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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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손금

손홍규

   그리운 사람이 있어서라고 했다. 희는 아무도 그립지 않았기에 요한의 말을 흘려들었다. 그랬다고 믿었는데 그 말이 문득문득 떠올랐고 그러면 마음이 뒤숭숭해졌다. 누군가를 그리워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희가 그리워할 만한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오학년 여름 방학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날이었다. 뙤약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기찻길 건널목을 지나 과수원을 끼고 걸어가다 보면 농업용 지하수 펌프를 만났다. 마을이 가깝고 집이 저만치 있었지만 희는 꼭 그쯤에 이르면 목이 말랐다. 펌프는 바로 옆 전봇대에 매달린 계량기에 전원이 연결되어 있었고 스위치만 올리면 금세 시원한 물을 콸콸 쏟아냈다. 그 물은 차갑기만 한 게 아니라 달기까지 했다. 자루 모양의 커다란 가방을 멘 요한이 펌프 앞에 서 있었다. 그때는 요한이 누구인지 몰랐지만 그런 이름을 지닌 먼 친척 사내가 오늘내일 올 거라던 아버지의 말이 떠올라 짐작은 됐다.
   요한은 방금 물을 마셨는지 손등으로 입가를 쓱 닦았다. 희가 머뭇거리자 그가 슬그머니 옆으로 비켜섰다. 희는 물이 나오는 배수관 주둥이에 입을 댔다. 발 디딘 자리가 미끄러워서 균형을 잃었고 콧구멍으로 물이 왈칵 쏟아져 들어왔다. 콧속에 매운 기운이 가득 찼고 입천장에서 목구멍으로 흘러내린 물 탓에 사레가 들렸다. 희는 허리를 굽힌 채 켁켁대다가 물줄기 앞에 쭈그리고 앉아 코를 팽 풀었다. 눈물까지 찔끔 났다. 희가 고개를 들자 요한이 손 바가지를 눈앞에 내밀었다. 두 손날을 맞대어 오목해진 그의 손바닥 안에 물이 고여 있었다. 그걸 마시라는 뜻인지 그런 식으로 마시면 된다는 뜻인지. 희는 손바닥에 고인 물이 일렁이는 걸 보았고 거기에 비친 요한의 얼굴도 보았다. 처음 본 그의 얼굴이었다.
   그의 가슴팍을 가리키며 요한이냐고 물으니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긴 왜 왔냐고 묻자 그리운 사람이 있어서라고 했다. 희는 어리둥절한 눈길로 바라보았고 요한은 뭔가를 더 설명하려 했다. 여동생과 입양과 미국에 대해 말했지만 이 년 전 그 순간의 희는 그 말들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리운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야지 왜 여기로 온단 말인가. 뒤늦게 그의 차림새가 눈에 들어왔다. 낡은 운동화. 발목이 드러난 헐렁한 바지. 팔뚝을 걷어 올린 체크무늬 셔츠. “명희 맞지? 되게 보고 싶었어.” 더더욱 모를 말이었다.

   그해 여름 어느 날 희는 요한이 일하는 우사를 지나다가 두엄을 내고 있던 그의 뒤통수에 대고 물었다. “오빠는 뭐가 그리 그리운 건데?” 나이 차를 따지면 삼촌뻘에 가깝지만 요한은 오빠라고 불리는 걸 좋아했다. 희의 아버지는 삼촌이라 부르는 게 낫겠다고 했지만 요한은 항렬이 같으니 삼촌은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오빠라고 불러, 명희야. 난 그게 좋아. 희는 오빠라는 말이 선뜻 나오지 않았지만 그렇게 불렀고 그렇게 부를 때마다 정말 그가 오빠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요한이 뒤를 돌아보았다. 손을 흔들었고 뭐라 뭐라 소리쳤다. 분명히 밥 먹었냐는 말일 거였다. “왜 그리운 거냐구!” 그런 질문에 조리 있게 답해 줄 사람은 아니었지만 딱히 듣고 싶어서 던진 질문도 아니었다. 그는 소들의 엉덩이를 찰싹 때려가며 비켜나게 한 뒤 방금 소가 섰던 자리의 두엄을 쇠스랑으로 퍼서 한곳에 수북이 쌓았다. 어느 정도 쌓이면 손수레에 옮겨 담아 축사 바깥의 두엄자리에 부려둘 거였다.
   “오빠는 소가 안 무서워?” “가끔 무서워.” “그런데 어떻게 소하고 그렇게 친해?” “친한 건 아니구, 소는 사람 말을 못 알아듣고 우리는 소의 말을 못 알아들으니까 알아들으려 노력할 뿐이야.” “노력만 하면 되는 거야?” “그러면 돼. 얼굴을 보고 있으면 소도 나를 보거든. 눈길이 마주치면 뭔가 통하는 기분이야.”
   요한은 일손이 필요한 곳이면 이 마을 저 마을 어디나 갔고 희의 아버지가 부탁하거나 권유하는 일이라면 군말 없이 따랐다. 쉬는 날이면 그새 얼굴을 익힌 사내아이들을 데리고 개울과 골짜기로 가서 물고기, 가재, 다슬기를 잡거나 멱을 감았고 활과 화살을 만들어 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그와 놀던 아이들이 뒤에서는 그가 좀 모자란 사람이라며 비웃었지만 그런 사실을 알았더라도 개의치 않았을 거다. 그는 또래의 사내들이라면 즐겨할 법한 일들, 술을 마시고 화투를 치고 시내로 나가 영화를 보고 여자를 만나고…… 그런 일들에는 무심했다. 아무튼 돈이 드는 일은 하지 않았다.
