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 깊이읽기

title_text

디아스포라 깊이읽기

그후의 삶

평론: 고명철

동아프리카의 식민 통치, 기억 투쟁의 재현

고명철(문학평론가, 광운대 교수)

나는 살아왔지만, 살아버린 것이기도 하다. 이곳에서의 삶은 너무나도 달라서 마치 하나의 삶을 끝내고 이제 또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만 같다. 그러니 어쩌면 나는 나 자신이 한때 다른 곳에서 또 다른 삶을 살았지만 이제 그 삶은 끝나버렸다고 말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는 예전의 삶이 내 뒤에서, 또 내 앞에서 무례한 건강함으로 충만하게 고동친다는 걸 안다.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바닷가에서』 중에서

1. 동아프리카의 ‘식민 시대’에 대한 기억 투쟁의 재현

   202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아프리카계 영국 작가 압둘라자크 구르나(Abdulrazak Gurnah, 1948- )는 세계 문학의 주요 흐름과 쟁점이 디아스포라와 무관할 수 없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구르나는 동아프리카 인도양의 작은 섬 잔지바르 술탄국에서 태어나 1964년에 흑인 사회주의 혁명을 경험한 후—잔지바르는 탕가니카와 통합돼 현재 탄자니아의 일부를 이룬다—1968년 탄자니아를 떠나 영국에서 아프리카계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며 그만의 문학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구르나는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식민 시대 이후 작가 중 한 명이며, 그의 캐릭터들은 문화와 대륙, 존재했던 삶과 떠오르는 삶 사이의 공백기, 그리고 결코 해결될 수 없는 불안정한 상태를 발견한다”라는 노벨위원회 의장의 언급은 그의 문학 세계에 대해 의미심장한 비평적 발언이다. 왜냐하면 구르나의 문학이 ‘식민 시대’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유럽 제국이 일으킨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이르는 이른바 ‘아프리카 쟁탈전’과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과 관련하여, 인도양에 접한 동아프리카가 유럽 제국의 식민주의 통치에 대한 역사의 기억 투쟁을 구르나가 서사적 재현으로 실천하고 있음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그런데 구르나의 이러한 서사가 우리에게 그리 생경한 것은 결코 아니다. 비록 지구 반대편 동아프리카의 식민의 역사가 동아시아의 식민의 역사와 지정학 및 정치문화적 측면에서 다른 세목(細目)들이 많고 다양하지만, 제국의 식민주의 근대와 그것이 수행하는 근대의 유·무형의 폭력의 양상은 서로 겹쳐지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에 맞서는 반식민주의의 기억의 정치학은 모종의 연대 의식과 그 정치사회적 감응력을 교호한다. 우리가 살펴볼 구르나의 장편 『그후의 삶(After lives)』(2000)1)은 바로 그 대표작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2. 동아프리카의 인도양 문명에 대한 유럽의 식민 통치

