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K-문화

title_text

리뷰 K-문화

K팝은 왜 성공했을까

임진모

   BTS로 글로벌 음악 시장 관통에 성공한 K팝을 상징적으로 규정하지만, 2022년 하반기로 들어오면서 조금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성비(性比) 균형이 약간 흐트러지면서 남자 아이돌보다는 여자 아이돌, 즉 걸 그룹으로 K팝의 무게중심이 이동 중이다. 확실히 현재 대중적 화제는 ‘블랙핑크’, ‘트와이스’, 돌아온 ‘소녀시대’와 같은 걸 그룹에 쏠리고 있다.
   국내로 범위를 한정할 경우, 걸 그룹 우위는 더 확실해진다. 음원 차트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곡을 가진 남자 아이돌 그룹이 거의 없다. 〈어텐션〉, 〈하이프 보이〉, 〈쿠키〉 등 3곡의 히트를 몰아치고 있는 ‘뉴진스’를 비롯해 그들에 조금도 위세가 밀리지 않는 ‘아이브’, 〈Tomboy〉의 주인공 ‘(여자)아이들’, ‘있지(Itzy)’, ‘르세라핌’, ‘엔믹스’, ‘레드벨벳’ 등 죄다 걸 그룹이다. 2021년의 최강자 ‘에스파’도 빼놓을 수 없다.
   한 매체는 “K팝의 팬덤이 해외로 확대되면서 그 결과 비대면 콘서트, 유튜브, 틱톡 등 걸 그룹들이 온라인 활동에 집중했고 이게 앨범 판매 호조로 이어졌다”며 걸 그룹이 팬덤과 대중성을 다 잡았다고 분석했다. 지금까지 팬덤은 보이 그룹의 것이었다. 확실히 비대면 콘서트는 시각적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우월한 걸 그룹에게 유리한 게 사실이다.

보이그룹 아닌 걸 그룹이 대세

   이러한 걸 그룹의 부상은 이전의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었다. 우리뿐 아니라 구미 음악계에서도 걸 그룹은 역사적으로 남자 아이돌 그룹에 비해 단기 소비재로 간주되어 왔다. 아무리 거대한 호응을 창출해도 워낙 인기나 활동 기간이 짧다 보니 여성 그룹에 대해서 미래지향적으로 사고할 수 없었고 그만큼 남자 아이돌 그룹에 비해 투자도 적었다. 하지만 한국의 음악 제작자들은 걸 그룹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확보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우선은 팀마다 이미지를 차별화해 개성을 극대화했다. 예를 들어 지난 2000년대 중후반 ‘원더걸스’는 여동생 이미지를 부여했고, ‘소녀시대’는 전 연령대 팬들을 아우르는 화사한 이미지를, 라이벌이던 ‘투애니원’은 당당한 걸 파워를 내세웠다. ‘씨스타’의 경우는 섹시 콘셉트를, ‘포미닛’은 알파 걸 이미지를 표방해 팬들을 겨냥했고, ‘에이핑크’는 청순 소녀상을 내걸어 성공했으며, ‘트와이스’는 예쁜 외모를 자랑했다.
   일렉트로니카 음악을 들려준 ‘에프엑스’처럼 장르에 집중한 사례도 있지만 큰 틀은 청순하거나 성숙한 여성 이미지로 묶이거나 나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러한 흐름은 2020년대에 들어서도 마찬가지로, ‘오마이걸’ 경우는 청순과 설렘을 강조했고 ‘있지’는 당찬 여성의 이미지를 내세웠다. ‘BTS 다음의 K팝 현상’으로 불리며 미국 시장 정복에 성공한 ‘블랙핑크’는 성숙의 이미지 속에서 톡 쏘는 개성적 음악은 말할 것도 없고 고급 패션 아이콘으로 확장성을 기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자기들만의 캐릭터 부각에 총력을 동원했지만 어떤 경우도 한국 아이돌 그룹의 생명이라고 할 ‘일체화된 강력한 댄스’, ‘외모’, ‘대중적인 곡’을 놓치지 않았다. 걸 그룹 기획사들은 여기서 가공할 대중 소구력을 찾아냈다. S.E.S, 핑클, 베이비복스 등 1세대에서 원더걸스, 소녀시대, 일본에서 사랑받은 ‘카라’ 등 2세대를 거쳐 3세대와 지금의 4세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말할 것도 없고 세계의 남성 팬들은, 심지어 헤비메탈과 펑크록의 마니아들마저 사석에서 자기 취향에 맞는 걸 그룹 구성원을 언급하며 열띤 논쟁을 벌이곤 했다.
   그들은 전에는 레드 제플린과 에이시디시(AC/DC), 너바나에 관해 열변을 토하던 록 팬들이었다. 전문가들은 이전까지 그토록 강했던 록과 메탈이 2000년대 들어 약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 음악 소비 세대의 중심이 바뀌면서 예상 밖으로 아이돌 음악이 대세를 장악한 데 따른 결과로 풀이한다. 예쁜 얼굴과 몸매에 화려한 댄스를 선사한 걸 그룹이 이에 영향을 끼쳤음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보이그룹 아닌 걸 그룹이 대세 c연합뉴스
▲ 보이그룹 아닌 걸 그룹이 대세 [ⓒ연합뉴스]

