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 깊이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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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 깊이읽기

다듬이질하는 여인

평론: 김환기

사할린, 조선, 일본이라는 3개의 소용돌이 무늬
이회성의 『다듬이질하는 여인』에 나타난 디아스포라 의식

김환기(동국대)

1. 이회성 문학의 원점, 가라후토(사할린)

  이회성 문학과 가라후토(사할린, 樺太)의 관계는 운명적이기에 깊고 질기다. 이회성은 “나에게 ‘가라후토’는 아무리 생각해도 운명적이었던 것임에 틀림없다. 만약 내가 이 최북단 섬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작가가 되어 있을지 어떨지 의심할 정도”1)라고 했다. 가라후토는 이회성의 고향이면서 문학의 원점이었고, 그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빨아들이고도 남을 만큼 강력한 정신적 구심력으로 작용했다.
  알려진 것처럼, 이회성은 1935년 가라후토 마오카(真岡)에서 태어났다. 그의 양친은 일제강점기 한반도의 함경남도(아버지)와 경상북도(어머니)에서 ‘징용’ 노동자로 일본에 건너갔고, 둘은 규슈의 탄광에서 만난다. 양친은 규슈에서 홋카이도로 다시 일자리를 찾아 일본의 최북단 가라후토로 이주해 마오카 시에 정착한다. 당시 마오카 시에는 같은 입장의 조선인들이 살고 있었고, 그곳에서 이회성은 조선 고유 전통문화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한다. 그리고 아홉 살 때, 친어머니 장술이와 사별하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2세 때, 러시아가 점거하면서 호칭이 바뀐 사할린에서 일본으로 가족과 함께 귀환한다. 그때, 외가 쪽의 조부모와 사촌언니(豊子)를 사할린에 남겨 두고 왔는데, 그것이 이회성의 마음에 큰 응어리로 남는다”2)라고 했다.
  훗날 이회성은 작가로 활동하면서 당시 어머니의 죽음과 일가 친족과 이별을 경험한 “가라후토 땅은 이회성 문학의 원점”이라며 끊임없이 작품을 통해 기억을 소환한다. 이를테면 이회성의 작품 『다듬이질하는 여인』을 비롯해, 작가가 사할린에서 일본으로 귀환해 정착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백 년 동안의 나그네』, 일본의 패전과 함께 1947년 사할린에서 홋카이도로 귀환한 작가 자신의 일가족 이야기를 얽어낸 『또다시 이 길을』, 사할린에서 일본으로 귀환한 가족과 사할린에 남은 친척들의 생활을 서간 소설 형태로 얽어낸 『나의 사할린』, 사할린 ‘동포’들의 절실한 문제를 다룬 『사할린 여행』 등이 사할린에 얽힌 이야기를 담은 작품들이다,
  특히 이회성의 『다듬이질하는 여인』은 일본 문학계가 자랑하는 ‘아쿠타가와 상(芥川賞)’을 외국인으로서 처음 수상했다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지만, 이 소설에서 유년 시절 가라후토에서 경험했던 기억을 토대로 민족의 서정성 넘치는 전통미, 가라후토와 맞물린 제국 일본의 이데올로기, 나아가 ‘흘러가는’ 디아스포라의 유민 의식까지 폭넓게 풀어내고 있다.

