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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 검트리 숲에서 보내는 편지

김인옥

1. 통화

1
여긴 괜찮아요
여기도 괜찮다

시드니 서부 블루마운틴 폭염 산불
강원도 동해안 중북부 폭설

2
여긴 괜찮다
여기도 괜찮아요

둥글게 올라와
떡가래 길게 늘어나는 명절

빛바랜 머릿속에 둘러앉아
달빛 한 상 준비 중이다

훌쩍 넘어가긴 했는데
훤히 비친 속내

그대로 듣고만 있고
한 마디씩 걸려 있고

언제 오니
한번 다녀가세요

2. 검트리* 숲에서 보내는 편지

너머는 별일 없으신가요
공중에 헛발질하는 새들을 보며 문득 오래전 저물녘을 떠올립니다
국경을 넘어온 새가 얼마나 넘쳐나던지요
깃을 치며 저마다 길어 올리는 소리
움직이면 움직이는 대로 손짓 발짓에 부러지는 날개
허공에서 가슴 베였습니다

숲을 구별하는 일
빽빽한 나무의 짙푸른 세계
퍼덕이는 날갯짓으로 새끼들 자음모음 가르치느라
부지런한 발로 흔들리는 집 수평을 이어주느라
그건 희망이거나 가능성의 약속
힘센 가지에 앉아 새벽부터 질러대는 쿠카바라**
잘못 알아듣기도 했지만 그늘진 마음이기도 했지요
눈앞에 오페라하우스가 펼쳐질 땐
오렌지 조각 모양의 지붕 아래에서 노래하며 살 줄 알았습니다

숲에 숲이 엇갈리는 꿈
깜박 발길질 잊어버린 허공
부리에 닿는 눈빛만으로
어느새 역이민을 가슴에 안고 있더군요

이민자라는 어원을 부여받은 걸까요
지금 숨 쉬는 바람 속에 내일이 있다고 믿으면
발목까지 차오르는 각오
그늘진 곳 노래 닿지 않아도 아침 빛 밀어 올려, 올려,
이젠 살 만하냐고요
현재가 되어가는 중이거나 내일이 될 순간들입니다

* 호주에 가장 많은 나무로 700여 종이 있다.
** 호주를 대표하는 국조. 새의 소리가 사람이 웃는 소리와 비슷하며 새벽의 전령이라고 불린다.

필자 약력
김인옥_프로필.jpg

한국외국어대학교 한국어교육과 졸업. 1996년 호주 시드니로 이주했다. NSW 대학에서 언어 교사 과정 수료 후, 한글학교 교사 및 교감을 역임했다. 2017년 《문학나무》로 등단했다. 재외동포문학상 시 부문에 입상했다. 저서로 시집 『햇간장 달이는 시간』이 있다. 현재 시드니 ‘문학동인 캥거루’에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