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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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 현장

연변작가협회 소개

리범수

제23회 연변문학 문학상 시상식

   디아스포라 문학으로서 중국 조선족 문학은 전반 한글 문학에서의 위치가 아주 특별합니다. 역사적으로 연변(간도)을 포함한 만주 지역은 항일 독립운동의 활무대였고 한반도에서 이주해 온 조선인의 새로운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윤동주, 이육사, 심련수, 김조규, 안수길, 강경애, 최서해, 김창걸 등 쟁쟁한 문인들이 암울한 일제 식민 통치하에서 붓을 들었고, 혹자는 일제에 대한 항쟁 의지를 불태웠고, 혹자는 이역 타향에서 동포들의 끈질긴 삶을 생생하게 기록해 왔습니다. 《만선일보》와 같은 한글 신문과 『싹트는 대지』, 『재만조선인시인집』, 『만주시인집』 등 작품집들이 당시 조선 인문학의 성과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광복 이후에 이 땅에 남은 조선인은 이어지는 파란만장한 중국 현대사를 거쳐 결국 조선족이라는 중국 국민 신분을 취득하고 지금까지 공동체의 삶을 영위해 나가고 있습니다.
   연변작가협회는 1952년 9월 3일 성립된 중국 내 조선족 중심 집거지인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수부 도시 연길에서1956년 8월 15일에 ‘중국작가협회 연변분회’라는 이름으로 그 탄생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줄곧 중국 조선족 문학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습니다. 중국에는 작가협회가 32개 성(省)과 직할시에 각각 성립되어 있지만 행정적으로는 성의 하위인 주(州)급 지역 연변에 작가협회가 동격으로 설립된 것은 전국적으로 유일합니다. 그만큼 광복 전 재만 조선인의 문학적 바탕이 탄탄했고 조선족 사회의 문학에 대한 애정이 컸다는 방증이 되겠지요. 현재 연변작가협회는 그 업무 부서로 판공실, 창작연락부, 창작연구부, 대외연락부 등을 설치하고 10명의 상근 인원을 두고 있으며 소설 분과, 시 분과, 수필 분과, 아동 문학 분과, 평론 분과, 번역 분과, 한문 창작 분과 등 직속 창작위원회와 북경, 장춘, 길림, 할빈, 목단강, 심양, 대련, 통화, 산동, 절강 등 조선족의 산재 지역에 지역창작위원회를 두고 있습니다.

대학생 이육사 문학제 환영



대학생 이육사문학제 기념촬영


   연변작가협회는 1957년 1월, 작가협회 회지인 월간 《아리랑》을 창간, 1959년 1월 《연변문학》으로 개칭하고 그 후 《연변》, 《연변문예》, 《천지》, 《연변문학》 등으로 명칭이 수차 바뀌면서 2000년대 초까지 작가협회 기관지로 또 조선족 작가들이 선망하는 발표지로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연변문예》 문학상, 윤동주문학상과 같은 포상도 설치하여 조선족 작가들의 창작 열정을 선도하고 우수 작품의 선별과 추천을 격려해 왔습니다. 현재 《연변문학》은 연변인민출판사 소속 문학지로 그 역할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작가협회의 주관 혹은 주최로 실행된 김학철문학상, 화림신인문학상, 신생활컵 실화문학상, 가야하 인터넷문학상, 단군문학상, 연변지용문학제, 중학생지용백일장, 중국조선족대학생 이육사문학제, 포석 조명희문학제 등 포상과 행사를 통해 우수한 작가와 작품을 격려하고 문학 신인들을 발굴하고 육성했습니다.
   연변작가협회가 설립된 이래 협회 소속 회원과 창작위원회에서 출간한 문학 서적은 약 1천 종으로 집계됩니다. 근년에는 우수 도서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정부와 기업에서 출간 경비를 지원받아 해마다 근 10여 권의 작품집을 출간하고 있습니다. 이는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일부 작가들에게 있어 큰 도움이 되는 사업입니다.
   연변작가협회가 설립되어 지금까지 걸어온 여정은 중국 현대사의 풍운 속에서 걸어온 67년의 세월입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부터 1978년 개혁·개방 초기까지 조선족 작가들은 중국의 정치적 담론을 주류 담론으로 삼고 창작을 해오면서 반우파 투쟁, 문화대혁명 등 정치 운동의 와중에 부단한 곤혹과 부침을 겪었습니다. 중국 경내 항일 무장 단체인 조선의용군의 ‘최후의 분대장’으로 일컬어지는 조선족 문학의 거목 김학철 선생이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선생은 역차의 정치 운동 속에서 10여 년 동안 창작의 자유를 박탈당하고 수감 생활을 하다가 1978년 출소하여 환갑을 넘긴 나이에야 다시 자유로운 창작에 매진하게 되었습니다. 고향이 함경남도 원산인 김학철 선생은 태항산에서 일본군과 전투 중 다리에 흉탄을 맞아 포로가 된 후 나가사키 형무소에서 광복을 맞고 서울과 평양을 경유하여 중국에 이주, 1985년에야 중국 국적을 취득한 대표적인 디아스포라 작가이기도 합니다.