   희는 영한사전을 펼쳐놓고 골똘히 생각에 잠긴 그를 자주 보았다. 요한이 가진 책이라고는 그 사전 한 권뿐이었다. “고향에 계신 목사님이 주신 거야. 나와 메리가 살던 집이 교회 옆이거든.” 희가 웃었다. 온 동네 개들의 이름 가운데 절반은 메리였으니까. “하필이면 메리야?” “흔해서 좋대. 그래야 오래 산다잖아.” “그래도 싫겠다.” “싫고 말고 할 게 없어. 세 살 때 미국으로 갔으니까.” “그럼 지금은 몇 살이야?” “너랑 같아. 열두 살.” “우리 만나면 친구 하면 되겠다, 그치?” 요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봐, 명희야, 나 돈 많아.” 그는 두툼한 봉투에서 돈다발을 꺼냈다. “팔 년 동안 모은 거야. 그리고 이 쪽지 좀 봐.” 그가 내민 쪽지에는 이런 글자가 쓰여 있었다. “마냑 제가 불으에 사고로 죽꺼든 이 돈을 미국에 사는 제 동생 메리헌테 전해 주셔요. 강요한 씀.” 희는 맞춤법에 어긋나는 글자를 고쳐주었다. 요한이 기꺼워했다. “그렇게 좋아?” “응, 이게 내 유언인데 틀리면 안 되잖아.”
   그런 말들을 나누고 얼마 안 되어 요한이 희에게 영어로 쓰인 편지를 보여주었다. 날짜를 보니 육 년 전에 온 편지였다. 여름이 저물어 가을로 들어서고 있었다. 희는 반팔 아래 드러난 팔뚝을 두 손으로 번갈아 가며 쓸어내렸다. “목사님 사택으로 편지가 왔거든. 미국인 양부모님들 말야. 목사님이 읽어주셨어.” “오빠도 읽을 줄 알아?” 그는 고개를 저었다. “목사님이 말로 해주신 걸 다 기억하거든. 눈이 머는 병은 치료가 잘 되고 있다고 했어. 건강하게 지낸다고 했어. 말도…… 그니깐 영어도 한대.”
   요한은 영어로 같은 주소가 쓰인 여러 장의 항공 우편 봉투를 보여주었다. 그 봉투는 일반 규격 봉투보다 크기도 했지만 테두리에 파란색과 빨간색의 빗금 모양 무늬가 있어서 눈에 띄었다. “목사님이 우선 주소만 적어주셨어. 언젠가는 내 손으로 쓴 편지를 보내라고.”
   희는 눈이 먼다는 게 무언지 가늠해 보기 위해 이따금 눈을 감은 채 걸어보거나 주변의 사물을 손으로 더듬으며 헤아려보았다. 그래봐야 넘어지거나 꼼짝도 못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방금 눈으로 보았는데도 눈을 감는 순간 모든 게 삽시간에 낯설어진다는 사실만 알게 되었다. 아무리 캄캄한 밤이어도 기다리다 보면 어둠에 눈이 익기 마련인데 고작 눈을 감는 것만으로도 어둠의 밑바닥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이 두렵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된 뒤에도 희는 무언가를 잘 느끼고 싶을 때 눈을 감아보곤 했는데 그럴 때면 이때 느꼈던 감정이 희미하게 되살아났다.
   가을걷이로 바쁜 시절이 지난 뒤 한가해진 날에 희가 물었다. “편지는 언제 보낼 거야?” 멍하니 앉아 동쪽 하늘을 보던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아직도 영어를 몰라. 명희 넌 아니?” “나도 몰라. 영어는 중학생이 되어야 배우거든. 내가 배워서 편지 써줄까?” “그래 줄래? 그러면 정말 고맙지.” 그 말 때문이었을 거다. 사전을 두고 간 건.

   요한은 그해 여름과 가을 내내 일만 하다가 갔다. 그러고 보면 그는 늘 왔다가 돌아가는 사람이었다. 요한은 저녁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기 위해 희의 집에 왔다가 아홉 시 뉴스를 하기 전에 자기 방이 있는 빈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잘 웃고 잘 울었다. 텔레비전을 보는 내내 웃음을 터뜨리거나 훌쩍거렸다. 전에는 희의 어머니가 곧잘 그랬는데 그가 오고 나서 어머니의 웃음과 눈물은 빛이 바랬다.
   요한이 자신의 고향으로 가버린 날부터 희는 그를 까맣게 잊었다. 그런 줄 알았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박 권사를 빼놓을 수는 없었다. 교회는 건널목 너머의 마을에 있었다. 박 권사는 요한이 머무는 동안 성경을 들고 그를 찾아가 교회에 나오기를 끈질기게 권유했다. 그는 다소곳하게 귀를 기울이고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고 다음 날 반드시 교회에 가겠노라 다짐했다. 다음 날 아무리 기다려도 요한은 교회에 오지 않았고 박 권사는 다시 그를 찾아가 타이르고 나무라며 다짐을 받았다. 그다음 날에도 요한은 오지 않았다.
