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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꼬기, 잡초의 가슴에 푸른 칼날이 자란다

박장길

새끼꼬기

박혁거세가 신라에 앉아
꼬아 내려보낸
새끼줄을 이어 뻗어온
밀양이란 박넝쿨에는
주렁주렁 풍년이었다

달빛이 하얗게 안고 놀던
그 박들은 흥부씨를 품고
새끼꼬기에 새끼낳이에 열심이었다

지금은 띄엄띄엄
여기에 하나
하나는 바다 건너 가물이 들었다

세월을 비벼 꼬아온 천년을
나의 손에서 아들이 받아쥐면
해와 달 강림하리라

잡초의 가슴에 푸른 칼날이 자란다

어머니는 하얀 핏줄을 키우셨다
수그러들지 않는
머리 쳐든 핏줄을 깨끗이 키우셨다

어머니의 햇빛을 먹고
키 큰 흰 핏줄들은
세상을 가로타고
머리가 두 쪽으로 갈라지면서도
오리오리 흰빛으로 뿌리내리고
선남선녀 내려오길
바라던 꿈은 그냥 꿈
길고 긴 허리춤 배부른 주머니에선
눈물방울이, 핏방울이 슴배여 나와
마르지 못하는 진창길에
해는 저만치 뿌옇고
어머니의 햇빛이 고픈 여린 흰 핏줄들은
들풀로 자라 버려진다

콩나물로 크지 못하는
잡초의 가슴에 푸른 칼날이 자라난다

필자 약력
박장길_프로필.jpg

1960년 출생. 북경로신문학원 제11기 전국중청년작가 고급연구반 수료. 국가 1급 작가. 중국작가협회, 중국소수민족문학회 회원. 연길시 조선족 예술단 창작실 주임을 역임했다. 시집 『매돌』, 『찰떡』, 『짧은 시, 긴 탄식』, 『너라는 역에 도착하다』, 『풀』, 『자작나무, 하얀 편지』, 동시집 『소녀의 봄』, 수필집 『어머니 시집가는 날』,가시집 『부부 사이는 춘하추동』 등을 출간했다. 서정시 50수가 일어로 번역되어 일본에서 발표되었다. 아리랑 문학상, 두만강여울소리시인상, 해란강문학상, 두만강문학상, 진달래문예상, 가야하 문학상, 중앙급가사창작 1등상 등 다수를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