   『그후의 삶』의 주요 장소가 인도양은 물론 그 인접 지역(동아프리카, 아라비아반도, 인도)에 두루 해당한다는 것은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구르나가 재현하고 있는 곳은 그가 떠나온 고향 동아프리카이되,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과 역사를 소설 쓰기의 대상으로 하는 것은 바로 인도양의 삶, 달리 말해 유구한 전통이 축적된 인도양 문명을 바탕으로 한삶과 역사의 실재에 대한 서사적 탐구를 결코 소홀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도양 문명을 비껴간 채 동아프리카를 이해하는 일은 말 그대로 수박 겉핥기에 불과할 따름이듯, “대서양은 근대의 과학과 이성이 압도하는 바다로, 인도양은 전근대의 무지와 몽매가 삼투하는 바다로 유형화한 것”2)에 대한 래디컬한 비판적 성찰이야말로 구르나의 『그후의 삶』 전반을 아우르고 있다.
   기실, 『그후의 삶』은 19세기 말부터 동아프리카를 침탈한 독일의 식민주의 통치를 해부한다. “독일은 독일령 동아프리카의 모든 반란을 진압했”(16쪽)고, “제국은 아프리카인들이 굴종이라는 멍에를 고분고분 받아들이는 법을 깨우칠 수 있도록 독일이라는 권력의 악력을 느끼게 해주어야만 했다.”(29쪽) 무엇보다 “독일인은 제국 건설의 후발 주자”로서 “오랫동안 눌러앉을 작정이었으며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편안히 있고 싶어 했다.”(30쪽) 그래서 “이들이 교회와 주랑이 있는 사무용 건물, 총안이 뚫린 요새를 세운 까닭은 새로 정복한 백성들에게 경외감을 안기고 적들에게 인상을 남기는 것만큼이나 교양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였다.”(30쪽)
   구르나는 이러한 독일의 식민 통치가 펼쳐지는 객관 세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한쪽에서는 독일 제국의 식민 지배에 대한 동아프리카 원주민의 봉기와 저항을 가혹하고 잔인할 정도의 반문명적 반인간적 탄압을 통해 “초토화되고 공포에 질린 풍경”(28쪽)이 전횡하고 있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식민주의 근대의 이데올로기적 억압 장치들—가령, 피식민지인을 위한 직업학교, 진료소, 식민주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적극 협력하는 공무원과 교사 양성소 등을 통해 주도면밀한 식민 통치가 내면화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 과정에서 오랫동안 축적되고 숙성된 평화롭고 호혜적인 인도양 문명의 풍요로운 삶이 붕괴되는 반문명적 폐해를 작가는 음울하게 응시한다. 독일은 유럽 제국의 후발 주자이기 때문에 더욱 동아프리카에 대한 식민 통치의 위력을 배가한다.
   여기서, 인도양 문명권을 고려한 동아프리카의 유럽 제국의 식민 통치에 대한 구르나의 정치적 (무)의식을 헤아려보는 것은 흥미로운 과제다. 그것은 작중 인물 칼리파의 단호한 정치적 입장에서 드러난다. 부계(父系)가 인도이며 모계(母系)가 아프리카인 칼리파는 동아프리카에서 태어나 독일 점령 아프리카에서 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칼리파의 주변에는 인도양 교통 무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배치돼 있다. 이런 칼리파는 그의 친구 일리아스가 독일군 부대 슈츠투르페에 자원하겠다는 데 대해 신랄히 비판적 문제 제기를 하며 그의 결심을 돌리려고 한다.3) 이 대목에서, 식민주의 근대로 가려진 독일 제국의 식민주의 지배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일리아스에 대한 칼리파의 비판적 문제 제기와 설득의 그 바탕에는, 칼리파의 정치문화적 정동(情動), 즉 인도양 문명의 평화로운 호혜적 교섭의 힘이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곤란하다. 몬순의 계절풍을 타고 동아프리카로부터 인도양을 건너 아라비아반도를 경유하여 인도에 이르는 교통 무역은 인도 너머 멀리 동아시아에 이르는 해양 문명과 교섭함으로써 오랫동안 인도양 문명이 미치는 정치문화적 차원의 호혜적 교섭의 힘을 가볍게 간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해 두고 싶다. 그러므로 칼리파의 정치적 입장은 이처럼 인도양 문명이 함의한 평화적 호혜의 삶의 실재를 바탕으로 하듯, 이와 관련한 작가 구르나의 정치적 (무)의식을 해석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않을까.4)

