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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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그녀의 눈물

전후석(Joseph Juhn)

   이별의 시간이 왔다.
   부모님을 JFK 공항까지 모실 우버 택시가 저 앞에서 다가왔다.
   정확히 5년 만에 부모님과 나, 동생, 이렇게 4명의 가족이 함께 모여 지난 2주간의 시간을 뉴욕 퀸스의 작은 아파트에서 보냈다. 아빠는 이번 미국 방문이 20년 동안 고작 두 번째였다. 그렇게 오랜만에 왔음에도 부모님은 뉴욕 거리를 충분히 누리지 못했다. 시차와 세월이라는 복병이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스페인 카미노 성지순례길을 40일간 완주했던 그들의 체력을 무색하게 했다. 하루 맨해튼 뮤지엄을 갔다 오면 이틀간 집에서 쉬는 일정이 반복되니 2주가 순식간에 지나갔다.
   택시에 짐을 싣고 포옹 인사를 하는데 엄마의 입술이 떨리는 것이 보였다. 그녀의 아쉬움에 동조함으로 더 극적인 상황이 전개되는 것이 이상적이지 않을 것이라 직감한 나와 남동생 의석은 담담히 아빠와 엄마를 차에 태운 후 손을 흔들었다.
   30여 분 후 가족 단톡방에 메시지가 왔다.
   “후석·의석
   가득 찬 시간이었다.
   너네들 엄마 아빠 좋은 데 모시려고 진심을 다해 애써서 넘 호강했다. 엄마는 차 타고 울었다~.”
   그 순간 나는 택시 안에서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을 엄마의 모습이 상상되었고, 짠한 어떤 것이 나의 가슴 깊은 어느 곳을 건드렸다. 곧, 익숙하지 않은 복잡한 감정들이 솟아올랐다.
   생각해 보면 나는 언제나 예상 가능한 부모-자식이라는 역학적인 관계 속에서만 기능했고 아들 이상의 존재가 되어본 적이 없었다. 해외에 떨어져 살기에 가끔 부모님과 조우할 때마다 나는 이번에는 그들과 아주 진지하고 소중한 시간을 보낼 것을 굳게 결심하지만, 내 안에 내재한 자녀로서 못된 버릇―투정, 무뚝뚝한 말투, 시선 회피 등―이 곧 나를 지배해 버린다. 나는 다큐멘터리를 연출하기에 평소 타인을 촬영할 때 그들의 존재에 온전한 집중을 하는 능력을 나름 길러왔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부모님 앞에서는 그 능력이 자취를 감추어 버린다. 그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혹은 또 다른 연약한 인간으로 응시하는 대신 나는 영락없이 철없는 아들이 되어 그 역할에만 충실할 뿐이다. 그것은 내가 한국에 갈 때도, 혹은 이번처럼 드물지만 부모님께서 미국에 오실 때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엄마가 울었다는 문자를 보는 순간, 그 찰나 같은 몇 초 동안, 난 그녀를 나의 엄마가 아닌 한 순수한 동료 인간으로서 떠올렸다. 마치 아련한 영화의 한 장면처럼, 택시 안에서 흐느끼던 그녀가 그려졌고, 그녀가 현재 겪는 격한 감정 상태의 근원―그녀의 눈물을 자아낸 모든 축적된 경험들―의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삼십몇 년 전, 그녀는 갓난아기였던 나와 동생을 손에 안고 사랑스러운 눈으로 우리를 응시했을 것이다. 장을 보기 위해 복잡한 거리를 활보하며 걸음이 짧았던 나와 동생의 작은 손들을 단단히 쥐었을 것이다. 배탈이 나서 한참 울다가 잠이 든 우리의 발과 등을 몇 시간 동안 지압했을 것이다.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를 위해 수년간 새벽에 일어나 두 손을 모았을 것이고 간혹 우리의 별것 아닌 안부 카톡 메시지에 큰 함박웃음을 멈출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랬던, 자신이 낳은, 자신에게 모든 것을 의지했던 생명들이 세월이 지나 어른이 되어, 그들과 기약 없는 이별을 하는 그 순간 그 상냥한 여인의 눈가에 따뜻한 물이 고여 흐른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현상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두 아들들이 더 이상 자신 곁에 머물 수 없다는 자연의 순리를 그녀는 이미 오래전에 마지못해 수긍했겠지만, 반가운 조우 뒤에 늘 기다리고 있는 이별의 의례가 그녀에겐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아빠가 처음 미국에 와 공부하며 너희를 낳았을 때만 해도 너희들을 디아스포라로 키울 의도가 전혀 없었는데, 그렇게 되어버렸구나…….”
   떠나기 전, 아빠의 말씀이다. 그렇다. 이민자들이 내리는 수많은 결정의 파편은 각자 예상치 못한 궤도를 그리며 낯선 땅에 발을 딛고 자기 방식대로 싹을 틔운다. 그들의 운명은 현지의 환경과 여러 상황의 우연성, 그 예측불허함에 상대적으로 더 노출되어 있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수없이 많은 변수들 속에서 가족은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을 지탱하는, 확인시키는, 유일한 불변적 요소일 수 있다. 그래서 해외에 가족을 둔 모든 이들에게 재회 후 이별의 순간은 먹먹한 상실감을 선사한다. 자아의 일부가 절단되는 것 같은.
   며칠이 지나, 배가 고파서 집 냉동실을 열었다. 냉동된 물만두가 있었다. 미국을 떠나기 며칠 전 비좁은 부엌 한쪽에 구부정하게 앉아 한 점, 한 점 물만두를 빚던 엄마의 모습이 뇌리에 스쳐 지나갔다. 그러자 그 눈물의 근원을 다시 떠올렸다.
   아마도 엄마의 눈물은, 그녀와 아들들 사이에 존재하는 물리적 거리에 대한 원망을 넘어, 낯선 땅을 이제는 집이라고 일컫는 타국적 자녀들의 찬란한 미래에 대한 축복의 염원일 것이라고.

필자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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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 거주하는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쿠바 한인들에 대한 다큐멘터리 〈헤로니모〉와 2020년 연방하원에 도전했던 다섯 명의 재미 한인의 여정을 담은 〈초선〉을 제작했다. 영화제작 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뉴욕 지부에서 국내 중소기업과 창업인들을 지원하는 지식재산권 뉴욕 변호사로 4년 동안 근무했다. 캘리포니아대학교 샌디에이고 캠퍼스에서 영화학을 전공했고 시러큐스 법대를 졸업했다. 저서로는 『당신의 수식어』(2021)가 있다.
* 사진제공_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