   그가 머무는 동안 박 권사의 헛된 방문이 하염없이 반복되었듯이 약속하고 어기고 약속하고 어기는 요한 역시 변한 게 없었다. “싫으면 싫다고 해야지 오겠노라 철석같이 다짐하고는 안 오니 내 속이 어떻겠냐구.” 박 권사가 어찌나 자주 이렇게 말하고 다녔는지 그와 얽힌 사연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희는 박 권사와 때때로 마주칠 수밖에 없었는데 언젠가 그이가 손금을 봐준 뒤로는 먼발치로만 보여도 피하곤 했다. “어디 보자, 손 줘봐. 아이구 이런, 잔금이 많아도 너무 많아서 인생이 어수선하겠다. 교회 나와서 축복받고 액운도 막아야지, 응?”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요한에게 사과를 갖다주러 갔던 날 희는 그의 방문 앞 쪽마루에 앉아 있는 박 권사를 보았다. 희가 꾸벅 인사를 했다. 박 권사의 얼굴은 잔뜩 구겨져 있었다. “요한 총각, 이번에는 꼭 나오는 거야. 성령이 임하신 사람이잖아. 이름부터가 그렇지 않아? 기도를 성심으로 해야 미국으로 입양 보냈다는 동생도 잘 지내지 않겠어?” “권사님, 전 정말로 걱정 안 해요. 미국이잖아요. 거긴 우리보다 훨씬 잘 살고 안전하잖아요. 괜히 선진국이겠어요.” 박 권사는 할 말을 고르느라 잠시 머뭇거렸다. “그렇긴 하지만 믿음이 없으면 어디나 지옥이야.” 요한이 배시시 웃었다. “여기가 더 지옥 같은걸요. 전 동생을 만나러 갈 거예요. 동생이 있는 곳이 저한테는 천국이니까요. 그래도 주일에는 꼭 교회에 갈게요. 걱정 마세요.” 박 권사는 떨떠름한 얼굴로 가버렸다. 가기 전에 희에게 넌 잔금이 많아서 우여곡절이 많을 테니 꼭 교회 나와서 축복받으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희는 사과를 맛있게 먹는 요한을 바라보았다. “정말 미국에 갈 거야?” “응. 근데 쉽지는 않아. 초청장도 없고 비자도 없고……. 몰래 배에 태워 보내주기도 하는데 돈이 많이 들어. 일본으로 갔다가 하와이나 캐나다를 거쳐서 미국으로 가나 봐. 하지만 난 포크레인 자격증을 따서 갈 거야. 이만한 손으로 흙 퍼 올리는 중장비 알지? 그러면 중동에 가서 돈을 번 뒤 갈 수도 있고 바로 미국에 갈 수도 있으니까.” 희는 열린 방문으로 바깥을 내다보았다. 저녁이 마당에 내려앉고 있었다. “근데 오빠, 메리가 돌아올 수도 있잖아.” 요한이 무슨 말이냐는 듯 희를 빤히 보았다. “병이 안 나으면 양부모가 돌려보낼 수도 있잖아.” “그럴 리가 없어. 눈을 고쳐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았으면 내 목을 졸라도 안 보냈을 테니까. 그분들도 단단히 약속했거든.” “오빠도 권사님한테 단단히 약속하고 어기잖아.” “그건 다른 문제지. 사실은 우리 목사님이, 다른 교회는 가지 말라고 하셨거든. 성당은 아무 데나 다녀도 되지만 교회는 한 번 다닌 곳에서 뼈를 묻어야 한다셨어.” “그런 말을 권사님한테 하지 그랬어?” “속상해하실까 봐 못했어.” “미국 사람들도 오빠가 속상할까 봐 말 못하는 거 아닐까?” 어둑해지는 바깥에서 박쥐가 낮게 날아다녔다. 요한이 남은 사과가 담긴 그릇을 희 앞으로 밀었다. “잘 먹었어. 남은 건 가져가.” 희가 처음 들어본 그의 차가운 목소리였다. 희가 방문을 닫으려 할 때 요한이 말했다. “한국에선 절대 못 고치지만 미국에선 식은 죽 먹기라고 했어. 그러니까 그럴 일은 없을 거야. 미국이 어떤 나란데!”
   요한은 떠나는 날 희의 방에 사전을 두고 갔다. 약속을 지켜달라는 뜻인 듯했다. 그가 두고 간 사전을 볼 때마다 희는 묘하게 화가 치밀었다. 요한이 그리워할 사람은 메리뿐이며 메리에게 갈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견딜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해서였다. 그런 사람을 기억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해 겨울 몇몇 사람이 희의 아버지에게 요한의 근황을 물었다. “탄광에서 몇 달 일하겠다던데 잘 지내고 있겠지.” 아버지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요한이 걔가 좀 모자라 봬도 일머리랑 힘이 좋아서 어딜 가든 반겨준다고는 합디다.” 아버지가 이렇게 눙치면 다들 고개를 주억거렸다. “젊은 애가 요령 피우지 않고 성실한 데다 깍듯하니 아무렴 그렇겠지.” 누군가 덧붙였다. “너무 깍듯해서 박 권사 속이 터졌다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저수지 아래 사는 사람은 요한을 정식 일꾼으로 쓰고 싶다고 했다. 이듬해 봄부터 우사를 늘려 소를 본격적으로 키워보겠다는 거였다. “걔가 소를 잘 다뤄서 쓸 만하긴 한데…….”
   겨울이 더디게 지나갔다. 밤이면 아버지는 무 구덩이에서 팔뚝만 한 무를 하나씩 꺼내 깎아 먹었다. 영한사전을 뒤적이던 희는 아버지가 깍둑하게 자른 무를 들이밀면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는 매번 똑같이 말했다. “무 먹고 트림만 안 하면 산삼 먹은 거랑 똑같단다야.” 희는 그런 말이 촌스러웠다. 비슷한 건 비슷한 것일 뿐 진짜는 될 수 없으니까. 동생과 친동생이 다른 것처럼. 어머니는 희가 아닌 아버지를 거들었다. “야가 육학년 된다고 벌써부터 심통 부리네.” 그 말도 촌스러웠다. “무를 영어로는 뭐라고 부른다니?” 희는 그 단어를 몰랐기에 대답하지 않았다.