3. 유럽의 반문명적 식민주의 근대에 대한 서사적 고투

   칼리파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작중 인물 일리아스와 함자는 독일의 용병 부대 슈츠트루페에 자원입대한다. 『그후의 삶』에서는 함자를 중심으로 유럽 제국 독일의 아프리카 식민주의 지배를 자세히 짚어낸다. 그중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아프리카를 대상으로 한 독일의 지배 방식이며 지배 이데올로기의 실현 양상이다. 독일군 장교의 당번병으로 선택된 함자가 장교로부터 독일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몇 가지 에피소드는 이를 잘 보여준다.
   그중 하나, 독일 장교는 함자와 같은 다소 총명한 예외적 아프리카인이 유럽 제국의 언어‒독일어를 완벽히 소화할 수는 없으나 어느 정도 의사소통과 문해력은 기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를 지켜보는 함자의 직속상관에게 함자의 언어 습득은 단순한 ‘놀이’에 불과할 뿐이고, 독일 장교들은 “함자를 원숭이 취급하고 있”(124쪽)는 데서 알 수 있듯, 유럽의 언어를 배우는 함자는 유럽의 근대 문명을 애써 모방하려고 버둥거리는 웃음거리 정도로 취급된다. 아프리카에 대한 유럽의 문명적 혐오와 멸시는 비단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유럽의 근대 학리(學理)의 기초이자 근간인 수학을 아프리카인은 절대 익힐 수 없다고 독일 장교는 확언한다. 그래서 수학을 비롯한 근대 문명을 아프리카에 가져온 것임을 가소롭게 얘기한다. 그런데 장교의 진의는 다른 데 있다. 아프리카인이 “절대 수학은 배우지 못할 거라고 생각”(103쪽)하는 데에는, “수학에는 너희 민족으로서는 불가능한 정신적 규율이 필요하기 때문”(103쪽)인바, 다시 말해 아프리카인에게는 근대 문명의 바탕을 이루는 ‘정신적 규율’이 부재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이 ‘정신적 규율’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이것을 단순화할 수 없지만, 유럽 중심주의 또는 그것에 뿌리를 두는 ‘단수(또는 일극)의 근대’를 함의한다고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유럽을 제외한 다른 곳에서는 인간의 문명과 문화가 존재하지 않는, 그래서 야만과 미개의 존재는 유럽의 근대를 지탱하는 ‘정신적 규율’이 부재하다는 말 그대로 비과학적 폭력적 인식의 민낯을 내보인다. 그리하여 이 같은 유럽은 “공포를 불어넣고 모두를 두들겨 패서 복종하게 만드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규율이 잡히고 고분고분하고 잔인해지기를 바라”(134쪽)는, 폭력과 억압과 강제의 규율이 작동하는 반문명적 식민 통치에 붙들려 있다.
   이 유럽의 식민 통치가 아프리카의 얼마나 많은 것들을 압살했는지 살아남은 작중 인물들은 정신적 육체적 상처와 고통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 없다. 함자의 악몽(1차 세계대전)과 그의 아들 일리아스가 겪는 신들림의 상처(2차 세계대전)는 동아프리카가 유럽 제국의 세계대전에 깊숙이 연루된 과거사와 현재적 상흔을 대면하는 작가 구르나의 서사적 고투다. 특히, 함자의 아들 일리아스의 신들림이 그의 외삼촌 일리아스의 독일군 자원입대 후 실종으로 인해 가족의 사무친 슬픔을 해원해 줄 뿐만 아니라 1차 세계대전에 연루된 동아프리카인들의 사연과 아프리카의 온갖 짐승과 초인적 정령들이 뒤얽힌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 모두가 함께 읽고 경청하는 과정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역사적 슬픔을 위무해 주는 무격(巫覡) 역할을 수행하도록 한 것은 구르나가 아프리카 특유의 ‘구연적(口演的) 상상력’의 서사적 전통의 힘을 중시하고 있다는 것을 보증한다. 이것은 구루나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아프리카 작가들의 서사에서 유럽의 근대적 폭력에 대한 응시와 극복과 치유는 소설 쓰기의 ‘문자성’에 기댄 서사적 재현만으로는 한계에 직면하듯, 아프리카의 오랜 구술 문화적 전통을 창조적으로 갱신한 ‘구연적 상상력’과의 회통(會通)을 통한 서사적 재현 그 문학적 성취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 아프리카계 디아스포라 작가 구르나도 예외가 아님을 주목하자.

