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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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조선인 아이

황숙진

   요! 이건 나의 작은 영웅에 관한 이야기야. 내가 가장 힘들었을 때 너는 기적처럼 나타나 거의 미치기 일보 직전의 나를 구해 주었지. 비트를 내어줘. 아님 음악을 깔아줘. 에픽하이의 노래라면 좋겠어. 난 타블로를 좋아해. 그도 나 같은 1.5세 이민자 출신이지. 1.5세란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니고 어정쩡한 인간이란 뜻이지.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이방인이지. 난 한국에서의 기억은 거의 없어. 한국에서 아주 어렸을 때 아빠랑 동물원에 갔던 기억만 어슴푸레 나는데 아빠에게 물어보지 못했어. 그날 이후 난 아빠와는 말도 한 번 안 했어. 10학년 때쯤일 거야. 밥을 먹으면서도 스마트폰에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었지. 그때 난 에미넴에 완전 빠져 있었지. 아빠가 뭐라고 했는데 난 듣지 못했지. 이어폰 빼고 밥 먹으라는 이야기였던 것 같아. 엄마가 이어폰을 확 낚아챘지. 난 엄마에게 뻑! 하고 나도 모르게 욕을 했지. 그때 눈퉁이에 불이 반짝 났지. 아빠가 날 한 대 갈긴 거야. 입 속에 든 밥알이 식탁으로 튀어나왔어. 난 아빠를 노려보았어. 아빠는 노려보는 나를 이 새끼라고 욕하며 한 대 더 때렸어. 피땀 흘려 키웠더니 눈깔을 어디서 빳빳이 들고! 엄마가 더 때리려는 아빠의 팔을 잡으며 말렸지. 어서 네가 잘못했다고 말해라. 난 잘못한 것 없어. 씨발. 차라리 절 죽이세요. 저 부엌의 칼로 절 죽이세요. 난 이층 내 방으로 뛰어 들어가 방문을 잠가버렸지. 아빠가 올라와서 방을 차고 난리를 쳤지만 나는 꿈쩍도 안 했어. 난 진짜 죽고 싶었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마켓에서 일을 하고 주말이면 벼룩시장에 나가 물건 팔고 미국 땅에 달랑 이천 불 들고 와서 일 년 365일 쉬는 날 하루 없이 뼈 빠지게 일했다. 이젠 가게도 하나 장만하고 벨뷰에 집도 사고 피아노에 영어 발음 교정 가정교사에 사립학교 보냈더니 이제 대가리 커졌다고 빳빳이 고개 쳐들고 아비에게 대들고…… 여보 좀 진정해요. 쟤가 요즘 사춘기에 들어서…….

   아빠는 상상도 못 했을 거야. 그때 내가 얼마나 힘든 학교생활을 하고 있었는지. 영태만 아니었으면 난 조승희1)같은 괴물이 되었을지도 몰라. 난 날마다 도널드를 죽이는 상상을 했어. 그 새끼 아가리에 총구를 들이댈 거야. 겁에 질린 그 새끼가 울부짖으며 살려달라고 하겠지. 그 새끼는 꽁꽁 묶여 있어서 아무 짓도 할 수 없겠지. 나는 그 얼굴에 침을 뱉을 거야. 이 개새끼야. 돈밖에 모르는 백인 쓰레기 멍청한 새끼야. 니 아버지 잘 만난 덕에 폼 잡고 으스대지만 넌 좆도 아냐. 넌 덩치만 컸지, 운동도 못하는 바보 새끼야. 지난번 운동장에서 너 풋볼 하는 거 봤지. 쿼터백이 던지는 것마다 잡지 못하고 떨어뜨리면서 넌 걔만 욕했지. 난 코치가 너 같은 새끼를 팀에 왜 넣는지 이해가 안 가. 다 돈 많은 개발업자라는 너희 아빠가 학교에 도네이션 왕창 하니까 코치도 어쩔 수 없다고 누가 말했어. 그 말이 맞을 거야. 너란 새끼랑 알게 된 것도 다 아빠 잘못이야. 아빠는 새로 산 세탁소가 장사가 안 됐는지 일요일에 배달도 한번 해보자고 생각했지. 일요일마다 밴을 끌고 나가 동네 주택가를 다니면서 확성기로 “라운드리 픽업! 프리 딜리버리!”라고 외쳤지. 하루는 동네 시끄럽게 한다고 신고가 들어와 폴리스한테 티켓도 받았지만 그걸로 제법 주문이 들어왔지. 하루는 엄마가 말했지. 아빠 좀 도와줘라. 일요일에 아빠 따라 나가 주택가 돌면서 클리닝 끝난 세탁물 전해 주고 세탁할 옷도 픽업하고 했는데 으리으리한 집 앞에 초인종 누르고 기다렸더니 도널드 네가 나오는 거야. 그 집이 너희 집인지 몰랐지. 너희 아빠 세탁소 하냐? 그 뒤로 이 새끼가 나를 무지하게 무시하고 괴롭히는 거야. 툭하면 학교로 지저분한 세탁물 가져와서 내게 던졌지. 그래 이 새끼야 내가 너를 죽일 거야. 죽일 거야!

   그때 누가 내 뒤통수를 치는 거야. 돌아보니 도널드가 뒤에 있었지. 난 소스라치게 놀랐지. 준! 너는 맨날 멍때리고 있냐? 불러도 대답이 없어. 이거 너의 아빠에게 갖다줘. 내 양복인데 모레까지 세탁해 달라고 해. 내가 이번 주말 루시랑 데이트할 때 입어야 해. 루시는 우리 반의 얼짱 여자애지. 루시가 듣고 꿈 깨라 멍청한 새끼야. 너같이 못생긴 새끼랑 데이트할 여자는 이 지구에는 없을 거야. 화성에서나 찾아보라고 도널드에게 말했지. 아이들이 깔깔거렸지.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어. 이 씨발아 왜 웃어. 도널드가 얼굴이 빨개지며 나를 치려고 주먹을 들었지. 그때 누군가 도널드의 팔을 붙잡았어. 너였지. 네가 도널드를 노려보며 말했어. 그만해. 네가 얘 치면 내가 너 죽여버릴 거야. 넌 뭐야? 같은 아시안이라고 편드네. 도널드는 기죽지 않으려고 주절거렸지만 너의 노려보는 기세에 눌려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더니 교실 밖으로 나가버렸어. 너는 내게 괜찮아라고 물으며 씩 웃었는데 나는 모기만 한 소리로 괜찮아라고 했던 것 같아.

