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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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고려인 강제이주의 현장을 찾아서: 알마티

김환기

◆ 알마티의 고려극장과 민족정신


   고려극장은 고려인의 역사이며 정체성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1932년 블라디보스토크의 ‘신한촌’에서 창립된 고려극장은 고려인들의 삶과 함께 호흡한 전통문화의 보고이며 고려인 사회의 정신적 구심점이다. 특히 고려극장은 극동 연해주에서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와 우슈토베, 크즐오르다를 거쳐 알마티로 근거지를 옮기는 힘든 상황 속에서도 극작가와 배우들을 중심으로 한글 극문학을 창작하고 보급하면서 민족의 역사·문화와 정체성의 유지·계승에 힘썼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초기에 공연된 고려극장의 극작품으로는 연성용의 「장평동의 횃불」을 비롯해 태장춘 「밭두렁」, 이정림 「춘향전」, 채영 「심청전」 등이 있다. 그리고 1937년 중앙아시아로 이주한 이후에는 민족의 전통 노래인 〈꾀꾀꼴〉, 〈사랑가〉, 〈농민유희〉, 〈만일 전쟁이 난다면〉 등을 들려주며 「심청전」, 「행복한 사람들」, 「농민유희」, 「숨은 원쑤」 등의 공연을 이어갔다. 여기에서 주목할 사항은 고려극장이 고려인 콜호스는 물론이고, 러시아를 비롯해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우즈베키스탄 등 소련 전역을 순회공연하며 다른 민족과도 적극적으로 호흡했다는 점이다.


 
▲ 왼쪽)고려극장으로 사용한 크즐오르다의 건물(Л.А. Ни, Г.В. Ган, Цой Ен Гун, История Корейского Театра
(『고려극장의 역사』), Алматы, 2007. 인용)
▲ 오른쪽)알마티 고려극장

   이러한 고려인들의 역사와 민족문화는 현재까지 중앙아시아 곳곳에서 숨 쉬고 있다. 카자흐스탄국립대학교의 한국어과에서는 고려인들의 역사와 전통문화를 학술적으로 조명하며 각종 행사를 통해 실천하고 있다. 그리고 수많은 고려인 출신 작가들(아나톨리 김, 박 미하일, 알렉산드르 강, 조명희, 연성용, 태장춘 등)이 문학작품을 통해 고려인의 역사와 민속, 사회문화적 지점을 얽어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알마티의 고려인협회에서 보관하고 있는 한글 신문 《선봉》, 《레닌기치》, 《고려일보》의 존재는 특별할 수밖에 없다. 특히 이 세 한글 신문에는 시공간적으로 구한말·일제강점기에서 현재까지 구소련권에 존재하는 고려인의 각종 학교·단체·인물들의 움직임과 목소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 콜호스 솝호스 고려극장 순회공연(Л.А. Ни, Г.В. Ган, Цой Ен Гун, История Корейского Театра(고려극장의 역사), Алматы, 2007. 인용)

   이번에 알마티에서 만난 소설가 알렉산드르 강의 창작 활동(「놀음의 법」 등)도 고려인들의 역사성과 민족정신의 연장선에서 간과될 수 없을 것이다. 비록 한국어로 작품 활동을 하지는 않지만, 고려인 작가들이 현지에서 현지어로 자신들의 민족의식과 정체성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고뇌하는 현시점에서 ‘역사적 조국’은 어떻게 화답할 것인지 고민할 때다.



▲ 고려인 2세 소설가 알렉산드르 강
필자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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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학교 일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문과대학장과 일본학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디아스포라 웹진 편집기획위원회에서 디아스포라 웹진 《너머》 편집을 주간하고 있다. 동국대학교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한 뒤 일본 다이쇼 대학 대학원 석·박사를 졸업했다. 대표 저서로는 『시가 나오야』, 『재일 디아스포라 문학』, 『브라질 코리언 문학 선집』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암야행로』, 『일본 메이지 문학사』, 『화산도』 등이 있다.
* 사진제공_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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