4. 문명적․인종적․민족적․젠더적 차별, 아프리카계 디아스포라의 죽음

   『그후의 삶』은 작품의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함자의 아들 일리아스가 직접 겪은 신들림의 경이로운 현실은 그의 가족 수난사를 망각할 수 없다는 기억의 형식을 빌린 저항의 정치문화적 투쟁이다. 이 신들림 후 일리아스는 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 총독부가 모집한 KAR에 입대했고, 전후 서독에 방송 기법을 배우고자 유학 생활을 하는 중 그의 외삼촌 일리아스의 독일 내 행적을 추적한다. 어린 시절 그의 신들림 굿거리 한바탕으로 외삼촌과의 맺힌 한을 해원했지만, 그는 여러 기록의 실마리에 기대면서 마침내 외삼촌의 독일에서의 삶 전모를 알게 된다. 외삼촌은 두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독일 여자와 결혼을 하고 나치당에 가입하여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국가사회주의가 기획하던 아프리카의 재식민화에 기대를 걸기도 하는 등 나치와 독일에 충성을 다했으나, 2차 대전 와중 다른 독일인 여자와 불륜을 저질러 “아리아인 여성을 모독한 죄로 체포당했”(418쪽)고 베를린 외곽 어느 수용소에서 사망했다.
   외삼촌의 죽음은 『그후의 삶』이 거느리는 작가의 문제의식의 넓이와 깊이를 숙고하도록 한다. 외삼촌 일리아스는 독일 제국에 대한 선망으로 슈츠트루페에 자원 입대했고, 그토록 동경하던 유럽의 독일에서 그것도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나치의 열혈당원인 아프리카계 디아스포라로서 삶에 충실했으나 그는 결국 비유럽 흑인 남성으로서 유럽의 백인 여성 아리아인을 모욕했다는 문명적․인종적․민족적․젠더적 차별로 비운의 죽음을 맞이한다. 1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슈츠트루페에 입대함으로써 유럽 제국에 적극 협력 및 동화하고자 한 일리아스는 2차 세계대전 와중 더욱 심화된 유럽의 근대적 차별과 폭력 속에서 허망한 죽음으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구르나는 아프리카계 디아스포라 작가의 입장에서 소설을 쓴다. 『그후의 삶』은 19세기 말부터 1960년대 초반 무렵에 이르는 동아프리카의 험난한 역사의 삶과 현실을 응시하면서, 작품의 말미에 이르기까지 묵직한 소설적 물음을 던진다. 유럽 제국의 온갖 식민 통치를 어떠한 기억의 재현으로 들려줄까. 디아스포라 작가로서 탈식민의 서사적 재현은 어떤 정치윤리적 삶의 실재를 현재화(顯在化)할까. 디아스포라 문학은 유럽 중심의 세계 문학을 창조적으로 넘어설 수 있을까.

참고자료

1) 한국어 번역본은 압둘라자크 구르나, 강동혁 옮김, 그후의 삶(문학동네, 2022)이다. 본문에서 작품을 인용할 경우 별도의 각주 없이 본문에서 해당 쪽수만 표기한다.

2) 이석호, 『아프리카 탈식민주의 문학론과 근대성』, 아프리카, 2023, 165쪽

3) “이 싸움은 폭력적이고 악랄한 두 침략자의 싸움이야. 하나는 우리 옆에 살고, 다른 하나는 북쪽에 살 뿐이지. 놈들은 누가 우리를 통째로 삼킬지를 놓고 싸우는 걸세. 이게 자네랑 무슨 상관인가? 자네는 잔인하고 악랄하기로 악명 높은 용병대에 들어가려는 거야. 다들 뭐라고 하는지 못 들었나? 심하게 다칠 수 있어…… 그보다 더 나쁜 일을 당할 수도 있고. 제정신으로 하는 생각인가?”(71쪽)

4) 이와 관련하여, “제국주의 침탈 이전에 존재했던 인도양 동아프리카의 생명력의 재현은 유럽 제국주의에 대한 우회적인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인도양 동아프리카 지역의 오랜 문명의 역동성을 재현하는 것은 유럽 제국주의가 침탈하지 않았더라면 얼마든지 자신의 독특한 문명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간접적으로 혹은 우회적으로 유럽 제국주의를 비판하였던 구르나가 한층 직접적으로 제국주의를 비판한 작품이 바로 『그후의 삶』이다.”(김재용, 「인도양 동아프리카에서 본 유럽제국주의」, 『제12회 아프리카·아시아·라틴아메리카 문학 포럼 자료집』, 지구적세계문학연구소, 2023, 189쪽)는 언급은 구르나의 정치적 (무)의식을 이해하는 데 귀 기울일 전언이다.

필자 약력
프로필_고명철.jpg

고명철. 광운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이자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문학과 문화를 공부하는 트리콘의 대표이다.
디아스포라 웹진 편집기획위원회에서 디아스포라 웹진 《너머》 편집을 주간하고 있다.
1998년 「변방에서 타오르는 민족문학의 불꽃-현기영의 소설세계」로 월간문학 신인문학상을 수상하여 문학평론가로 등단하였다.
『세계문학, 그 너머』, 『문학의 중력』 등 다수의 저서를 출간하였으며 젊은평론가상, 고석규비평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 사진제공_필자

공공누리로고

출처를 표시하시면 비상업적·비영리 목적으로만 이용 가능하고, 2차적 저작물 작성 등 변형도 금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