   그날 이후 우리는 친해졌지. 난 그때까지 너를 잘 몰랐어. 아니 너의 생김새가 중국 애나 일본 애랑 달리 한국 아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또 한국 아이를 만나서 상처받고 싶지 않았어. 중학교 때부터 한국에서 온 아이들이랑 몇 번 사귀었지만 모두 오래가지 못했어. 그들은 대부분 영어를 잘 못했지만 부모가 돈이 많아서인지 최신형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갖고 있었지.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아빠가 10여 년에 걸쳐 뼈 빠지게 일해서 모은 돈으로 다운페이해서 겨우 장만한 벨뷰에 있는 우리 집보다 훨씬 큰 집을 어떻게 게네들은 한국에서 오자마자 살 수 있냐는 거야? 아버지는 그 집에 이사 온 날 저녁에 집 앞 정원으로 나갔다가 뒷마당으로 갔다가 개러지로 갔다가 이층으로 갔다가 집 안을 빙빙 돌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어. 그날 밤 아빠는 거실에서 테킬라를 홀짝홀짝 마시다가 어머니…… 조금만 더 오래 사시지.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뒷마당에 텃밭 있는 집 장만해서 곧 어머니 모시려고 했는데……. 아버지 술에 취해 울먹거리는 소리가 이층 내 방에까지 들려왔었지. 언젠가 내가 새로 온 한국 애가 초대해서 갔더니 우리 집보다 더 큰 집에 산다고 아빠에게 말했더니 아빠는 화를 내며 말했지. 아빠는 힘들게 일해서 번 돈으로 이 집 산 거야. 한국에서 도둑질해서 번 돈으로 미국 와서 돈질하는 졸부들이랑 아빠를 비교도 하지 마라. 엄마는 이렇게 새로 온 한국 사람을 욕하는 아빠를 싫어했지. 당신은 한국에서 온 사람들이 당신보다 돈이 많으면 무조건 도둑질했다고 생각해? 당신이야 사업하다 쫄딱 망해서 알거지가 되어 미국 왔지만 요즘에는 그런 한국이 아냐. 강남의 아파트 한 채 값이 여기 벨뷰 집값만큼 나가는 돈이 많은 나라라구. 나는 게네들이 한국에서 도둑질을 해서 미국에 왔는지, 강남 아파트를 팔아 미국에 왔는지는 잘 모르지만 나도 얼마 안 가 게네들이 싫어졌지. 게네들은 처음에는 영어 잘하는 나에게 한국에서 가져온 멋진 학용품 등을 선물로 주며 친해지려고 노력했지. 지난 수업 때 선생님이 말한 게 무슨 뜻이니? 시험은 언제 있니? 점수를 잘 주는 선생님은 누구니? 너한테 영어 과외를 별도로 하면 안 되겠니? 우리 엄마에게 말해서 돈을 줄게. 오늘 우리 집에 가서 숙제 좀 도와줄래? 엄마가 삼겹살 구워준대. 주로 공부에 관심이 많았지. 난 처음에 열심히 도와줬어. 그런데 미국 처음 와서 버벅거리던 애들이 몇 개월이 지나고 해가 바뀌고 시간이 흘러 어느덧 영어에 익숙해지면서 조금씩 내게 멀어지더군. 말이 트이기 시작하니까 나보다 백인 아이들과 친해지는 거야. 물론 걔들에게도 내게 처음에 했던 것처럼 한국에서 가져온 멋있는 학용품들을 뿌려대더군. 게다가 자주 백인 아이들을 자기 집으로 초대하는 거야. 난 처음에 여기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내게 그렇게 잘했던 종훈이라는 한국 아이가 일 년 후 생일 파티에 나를 빼고 백인 아이들만 부른 것을 나중에 알았지. 그러나 난 그때도 상처받지 않았어. 그런데 걔가 얼마 안 가 나보다 공부를 잘하는 거에는 상처받았어. 내가 걔라고 하지 않고 왜 게네들이라고 하는지 알아? 중학교 때부터 종훈이 같은 놈들이 많았다는 거야. 나처럼 어렸을 적에 미국에 와 한국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는 1.5세나 아예 여기서 태어난 2세들과는 달리 부모 잘 만난 탓으로 여기에 조기 유학 온 게네들을 난 그런 기억들 때문에 매우 싫어하는 거야.

   그러나 너는 달랐어. 너도 몇 달 전에 전학 왔지만 그 일이 있기 전까지 우리는 그동안 한마디도 서로 한 적이 없어. 난 네가 영어 이름이 폴이라는 것만 알았지, 한국 아이인지도 몰랐어. 그날 수업이 끝나고 아무래도 난 너에게 고맙다고 말은 해야 할 것 같아서 교문 앞에서 기다리다가 자전거를 타고 나오는 너를 보고 하이! 하고 인사하고 아까 일은 고맙다고 말했지. 그런데 네가 아이고 뭘? 하고 말하는 거야. 내가 이내 한국말로 한국 사람이지? 물었더니 너는 웃으며 아니라고 했지. 그럼 한국말을 아는 중국 사람? 일본인? 내가 계속 물어도 너는 웃으며 말을 안 했어. 그냥 나중에 알려줄게 했었지. 난 그래서 너를 한국어를 배운 아시안이구나 생각했지. 너는 자전거를 세우고 나랑 같이 보조를 맞추며 걸어갔지. 너의 집은 벨뷰가 아니고 조금 떨어진 메인스트리트에 있는 아파트에 산다는 거야. 우린 걸어가며 조금 이야기를 나눴지. 너는 도널드가 무섭냐고 물어봤어. 나는 무섭지는 않지만 싸우면 지잖아? 하고 말했지. 왜 싸우면 져? 이길 수 있어. 어떻게? 걘 덩치도 나보다 크다구. 덩치로 갖고 싸우는 거 아냐. 그럼 뭘 가지고 싸워? 기술과 깡다구로 싸우지. 기술과 깡다구로 싸우는 거라고. 내가 나중에 가르쳐주지. 너는 자신 있게 말하고 너의 집 방향으로 자전거를 돌려 떠나갔지.