기획사의 전략적 성공, 걸 크러쉬와 다양한 문화의 결합

   예나 지금이나 한국 걸 그룹의 인기 요인으로 이목구비가 뚜렷해 매력과 신뢰를 제공하는 외모, 균형 잡힌 몸매, 화려한 댄스 퍼포먼스가 꼽혀 왔다. 하지만 결코 이게 다가 아니었다. 이 막강한 매력 포인트들마저 장기 흥행을 약속할 수 없는 상투성에 갇힐 소지는 얼마든지 있었다. 전략의 대전환이 필요했다. 한국의 걸 그룹 제작자들과 멤버들은 201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팬덤의 확장을 위해 보이 밴드처럼 10대와 20대 여성 팬들을 확보해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방법론은 ‘걸 크러시(girl crush)’ 이미지 동원이었다. 여자가 여자에게 반하는 것을 가리키는 걸 크러시는 걸 그룹 수요층의 성별·연령별 한계를 돌파한다는 점에서 기대대로 순기능을 했다. 보이 밴드든 걸 그룹이든 아이돌 주요 팬덤을 형성하는 것은 명백히 여자라는 판단하에 이뤄진 흐름이었고, 근래 이를 대표하는 팀이 블랙핑크라고 할 수 있다. 그전에는 투애니원과 포미닛이 주도했고 이후 마마무, (여자)아이들, 있지가 이 노선을 따랐으며, 지금 에스파, 아이브, 뉴진스의 기본적 팬덤 전략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걸 그룹들이 강렬하지는 않아도 이런 요소를 부분적으로 띠고 있는데, 최근 아이돌 팬층이 30대 초반을 포괄하며 넓어지는 경향을 보이자 팀마다 걸 크러시 이미지 확충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대목에서 기획력의 탄력성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확실히 K팝의 성공 요인을 두고 기획사의 프로그래밍을 제외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블랙핑크의 기획사 와이지(YG) 엔터테인먼트는 더 나아가 “다양한 문화의 결합” 전략을 주도했다. 이 표현은 블랙핑크의 소속사 와이지 엔터테인먼트의 하우스 프로듀서 테디가 한 것으로, 블랙핑크는 완벽하게 이 전략을 구현하고 있다. 구성원을 보면 지수는 한국에서 성장했고 제니는 뉴질랜드로 유학 갔으며 로제는 호주 멜버른에서 자랐다. 리사는 태국인이다. 팀워크의 빠른 정착을 막을 문화 장벽은 분명 있었다.
   여기서 멤버들의 팀플레이를 향한 강한 집념과 의지, 정신력을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연습생으로 만나 과거와 같은 혈연, 지연, 학연 등의 연고가 전혀 없는 이들은 마음을 열어 자신을 드러내고 동료들을 포용해 나갔다. 호주, 뉴질랜드, 태국, 한국 등 다양한 환경에서 성장한 멤버들이 개방적 사고방식을 통해 경계를 넘나드는 융합을 실천했다고 할까.
   블랙핑크가 레이디가가와 셀레나 고메즈 같은 세계적 스타들과 협업에 성공한 것도, 한국 가수 최초로 미국의 최대 문화 축제인 코체라 페스티벌에 선 것도 멤버들 간의 개방과 포용이라는 ‘소통’의 효과가 밑거름으로 작용했다. 이게 아니었다면 걸 그룹으로서 무려 14년 만에 빌보드 앨범 차트 1위 등극과 같은 위업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기획사의 전략적 성공, 걸 크러쉬와 다양한 문화의 결합 c연합뉴스
▲ 기획사의 전략적 성공, 걸 크러쉬와 다양한 문화의 결합 [ⓒ연합뉴스]

