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 깊이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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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 깊이읽기

악마의 시

평론: 손석주

디아스포라의 변신 이야기:
살만 루슈디의 『악마의 시』

손석주(동아대학교 영미학과 교수)

  생존 작가 중 살만 루슈디(Salman Rushdie, 1947-)만큼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킨 이는 없다. 그는 1988년 『악마의 시』를 발표한 후 이슬람교 창시자 마호메트를 모독했다는 이유로 이란의 종교 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에 의해 사형 선고를 받고 약 10년간 도피 생활을 해야 했다. 1998년 이란 정부의 사형 선고 철회에도 불구하고 살해 위협이 지속되다가 급기야 2022년 8월 미국 뉴욕 주 강연장에서 무슬림 청년에게 피습당한 그는 한쪽 눈을 실명하고 한쪽 팔을 못 쓰게 되는 상처를 입고 말았다.
  전 세계 모든 이슬람교도에게 루슈디를 처단하라는 종교 법령인 파트와를 선언한 호메이니는 『악마의 시』를 읽지 않았고, 암살 시도 당시 스물네 살이던 레바논계 미국 이민자 하디 마타르 역시 이 책의 단 두 페이지만 읽었다고 한다. 책의 제목만 보고 시집일 거라고 짐작하는 이도 있고, 어떤 이는 언론에 등장하는 이슬람교도들의 시위와 항의에만 잠시 눈길을 준다. 공통점은 이들 모두 루슈디의 작품 자체에 흥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책이 촉발한 정치적 파장 혹은 유명세에 관심을 표할 뿐이다.
  『악마의 시』 필화 사건 때문에 루슈디는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는 작가가 되었지만, 오히려 이로 인해서 그의 문학적 업적과 성취는 빛이 바랜 측면이 크다. 특히, 문명 간 그리고 종교 간 갈등을 우려한 노벨상 위원회는 루슈디를 애써 외면해 왔지만 2022년 테러 사건으로 고조된 그에 대한 재평가 여론으로 강력한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됐다. 결국 또다시 노벨상 위원회의 선택은 받지 못했으나, 역설적으로 문학적 성취만으로는 노벨 문학상을 받을 수 없다는 공공연한 비밀의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말았다.
  1975년 출간된 그의 데뷔작 『그리머스』는 공상과학 판타지 소설로 혹평을 받았으나, 인도의 독립과 현대사를 다룬 『한밤의 아이들』의 대성공으로 루슈디는 일약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오른다. 이후 발표한 『수치』 역시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소설가로서 그의 입지가 더욱 단단해졌고, 『악마의 시』로 다시 한번 평론가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어냈다. 그러나 작품에 대한 평가가 아닌 마호메트에 대한 풍자를 문제 삼은 일부 정치인들과 종교 지도자들의 선동으로 인류 역사에서 찾아보기 드문 처형 명령과 폭탄 테러, 금서 지정과 번역가와 출판인에 대한 암살 시도와 보복 공격이 잇달았다. 한쪽에서는 언론·출판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반문명적 탄압이라는 비판이, 다른 한쪽에서는 루슈디가 서구의 꼭두각시 노릇을 한 대가라는 자조 섞인 비난으로 필화 사건의 논란은 더욱 증폭됐다.
  루슈디는 인도가 독립하던 해인 1947년 봄베이(1995년 힌두 극우 정당 집권 후에 뭄바이로 개명)에서 태어났다. 그는 힌두교가 다수인 인도에서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부유한 집안에서 출생했다. 그의 소설에 무슬림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은 단순히 봄베이가 여러 인종이 모여 사는 코스모폴리탄 도시일 뿐만 아니라, 힌두인이 다수인 사회에서 소수자들이 느끼는 감정을 공유하고 교섭할 수 있는 역사적 토대가 마련된 곳이기 때문이다. 비록 인도 내에서 소수라고는 하지만 무슬림 인구가 전체의 약 1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으므로 숫자로 따지자면 파키스탄의 무슬림 전체 인구와 거의 맞먹고 인도네시아와 파키스탄 다음으로 이슬람교 인구를 많이 가진 나라가 인도다.