연변작가협회료녕지구창작위원회 시가창작연토회


   1992년 한·중 수교를 전후하여 조선족 작가들은 본격적으로 한국 문학에 대한 요해와 학습을 하게 됩니다. 중국 사회의 개방 지향적이고 다원화된 시대적 환경 속에서 개별적이고 개성적인 담론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냉전 시대 이데올로기의 대립 때문에 거의 반세기 동안 단절되었던 한국과의 교류는 조선족 작가들에게 새로운 문학의 시야를 펼쳐 주었습니다. 문화대혁명이 갓 종식된 즈음에 주류 담론으로 성행하던 상처 문학, 반성 문학의 열조가 사그라들 무렵, 서방의 모더니즘 문학을 뒤늦게 접하고 학습한 중국의 주류 문학과 궤를 같이하면서도 조선족 문학은 한국 문학이라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참조를 통해 창작의 기법과 양식 그리고 주제 영역의 확장에서 모름지기 혁신을 시도합니다. 물론 여기에 아주 중요한 요소가 작동했지요. 그동안 조선족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체계적인 민족 학교 교육을 통하여 모국어를 잊지 않았고 생활 언어는 물론 창작 언어로도 무난히 쓸 수 있었기에 한국 문학과의 친밀한 접촉이 가능해졌던 것입니다.
   이러한 새로운 시대적 여건 속에서 연변작가협회는 문학인의 집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다하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1983년에는 전국적인 문학 창작의 붐을 기회로 청년 문학 강습반을 꾸리고 《연변문예》 월간사에서 문학 통신 학습반을 꾸리는 등 신진 작가 양성에 앞장섰습니다. 1984년에는 제1차 ‘두만강여울소리’ 시가 연구 토론회를 개최했습니다. 기성 시인과 시인 지망생들이 대거 참석하여 현장 창작과 발표 및 품평을 형식으로 하는 이 토론회는 오늘날까지 조선족 시단의 중요한 연중행사로 그 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1993년 8월, 전숙희, 이호철, 김주영, 이종찬 등 한국의 작가와 지성인들이 백방으로 지원하고 자치주 정부의 긍정적인 지지하에 연변작가협회가 주관하는 연변민족문학원 준공식 및 개원식이 성대하게 열렸습니다. 연변민족문학원은 그 이후 정기적으로 문학 강습반을 꾸려 중국 국내의 유명 작가는 물론 김승옥, 김광식, 최인훈, 이문열, 임철우, 홍기삼, 황금찬, 박순녀, 최인석, 고형렬, 천이두, 홍정선 등 한국의 유명한 작가와 교수들도 강사로 모시고 선진적인 문학 이론과 풍부한 창작 경험을 학원들에게 전수했습니다.
   사실 연변작가협회의 대외 교류는 지난 세기 1980년대 중후반부터 시작이 됩니다. 개혁·개방 초기 작가협회 대사기에 수록된 특기할 만한 사항들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1985년, 미국의 한인 수필가 이계향 여사가 연변을 방문, 조선족 작가들과 만나 교류했습니다. 이는 개혁·개방 이후 처음으로 조선족 문인들이 외국인 작가와의 만남을 가진 것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3년 후인 1988년 8월에는 이계향 여사의 주선으로 『중공조선족시인 대표작선집』이 한국에서 출판됩니다.