   난 그 후로 계속 생각해 보았어. 그 기술과 깡다구에 대해. 너에게 그 기술과 깡다구를 배우고 싶었지. 어느 날 학교 앞에서 기다리다가 나오는 너에게 다가가 말했지. 우리 집에 가서 그 기술 좀 가르쳐줄래. 난 도널드에게 싸워 이기고 싶어. 너는 흔쾌히 승낙했지. 집에는 마침 아빠보다 먼저 집에 온 엄마가 있었어. 내가 너를 소개하려고 했는데 네가 먼저 엄마에게 인사했지. 안녕하세요? 김영태입니다. 엄마는 오랜만에 내가 한국 얘를 데려온 게 신기했지. 너 한국 애랑 다시는 안 논다더니 한국 애구나. 엄마는 너를 반겼어. 근데 얘 한국 아이 아냐. 응 그래? 근데 한국 이름에 한국말을 잘하네. 국적을 바꿨나 보다. 너는 더 이상 말을 안 했고 미국에선 그런 사람이 많으니까 엄마도 대수로이 생각 안 했어.

   우리는 개러지로 갔어. 이 집 처음에 왔을 때 아빠는 한동안 이 개러지를 각종 운동 기구를 갖춘 짐으로 꾸미느라 정신없었어. 그러나 그렇게 꾸며 놓고 나서 아빠가 거기서 운동하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어. 아빠는 일주일 내내 일하고 집에 오면 밥 먹고 곧바로 자기 바빴으니까. 나는 가끔 여기를 이용했지. 누군가 죽이고 싶을 정도로 분노에 차 있을 때 자전거 페달을 미친 듯이 밟다가 괴성을 지르곤 했었지. 다 죽여버릴 거야. 다 죽여버릴 거야. 소리 지르다가 모니터에 얼굴을 대고 흐느껴 울기도 했지. 그러다가 지치면 집 바깥 계단을 통해 조용히 이층으로 올라와 내 방의 침대에 쓰러지곤 했지. 엄마는 거기서 내가 밤마다 운동을 하거나 좋아하는 힙합 뮤직을 듣는 것으로 알고 별 신경을 안 썼어. 내 방에서 한 번 에미넴을 크게 틀어 놓았다가 아버지가 뛰어 올라와 난리가 난 이후로 난 주로 음악도 그라지에서 듣지.

   우리 할아버지가 가르쳐주셨어. 천하를 다스리는 것도 자기 몸을 지키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자기 몸을 지키는 일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싸움은 힘으로 하는 게 아냐. 대부분의 싸움은 상대를 바라보는 순간 0.1초에 끝나버리지. 상대를 보고 위축이 되어 눈을 내리는 순간 넌 이미 진 거야. 겁을 먹으니 싸워서 이길 수 없지. 동물들도 똑같아. 상대를 보고 겁을 먹는 순간 다리에 힘이 빠지고 꼬랑지를 감추지. 상대를 이기려면 일단 눈으로 제압해야 하는 거야. 너는 어느새 제자를 가르치는 스승처럼 말하기 시작했어. 나를 똑바로 쳐다봐. 절대 눈을 돌리거나 내리면 안 돼. 지그시 쳐다봐. 나는 네가 두렵지 않아. 너는 불쌍한 놈이야. 나를 이길 수가 없어. 이렇게 마음속으로 말하는 거야. 그 순간 상대는 네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지. 그리고 너에게 서서히 위엄이 있다는 것을 느끼지. 이때부터 서서히 네가 두려워지는 거야. 어쩔 건데? 해볼래? 너는 마음속으로 말하지. 열에 아홉은 이 눈싸움으로 끝나. 지난번에 도널드가 내게 눈 내리고 도망가는 거 봤지. 그 반대는 상대방을 보고 위축이 되어 눈을 내리는 거지. 상대는 금방 그걸 알고 더욱 위세를 떠는 거야.
   첫날부터 너는 내게 엄청난 것을 가르쳐 주었어. 고개를 꼿꼿이 쳐들고 겁을 먹지 않고 상대를 보는 것을 배운 이때부터 아마 내가 달라지기 시작했던 것 같아. 그래 겁나는 게 뭐냐? 죽는 거? 준 너는 죽는 거 겁내지 않잖아? 씨발 한번 해보라 그래. 도널드 너 개새끼야. 넌 죽었어. 내가 갈기갈기 너를 찢어서 죽여버릴 거야. 눈 내리깔지 마 개새끼야! 난 수백 번도 고개를 똑바로 들고 상대방을 노려보는 연습을 했을 거야.
   날 똑바로 바라봐. 그게 아냐. 넌 여전히 겁먹고 있어. 왜 잔뜩 인상을 쓰고 있어? 너는 여전히 내가 바라보는 시선이 못마땅했지. 왜 그런지 알아. 상대방을 증오하기 때문이야. 상대에 대한 증오가 가득 차서는 상대방을 겁먹게 할 수 없어. 오히려 상대가 불쌍하다고 봐야 해. 이렇게. 너는 정말 한 번도 나를 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나를 쳐다보더군. 그때 난 왠지 섬뜩해져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지. 한번 해봐. 그래 바로 그거야.