  그러나 루슈디의 많은 작품에서 영국에서의 인종차별 못지않게 인도 내에서 벌어지는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을 볼 수 있다. 1947년 인도의 분리 독립과 함께 신생 무슬림 국가 파키스탄 건설을 위해서 많은 이슬람교도가 국경을 건너 이주했지만, 생업을 유지하기 위해서 혹은 상황을 잘 몰라서 인도 내에 머물렀던 이들도 많았다. 이들은 갑자기 찾아온 분리 독립에 따른 소수자의 지위를 받아들여야 했고, 한때 이웃이자 친구였던 힌두인들로부터 사회적, 경제적 차별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어릴 때 유학을 떠나 17세에 영국 시민권을 딴 루슈디에게 일반적으로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바로 ‘디아스포라’다. 1961년 영국으로 건너간 그는 명문 럭비기숙학교와 케임브리지 대학교 킹스칼리지를 졸업한 후 런던의 광고 회사에서 일하며 작가의 꿈을 키웠다. 그는 많은 영국인이 자신을 유색 인종으로 취급하고 영국의 노동자 계층보다 천하게 여기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러한 경험들이 그의 작품에 자전적인 요소로 자주 등장한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하면서 잠시 누그러졌던 이러한 인종차별에 대한 반감과 분노는 사회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되살아난 듯하다. 루슈디는 인도를 떠나 파키스탄으로 이민을 간 가족과 재회하고 그곳에서 잠시 방송 작가로 일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인도는 물론이고 파키스탄에도 속하지 못하는 자신의 변경인의 처지를 깨닫고 그는 영국으로 돌아가는 결정을 내리고 만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루슈디는 제1세계로 이주하거나 망명에 처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단절, 주변부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처지, 그리고 언제든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감 등에 시달리는 이들의 모습을 작품 속에서 재현하고 있다. 그는 식민 지배자들은 물론이고 포스트식민지 내부의 모순에 대한 비판을 통하여 디아스포라적 이동과 변화가 어떻게 새로운 정체성의 형성과 권력관계의 변화를 초래하는지를 그리고 있다. 특히, 『악마의 시』에서 두 주인공 살라딘 참차와 지브릴 파리슈타는 경계선상의 인물로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디아스포라적 존재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 루슈디가 삼고 있는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는 경계선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포스트식민 이주자들이 과거의 정체성을 온전히 유지하거나 혹은 완전히 지우고 새로운 정체성을 가질 필요가 있느냐이다.
  살라딘과 지브릴은 마치 샴쌍둥이처럼 한 몸이자 서로에게 그림자와 같은 존재이지만 완전히 다른 성격과 모습을 지닌 인물이다. ‘올바른 정식 영국인’이 되고 싶었던 살라딘은 유학 시절 급우들의 따돌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결심을 더욱 굳건히 하면서 자신에게 어울리는 점점 더 많은 가면을 쓴다. 성우가 된 그는 흉내 내는 인간의 가면을 쓴 채 목소리를 들려줄 때만 자신의 삶이 완벽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지브릴은 변신의 공간인 꿈과 현실 모두를 두려워한다. 지브릴이 진정으로 원한 것은 ‘번역되지 않는 사람’으로 남는 것이며 인도인의 정체성과 뿌리, 그리고 과거를 지키는 것이었을지 모른다고 루슈디는 암시하고 있다.

