹차가 많이 나는 마을로 유명한 이곳은 시인이 이승에서 마지막 사진을 찍은 곳으로 추정된다.



  • 1943년 귀국을 앞두고 소풍에 나선 시인의 생전 마지막 모습. 사진은 1995년 윤동주 다큐멘터리 제작 당시 동행 친구의 앨범에서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졌다.

  이곳의 시비 건립은 ‘윤동주를 사랑하는 일본인들의 모임’이 주도하여 2017년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이루어졌다. 기념 시비는 ‘기억과 화해의 비’라고 명명되었다. 비문에는 윤동주의 시, 「새로운 길」이 한글과 일본어로 새겨져 있다.
  윤동주가 옥사한 2월 16일 기일이 되면 일본에 있는 윤동주의 시비에는 일본인 추모객들이 줄을 잇는다. 일본에서 윤동주를 기리고 선양하는 모임은 이처럼 그의 시에 대한 깊은 감명으로, 안타까운 일본 제국주의의 폭력적인 죽임에 대한 속죄양으로, 평화와 화해의 미래를 위한 바람으로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필자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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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안동 출생. 경희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래문명원장, 미디어문예창작과 교수. 199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을 통해 등단했다. 저서 『김지하 문학연구』, 『꽃과 어둠의 산조』, 『한국문화와 예술적 상상력』, 『아름다운 결핍의 신화』, 『대지의 문법과 시적 상상』, 『현대시의 정신과 감각』, 『고요한 중심을 찾아서』 등을 출간했다. 젊은평론가상, 편운문학상, 시와시학상, 애지문학상, 김달진문학상, 유심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계간 《시작》 주간, 《대산문화》 편집위원, 디아스포라 웹진 《너머》 편집위원, 문화예술지 《쿨투라》 기획위원, 《K-Writer》 편집위원 등을 역임했다.
* 사진제공_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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