2. 전통과 서정적인 민족정신

  『다듬이질하는 여인』의 서사 구조는 1인칭 소설로서 주인공이 현시점에서 가라후토의 유년 시절을 회상하며, 일제강점기 전 세대(조부모, 부모, 형제)의 간고한 삶을 풀어내는 형식을 취한다. 주인공 “나는 어머니를 회상하는 입장”에서 당시 나라 잃은 ‘조선인들’의 이주(이동)와 ‘징용’, 전통과 민족 정서, 유민 의식 등을 얽어내고 있다. 특히 이 소설은 일제강점기 군국주의의 최북단 유역인 가라후토에서 ‘징용’으로 살았던 ‘조선인’ 일가족의 특별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먼저 『다듬이질하는 여인』에서 주목되는 것은 ‘조선적인 것’이나 ‘조선의 소리’로 읽어 낼 수 있는 전통과 민속, 고향과 민족정신으로 수렴되는 구심력이다. 실제로 이회성은 “『다듬이질하는 여인』에서 조선의 관습, 풍경과 같은 여러 상(像)들을 구체화시키며 조선색을 적극 활용한다.”3) 우선 ‘조선적인 것’의 민속과 전통을 표상하는 단옷날의 그네뛰기를 비롯해, 오줌 싼 아이에게 소금 심부름 보내기, 빨래터의 다듬이질하는 여인, 슬픔에 젖은 장례식장 풍경, 흰색 치마저고리를 입은 여인들, 할아버지의 담뱃대 터는 소리, 겨울날 학교 교실 화로에서 장작 타는 소리, 신라 화랑도의 검무 등이 서정성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연기도 안 나는 긴 담뱃대를 입술에 물고 지그시 앉아 있는” 할아버지가 “곁에 고서 제본의 한서를 쌓아 놓고 낡은 목침을 놓아둔”4) 장면도 생활 속에 일상화된 전통적인 유교 정신을 보여주는 ‘조선의 소리’로 읽힌다. 특히 ‘처녀 시절’ 단옷날에 그네를 타는 딸(장술이)의 모습을 회상하는 할머니의 ‘신세타령’과 “늘어지게 다듬이질하는” ‘어머니(장술이)’의 모습은 민족 정서를 보여 줌과 동시에 피식민자의 입장인 조선인들의 ‘한’과 강한 생명력을 상징하기에 충분하다.

“그렇지, 널뛰기할 때 치마에 듬뿍 바람을 실어 어느 애보다도 높고 깨끗하게 뛰었지. 하늘은 그 애가 귀여워서 그러안고 놓아주질 않았지. 또 그네타기는 어떻고. 줄을 꽉 쥐고 실버들 가지보다 높이 날아올랐다 내려오지. 그건 꼭 제비 같았어. 나는 조마조마한데, 그 애는 걱정도 않고 말야…….” “조숙한 애였어. 봄이 되면, 꽃잎으로 살그머니 손톱을 물들이기도 하고, 내게 머리를 땋게 하고 댕기의 길이가 어쩌니 저쩌니……. 그건 홀딱 반할 살결이었어. 그렇고말고, 단옷날에는 창포물로 몸을 씻고, 매년 때 묻지 않게 키운 술이였어. 어미인 내가 반했지, 왜 동네 총각이 가만히 있을 턱이 없지. 이놈도 저놈도…….”

빨래거리에 둘러싸인 어머니는 손가락에 침을 발라 다리미의 불기운을 살핀다. ‘비켜라’하면서 입에 물을 잔뜩 머금고 있다가 방석 위의 옷에 뿜는 것이다. 다리미의 자루에 힘을 주어, 하나하나 꼼꼼하게 주름을 펴나가곤, 푹 숨을 쉬고 기둥 시계를 쳐다보기도 한다. 다리미질을 안 하는 날은 포갠 옷가지에 헝겊을 덮어 씌어, 늘어지게 다듬이질을 하는 것이다. 매일 보는 광경이었다. 싫증나도록 보았을 텐데 어머니가 통통, 통통 다듬이질하는 것을 쳐다보는 것은 즐거웠다. 흰옷 입은 여인들을 어렴풋이 생각해 내고, 멀리 끌려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다듬이질 하는 여인』에서

  할머니의 처연한 ‘신세타령’을 통해 어머니의 젊은 날을 회상하지만, 서른이 된 ‘나’의 심상 공간에 자리매김한 모정의 세월은 할머니의 ‘진혼가’만큼이나 깊고 뜨겁다. 그리고 “통통, 통통” 소리를 울리는 어머니의 다듬이질하는 정겨운 장면은 확실히 ‘나’의 심상 공간에 깊은 울림으로 자리 잡았고, 이회성에게 작가로서 평생 고향 가라후토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정신적 구심점으로 남게 한다.

