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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종점, 흰눈 속 복사꽃만이

권영희

마포종점

지금은 흔적 없는
마포행 만원 전차
코와 코가 닿고 부둥켜 안아야
한강 모래사장에 겨우 이른다

아마도 그곳엔 내 꿈이 기다릴 거라고
누군가 말해 주었나
멀리멀리 가야만 만날 수 있다고

잔물결은 찰싹거리고
부드러운 강바람 나를 흔든다
흰 모래 발가락만 간질이는데
흐르는 별 하나, 내 입술에
화살로 꽂힌다

화살을 쏜 이 누군지 잊어버린 채
이 두근거림은 우주의 소리라고
영혼의 소리라고 가슴에 귀를 대고
뒹구는 두 영혼의 불꽃
숨 죽여 어둠을 뚫고 강을 건넌다
그것이 꿈이었다고

마포는 더 이상 종점이 아니다

흰눈 속 복사꽃만이

눈감고 생각하면 고향길 구만리
목말라 허덕이다 날아간 하늘
봄바람 싸늘 속에 그리움을 토한다

광화문 카페에서 낡은 수첩 뒤적이는데
흩날리는 눈발이 날 울먹이네
어느 경계를 넘어 타향에 앉아 보는 나

헤어질 때 손 놓지 못해 울부짖던
그 목소리 기적이 삼켜버린
서울역은 늙은 노인이 되어
저만치 혼자 쪼그리고 앉아 있다

정오를 알리는 성당 종소리 여전하였다
흰눈 속에 복사꽃만이 여전하였다

원색 넥타이에 묵직한 가방 든 이들
배가 가방처럼 늘어져
탐욕, 기만과 존심으로 이글이글 꽉 찬
더는 묻고 싶지 않았다, 서로가 택한 길

낯선 여인숙 불편한 하룻밤을
지새고 돌아가는, 어이 내 고향 산천은

내 마음속에만 숨어 있는가

필자 약력
권영희_프로필.jpg

재미시인협회 이사장. 재미시인협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시집 『뒤돌아보니 문득』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