   설이 지나고 희의 집과 멀지 않은 봉선이네 집이 살림살이를 챙겨 도시로 떠났다. 공부하러 또는 돈 벌러 떠난 한동네 언니 오빠도 있었다. 살갑지는 않아도 희를 괴롭히지도 않던 경자는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산업체 학교가 있다는 항구도시로 떠났고 방위 복무를 마친 경철은 성공해서 돌아오겠다며 서울로 떠났다. 서른 가구 남짓의 작은 동네가 더욱 소슬해졌고 언젠가 머지않아 마침내 희도 그들처럼 떠나야 하는 날이 오리라는 걸 알았다.

   희가 육학년이었던 해에는 요한이 오지 않았다. 그의 흔적은 손때 묻은 영한사전에만 남았다. 그마저도 잊혀서 천이백 쪽짜리 가정의학대백과처럼 희가 태어나기 전부터 집에 있던 책인 것만 같았다. 다시 겨울이 왔다. 살림을 다 싣고 떠나는 집은 없었지만 중학교를 졸업하는 옥분이 항구도시로 떠났고 고등학교 중퇴인 민구가 서울로 떠났다.
   겨울은 더디게 지나갔다. 한우 목장을 시작한 사람이 아버지에게 요한의 근황을 자주 물었다. 지금 있는 일꾼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서. 아버지는 밤이면 여전히 무를 하나씩 깎아 먹었다. 무 조각을 들이밀면 희는 한결같이 고개를 저었고 아버지도 똑같이 말했다. 무, 트림, 산삼. 희는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게 어떤 건지 궁금했다. 비로소 내가 되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가. 어머니는 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몰랐다. “야가 중학생 된다고 벌써부터 심통 부리네.” 하긴 희도 어머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중학생을 영어로는 뭐라고 부른다니?” 희는 그 단어를 알았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만약 영어로 말해 줬다면 어머니는 이렇게 말할 게 뻔했다. “뭐가 그리 길다니.” 머릿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드라마가 끝났다. “명희야, 토요일에 역전에 나가볼래?” “왜?” “요한이 기억하지? 걔가 기차 타고 올 건데 마중 나가면 얼마나 좋아하겠냐.” 희가 대답하지 않자 아버지가 은근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걔는 너 보고 싶어서 온다더라.” 희는 할머니 방으로 건너가서 잠시 앉았다가 제 방으로 갔다.

   간이역 대합실은 따뜻했다. 학교에 있는 것과 똑같이 생긴 석탄 난로가 한가운데서 이글거렸다. 한동네 아주머니들이 자꾸 말을 붙였다. “베드로가 온다며?” “베드로가 아니라 요한이라니깐.” “명희는 오빠 생겨서 좋겠다.” “걔가 원래는 멀쩡했는데 동생 잃고 얼뜨기가 됐다지.” “얼뜨기고 뭐고 일만 잘하구 싹싹하더만.” “박 권사가 잔뜩 벼르던데 이번에는 순순히 넘어오려나?” 그 말을 하고는 까르르 웃었다.
   마을 사람들은 서로의 살림과 사정을 손금 보듯 잘 알았다. 그렇다고들 했다. 희는 그 말을 수긍하지 않았다. 아무리 손바닥을 들여다보아도 손금이 눈에 익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래서 손금 보듯 안다고들 하는지도 몰랐다. 돌아서면 까먹을 남의 일일 테니. 돌아서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일이란 그런 게 아니었다. 요한을 처음 보았던 이 년 전의 그날은 한 번 겪은 일인데도 선명하게 떠올랐으니까. 설령 그 말을 수긍한다 해도 남들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도 있었다. 희가 왜 오학년 때 부반장을 그만두었는지, 육학년 때 반장 선거에 나가지 않았는지. 희는 생각을 털어내기 위해 고개를 흔들었다. 어차피 엄마 아빠도 모르니까.
   하행 열차가 간이역에 멈춰 섰다.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대합실을 거쳐 역 앞으로 나가 뿔뿔이 흩어졌다. 하행 열차는 출발하지 않았다. 철로가 하나인 탓에 상행 열차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역무원이 상행 열차 접근을 알렸다. 이윽고 대합실이 텅 비었다. 희는 장갑을 끼고 방울 모자를 쓰고 나가 승강장에 서서 두리번거렸다. 꼬리 칸 쪽에서 내린 사람이 희를 향해 달려왔다. “명희야!” 희는 요한을 뭐라 불러야 할지 잠깐 고민했다.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그가 희를 번쩍 들어 올리려다 잘못을 깨달은 듯 주춤하더니 주먹을 내밀었다. 희는 장갑을 낀 채로 그의 오른 주먹에 자신의 오른 주먹을 갖다 댔다. “추운데 왜 나왔어. 어디 보자. 올해로 열네 살이구나. 아가씨가 다 되었네.” 그의 얼굴은 전보다 새까맸다. 그는 손으로 희가 쓴 방울 모자를 지그시 눌렀다. “되게 보고 싶었어.”

   종합선물세트였다. 여러 종류의 과자가 든 커다란 상자가 요한의 자루 모양 가방에서 나왔다. 이제 중학생이 되는 희에게는 썩 반갑지 않은 선물이었다. 어쨌거나 그가 돌아왔다. 돌아왔다는 말은 좀 이상하긴 했다. 먼 친척인 그는 이 년 전 처음 희의 집에 왔던 거니까. 그전에는 까맣게 몰랐던 사람이니까.