3. 일본제국의 이데올로기 표상

  이회성은 가라후토 마오카시의 초등학교에서 한국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고, “창씨개명으로 기시모토(岸元恢成)라는 일본명을 사용할 것을 강요받았고, 결과적으로 일본인보다도 일본인답게 행동하는 군국 소년으로 자라게 된다”고 했다. 그리고 이회성은 “가라후토에서 태어나 사할린에서 2년 보내고 귀환해 온 소년기에, 역사는 얼마나 깊이 ‘나’라는 자그마한 소년을, 인간의 기쁨과 슬픔의 현장과 마주하게끔 했던 건가”라고 반문한다. 또한 이회성은 유년 시절 가라후토에 살면서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기념 촬영 플래시가 무서워 도망치던 아동이었지만, 몇 년 후에는 ‘귀축미영 박멸(鬼畜米英撲滅)’을 열심히 맹세하고 소년들의 ‘보국(報國)’ 경쟁에서 언제나 남들보다 돋보이길 원하는 소년이 되었다. 아마도 나는 일본 소년보다도 ‘황국’ 소년인 것처럼 행동했던 것 같다.” 그것은 태평양전쟁 말기에 일제의 ‘황민화’ 정책이 강력하게 추진되어 작가의 유년 시절을 정신적으로 지배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이처럼 일제강점기와 패전 직후의 가라후토는 이회성을 ‘군국 소년’ ‘황국 소년’으로 내몰았다. 실제로 황국 소년의 행동을 구체적으로 얽어내는 경우는 드물지만, 훗날 작가로서 당시의 가라후토를 기억하고 회상하는 많은 작품에서 서사화된다. 『다듬이질하는 여인』에서는 이러한 일제강점기 제국 이데올로기의 모순과 부조리의 현장을 놓치지 않는다. 전통적인 민족정신과 서정성을 깊이 있게 직조해 내면서도, 제국과 국민국가의 강제된 계급적 질서 체계, 피식민자의 이주(이동)와 간고한 삶을 통해 ‘부’의 역사적 지점을 천착하는 형식이다.
  이를테면 일본제국의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교정에 세워진 “나무를 지고 책을 읽고 있던 니노미야 손토쿠(二宮尊德)”가 전쟁터로 공출된 이야기, 어머니의 장례식날 “등화관제도 사정을 봐주었다. 우리 집만의 특권처럼 보이는 것이다. 불빛은 눈을 비추고 여기저기 세워진 화환이나 상장이 붙은 협화회(協和會, 일제시대 ‘내선일체’를 위해 만들어진 조직) 깃발을 뚜렷이 있었다”는 이야기, “매일 아침 아버지는 다리에 각반을 차고 지까다비(노동화)를 신고 어딘가로 나섰다. 징용으로 나다니는 것”과 같은 표현이 그러하다. 당시 가라후토에서 군국주의로 치닫던 시대상을 피식민자들의 ‘협화회’와 ‘징용’으로 표상되는 일상으로 얽어내고 있다.
  그리고 일본으로 떠났던 딸(장술이)이 10년 만에 고향으로 찾아왔을 때, 아버지는 아침 일찍 황소를 끌고 벼베기를 나갔다 점심나절에 돌아와 딸(장술이)에게 “관동대지진(關東大震災) 때는 괜찮았었니?”라고 물었고, “그때 살해되지는 않았나 하고 단념하고 있었다. 너무 편지를 안 보내왔기 때문이지”라고 말한다. 일제강점기 관동대지진과 ‘조선인 학살’이라는 ‘부’의 역사적 지점을 소환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팔자가 뭐야. 이렇게 된 것도 나라가 망했기 때문이야. 아이고, 귀신에게 홀린 거야, 왜 도둑놈의 나라에 갈 생각을 했을까. 나라는 뺏긴 데다 딸애까지 뺏기고…… 이왕지사 화전민이라도 되는 것이 나을 것을! 아이고 내 팔자야, 술이야……”라는 할머니의 신세타령에도 일본제국을 향한 비판적 시선이 자연스럽게 담긴다. 할머니가 “벌꺽벌꺽 화를 내며 장작을 아궁이에 꺾어서 처넣으면서” “고국에서 살 궁리를 해야지. 왜놈 옷 같은 걸 입고 오지 말고”8)라며 불만 섞인 표정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제국과 국민국가, 정치 이데올로기와 엮일 수밖에 없는 피식민자(조선인)의 입장은, 양석일 문학의 경우는 ‘신체성’으로 자연스럽게 직조된다. 그리고 김학영 문학은 자신의 말더듬을 놓고 그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왜 한국인이면서 일본으로 흘러들어 와 살게 되었나 하는 질문에 봉착하게 되고 그 근원을 찾아 가다 보면 민족문제에 이르게 된다”9)라는 형태로 강제된 식민 지배국의 원죄적 이데올로기를 얽어낸다.
  이처럼 재일 코리안 문학은 개인적인 가족사를 얽어내더라도 내용에서 역사성과 민족성을 기본적으로 담아낼 수밖에 없다. 이는 장술이가 죽기 전에 지극히 평범하게 “흘러가지 말아요”라고 했지만, 그 ‘흘러간다’는 말에는 나라 잃은 ‘조선인’이 유역으로 이주(흘러감)할 수밖에 없고, 제국과 국민국가, 계급적 이데올로기에 휩쓸릴 수밖에 없는 피식민자의 불가피한 ‘정치성’과 ‘사회성’을 포함한다.
  여기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이화성이 『다듬이질하는 여인』을 일본 문학의 특징인 사소설 형식으로 서사화한 점이다. 실제로 소설에 등장하는 어머니의 이름 장술이(장술이)를 비롯해, 어린 5세 나이에 어머니와 함께 고향(경상북도)을 찾았던 기억, 1944년 어머니(장술이)의 장례식장에 등장한 흰옷 차림의 풍경도 다르지 않다.10) 또한 작가의 이력에서처럼 일제강점기 가라후토는 실제로 작가의 부모와 비슷한 입장의 조선인들이 많이 거주했고, 그들이 민족 고유의 민속 전통과 관혼상제를 유지 계승하고 생활했을 것이라는 점, 그리고 이회성이 민족의 전통과 민속을 일상에서 접하면서 또렷이 기억했을 것이라는 점은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다듬이질하는 여인』에 등장하는 ‘조선적인 것’, 즉 널뛰기, 그네뛰기, 오줌싸개, 다듬이질, 장례식, 흰옷, 담뱃대, 교실의 화로 등은 그러한 작가적 실제 경험의 산물이다.

