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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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 현장

캐나다한인문인협회 소개

서동석

  캐나다 한인문인협회의 지난날을 적으려 하니 돌아가신 문협 선배님들과 수척해진 노안의 문우님들, 신춘문예 시상식에서 좋은 글을 쓰겠노라며 다짐하던 신예 등단 작가들의 생기 있는 모습들이 겹쳐 떠오르며 새삼 감회가 새롭습니다.

  캐나다 한인문인협회는 1977년 1월 15일 권순창, 김영매, 김인, 김창길, 문인귀, 설종성, 이석현, 장석환 등 초기 문인들이 창립하고 이석현 문인을 회장으로 추대했습니다. 동년 5월 15일 창립 문인들은 시 분과 이름으로 합작 시집 『새울』을 발간했습니다. 시집 말미에 “새울이란 새로운 울타리, 새로운 고을 등으로 직역되나 우리가 뜻하는 바는 새로운 천지, 새 살림터이다”라고 밝혔습니다. 작품은 1970-1977년까지 밴쿠버, 토론토 등지에서 습작한 시를 개인별로 묶어 한 권의 동인 시집 형태로 출간했습니다.

  이후 1980년대 말까지 《이민문학》이라는 제호로 작품집을 발간했고, 1990년대 들어서 《캐나다문학》이라는 제호를 사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발행하는 정기 간행물 작품집으로 격년 발행하는 《캐나다문학》이 40년 동안 발간되어 지난해 지령 20호를 맞았으며, 2000년대 들어서는 문협 회원 제출 작품 원고 전체를 한글과 영문 번역본으로 동시 수록하는 《한영문집》을 격년으로 발간해 오고 있는데, 지난해는 Of Red Maples and Mu-gung-hwa라는 표제로 발행했습니다. 지난 2021년에는 《한영문집》, 2022년에는 《캐나다문학》을 발간했고 올해는 다시 《한영문집》 발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한 수필 분과에서는 매월 첫 주 수요일에 회원 본인의 작품을 올리고 공유하는 작품 합평회를 지속하고 있으며, 이를 묶어 수필 분과 동인지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발간된 동인지는 “시계의 숨소리가 들려”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네 번째 작품집입니다.

  캐나다 한인문인협회의 주요 활동으로는 매년 연말에 신춘문예를 공모해서 선정된 작품을 신년 초에 발표하는 신춘문예 시상식을 필두로, 문학에 관심이 많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문인 협회 주관 문예 교실, KOREA WEEK(한국 주간) 이름 아래 외국인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한국 문학 강연(영어 강의·세미나), 문협 회원 정기 야유회, 매년 《캐나다문학》 혹은 《한영문집》 발간, 시·소설·수필 분과 모임 및 작품 합평회, 분과별 합평 작품 위주의 동인지 발간, 부정기적인 작품 토론 소모임, 문인 초청 강연회 등이 있습니다.


  • 2023년 초 토론토 총영사 축사

  올해 열린 제43회 신춘문예 시상식에서는 시, 시조, 소설, 수필 분야에서 역대 가장 많은 9명의 신인 작가들이 선정되었습니다. 시상식은 토론토 주요 신문인 《한국일보》와 《부동산캐나다》가 후원하고, 각 분야 심사위원으로 위촉된 문인들의 심사로 선정된 수상자에게 상패, 상금, 꽃다발 등을 수여하고, 축하 연주와 작품 낭독 등이 식사와 함께 진행되었습니다.

  캐나다 한인문인협회가 발행하는 책자의 경우, 출판위원장의 선정을 시작으로 원고 접수, 교정, 번역, 편집, 출판, 출판 기념회, 책자 배포 등 전 과정을 문협 회원들이 진행하고 있으며, 김용택 시인, 최진석 교수, 최유경 캐나다 작가 등 다수의 외부 초청 문인과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들이 문학 강좌나 문예 교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제 캐나다 한인문인협회도 변혁의 기운이 도래하고 있습니다.

  1970년대의 암울한 정치 상황과 어려운 경제 사정을 겪으며 태동한 문인협회는 이제 널리 알려진 대한민국의 위상과 문화의 저변 확대를 맞이하여 새로운 분위기와 전기를 대면하고 있습니다. 터를 닦고 활동하신 초창기 선배 문인들과 새로운 신입 문협 등단 작가들의 세대교체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은 세월의 뜻이기도 합니다. 신춘문예 시상식과 합평회, 각종 모임의 형태도 온라인, 오프라인 중 하나를 선택하거나 병용하여 진행하고 있으며, 작품집 발행 역시 eBook과 종이책 발행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습니다. 신춘문예 시상식의 소개 소책자 역시 QR코드로 작품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시, 소설, 수필 분과의 활동 역시 각 분과의 소속 회원만이 아닌 전 회원으로 분과 회의 참석과 작품 참여 시도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작품 합평회 활동은 온라인 줌(Zoom) 미팅, 야외 합평회, 식사와 함께하는 합평회, 1박2일 근교 여행 합평회 등 다양한 형식으로 지속해 왔습니다. 회원들의 작품집 탈고가 이어지는 이유 중에는 계속되는 합평회를 통해 원고가 다듬어지고 모아지는 과정이 나름의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회원들의 만남은 다시 소그룹으로 분화하여 신학, 철학, 과학, 선정 책자의 토론 모임 등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현재 토론토 한인 사회 유력지로 발행을 지속해 온 《한국일보》와 《부동산캐나다》의 후원, 캐나다 한인문인협회의 주관으로 진행된 신춘문예 공모도 43년째를 맞고 있습니다. 캐나다에서 유일한, 오랜 문학 활동을 유지해 온 캐나다 한인문인협회의 또 다른 도약의 전기를 위해서도 한국문학번역원의 활동이 성공하기를 바라며, 많은 기대를 가지고 바라보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마침 재외동포재단의 홈페이지 지원 사업에 맞추어 캐나다 한인문인협회의 온라인 활동 활성화를 도모하려 했습니다만, 재단의 통폐합 사정상 미루어지고 있어 독자적으로 온라인 활동 플랫폼을 구축하고자 합니다. 미루어 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생각으로 조금씩이나마 적극적으로 활동하고자 합니다.

