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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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사 대학, 정지용과 윤동주 시비 - 1부 윤동주 시비의 건립

홍용희

  일본 전통문화의 숨결이 살아 있는 천년 고도(故都), 교토부 교토시 가미교구에 위치한 동지사 대학의 교정을 들어선다. 동지사 대학은 기독교 정신에 기초한 ‘양심 교육’을 창학 이념으로 1875년에 건립된 사립 명문이다. 여름날 햇살에 반짝거리는 아름드리 상수리나무의 이파리와 붉은 벽돌의 고풍스러운 건물이 동지사의 자유로우면서도 절도 있는 학풍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하다. 정문 안의 예배당을 끼고 왼쪽 굽잇길을 따라 걸어가자, 두 개의 시비와 아담한 호수가 가지런히 드러난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정지용과 윤동주 시인의 시비이다. 일본 교토의 대표적인 사립 명문 대학에 우리 한국어를 청신하고 세련된 근대적 감각으로 조탁한 대표적인 시인 두 분의 시비가 나란히 조성되어 있다는 것에 반가움과 놀라움이 새삼 밀려든다.



  • 동지사대 교정의 윤동주, 정지용 시비

  물론 이 둘이 모두 동지사 대학의 동문이지만 결코 그것만이 이유가 될 수는 없다. 특히 윤동주는 1945년 2월 16일 일제에 의해 28세의 젊은 나이에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삶을 마감한 저항 시인이 아닌가.
  윤동주의 시비가 건립된 것은 그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영면한 지 50주기가 되는 1995년 2월 16일이다. 1미터 정도 높이의 기단과 사각형으로 된 상단의 화강암으로 단장된 시비에는 세로로 윤동주 시비라고 각인되어 있다. ‘윤동주(尹東柱)’ 이름 석 자는 그의 친필을 옮겨 확대해 새겼다. 앞면의 오석에는 그의 대표작 「서시」가 새겨져 있다. 「서시」는 시인의 자필을 확대해서 새긴 한글과 이부키 고(伊吹鄕)에 의해 번역된 일본어본이 함께 기재되어 있다. 뒷면 오석에는 윤동주가 동지사 대학에 입학하고 체포되고 옥사하게 되는 과정과 시비를 세운 뜻이 간략하게 적혀 있다.



  • 동지사대 윤동주 시비

  그러나 이것으로 동지사 대학에 윤동주 시비가 세워진 배경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마침 나는 이번 여정에 함께한 윤동주 시비 건립의 주체인 도지샤 교유회 ‘코리안 클럽’의 중심 멤버였던 박세용 선생을 통해 자세한 얘기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 그의 전언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991년 일본 지바현에서 개최된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 남북 단일팀 ‘코리아’가 한반도기를 내걸고 출전한다. 연일 승리를 이어가다가 결승에서 중국을 꺾고 극적으로 우승까지 하게 된다. 남북이 하나가 되어 이루어낸 감격스러운 결과였다. 남북 탁구 단일팀이 가져온 화해와 통일의 기운이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조총련)계와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으로 반목하던 일본 동포 사회에도 변화의 바람을 일으켰다. 1992년 4월, 동지사 대학 동창회 조직도 양쪽 진영의 대립을 넘어 ‘코리안 클럽’으로 통합되면서 선배 윤동주 시비 건립을 한목소리로 얘기하게 된다. 그러나 동지사 대학은 기독교 대학으로서 개인을 우상화하는 기념비를 경계하는 불문율이 있었다. 또한 윤동주는 졸업한 학생이 아니라 1942년 10월부터 불과 10여 개월 정도 다닌 편입생이지 않은가. 그래서 동문들 간에도 시비 건립에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왔다. 일단 학교 법인 이사장을 만나 부딪혀보기로 했다. 이사장은 그 자리에서 바로 흔쾌히 공감하고 승인했다. 당시 박사과정 학생으로서 현장에 동석했던 박세용은 동지사 대학 이사장의 적극적인 도움에 대해 이렇게 분석했다.

   한국과 일본 국가 간의 대립을 넘어서 더 이상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의지, 평화에 대한 염원, 그리고 젊은이들이 이런 전쟁에서 더 이상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는 숭고한 가치에 공감을 했던 것 같아요.

  조총련과 민단의 화해와 통합의 분위기, 일본 동지사 대학의 반전 평화의 교육 이념이 행복하게 만나, 윤동주 시비 건립이 가능했던 것이다.

필자 약력
홍용희 프로필.jpg

1966년 안동 출생. 경희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래문명원장, 미디어문예창작과 교수. 199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을 통해 등단했다. 저서 『김지하 문학연구』, 『꽃과 어둠의 산조』, 『한국문화와 예술적 상상력』, 『아름다운 결핍의 신화』, 『대지의 문법과 시적 상상』, 『현대시의 정신과 감각』, 『고요한 중심을 찾아서』 등을 출간했다. 젊은평론가상, 편운문학상, 시와시학상, 애지문학상, 김달진문학상, 유심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계간 《시작》 주간, 《대산문화》 편집위원, 디아스포라 웹진 《너머》 편집위원, 문화예술지 《쿨투라》 기획위원, 《K-Writer》 편집위원 등을 역임했다.
* 사진제공_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