   너는 거의 매일 우리 집에 오다시피 하면서 나를 가르쳤어. 내가 어렸을 때 한두 달 배우다가 만 태권도의 발차기 기술부터 합기도의 되치기와 꺾기 기술, 유도의 조르기 기술과 낙법, 주짓수의 상대를 되치고 상대의 급소를 찌르는 기술 등 넌 정말 무술의 달인이었어. 가장 쉬운 급소는 낭심을 걷어차는 거야. 다른 급소는 위험해. 상대가 죽을 수도 있지. 낭심이 뭐야? 낭심은 불알이야. 도널드의 자지라고. 우린 낄낄거렸지. 도널드가 자지를 움켜쥐고 나동그라지는 상상만 해도 즐거웠어. 너는 어떻게 그렇게 무술을 잘하니? 이건 무술이 아냐. 싸움이야. 난 나에게 가해지는 온갖 차별과 멸시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싸움의 고수가 돼야 했어. 갑자기 너는 진지해졌어. 내가 누군지 알려줄게. 내 조국이 어딘지 알려줄게. 너는 갑자기 웃통을 벗었어. 나는 깜짝 놀랐지. 너는 웬만한 보디빌더보다도 멋진 근육질의 몸매를 갖고 있었지. 그런데 네가 몸을 돌리자 목 밑부터 허리까지 커다란 검은색으로 글자 문신이 세로로 새겨져 있었어. 조선인이라고.

   그나마 초등학교 때 주말이면 한글학교에 다녔던 관계로 그 글씨를 읽을 수는 있었지만 난 그 뜻을 몰랐지. 난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지. 난 조선인이라고. 한국 사람도 아니고 북조선 사람도 아니고 지금은 사라졌지만 조선 사람이라고. 난 일본에 살면서 조선인이기 때문에 우리 조선인을 무시하는 일본 아이들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싸움을 잘할 수밖에 없었지. 너는 그렇게 말하고 네가 항상 갖고 다녔던 백팩에서 쌍절곤을 꺼내서 돌리기 시작했어. 너는 HBO 영화 속에서 본 브루스 리보다 쌍절곤을 더 멋지게 돌렸지. 그 순간 네가 정말 멋지게 보이더군. 나도 정말 쌍절곤을 배우고 싶어졌어.

   6월 17일
준이 영태를 만난 것은 축복이었다. 적어도 그 일이 있기 전까지 내겐 그랬다. 영태는 어느 날 슈퍼맨처럼 갑자기 나타나 십여 개월간 골방에 갇혀 있던 준을 바깥세상으로 끄집어냈다. 준이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밥 먹다가 아빠에게 맞고 이층 자기 방에 틀어박혀 거의 나오지 않기 일 년 전쯤 되었던 것 같다. 벨뷰 하이스쿨에 입학하고 일 년 사이에 키가 부쩍 커져 자기 아빠보다도 커진 준이 방에서 잘 나오지 않고 이어폰을 귀에 꽂고 다니며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것을 원래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이 그러니까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가 어느 날 준이 학교에 간 날 준의 방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악마 가면을 쓴 그룹사운드 가수들의 사진들을 곳곳에 붙여 놓고 빨간 매직펜으로 모두 죽여버리겠어라는 한국말을 휘갈겨놓은 것을 보고 섬뜩해졌다. 뉴욕의 언니에게 전화해서 이 문제를 고민했더니 마릴린 맨슨 같은 악마주의를 숭배하는 그룹사운드들을 젊은 애들이 한때 좋아하는데 그리 신경 쓸 거 없다고 한다. 조카인 쥴리도 한때 그랬다고 한다. 그렇게 걱정했던 준이 영태와 함께 개러지 룸에서 매일 운동하다시피 하더니 달라졌다. 자기 방에 그 이상한 포스터들도 싹 없애버렸다. 단지 죽여버리겠어! 글씨는 그대로 있는데 아직도 누군가에 대한 증오는 남아 있는 듯했다.

   2월 25일
오늘 속이 많이 상했다. 그이에게 암만 그래도 애를 그렇게 때려? 했더니 너무 불손해서 자기도 모르게 손이 나갔다고 한다. 애한테 관심도 없고 매일 늦게 들어오고 휴일에 얼굴 같이 맞대고 밥 한번 먹는 게 전부인데 그나마 그렇게 때리면 애가…… 계속 말하려다가 나도 다른 세탁소처럼 6시에 닫고 집에 일찍 와서 셋이서 오붓하게 저녁 먹고 싶어. 우리 지역 특성을 알잖아. 늦게 옷 맡기러 오는 손님이 많다는 걸. 새벽 6시부터 밤 9시까지 15시간 일하는 나야. 그이는 절규하다시피 말한다.
   나는 알아요. 당신이 늦은 나이에 미국에 와서 무지하게 고생했다는 걸. 중년의 나이에 결혼해서 생긴 어린 아내와 늦게 얻은 자식을 위해 한국에서도 해보지 않은 생고생을 했다는 것을. 그때 명퇴 후 받은 퇴직금으로 오퍼상 하다가 망해서 힘들었어도 어쩌면 언니가 내준 영주권으로 미국에 오지 않고 한국에서 더 버텨야 했는지도 모른다. 당신은 가끔 그때 망했던 친구들이 지금은 한국에서 다 성공해서 자리를 잡았다고 말할 때마다 내 가슴을 후려 판다는 것을 모를 거야. 미국에 와서 이 고생하는 게 다 내 잘못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을…….

   3월 17일
준이 집에 친구를 데려온 것이 몇 년 만인가? 영태라는 한국 아이인데 한국 국적이 아니라고 한다. 미국인 가정에 입양된 아이인지도 모른다. 본인이 자세한 것은 말하지 않아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어깨가 다부지고 야무지게 생겼는데 준처럼 선한 눈을 가졌다. 착한 아이겠지. 준에게 상처 주지 않을 착한 아이였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집에 친구도 데려오고…… 애가 차츰 정상으로 돌아올 것을 기대해 본다. 엉겁결에 만들어줄 게 없어 급하게 라면 3개를 끓여 두 그릇에 나눠주었는데 국물도 하나 없이 다 먹었다. 내일은 한국 마켓에서 장을 좀 봐야겠다.