멤버들의 개방성과 포용적 자세가 글로벌 성공의 원동력

   트와이스의 경우도 일본인 멤버 세 명과 대만인 한 명이 포함된 다국적 그룹이다. 사나, 모모, 미나, 쯔위 등 네 외국인은 한국인 다섯 멤버와 유기체가 되어 그룹의 인기 폭을 넓히는 것에 크게 기여했다. 2010년대 등장한 3세대 걸 그룹들은 특히나 이런 접근법이 두드러진다. 외국인이 없는 걸 그룹도 같은 배경, 고향, 학교 출신의 멤버로 구성된 팀은 거의 없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자랐지만 기획사의 연습생을 거치며 멤버 간 ‘문화적·인간적 케미’를 획득하면서 그룹 결속력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이것도 전 세계인이 K팝에 공감할 수 있는 요소 가운데 하나가 돼, 근래 외국인들이 우리 걸 그룹에 잇따라 가입하면서 걸 그룹의 한국 정체성에서 탈피해 다국적으로 가는 추세를 이어가고 있다.
   2021년 상반기에 역주행 관련 화제를 독점한 ‘브레이브걸스’도 상황은 유사하다. 이들은 군부대 위문 공연을 통해 스타덤에 오르는 독특한 과정을 거쳤다. 비록 대중에게는 생소한 존재였지만 ‘군통령’, ‘군인픽’이라 불릴 만큼 군부대에서만큼은 최고의 존재로 부상하면서 가능성을 타진했던 것이다. 결국 위문 공연의 활약상이 한 유튜브 채널에 댓글 모음이라는 영상으로 올라왔고, 그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브레이브걸스가 군부대에서 자주 불렀던 노래 〈롤린〉은 2017년의 것이지만 꼬박 4년이 흐른 2021년 신년 초 음원 차트에 등장했고 이어 정상에 등극하는 기염을 토했다. 발표한 지 4년이 지나 1위에 오르는 극단적인 역주행이었다. 이 대목에서 이 그룹들의 이례적 성공을 ‘K팝 멤버들의 스피릿’과 관련해서 해석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돌 그룹의 운영은 막대한 자본을 요하기에 초기 성공을 이뤄내야 한다. 실패하면 그룹은 해체되기에 짧은 시일 내에 대중의 호응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멤버들의 개방성과 포용적 자세가 글로벌 성공의 원동력 c연합뉴스
▲ 멤버들의 개방성과 포용적 자세가 글로벌 성공의 원동력 [ⓒ연합뉴스]