   1988년부터 한국 문인의 연변 방문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합니다. 7월에는 송원희, 강난경, 송우혜 등 작가로 구성된 한국문인협회 방문단이 연변작가협회를 방문했습니다. 이는 연변 작가들과 한국 문인들 사이의 첫 만남이 됩니다. 며칠 후에는 소설가 박경리 선생을 비롯한 한국 작가 일행이 연변작가협회를 방문했습니다.
   1989년 9월, 일본 와세다 대학교의 오오무라 마스오 교수가 번역한 『시카고 복만이: 중국조선족단편소설집』 출간 기념회가 연변작가협회에서 뜻깊게 열렸습니다. 작품집에는 조선족 작가의 단편소설 13편이 일본어로 번역되어 실렸습니다.
   1990년 11월 《천지》 월간사 주필 리상각 시인이 연변출판대표단 성원으로 평양을 방문, 1992년 5월에는 조선문예출판사의 초청으로 《천지》 월간사 대표단이 평양을 방문했습니다.
   1991년 7월, 중국소수민족작가학회가 주최하고 한국문인협회가 주관한 ‘세계 민족 문학 발전을 위한 국제 학술 세미나’(북경)에 참석하고자 중국을 방문한 조병화 이사장을 비롯해 한국 문인 150여 명이 먼저 연길에 들러 연변작가협회 작가 50여 명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는 중국 조선족 문학사에서 한국 문인과의 교류 중 전무후무한 최대 규모의 행사로 기록되었습니다.
   1993년 5월 연변작가협회가 주최하고 연변의 각 언론 매체가 협력, 서울해외한민족연구소와 사랑받는 안해모임이 재력 후원을 한 제1회 중국 조선족 소학생 중학생 백일장이 성황리에 열렸습니다. 이번 백일장은 처음으로 열리는 전국적 범위의 조선족 중소학생 백일장으로서 조선족 청소년들에게 문학의 꿈을 심어 주는 뜻깊은 행사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93년 7월, 연변작가협회, 《천지》 월간사, 《장백산》 잡지사의 공동 주최로 조선족 첫 영문 시집인 『중국조선족시선집』의 출간식을 가졌습니다. 이 책의 역자인 시인 김운송 박사와 출판 경비를 후원해 주신 그의 부인 김명숙 여사가 불원천리 찾아오셔서 출간식에 참석했습니다.
   이 밖에도 김윤식, 조정래, 이호철, 이문열, 이근배, 박완서, 송원희, 김용만, 안장환, 신경림, 박태순, 윤후명, 김양식, 김영현, 황충상, 허소라, 김원중, 신길우, 김지하 등 수많은 시인·작가와 평론가들이 작가협회를 방문하여 교류하거나 민족문학원 수강생들에게 강의를 했습니다. 또 조선작가동맹, 일본조총련작가동맹, 조선예술교육출판사, 조선사진작가동맹,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한국민족문학작가회의, 한국실천문학사, 한국한시협회, 한국소설가협회, 한국중부문예협회, 한국시민문학협회, 윤동주문학사상선양회, 한국계몽아동문학학회 등 한국과 조선의 문학 단체들과 적극 교류하면서 우리말 문학의 창달을 위해 힘차게 달려왔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벌어진 조선족의 정체성에 관한 고민과 논쟁을 거쳐 정판룡, 강맹산, 조성일, 김강일, 김관웅, 김호웅 등 조선족 사학계, 사회학계 및 문학계의 대표적 지성들은 조선족의 문화 신분은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한 갈래로서 이중 문화 신분의 정체성을 갖는다는 데 견해를 같이했습니다. 이러한 견해를 비평의 잣대로 삼아 볼 때 조선족 문학은 분명 디아스포라 문학의 특성을 지닙니다. 