   그때도 희의 집에는 요한이 기거할 방이 없었다. 며칠 동안은 희의 방에서 지냈지만 요한이 먼저 나가겠다고 말했다. 요한 탓에 할머니 방에서 지내야 했던 희는 내심 기뻤다. 그는 빈집이 된 지 얼마 안 된 곳에서 방을 하나 골라 쓸고 닦고 신문지를 벽에 발랐다. 희의 아버지가 전기를 도둑질하는 방법을 알려줘서 전등을 달아놓고 썼다. 거기에서 가을까지 지내다 갔던 거였다.
   돌아온 그는 빈집 대신 저수지 아래 한우 목장에 있는 일꾼 방에 짐을 풀었다. 이름은 목장이지만 목초지 같은 건 없이 우사 한 동이 전부인 곳이었다. 그가 머무는 일꾼 방에는 연탄보일러도 있고 풍로도 있어서 간단한 요리를 해 먹을 수 있었다. 냄비와 그릇, 주전자와 수저 등은 희의 어머니가 챙겨준 거로 썼다. 그는 혼자서 끼니를 때우는 대신 식대를 월급에서 떼지 않는 조건으로 살았다.
   요한은 이 년 전과는 달리 저녁마다 희의 집에 오지는 않았다. 예전에는 없던 라디오 때문인 듯했다. 그의 방에서는 언제나 희미하게 팝송이 흘러나왔는데 이따금 들려오는 사람의 목소리마저 영어였다. “오빠, 맨날 뭐 들어?” “주한 미군 방송.” “뭔지는 알아들어?”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왜 들어?” “그냥,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져.” 그의 목소리에는 기운이 없었다.
   목장 주인은 요한이 예전만큼 힘을 쓰지 못한다면서 희의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깎은 무를 건넸다. “탄광에 있을 때 몸이 좀 상했나. 너무 다그치지 말고 지켜보면 차차 나아지겠지.” 목장 주인이 돌아가고 난 뒤 아버지는 한숨을 내쉬었다. “요한이가 사기를 당했나 봐. 부산항에서 일본으로 가는 밀항선을 타려다가 돈만 날린 모양이야. 상심이 컸는지 애가 아주 야위고 넋이 나갔어.”

   야위고 넋이 나갔다던 요한은 사진 속에서 누구보다 밝게 웃고 있었다. 희의 초등학교 졸업식 날이었다. 식구들과 함께 요한이 왔다. 사진을 찍을 때는 희의 오른쪽에 요한과 아버지가 섰고 왼쪽에 할머니와 어머니가 섰다. 희는 꽃다발과 졸업장을 가슴에 꼬옥 품고 있었다. 나중에 현상한 사진을 보니 정말 친오빠 같았다. 그날 시내 중국집에서 짜장면과 탕수육을 먹었다. 짜장면을 먹다 말고 요한이 밖에 나갔다 왔는데 눈시울이 벌겠다. 집에 돌아오니 희의 방에 포장된 선물이 있었다. 끌러보니 장정이 고급스러운 영한사전이 나왔다. 중학생이 아니라 고등학생이나 볼 법한 두껍고 묵직한 개정판 신간이었다. 그래서 희는 일 년 반 가까이 들여다보던 손때 묻은 사전은 시렁 위에서 먼지만 쌓여가는 가정의학대백과 위에 얌전히 올려두었다. 벽에 닿도록 밀었더니 아래에서는 사전이 보이지 않았다. 희는 먼지 묻은 두 손을 탁탁 털었다.

   요한의 방을 가장 먼저 찾아온 손님은 박 권사였다. 박 권사는 마른반찬과 간식거리를 놓고 갔다. 교회에 나오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희와 마주치면 여전히 손금을 타박했다. 중학교가 개학을 하고 봄이 왔지만 아침마다 서리가 내렸다. 희는 알파벳은 물론 간단한 영어 단어와 문장을 읽고 쓸 줄 알아서 영어 선생에게 칭찬을 받았다. 수업이 끝난 뒤 교무실에서 영어 선생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두 달 해본 실력은 아닌 것 같은데 영어는 언제부터 공부했니?” 희는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오학년 겨울에 희는 요한이 두고 간 사전을 무심코 뒤적이다 한 낱말에 눈길이 머물렀다. 희는 작디작은 글자를 하나하나 헤아렸다. 그 단어의 뜻풀이는 그리움이었다. 그리움. 어떤 감정은 그 감정을 가리키는 말 때문에 생겨나기도 하는 것 같았다. 희는 아무도 그립지 않았는데 그 글자를 읽자마자 막연하게 무언가가 그리워졌다.
   육학년이 되어 반장 선거를 치르던 학급회의 시간에 한 친구가 희를 후보로 추천했다. 희는 교단에 올랐을 때 후보를 사양하겠다고 말했다. 담임 선생이 농담조로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저는 계집애니까요.” 모두가 웃었지만 희는 웃지 않았다. 아무 생각 없이 떠오른 말이었다. 떠올랐다기보다 입에서 저절로 나온 말이었다. 아니, 어쩌면 오학년 봄으로 다시 거슬러 가야 했다. 희는 남학생인 영진과 똑같은 수의 표를 얻었다. 두 사람만으로 재투표를 하기로 했는데 담임 선생이 희를 복도로 불러냈다. “명희야 네가 양보하면 어떨까?” 복도 창문 너머 하늘은 눈부시게 희고 푸르렀다. 눈물이 난 건 그래서였지 다른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희는 눈물이 차오른 눈을 지그시 감고 두 손바닥으로 눈두덩이를 꾹 눌렀다. 눈물이 손목 쪽으로 흘러내렸다. 희는 자신이 낯설었다. 자기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넌 사학년 때도 부반장 잘했잖아. 아무래도 남학생이 반장을 하고 여학생이 부반장을 하는 게 보기에도 좋지 않겠니.” 희는 세월이 흐른 뒤 보기에 좋지만 거짓인 것과 보기에 좋지 않아도 진실인 것 사이에서 갈팡질팡할 때마다 그날을 떠올리게 되었다.