K팝 멤버들의 정신자세를 평가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인내와 버팀이 필요하다. K팝의 글로벌 성공을 일궈낸 조건으로 퍼포먼스, 가창력, 비주얼, 기획사 프로그래밍이 언급되지만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은 단단한 결속력을 만들어내는 멤버들의 정신자세일 것이다. 멤버 유정은 “해체를 생각하고 있던 순간에 사람들이 우리를 찾기 시작했다”는 말로 역주행 성공의 감격을 전했다. 4년을 견딘 멤버들의 눈물과 의지에 의해 팀이 살아난 것이다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인내와 버팀이 필요하다. K팝의 글로벌 성공을 일궈낸 조건으로 퍼포먼스, 가창력, 외모, 기획사 프로그래밍이 언급되지만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은 단단한 결속력을 만들어내는 멤버들의 정신 자세일 것이다. 멤버 유정은 “해체를 생각하고 있던 순간에 사람들이 우리를 찾기 시작했다”는 말로 역주행 성공의 감격을 전했다. 4년을 견딘 멤버들의 눈물과 의지에 의해 팀이 살아난 것이다.
   2015년 걸 그룹 ‘여자친구’의 경우도 한 지방 공개방송 무대에서 비 때문에 미끄러져 연속적으로 크게 넘어지면서도 오뚝이처럼 계속 일어나 무대를 마친 공연의 팬캠이 유튜브를 통해 알려지면서 화제로 떠올랐다. ‘K팝의 투혼’이라고 할까. 중소 기획사에서 활동했지만 여자친구는 이 영상 덕분에 노래 〈오늘부터 우리는〉으로 단번에 음원과 방송 차트 정상으로 치솟았다. K팝 가수들의 이러한 정신적 측면을 논하는 데 있어서 BTS는 그 정점이다.
   팬들은 마치 폭격기가 퍼부어대는 듯 뿜어대다가도 곧 솜처럼 부드럽게 흐느적거리는 BTS의 각양각색 댄스 퍼포먼스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이어 “퍼포먼스가 너무나 아름답다”며 눈물을 터뜨리고 만다. “도대체 춤을 얼마나 춘 거야?”라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힙합 그룹에서 아이돌로 조정 단계를 거칠 때, 그래서 댄스 역량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을 때 그들은 스스로 하루 13시간 무지막지하게 춤을 연습했다. 글로벌 성공을 창출한 뒤로도 어마어마한 연습량을 소화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명 시절 독일 함부르크 클럽에서 하루 10시간 연주하며 와신상담 때를 기다린 전설의 록 밴드 비틀스와 별로 다르지 않다. 서구 언론이 BTS를 ‘유튜브 시대의 비틀스’, ‘21세기 비틀스’로 부르는 것은 청년 정신의 핵심인 바로 이 무한 열정 때문이다.
   결국 대중은 멤버들에게서 보이는 개방성과 상대를 받아들이는 포용적 자세가 뿜어내는 동행의 가치에 반응하는 것이다. 화려한 군무, 가창력, 빼어난 외모, 소속사의 기획력이 K팝의 성공 동력으로 거론되지만, 실은 저변에 흐르는 멤버들의 팀 결속을 향한 강한 정신력을 상위의 가치로 놓아야 한다. 이것이 걸 그룹의 일반적인 단명도 막았다. K팝을 우리 대중문화 산업의 기획력이 이룬 성과이라고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K팝 전사들에게 공통적인 열정과 소통이다. K팝이 전 세계 청년들 사이에서 빠르게 확산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필자 약력
임진모작가 프로필사진

임진모, 1991년부터 대중음악평론가로 32년째 활동 중이다.
MBC 라디오 <뮤직스페셜>과 <유행가, 시대를 노래하다> 그리고 tbs <임진모의 마이웨이>를 진행하였으며 MBC FM <배철수 음악캠프>에 게스트로 26년째 고정출연 중이다.
제 5회 다산대상 문화예술부문 대상을 수상하고 한국저작권위원회 조정위원, 한국저작권보호원 심의위원으로 재직하였다.
현재 음악 웹진 이즘(www.izm.co.kr)을 운영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우리 대중음악의 큰 별들』(2004), 『가수를 말하다』(2012) 등을 집필하였다.
* 사진제공_필자

공공누리로고

출처를 표시하시면 비상업적·비영리 목적으로만 이용 가능하고, 2차적 저작물 작성 등 변형도 금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