   4월 28일
조선인 아이? 재일 교포인데 국적이 한국도 아니고 북한도 아니고 조선이라고? 그이에게 물어보니 해방 전에 일본에 입국한 조선인 중 일제가 패망하고 해방 이후에도 일본에 남아 북한 국적도, 한국 국적도 거부하고 그냥 조선인으로 살아가는 재일 교포들을 일본 정부에서 조선적이라고 부른단다. 왜 한국 국적을 신청하지 않았을까? 하고 내가 물으니 남편은 대뜸 왜 한국 국적을 신청해? 한국이 뭐가 좋다고? 우리도 한국 떠나서 미국 사는 거 아냐? 조선적들도 마찬가지겠지. 한국이 싫으니까 한국 국적 신청 안 했겠지 하며 성질을 낸다.
   아이엠에프가 터지고 신입사원으로 입사해서 14년을 다녔던 직장에서 구조조정으로 명퇴당한 후 남편은 사회에 대한 불만이 많아졌다고 한다. 정신을 차리고 사업이라도 시작하기 전 몇 달 동안은 자신이 회사에서 잘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술만 마시고 지냈다고 한다. 정말 젊은 날의 내 영혼을 송두리째 갖다 바쳤던 회사인데…… 아직도 그때 일이 생각나는지 혼자 넋두리할 때가 많았다. “당신 언니가 신청해 준 영주권 초청이 아직 유효한가 알아봐. 이놈의 나라 떠날 때가 된 거 같아.” 남편이 갑자기 어느 날 영주권에 대해서 물어봤다. 남편 처음 만날 때 언니가 영주권을 신청해서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했을 때는 관심도 없었던 사람인데……. 마치 이민이라는 것을 자신을 배신한 조국에 대한 복수라도 되는 듯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6월 3일
오늘은 준이 오랜만에 일요일에 거실로 내려와 아빠랑 함께 밥을 먹는다. 지도 쑥스러운지 아빠에게 눈인사만 하고 고개를 숙이고 자기 밥만 먹는다. 귀에는 더 이상 이어폰이 없다. 남편은 너 오랜만이다. 그동안에 키가 부쩍 더 커진 것 같은데…… 하고 한마디 하는데, 그리 싫지 않은 모습이다. 아닌 게 아니라 키도 커진 것 같고 어깨가 더 다부져진 것 같다. “영태랑 학교 다녀와서 개러지룸에서 함께 매일 운동해요.” 오랜만에 부자가 함께 밥 먹는 게 보기 좋아 내가 거들었더니 “영태? 그 조선적이라는 아이 말이냐?” 남편이 묻는다. 준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빠, 조선이 우리 한국의 옛날 이름이야?”라고 묻는다. “맞아. 지금부터 백여 년 전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지. 오백 년의 역사를 가진 나라가 하루아침에 망한 거야.” 남편은 넋두리처럼 말한다. “오백 년? 영태가 오천 년이라고 그랬는데. 오천 년의 찬란한 역사를 가진 아침의 나라라고. 조선이란 아침의 나라란 뜻이래.” “그건 단군조선까지의 역사를 말할 때 오천 년이라고 하지.” 남편이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한다.
   “근데 왜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나라를 다시 찾았는데 조선이라는 옛날 이름을 안 쓰는 거야?” 준의 질문에 남편은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7월 15일
이라사이마세!
메인스트리트의 마켓플레이스 쇼핑몰 안에 있는 영태 엄마가 운영하는 데리야키 식당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바쁜 점심시간을 피해 오후 3시쯤, 식당이라기보다는 카페테리아처럼 예쁘게 꾸며진 실내로 들어서니 계산대에 서 있던 내 나이쯤 들어 보이는 한 여인이 ‘이라사이마세!’라고 외치며 나를 맞았다. 나는 일본어 인사에도 불구하고 한눈에 그녀가 영태의 엄마라고 알아보았다. 내가 다가가 “영태 어머니시죠?”라고 나지막이 물으니 그녀는 손님을 대하던 의례적인 상냥한 표정이 싹 가시고 나를 일본 사람으로 생각한 게 창피했는지 이내 얼굴이 빨개졌다.