왜냐하면 조선족은 중국 공민으로서의 중국 주류 문화의 특성도 지니면서 동시에 한반도에서 이주하면서 지니고 온 조선 민족으로서의 문화적 특질도 보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디아스포라의 관점으로 조선족 문학을 분석한 학자들은 정판룡, 조성일, 김관웅, 김병민, 김호웅, 오상순, 장춘식, 엄정자 등이 있습니다. 김관웅 교수가 1999년에 제기한 ‘민족적 사실주의’ 주장은 디아스포라 문학의 성격을 지닌 조선족 문학이 견지해야 할 바람직한 창작 수법으로서 자체적 특색을 갖고자 고민하는 조선족 작가들에게 뚜렷한 창작 방향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또 김호웅 교수는 그의 비평집인 『디아스포라의 시학』(2014), 『조선족 문학과 아이덴티티』(2022) 등 저서에서 조선족 문학의 디아스포라적 성격에 대해 전방위적이고 체계적인 분석과 비평을 시도하고 있음으로 하여 가장 대표적인 디아스포라 문학의 비평가로 꼽히고 있습니다. 김호웅 교수의 분석 대상으로 된 리삼월, 김동진, 석화, 리성비, 김학송 등 시인과 김학철, 김창걸, 리근전, 최홍일, 허련순, 리혜선, 최국철, 박옥남, 김금희, 김인순 등 소설가들의 창작은 눈여겨보아야 할 디아스포라 글쓰기의 전례라고 해야겠습니다. 한국 내의 학자들도 조선족 문학의 특수한 위치와 가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인 학문적 천착을 해왔습니다. 강원 원주대학교 최병우 교수와 아주대학교 송현호 교수가 그 대표적인 학자라고 하겠습니다.
   개혁·개방 이래 급격하게 추진된 산업화와 도시화 그리고 글로벌화로 말미암아 조선족 사회도 외국이나 국내 타지역으로의 인구 대이동이 진행되면서 심각한 공동체 해체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에 따라 조선족 독자 수도 급격히 줄어들고 있으며 작가의 세대교체도 합리적인 비례로 갱신이 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연변작가협회는 이러한 새로운 시대적 위기 상황에 적극적인 대응을 하려고 고민하고 행동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2018년부터 중국조선족청년문학상을 설치하여 젊은 작가들의 발굴과 지원을 적극 추진함으로써 중국 내 조선족 글쓰기의 명맥을 이어 나가고자 노력하는 중입니다. 코리안 디아스포라 문학의 현장에서는 가장 큰 조직적 단체라고 볼 수 있는 연변작가협회는 조선족 공동체가 존속하는 한 계속 그 존재적 의미를 거듭해 나갈 것입니다.

김학철선생문학창작 50주년 좌담회 기념

필자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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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출생. 연변대학교 졸업, 문학박사. 현재 중국 연변대학교 외국어학원 조선언어문학학과 전임강사로 재직 중이며, 교외 겸직으로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및 평론위원회 주임을 맡고 있다. 대학에서 조선어 글쓰기, 문학 이론과 비평, 한국 영화 감상 등의 과목을 강의하면서 조선족 문학 평론과 중·한 번역을 겸하고 있다. 《연변일보》 해란강문학상, 《연변문학》 윤동주문학상, 《민족문학》 연도번역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