4. 디아스포라 문학과 유민 의식

  이회성은 대학의 강연장에서 “우리 민족은 디아스포라 집단입니다. 700만의 이민이나 망명자가 있는 이민 민족입니다. 이러한 문화를 가진 것은 문학 면에서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풍부한 작품 테마, 소재, 모티브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21세기 세계에 부끄럽지 않은 위대한 문학을 지구상에 내놓을 가능성이 큽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이회성 자신도 “디아스포라이며 세계 7개국에 걸쳐 가족이 흩어져 살고 있는 현실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슬픕니다. 그 비애와 분노가 뼛속 깊이 스며 있음을 느낍니다. 그 점에서 저는 ‘재일’이면서 ‘재일’ 70만 중에서도 도드라져 있는 인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히려 700만의 일원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11)라고 했다.
  이와 같은 이회성의 디아스포라 의식은 가라후토에서 시작된 자신의 “백 년 동안의 나그네”라는 유민 의식으로 공고해진다. 그리고 신체적 정신적으로 체화된 작가의 유민 의식은 작품의 방향키가 되어 다채로운 형태의 서사로 그려진다. 『다듬이질하는 여인』에서도 작가의 운명적인 유민 의식이 어김없이 직조된다. 끊임없이 변방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디아스포라의 입장, 그 운명적인 유민 의식을 잘라 내고 고향에 정착하고 싶은 피식민자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장술이가 죽기 전, 남편과 말다툼 속의 인간적인 목소리에서는 외부 세계(사람, 이데올로기)에 이용만 당하지 말고, 한곳에 정착해 주체적으로 살라는 메시지로 들려 울림이 크다.

  “어디까지 흘러가는 거예요. 시모노세키(下関)도 충분해요. 그걸 혼슈(本州)에서 홋카이도, 다시 가라후토(樺太)로……. 당신의 사는 길도 거기 따라 흘러가는 거예요. 왜 협화회의 역원 같은 걸 맡아요. 당신은 사람이 좋으니까 그렇게 이용만 당하고. 모두가 회원이 되었다고 어디 깃발까지 흔들 건 없지 않아요.”
  “깃발을 흔든다고. 저 얄미운 말버릇 좀 봐. 조상이 시켜서 내가 그렇게 하는 건가. 아무래도 누구에겐가 차례가 돌아가는 거야. 할 수 없이 한다는 그것뿐이 아니야.”
  “그 협화회라는 게, 자기가 자기 목을 조르는 것 아니에요. 싫어하는 어머니한테 몸빼나 입히고……. 당신은 아주 변했어요.”
  ―『다듬이질 하는 여인』에서