   희는 말하지 못했고 영어 선생은 다시 묻지 않았다. “가을에 시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영어 경시 대회가 있어. 선생님은 명희가 자만하지 않고 열심히 하면 좋겠어. 시내 중학교에는 유학을 다녀온 애들도 있거든.”
   교무실을 나오는데 학급일지를 검사받으러 왔던 수가 아는 체를 했다. 초등학생 시절 여러 번 같은 반이었던 녀석이었다. “너 되게 멋있다.” 희는 못 들은 척했다. 교문 앞에서도 지나가던 수가 말을 던졌다. “박 권사님 아들 특전사 알지? 요한 형이 자기 어머니 괴롭힌다고 한판 하겠대.” 희는 얼른 손을 뻗어 수가 타고 가던 자전거의 짐받이를 붙잡았다. 수가 휘청거리다 멈춰 섰다. “저번에도 너 땜에 넘어져서 무릎 까진 거 몰라?” 수가 투덜댔다. 희는 아랑곳하지 않고 수에게 바짝 다가갔다. “언제?” “말은 그런데 언제인지는 몰라. 허풍일 수도 있지.” “너네들이 부추겼지?” “그 바보들이…… 알았어, 알았어, 때리지 마.” “요한 오빠는 바보가 아냐. 바보라 해도 너보다는 백 배 똑똑해.” 수는 자전거를 슬금슬금 앞으로 끌고 갔다. 희는 짐받이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애초에 그런 소문 퍼뜨린 게 진수 너라는 걸 모를 것 같아?” “좀 이상한 건 맞잖아.” “내 눈엔 네가 이상하거든.” 수가 입맛을 다셨다. “친오빠도 아닌데 뭘 그렇게 감싸고 돌아?” 짐받이를 잡고 있던 희의 손에 살풋 힘이 풀렸다.
   “한 번만 더 바보라고 하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수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밀이라도 털어놓듯 소곤거렸다. “얘기 들었거든. 영어 시간에 다들 너 땜에 놀랐다던데. 내가 예전부터 알아봤잖아.” “뭘 알아봐?” “오학년 땐가 굴다리 아래 지나는데 뜬금없이 물었잖아. 그리움을 뜻하는 영어 단어를 아냐고.” “기억 안 나. 어쨌든 그게 뭐?” “생각보다 똑똑하지는 않네. 아무튼 그러고 나서 육학년 때 그러니까 작년 봄에 운동장 버드나무 아래서 말야, 네가 나한테 알려줬잖아. 그 단어. 내가 그걸 일주일 동안 달달 외웠거든.” “그게 뭐였는데?” 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미국인이라도 된 것처럼. “여닝!”
   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수를 노려보았다. “그거 아니야.” “뭐라고? 일 년이나 외웠는데.” “일 년 헛살았네.” 수는 복잡한 얼굴로 안장에 올랐다. “우리 누나도 영어 잘하는데 중학생 때부터 해외 펜팔 했거든. 너도 생각 있으면 해봐.” 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는 오른손의 가운뎃손가락만 세워서 수에게 내밀었다. 수가 복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수는 주먹 쥔 손의 팔목을 다른 손으로 쥐고 흔들어대는 것밖에 모를 테니까.

   세월이 흐른 뒤에도 희가 그날을 가끔 떠올리게 된 까닭은 영어 선생이나 수와 나눈 대화 때문은 아니었다. 집에 돌아오니 마루 위에 항공 우편 봉투가 놓여 있었다. 요한 앞으로 온 편지였다. 그의 이름이 영어로 또박또박 쓰여 있었다. 그는 저녁에 찾아와 편지를 건네받았다. 희의 할머니 손을 붙잡고 오랫동안 자랑하더니 희에게는 편지를 읽을 수 있겠냐고 물었다. 희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 희는 방에 틀어박혀 요한이 선물해 준 커다란 사전을 옆에 두고 한 글자 한 글자 찾아가며 문장을 읽어나갔다. 나는, 유감, 소식, 전한다, 메리, 없다. 하늘, 있다. 당신, 동생, 고이, 잠들다. 병, 치료, 불능, 사고는, 일어나, 뜻밖에……. 작은 글자로 빼곡하게 쓰인 영문 편지를 희는 밤이 깊도록 되풀이해서 읽었다. 자신할 수는 없지만 이런 내용인 듯했다. 당신이 보낸 편지는 한글로 쓰여 있어서 읽을 수가 없었고 답장을 하지 못했다. 그 편지는 나중을 위해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 메리의 눈을 고치기 위해 애썼으나 차도가 없었다. 일 년 전에 교통사고가 났다. 메리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숨을 거두었다. 편지가 늦은 이유는 우리 부부 역시 일 년 가까이 치료를 받아서였다. 살았을 적에 메리는 신기하게도 당신을 기억했다. 우리에게 당신이 어디 갔냐고 묻기도 했다. 우리는 당신이 먼 곳으로 갔고 언젠가 메리를 만나러 올 거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메리를 잃은 건 큰 고통이고 슬픔…….