한편, 우리가 지금까지 사용한 용어들의 논리에 비추어보건대, 그동안의 온갖 변천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불변의 인간으로 남고 싶어한다는 점에서 지브릴은 가히 ‘선하다’고 볼 수 있겠다.1)


  이처럼 루슈디는 변신, 즉 번역을 중요한 디아스포라적 사건으로 작품에 기술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모국어 대신 영어로 글쓰기를 선택한 작가로서 그는 인도, 파키스탄, 영국, 미국 등 여러 국경을 넘나드는 자신의 실존적 처지를 ‘번역된 인간’으로 명명하고 있다. 라틴어의 ‘이동하다(trans+latus)’에서 기원한 영어 단어 ‘번역(translate)’은 단순히 포스트식민 이주의 은유에만 그치지 않는다. 국경을 건너거나 새로운 문화를 조우할 때 발생하는 번역 현상이 물리적인 이동을 통한 번역의 어원적 의미를 반복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호미 K. 바바는 『문화의 위치』에서 이주와 포스트식민주의 관점에서 번역을 분석하면서 『악마의 시』를 문화 간의 경계성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텍스트로 삼고 있다. 『악마의 시』에 등장하는 지식인 수프얀이 제기한 자아의 본질에 관한 논쟁을 차용하면서 바바는 포스트식민 이주자들의 번역된 존재로서의 실존적 딜레마를 설명하는 은유로 고대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와 루크레티우스를 활용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오비디우스는 변화무쌍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영혼의 본질은 변하지 않고 존속된다는 견해를 상징하며, 루크레티우스는 문화적 경계를 넘어서게 되면 영혼이 자아의 본질로부터 자유롭게 된다는 태도를 나타낸다.
  살라딘은 괴물로 변신하는 과정을 통해서 지금껏 가짜의 삶을 살아왔음을 깨닫고 원래 자신의 모습이었던 살라후딘 참차왈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그는 영국 시민으로의 완전한 변신에 대한 꿈을 포기한 후에야 비로소 자신의 뿌리로 되돌아와 과거의 자아를 통해 다시 태어날 수 있게 된다. 흉내 내는 인간의 가면을 벗어 던지고 본질을 찾아 나선 살라딘의 오비디우스적 변신이라는 선택은, 지브릴이 본래 모습인 이스마일 나즈무딘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과 비교해 볼 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태어난 고향을 떠나 국경을 넘나들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루슈디는 쉼표(comma)와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단편소설집 『동양, 서양』의 타이틀을 쉼표로 연결한 것을 두고 자신이 그 쉼표인 것처럼 느끼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동양도 아니고 서양도 아닌 곳에 위치한 자신의 디아스포라적 처지를 그는 콤마에 비유한 것이다.
  하지만 『악마의 시』에서 보여 주듯이 그는 디아스포라적 존재가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가 아님을 상기시킨다. 지브릴의 자살과 달리 살라딘의 자아 되찾기는 그가 단순히 수동적인 쉼표로서의 존재에 머물러 있지 않고 탈중심화, 즉 런던에서 봄베이로의 귀환을 통해 전복과 변형의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루슈디가 디아스포라의 위치에서 어떻게 제국의 언어와 문화와 교섭하면서 자신만의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는지, 또 그가 ‘새로운 문학’의 등장에 어떻게 기여했는지에 대한 답일 수 있다.
  디아스포라 작가들을 소개할 때 흔히 붙이는 수식어가 ‘하이브리드’이다. 바바가 대중화한 잡종성이라는 개념에서 우리는 잡종성이 지니는 저항의 가능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단순히 이질적인 것이 합해지거나 더해진 것이 잡종성이 아니라 정해진 규범에 따르지 않는 저항성과 변화의 동인, 즉 행위능력(agency)의 가능성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루슈디의 주요 관심사가 바로 잡종 정체성의 아웃사이더적 지위를 어떻게 행위능력의 가능성으로 전환할 수 있느냐이다. 『악마의 시』에서는 작가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살라딘이 런던에서 고향 봄베이로 돌아와 아버지와 화해하고 현지 활동가들과 인도의 장래를 논의하는 모습에서 이러한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이는 비단 『악마의 시』에서뿐만 아니라 『그녀 발아래 땅』과 『광대 샬리마르』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언급한 작품 모두에서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이주와 귀환의 순환 과정을 통하여 전복의 가능성을 시사하고 탐구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인도의 안과 밖에서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고 있는 루슈디는 어느 정도의 본질주의를 기반으로 한 창조적 정체성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이주자들이 다른 공간과 시간 속에서 잡종화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단순히 허공을 가로지르는 것이 아니라 두 발을 딛고 걸어 다닐 수 있는 최소한의 땅이 요구됨을 전제하고 있다. 떠남은 열림을 지향하되 어느 정도의 정체성, 즉 전략적 본질주의를 담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루슈디의 이러한 입장은 예술의 자유와 종교 근본주의에 대한 태도에서도 잘 드러난다. 표현의 자유에 있어서만큼 그는 타인의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있는 자유 또한 보장돼야 한다는 다소 과격한 주장을 펼친다. 그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필수적인 요소로서 ‘정치적인 올바름’보다는 ‘위반의 자유’를 꼽으면서 안전하기만 한 책은 필요치 않다고 일갈한다. 이러한 입장은 단순히 이슬람 세계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던 『악마의 시』에 대한 옹호라기보다 예술과 문학의 자유에 대한 작가 자신의 양보하거나 타협할 수 없는 신념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종교 근본주의에 대해서는 확실한 선을 긋고 있다. 『한밤의 아이들』과 『수치』에서는 이슬람 근본주의가 지배하는 파키스탄에 비판적이며, 『무어의 마지막 한숨』에서는 힌두 근본주의자들이 장악한 인도의 종말론적인 참사를 예언하기도 한다. 근본주의에 대한 이러한 명확한 반대는 『악마의 시』는 물론이고 『피렌체의 여마법사』, 『키호테』, 그리고 최신작 『승리의 도시』에서 신앙과 국경을 뛰어넘는 관용과 연대의 필요성을 웅변하는 상징적 기법으로 잘 표현되어 있다.
  세이크 딘 마호메트가 쓴 인도인 최초의 영어 작품 『딘 마호메트의 여행』이 1794년에 출판된 이후, 인도 출신 디아스포라 작가들은 국외 이주로 겪는 아픔과 문제들에 대한 답을 문학적 방식으로 찾고자 노력해 왔다. 특히, 1947년 인도가 영국의 식민 통치를 벗어난 이후로 라자 라오, 물크라즈 아난드, 그리고 R. K. 나라얀의 뒤를 이어서 루슈디, 아룬다티 로이, 로힌턴 미스트리, 아미타브 고시, 아라빈드 아디가 등의 수많은 작가가 등장했다. 인도는 현재 미국에 이어서 두 번째로 많은 영어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과 영국의 뒤를 이어 세 번째로 큰 영어 출판 시장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경을 넘나들며 작품 활동을 하는 디아스포라 작가들이 인도 문학은 물론이고 세계 문학에서 점점 더 큰 위상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 비록 이들이 서구 출판 자본 시장의 논리에 따를 뿐이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라는 헤게모니 언어를 전유하고 전복함으로써 새로운 창조적 변형과 저항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참고자료