  ‘유역’에서 사람들한테 이용만 당하고 “어머니에게 몸빼나 입히고”, “자기가 자기 목을 조르는” 그런 흘러가는 삶이 아닌 당당하고 주체적인 삶을 살 것을 당부하는 아내의 말에, “협화회 역원이”이 되어 차례가 와 어쩔 수 없이 깃발을 흔든다는 변명에는 확실히 옹색함이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주인공인 ‘나’는 소설의 마지막에서 “늙기 시작한 아버지가 먼저 간 아내의 불단(佛壇) 앞에서 팔베개를 하고” 누워, “낮은 목소리로 불단에 들려주기라도 하듯, ‘춘향전’과 ‘심청전’을 읊조리는” 모습에서, 아버지의 “변명 비슷한 것”, “켕기는 것 같은 모습”, 아내에게 잘 대해 주지 못했던 사나이의 괴로운 “자책의 표현”일지도 모른다고 위로한다. 그리고 아내는 남편을 격려하며 마지막으로 “흘러가지 말아요”라는 말을 남긴다.
  이렇듯 이회성은 “사할린, 조선, 일본이라는 3개의 소용돌이무늬가 일으키는 갈등이 상상력의 원리가 분출”12)된 것처럼 “자유롭지 못한 삼각관계”13)에서 배태되는 유민 의식을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얽어냈다. 예컨대 구소련권 고려인들의 강제 이주(1937)를 다룬 작품 『유역』에서 ‘적성 민족’으로 찍혀 ‘강제 이주’ 당한 ‘크림 타타르족’의 독립투쟁사, 자주성을 잃고 “이방인으로서 남의 땅을 떠돌고” 있는 팔레스타인들의 모습, 그리고 “더듬이를 잘린 벌레 꼴”로 유민 생활을 이어가는 구소련권 고려인들의 현 지점이 다르지 않음을 직시하고 있다. 물론 『유역』에서 고려인의 강제 이주를 취재하는 재일 코리안 춘수 일행의 타자 의식이 결국은 자신들의 유민 의식, 디아스포라로서의 ‘반쪽발이’ ‘재일성’을 되짚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참고자료

1) 李恢成, 『李恢成の文學』, 北海道立文學館, 2012, 12쪽.

2) 같은 책, 12쪽.

3) 이영호, 「1970년대 재일조선인 문학 장르 형성 연구―1971년 이회성의 아쿠타가와상 수상을 중심으로」, 『한림일본학』 27,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2015, 7쪽.

4) 이회성, 『다듬이질 하는 여인』, 이호철 옮김(정음사, 1972), 26쪽.

5) 李恢成, 앞의 책, 12쪽.

6) 이회성, 앞의 책, 13쪽.

7) 이회성, 같은 책, 29쪽.

8) 이회성, 같은 책, 35쪽.

9) 김학영, 「자기해방의 문학」, 『소설집―얼어붙은 입』, 하유상 옮김(화동출판사, 1922), 205쪽.

10) 李恢成, 앞의 책, 39쪽.

11) 이회성, 『나의 삶, 나의 문학』(동국대 문화학술원, 2007), 16쪽

12) 호쇼 마사오 외, 『현대 일본 문학사 (하)』, 고재석 옮김(문학과지성사, 1998), 221쪽.

13) 李恢成, 「時代のなかの‘在日’文学」, 《社会文学-特集「在日」文学》 26, 2007, 3쪽.

필자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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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동국대학교 일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문과대학장과 일본학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디아스포라 웹진 편집기획위원회에서 디아스포라 웹진 《너머》 편집을 주간하고 있다. 동국대학교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한 뒤 일본 다이쇼 대학 대학원 석·박사를 졸업했다. 대표 저서로는 『시가 나오야』, 『재일 디아스포라 문학』, 『브라질 코리언 문학 선집』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암야행로』, 『일본 메이지 문학사』, 『화산도』 등이 있다.
* 사진제공_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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