  나라마다 다른 사정이지만 한글 발행 문예지의 교류와 연대, 모국의 체계적이고 견실한 한국 문학의 세계화 확산을 통해 캐나다에서 역시 교민과 현지인의 연대를 확대,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캐나다 한인문인협회는 합평회에 한 번도 빠짐없이 참석하고 계신 구순의 장정숙 회원과 박사과정의 바쁜 일정에도 열심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박엘리야 회원까지 모두 원고를 들고 진지한 토론과 합평을 하고 있습니다. 부족한 글재주가 매일 벼리는 칼날처럼 글의 온전한 형태와 더불어 행간의 날카로움을 더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곳 캐나다 현지 교민과의 접점을 늘리는 일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인들만의 글로 갇히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이곳 현지 신문에 발표 지면을 늘려 《캐나다문학》, 《한영문집》의 원고를 지속적으로 게재하고 있고 문협 회원 개인별 투고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문학을 생각해 봅니다. 소비되지 않는 문학에 대한 자조감도 글에 대한 본질을 돌이키면 섣부른 위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생명에 대한 경박한 생각과 세태가 생명 본질의 소중한 의미를 퇴색시킬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요즈음 짧은 영상과 더 짧은 재미 위주의 SNS가 넘치는, 때로 너무 생각 없는 표현과 표피적인 판단이 강처럼 넘쳐 모두가 부박한 세태로 흐르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가볍고 배려 없는 말과 글, 행동, 비교하고 과시하는 기준에 몰입된 사회 분위기가 사람과의 관계에 투영되고, 결국 본인 자신에 대한 사랑과 존재감마저 휘발되듯 의미와 애착도 엷어지는 사회로 보이기도 합니다. 토론과 합의, 봉사와 기부가 모습을 감추고 갈등과 대결 구도가 큰 자리를 차지하고 합리적인 투자는 극단적인 투기로 모습을 바꾸는 현 세태를 여러 통계가 보여 주고 있습니다. 다행히 다양한 분야에서 K-문화가 발전하고 확산됨은 반갑고 고마운 일입니다. 찾지 않아서 모습을 감추는 듯한 글의 소중한 의미를 다시 되새기며 참여하고, 노력하여 작은 보탬이라도 되겠습니다.

  저 역시 여러 이유로 이민 온 이민자 중 한 사람입니다. 저마다의 사연이 있지만, 이민 생활은 뿌리가 뽑힌 넝쿨처럼 착근이 쉽지 않습니다. 고국에서처럼 어려울 때 한두 번이라도 누군가에 기대어 지친 마음과 외로움을 나누기 어렵습니다. 어려울 때에는 때로 대학 연극반 시절 외웠던 좋은 대사 한마디를 몇 번이고 읊조리고, 때로는 읽었던 좋은 글귀를 수없이 떠올리며 지내 왔습니다. 바뀐 환경에 힘들 때 붙잡은 지팡이는 글이고 책이었습니다. 하여 저 역시 위로가 되고 힘이 되고 스스로를 곧추세울 수 있는 문장을 쓰고 싶습니다. 그것이 힘들다면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잘 먹고 잘 살고 자기 잘난 맛에 살다 가는, 보잘것없고 의미 없는 삶보다는 주변에 따뜻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 좋은 글을 쓴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항상 기도합니다. 그렇지 못한 하루는 부끄러움을 감당해야 하는 저녁에 다시 마음을 추스릅니다. 내일은 조금이라도 더 되새기고 노력하겠습니다.

  이곳 교민들은 어느 타국이나 그렇듯이 종교에 의지하거나 취미 활동으로 외로움을 이겨내면서 가족을 보듬고 살아갑니다. 건강하고 온전한 역할로 문협을 발전시켜 나가는 일이 문협 선배 문인들의 유지를 존중하고 오늘 문우들을 대하는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을 쓰고, 읽고, 알리고 함께하며 유대의 지평을 넓혀 외롭지 않은 우리글 문학 운동이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캐나다 한인문인협회는 그 한 축으로 캐나다 너른 땅 여러 곳에서 고군분투하는 한인 모든 분들과 현지인들에게 한글을 소개하고 창작하고 발전시키는 소임을 묵묵히 수행해 나가겠습니다.

  건강과 건필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필자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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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석. 1964년 4월 3일 출생. 한양대, 동 대학원 졸업. CBRE 투자·평가 담당 이사로 있다. 2000년 캐나다로 이주했다. 벤쿠버와 토론토에서 건축 리노베이션 회사를 운영하며, 토론토에서 부동산 중개업도 하고 있다.
* 사진제공_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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