   희는 잠들지 못했다. 편지 내용이 믿어지지 않았다. 메리가 이미 일 년 전에 죽고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지만 슬프지는 않았다. 영어로는 쓸 수 없기에 한글로라도 써서 편지를 보내야 했던 그의 마음을 헤아리려 애썼다. 다음 날 저녁 희는 요한에게 편지를 번역해서 읽어주었다. 요한은 눈을 감고 귀를 기울였다. 다 듣고 난 뒤에도 한동안 그는 눈을 뜨지 않았다. 눈을 뜨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는 편지를 가슴에 꼭 껴안았다. “고마워, 명희야. 우리 메리가 앞을 볼 수 있게 되었다니, 학교에서 상도 받았다니 정말 기뻐. 아주 어렸을 때 헤어졌는데 나를 기억하다니 메리도 너처럼 똑똑한 거야, 그렇지?” 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되게 보고 싶다. 하루하루가 너무 아까워.”

   일요일에 요한은 희의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밥을 먹는 내내 희는 싱글벙글한 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요한은 밥을 다 먹자마자 일어섰다. 그는 희의 아버지와 함께 집을 나섰다. 어머니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두 사람을 불안한 눈으로 지켜보았다. 어머니가 할머니에게 하소연을 했다. “대학생들이 와서 뭘 한다던데 그런 데를 왜 찾아다니는지.” 희는 기독교 학생회 대학생들이 부활절을 맞아 교회에 와서 연극을 공연한다는 이야기를 고등학생 언니들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희도 보고 싶다고 하자 언니들은 고개를 저었다. 중학생은 안 된다면서. 중학생은 볼 수 없는 부활절 공연이라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언니들의 말투에서 느껴지는 조심스러움과 불안 탓에 따져 묻지는 못했다.
   다음 날 희는 학교 수돗가에서 수를 보았다. 수라면 뭔가 알고 있을 듯했다. 수는 바지 주머니에서 꾸깃꾸깃한 종이를 꺼내 희에게 슬쩍 보여주었다. 얼핏 눈에 들어온 문장은 이런 거였다. 육 년 전 광주에서 이천여 명의 애국 시민이 단지 민주주의를 요구했다는 죄로 학살된 이후, 이 정권 치하에서 숱한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들이 죽음으로 내몰렸고 구조적인 가난에 허덕여왔다……. 수는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기독 청년 부활절 메시지래.”
   한참 돌아가는 길이었지만 희는 하굣길에 일부러 요한이 있는 목장을 지나쳐 갔다. 그의 방에서는 희미한 음악 소리가 들렸다. “학교에서 곧장 여기로 왔구나.” 그는 희의 책가방을 빼앗아 멨다. 희는 그와 함께 집으로 향했다. “오빠, 어젯밤에 아빠랑 뭐했어?” 희가 하려던 말은 이런 게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가 싱긋 웃었다. “숙모님이 물어보라고 하셨어?” “그건 아니고.” “비디오 봤어. 대학생들이 틀어줬어.” 해가 설핏 기울었다. “명희 넌 똑똑하니까 그런 거 안 봐도 돼. 그리고 사실 대학생들 말도 믿을 수 없어. 미국이 왜 나빠, 주한미군이 왜 철수해야 돼. 철수하면 안 돼. 방송도 그만둘 테니까.” 희는 요한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는데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건 미군이 한 게 아니잖아. 국군이 한 거지.”
   며칠 뒤 하굣길이었다. 건널목 근처에는 그 마을의 회관 겸 구멍가게가 있었다. 어른들은 거기에서 막걸리도 마시고 화투도 쳤다. 그 앞이 조무래기들로 북적였다. 특전사라는 별명이 붙은 박 권사의 아들이 요한의 멱살을 잡고 을러댔다. 특전사를 나와서는 아니었다. 학력 미달로 지원조차 할 수 없어 방위로 복무한 사람이었다. “모자란 녀석이라고 오냐오냐했더니 못하는 말이 없네. 너 같은 자식은 감방에서 푹 썩어야 해!” 희는 조무래기들 틈을 헤치고 들어갔다. “미군이 잘못한 게 아니잖아요. 국군이 그런 거지.” 희는 왜 싸움이 일어났는지 알 것 같았다. 특전사가 요한을 넘어뜨리더니 그 위에 올라탔다. 하지만 금세 사정이 바뀌어 거꾸로 요한이 특전사 위에 올라탔다. 힘으로 치면야 특전사가 그를 당해 낼 수 없었다. 희가 나서려 할 때 특전사의 막냇동생이 요한의 등에 매달렸다. 요한이 그 아이를 돌아보았다. “나쁜 놈아, 우리 오빠 내버려둬. 우리 오빠란 말야!”
   희는 보았다. 요한의 몸 전체가 느슨해지면서 어깨가 축 늘어지는 걸. 짧은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희의 눈에는 더없이 느리고 분명하게 보였다. 그의 절망이 희에게 전해졌고 희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요한은 특전사가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코피가 터지고 눈가가 찢어졌다. 박 권사가 나타나 뜯어말릴 때까지.

   희가 기억하는 요한의 마지막 말은 그리운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간다는 거였다. 시내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던 초여름 어느 날 건널목 근처 그 가게에서는 큰 판돈이 걸린 도박판이 벌어졌다. 그는 돈을 걸었고 모두 잃었다. 늦은 밤 희는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를 기다렸다. 시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마을 사람들 모두 알고 있었다. 할머니의 코 고는 소리만이 들렸다.