   내가 영태 친구 준의 엄마라고 밝혔는데도 영태 엄마는 “혹시 영태가 무슨 사고라도…….”라고 말끝을 흐리며 불안한 얼굴을 감추지 않았다. 내가, 그게 아니고 영태한테 너무 감사해서 어머니를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려고 왔다고 하니까, 조금은 안심이 된 듯 나를 식당 안쪽의 사무실 겸 휴식 공간으로 쓰이는 듯한 별실로 안내한다. 그리고 내가 굳이 싫다는데도 맛있는 차라며 국화 향기 가득한 차를 내어왔다. 내가 그동안 준 때문에 너무 걱정했는데 준이 영태를 만나고 많이 밝아졌다고 그동안의 이야기를 풀어 놓자 영태 엄마는 그래요, 그렇죠, 등 내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아마 그 아이가 자신도 일본에서 준처럼 많은 교내 폭력에 시달리고 차별을 당해서, 준에게 자신이 어떻게 그 차별을 극복해 냈는지 꼭 가르쳐주고 싶었을 거예요.” 영태 엄마는 영태가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3학년 때까지는 오사카에 있는 조선학교에 다녔는데 거기에서도 가끔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했다고 한다. 하루는 씩씩거리고 집에 와서 자신에게 “엄마는 왜 미 제국주의 나라 사람이 된 거야?”라고 따진 적이 있었다. “아이들이 미국인 양키들이 제일 싫대. 양키 고 홈이라고 놀려. 그래서 아이에게 이야기했죠. 엄마가 좋아서 미국 국적을 선택한 것이 아니란다.” 영태 엄마는 어렸을 때 인천의 한 고아원에서 있다가 미국으로 입양되어 살아온 자신의 지난한 삶의 이야기를 영태에게 했고 이야기가 끝난 후 둘은 같이 부둥켜 울었다고 한다. 영태는 “엄마도 나처럼 왕따 많이 당했네.”라고 말하고 그 뒤로 많이 달라졌다 한다. 그리고 중학교 때 어느 날부터 자신은 조선학교 그만 다니고 영어를 배우러 일본 학교에 가겠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오사카에 있는 일본의 사립학교에 다녔는데 거기에서 일본 아이들에게 말도 못하는 학대를 당했다고 한다. 하루는 날이 매우 더운 어느 날 영태가 샤워하려고 무심코 웃통을 벗었는데 온몸에 상처와 멍든 자국투성이였다고 한다. 영태 엄마가 깜짝 놀라 무슨 일이 있었냐고 다그쳤더니 일본 아이 8명이랑 싸움을 했다고 한다. 너무 화가 나서 아이 등짝 사진을 찍어 학교에 찾아가서 난리를 쳤는데 처음엔 학교 측에서 교내 불량한 학생들끼리 패싸움하다가 그런 거라며 영태 엄마의 항의를 일방적으로 무시하다가 나중에 영태 엄마가 미국 시민권자인 것을 알고 교장이 찾아와 영태에게 몰매를 가한 학생들 처벌을 약속하며 사과했다고 한다.
   “그래도 화가 안 풀려 영태에게 왜 게네들이 너를 그렇게 괴롭히느냐고 물었더니 저 애가 하는 말이 자기를 북조선 사람으로 알고 그렇다는 거래요. 자기네 일본 사람 많이 납치해서 돌려보내지도 않는 북조선 사람이라고. 영태는 북조선 사람이 아니에요. 그 아이는 자기 아빠 따라 조선적일 뿐이에요.”
   영태 할아버지는 원래 경북 안동의 명문가 출신으로 해방 전에 일본에 유학 왔다가 같은 조선 출신의 여학생을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하려고 했으나 집안의 반대가 심해 귀국하지 않고 결혼해서 일본에 눌러앉았다고 한다. 4남매를 두었는데 그중 막내가 영태 아버지였다. 영태 엄마는 2000년 초 시애틀에 있던 미국 식품회사에 다니다가 오사카에 있는 일본 지사에 파견 나갔는데 그때 한국어가 너무 배우고 싶어서 한국어를 배우러 조선어 학원에 갔다가 영태 아빠를 만났다고 한다. 영태 아빠는 엔지니어 계통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그때 일본에서 「겨울 연가」 때문에 한국어 배우기 열풍이 불어 파트타임으로 일본인 상대로 한국어를 가르쳤다고 한다.
   “제가 워낙 어렸을 때 미국에 입양되어 한국말은 전혀 몰랐어요. 사실 양부모가 내가 코리안이라고 해서 알았지, 그전에 한국인이란 의식이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일본에 나가서 살다 보니 왠지 모르게 일본인들과는 제가 좀 다르다는 걸 알았죠. 같은 아시안이라지만 일본 사람들에게는 정이 별로 안 가는 거예요. 그러다가 우연히 쓰루하시 같은 재일 교포들 많이 사는 곳에서 한국 사람과 한국 음식을 접하다 보니 자꾸만 그곳에 가게 되는 거예요. 그게 아마 핏줄이 당기는 건지도 모르죠. 좀 느끼한 일본 사람만 보다가 남편처럼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한국 사람을 보니 너무 멋있게 보이는 거예요. 마치 배용준을 보듯이 심장이 막 쿵쿵 뛰는 거예요.” 처음에 영태 엄마는 영태 아빠가 당연히 한국인인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조선적이라는 거예요. 난 그때 한국도 아니고 북한도 아니고 조선적이라는 재일 교포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죠. 영태 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조선어 학교에 다녔고 ‘한반도가 통일될 때까지는 국적을 바꾸지 말고 조선 사람으로 그냥 남아 있어라’는 영태 할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죽을 때까지 일본에서 조선적으로 살았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거예요. 그리고 영태도 일본 학교에 보낼 때 조심스럽게 그 점에 관해서 물어봤더니 자신도 아버지 뜻 따라서 아무런 어려움이 있어도 국적을 바꾸지 않고 조선적으로 남겠다는 거예요.”
   영태 엄마는 몇 번을 영태 아빠나 영태가 북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했다. 아마 한인들로부터 그러한 오해를 많이 받았는지도 모른다. 내가 “알아요. 저희 남편이 설명해 줘서 잘 알아요.”라고 말하자 “그래요?”라고 안심이 되는 듯 화색이 돌았다.
   당신이 들어줄 충분한 시간이 없다면 이민자들에게 어떻게 이곳에 왔는지 함부로 물어보지 마라. 봇물이 터지듯이 사연이 쏟아져 나와 당신을 일어서지 못하게 할 테니까. 영태 엄마와 나는 저녁 시간이 되어 손님이 들어오는지도 모르고 국화 향기에 취한 듯 계속 이야기에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끊이지 않았다. 나도 경기도 수원의 중학교 교사로 있다가 자원봉사 나왔던 원어민 영어 교사인 백인 청년과 눈이 맞았으나 집안의 반대로 헤어졌다가, 어느 날 교사 그만두고 형부를 만나러 미국으로 도망간 언니 이야기서부터, 남편이 아이엠에프 때 직장에서 잘리고 종로에 조그만 오퍼상을 차렸을 때 경리로 들어가 일하다가 남편과 결혼하게 된 이야기, 이후 오퍼상 말아먹고 결국 언니 초청으로 미국에 온 이야기까지, 드라마 몇 부작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저희는 작년에 영태 아빠가 간암으로 돌아가시고 아무래도 영태 장래를 위해서 미국으로 올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고 보니 영태 엄마가 말하며 시선을 돌리는 책상에는 하얀 보자기로 싼 상자 위에 한눈에 영태 아빠로 알 수 있는 영정 사진 액자가 놓여 있었다. “지 아빠야 그래도 친척들이 많아 온갖 차별 이겨내고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살아왔지만, 달랑 독자인 영태는 일본에서 국적도 없이 어떻게 살아갈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어요.” 내가 여기도 백인들의 인종차별이 만만치가 않은 것 같다고 하자 “그건 제가 더 잘 알아요. 근데 영태가 잘 견뎌낼 거예요. 우리네 삶 자체가 차별이 일상화되어 익숙해져 있으니까요.”라고 그녀가 씁쓸하게 웃었다.

   난 그때 정말 운동에 미쳐 있었던 것 같아. 매일 학교 갔다 온 후 2시간 이상을 개러지에서 땀을 흘렸지. 주말에 영태가 엄마 식당 일을 도와야 한다고 우리 집에 못 올 때에도 나는 혼자 연습했지. 뮤직 박스에는 에미넴을 틀어놓고 TV에는 브루스 리의 「용쟁호투」나 「맹룡과강」 같은 비디오를 틀어놓았지.

난 무섭지 않아, 난 무섭지 않아 당당히 설 수 있어.
정말 긴 여정이었어

내가 그곳에 갔어야 했나 봐.