1) 살만 루슈디, 김진준 옮김, 『악마의 시』, 문학동네, 2022.

2) Bhabha, Homi K., The Location of Culture, 2004.

3) Rushdie, Salman, Grimus. 1975.

4) Rushdie, Salman, Midnight’s Children, 1981.

5) Rushdie, Salman, Shame, 1983.

6) Rushdie, Salman, The Satanic Verses, 1988.

7) Rushdie, Salman, Imaginary Homelands, 1992.

8) Rushdie, Salman, East, West, 1994.

9) Rushdie, Salman, The Moor’s Last Sigh, 1995.

10) Rushdie, Salman, The Ground Beneath Her Feet, 2000.

11) Rushdie, Salman, Shalimar the Clown, 2005.

12) Rushdie, Salman, The Enchantress of Florence, 2008.

13) Rushdie, Salman, Quichotte, 2019.

14) Rushdie, Salman, Victory City, 2023.

『악마의 시』 작품 정보

저자: 살만 루슈디  번역: 김진준  출판: 문학동네  출간: 2022.9.30.

필자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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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주. 동아대학교 영미학과 교수. 《코리아타임스》와 《연합뉴스》에서 기자로 일한 후 인도 자와할랄 네루 대학에서 영문학 석사 학위를, 호주 시드니 대학에서 포스트식민지 영문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도 및 제3세계 작가 연구는 물론이고 다수의 한국 작가 작품을 영역하고 외국 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하였다. 주요 역서로는 타고르의 『내셔널리즘』(글누림, 2013), 로힌턴 미스트리의 『적절한 균형』(아시아, 2009) 등이 있다. 제34회 한국현대문학번역상과 제4회 한국문학번역신인상을 수상했고, 2007년 대산문화재단으로부터 한국문학번역지원금을 2014년에는 캐나다예술위원회로부터 국제번역기금을 수혜했다.
* 사진제공_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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