   인기척이 났다. 문을 열어보니 마당 한가운데 요한이 서 있었다. “숙부님은요?” 가느다란 그의 목소리가 안방 문 앞까지 이르지도 못하고 마루 앞 토방에 툭 떨어졌다. 그 탓에 웅얼거리는 소리로만 들렸다. 그는 자루 모양 가방을 마루에 내려놓았다. 잠시 맡아달라는 거였다. 이 늦은 밤에 어딜 가느냐는 어머니의 질문에 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웅얼거렸다. 웅얼거렸지만 그가 하고 싶어하는 말을 희는 알아들었다. 그래서 희는 이렇게 말했다. “가지 마, 오빠.”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희는 시렁 위를 손으로 더듬었다. 사전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요한의 고향에서 편지가 왔다. 아버지는 희에게 요한은 먼 곳으로 갔다고 말했다. 희는 그 말을 말 그대로 이해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돌아오지 않는 게 아니라 아직 어딘가에 이르지 못해 여전히 여행 중인 거라고. 그래서 세월이 흐른 뒤에도 희는 상상할 수 있었다. 마침내 미국에 도착해 메리와 재회하는 그를.
   자루 모양 가방에 든 게 결국 다 유품이 되어버렸다. 그 안에서 사전을 찾았을 때도 놀라지 않았다. 그리고 낯익은 봉투를 발견했다. 이전보다 훨씬 얄팍해졌지만 유고 시에 주위 사람에게 당부하는 유언이 담긴 그 봉투 말이다. 희는 봉투를 열고 쪽지를 꺼냈다. 쪽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마냑 제가 불으에 사고로 죽꺼든 이 돈을 사랑하는 제 동생 강명희헌테 전해 주셔요. 강요한 씀.”
   이 년 전 여름 요한을 처음 만났던 날이 떠올랐다. 그 손바닥에서 요한의 얼굴을 처음 보았듯이 요한도 손바닥에 고인 물에 비친 모습으로 희의 얼굴을 처음 보았을 테다. 그때 희의 얼굴은 어떠했던가. 사레가 들려 얼굴이 달아오르고 콧물과 눈물이 차오르고 코끝과 눈시울이 벌게졌을 테니 영락없이 울고 난 뒤의 얼굴이었겠지. 희는 요한이 내민 손바닥을 그런 식으로 물을 받아 마시면 괜찮을 거라는 뜻으로 헤아렸고, 그렇게 했다. 물줄기가 세서 손바닥에 원하는 만큼 물이 고이지 않았는데 물줄기가 약해지자 손바닥 가득 물이 차올랐다. 그가 전원 스위치를 내린 덕분이었다. 물줄기는 가늘어지다 그쳤고 희는 물 아래 잠긴 손금을 보았다. 잔금이 많아 삶이 어수선할 거라던 손금들이 일렁이는 표면을 따라 살아 움직였고 한순간이나마 희는 자신의 운명이 어디론가 달려가는 걸 느꼈다.
   손은 눈물을 쥐기 좋게 생겼다. 눈물이 차오른 눈을 감고 두 손바닥으로 지그시 눈두덩이를 누르면 손바닥에 눈물이 고이고 그 손바닥을 떼면 손금을 따라 눈물이 흘렀다. 요한이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희는 깨달았다. 손바닥이 왜 그런 모양인지를.
   “명희 맞지? 되게 보고 싶었어.” 그렇게 말한 뒤 요한은 주먹 쥔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가 주먹을 까딱거렸다. 희도 주먹 쥔 오른손을 내밀었다. 젖은 두 주먹 끝이 마주쳤고 그가 웃었다. 세월이 흘러 희는 이런 사람을 사랑하게 될 거였다. 가난함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가난한 사람과 부유함을 부끄럽게 여기는 부유한 사람을. 요한은 어디에나 속했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희는 야외 수돗가에서 수와 마주쳤다. 수는 지나가던 영어 선생에게 큰소리로 물었다. “선생님, 그리움은 영어로 뭐예요?” 영어 선생이 수돗가로 다가왔다. “그건 왜?” “궁금해서요.” “비슷한 말이 많아서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걸.” “혹시, 여닝 아니에요?” “여닝…… 그래, 맞는 것 같구나.” “정말 맞아요?” “그렇대두.” 수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걸 희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수도 언젠가는 알게 될 거였다. 여닝도 그리움으로 읽을 수는 있지만 진짜 그리움은 명사가 아니라는 걸. 그리움은 누군가를 향한 마음이고 그 사람을 향해 달려가는 감정이어서 언제나 동사라는 걸. 그러기에 그리움에 가장 가까운 영어 단어는 동사인 미스일 수밖에 없음을. 그리워하는 건 잃어버린 것이고 아직은 아니라 해도 결국 잃게 될 것을 가리키므로.
   “강명희, 너 나 속였지?” 수가 가운뎃손가락만 세운 오른손을 희의 눈앞으로 내밀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 결국 알게 된 모양이었다. 희는 눈을 깜박거리며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수가 손가락을 건들거렸다. 이게 뭔지 잘 알고 있지 않느냐는 뜻일 텐데 희는 전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기울이며 말똥말똥한 눈으로 수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수는 혼란에 빠졌다. 수는 내민 손을 슬그머니 거두더니 입맛을 다시며 복잡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희는 편지를 썼다. “그는 동생을 무척 그리워했습니다. 그는 언제나 동생 생각을 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동생을 떠올렸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아도 동생을 떠올렸습니다. 죽어서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우리는 그가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미 그곳에 도착했을지도 모릅니다…….”

필자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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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전북 정읍 출생.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01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 노근리 평화문학상, 백신애 문학상, 오영수 문학상, 채만식 문학상, 이상 문학상, 요산김정한 문학상 수상. 소설집 『사람의 신화』, 『봉섭이 가라사대』, 『톰은 톰과 잤다』, 『그 남자의 가출』, 『당신은 지나갈 수 없다』, 장편소설 『귀신의 시대』, 『청년의사 장기려』, 『이슬람 정육점』, 『서울』, 『파르티잔 극장』, 『예언자와 보낸 마지막 하루』, 산문집 『다정한 편견』,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 등 출간.
* 사진제공_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