와서 내 손을 잡아, 와서 내 손을 잡아
여기까지 오기 위해
우린 이 길을 함께 걸을 거야, 폭풍을 뚫고
춥든 따뜻하든 어떤 날씨에도
그냥 너에게 알려주려고, 넌 혼자가 아니라고
소리쳐, 네가 같은 길에 있다고 느낀다면, 같은 길에
그리고 난 더 이상 이렇게 살 순 없기에
그러니 오늘부로, 이 감옥을 부수고 나올 거야

충분히 겪었어, 이젠 나도 너무 지쳤다고
지금 내 인생을 다시 돌려올 때가 왔어
난 무섭지 않아 난 무섭지 않아2)

난 충분히 무시당해 왔어. 이제 더 이상은 허락하지 않아.
너희들의 개무시와 차별에 더 이상 눈물만은 흘리지 않아.
그 아픔을 백배, 천배 만배로 돌려주겠어. 이제 때가 된 거야.
한때는 죽어버리려고도 생각했어. 왜 이 거지 같은 나라에
날 데려왔는지 아빠를 원망도 많이 했어.

그러나 더 이상 아빠를 원망하지 않아.
너희들에게 비굴하게 보였겠지만
다 엄마와 나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걸 이젠 알아.

칭칭칭칭 총총총총 칭총칭총 칭총칭총
칭칭칭칭 총총총총 칭총칭총 칭총칭총

내 눈이 찢어졌다는 말 더 이상은 믿지 않아.
너희 같은 희멀건 백돼지들보다 잘생겼다는 걸 나는 알아.
너희들에게 장난이겠지만 그 장난에 맞아 죽는
개구리도 있어. 너희도 한 번 맞아봐 죽을 만큼 아플 거야.

난 더 이상 두렵지 않아. 이렇게 더 이상
살 순 없기에 오늘 이 감옥을 부수고 나올 거야.
그리고 그 감옥에 너희들을 가둬버릴 거야.

지금 내 인생을 다시 돌려올 때가 됐어.
난 무섭지 않아. 난 무섭지 않아.

난 로마의 콜로세움에서 척 노리스와 마지막 결투를 벌이는 브루스 리를 생각했어.
그리고 영태의 말을 떠올렸지. 지그시 너를 노려보는 거야. 난 두렵지 않아.

   의외로 결전의 날은 빨리 왔지. 어느 날 교실에서 도널드가 또 내 뒤통수를 쳤어. 야, 이것 너희 아빠에게 갖다줘. 이건 진짜 우리 아빠 양복이야. 내일까지 해달라고 해. 난 그 양복을 그냥 그 새끼 면상에 집어 던졌어. 이 씨발 새끼야. 네가 갖다줘. 아니 갖다주지 마. 네 아빠 것은 이제 안 해. 딴 데 갖다줘. 새끼야!
   이 새끼가 눈이 휘둥그레졌지. 나를 치려고 손을 들었는데 난 그대로 그 새끼 정강이를 걷어차 버렸어. 그 새끼가 욱하고 주저앉았지. 한 대 더 면상에다 걷어차려는데 선생이 들어왔지. 난 다가가서 그 새끼에게 속삭였지. 억울하면 이따 수업 끝나고 학교 주차장으로 와. 오늘 한번 결판을 내자고 했지.
   수업이 끝나고 교실에서 나가면서 도널드에게 따라오라고 손짓했지. 놈은 스마트폰으로 어딘가에 전화하더군. 네가 따라오면서 엄지를 척 치켜세웠지. 나 혼자도 괜찮아 했더니 넌 지켜본다고 했어. 우리는 학교 주차장으로 갔어. 거기서 난 한눈에 주차되어 있는 도널드의 빨간 색 썬더버드를 알아봤지. 놈은 그 차를 몰고 집으로 걸어가는 내게 경적을 울리며 거의 나를 칠 정도로 지나치며 욕을 해대곤 했지. 앞 유리 윈드실드에 ‘마더 뻑커 도널드, 공원묘지로 와라. 오늘 너의 대갈통을 박살 내줄게’라고 메모에 써서 붙여 놓았지. 그리고 우린 공원묘지로 갔어. 평일 오후라서 수많은 묘지에 누군가를 추모하는 사람은 거의 없더군. 비석을 붙잡고 울고 있는 듯한 백인 아줌마를 지나쳐서 위로 계속 올라갔어. 우리는 사람이 전혀 안 보이는 한적한 곳으로 갔어. 제법 공터가 큰 곳을 발견하고 여기가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 서쪽으로 내려다보니 워싱턴 호수가 오후의 태양을 부드럽게 받으며 은빛 생선 비늘처럼 출렁이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지.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아름다웠어. 여기서 놈이랑 한 판 붙는 거야. 여기서 놈을 무릎 꿇릴 거야. 난 웃통을 벗고 몸을 풀었지. 네가 도널드처럼 백인 애들 싸움할 때 주먹을 돌리는 시늉을 하며 내게 다가왔지. 놈이 이렇게 너에게 주먹을 휘두르려고 할 때 너는 아까처럼 놈의 다리를 공격해. 제대로 맞으면 주저앉고 일어설 수가 없지. 어느새 우리는 시합을 앞두고 네가 스파링 파트너가 되어 격투기 연습을 하는 것 같았어. 놈이 손을 뻗어 너를 붙잡으려 할 거야. 일단 잡혔다가 팔을 돌려서 꺾어버려. 놈이 비명을 지를 때 팔을 잡아당기며 무릎으로 면상을 찍어버려. 너는 놈이 취할 수 있는 동작을 이용한 역공격을 보여줬지. 그렇게 얼마를 연습했는지 몰라. 놈은 나타나지 않았어. 안 오는 거 아냐? 이 새끼 겁먹어서. 내가 너를 보고 말했더니 안 와도 좋아. 걔는 너에게 겁먹은 거야. 앞으론 너에게 그렇게 못하겠지. 진짜 잘하는 싸움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거야.
   그래도 조금은 허탈했어. 난 정말 그 새끼가 오기를 바랐어. 그 새끼를 죽이든지 내가 죽든지 하려고 했지. 다시 옷을 입고 가방을 메고 우린 다시 묘지공원을 내려왔지. 그런데 그때 공원 입구로 경찰차가 들어오는 거야. 금방 우리를 발견하고 우리 앞에 멈춰 서더니 백인과 흑인 경찰관 두 명이 차에서 튀어나오며 우리에게 총을 겨눴지. 그들은 우리를 공원 담벼락에 세우더니 주머니에서 소지품을 검사한 후 손을 뒤로 돌려 수갑을 채우더군. 그리고 우린 경찰차에 태워졌지. 난 경찰에게 왜 우리를 체포하냐고 마구 소리 질렀지. 백인 경찰이 고개를 돌려 너희는 학생들을 위협하는 갱이라고 체포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고 말하고 시끄럽게 하면 입마개를 채워주겠다고 하더군. 그때 하얀색 BMW 세단이 공원으로 들어와 멈추더군. 나는 한눈에 그 안에 탄 게 도널드와 걔 엄마라는 걸 알았지. 경찰들이 문을 열고 다가가 인사를 하더군. 난 어떻게 된 스토리인지 금방 알았어. 도널드 개새끼가 겁을 먹고 경찰에 신고한 거야.
   우리 엄마가 경찰서로 찾아오고 너희 엄마도 경찰서로 찾아왔지. 우리는 갱이 아니라는 게 밝혀지고 난 금방 풀려났지만 넌 시간이 좀 결렸지. 경찰은 너의 백팩에서 나온 쌍절곤을 살상용 무기로 본다는 거야. 너희 엄마가 슈퍼바이저를 불러달라고 난리를 치고 도널드 엄마에게 욕을 해댔지. 난 너희 엄마가 그렇게 영어를 잘하는 것을 처음 알았어. 결국 슈퍼바이저가 나왔지. 너희 엄마가 다가가 몇 마디 했더니 슈퍼바이저가 학생들을 모두 집으로 돌려보내라고 소리를 질러 소동이 끝났지. 나중에 알았지만 너의 엄마의 양아빠가 그 경찰서에서 오래전 은퇴한 슈퍼바이저여서 그게 도움이 됐다는 거야. 그런데 그게 끝은 아니었어. 학교는 달랐지. 학교에서는 나에게 두 달을 정학 조치시켰고 너는 결국 퇴학 처분을 받았지.
   그 뒤로 지금까지 너를 보지 못했어. 정학을 받자 엄마는 나를 뉴욕의 이모에게 보냈고 솔직히 나는 그때 공부도 싫었고 구질구질 비만 오는 시애틀이 싫어 차라리 잘 됐다 싶었어. 단지 네가 마음에 걸려 엄마에게 물어보았지만 너희 엄마가 너를 엘에이에 있는 친척에게 보냈다는 소식만 들었지. 난 금방 뉴욕에 정들었지. 뉴욕은 정말 온갖 인종들을 모아 놓은 도시라 내가 옐로인지 블랙인지 브라운인지 신경 안 쓰는 것 같았어. 난 아빠에게 메일을 보내 난 여기가 좋아서 시애틀에 돌아갈 생각이 없고 음악으로 꼭 성공해서 자랑스럽게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했지. 아빠도 공부로는 내가 틀렸다고 생각했는지 열심히 한번 해보라고 하더군. 난 그래서 보스턴에 가서 싸이가 다녔던 버클리 음대에 입학했고 열심히 음악을 공부했지. 그리고 틈틈이 한국의 음악 기획사에 데모 녹음 파일을 보내고 동영상도 보내고 했지만 나를 불러주는 곳은 없더군.
   얼마 전에 엄마가 암으로 돌아가셨어. 유방암 말기였는데 기도 많이 했지만, 새벽에 울먹이는 목소리의 아빠 전화를 받고 엄마가 하늘나라로 가신 것을 즉시 알았지. 시애틀로 급히 가서 삼 년 만에 본 아빠가 완전히 할아버지로 변해 버린 모습에 깜짝 놀랐어. 우리가 도널드랑 결투를 벌이려던 그 공원묘지에서 아빠와 함께 엄마의 장례를 치른 후 오랜만에 벨뷰 집으로 돌아와 엄마 방에서 엄마의 체취를 맡으며 많이 울었지. 거기서 엄마의 일기장을 발견했어. 엄마의 일기장을 통해서 그때 엄마가 얼마나 나 때문에 맘을 졸였는지 알 수 있었어. 그리고 너의 가게로 찾아가 너의 엄마를 만났던 것도 처음 알았지. 엄마 생각과 함께 오랜만에 너의 생각도 했어. 엄마 말대로 나는 너를 만나서 달라졌어. 그 힘들었던 시기에 너는 배트맨처럼 나타나 나를 구원해 줬어. 너는 나의 진정한 영웅이야. 네가 내게 가르쳐 준 건 무술만이 아니야. 내가 누군지 가르쳐 줬지. 오천 년의 찬란한 역사를 가진 위대한 아침의 나라의 자손이라고. 나의 자아를 찾게 해준 거야. 나의 뿌리를 찾게 해준 거야.
   기쁜 일 하나 이야기해 줄게. 한국의 기획사에서 한번 들어와서 오디션 보자고 연락이 왔어. 여기를 떠나서 한국으로 가서 새로운 삶을 사는 게 두렵기도 하고 너무도 늙어버린 아빠가 걱정되지만 아빠가 한번 해보라고 했어. 해보고 실패하면 미련은 없지만 안 해보면 아빠처럼 평생 후회한다고 했어. 엄마 없이 지낼 아빠가 걱정되지만 한번 나가서 해볼 거야. 내 노래에 너의 이야기를 많이 담아서 나처럼 힘들었던 청소년기를 보낼지 모르는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 그리고 올겨울에 잠깐 미국에 돌아와서 너 만나러 엘에이 한 번 가려고 해. 며칠 전 여기서 만난 고등학교 동창생한테 네가 엘에이에서 호신술 도장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

   요! 이건 나의 작은 영웅에 대한 이야기야. 내가 가장 힘들었을 때 그는 기적처럼 나타나 거의 미치기 일보 직전의 나를 구해 주었지. 비트를 내어줘. 아님 음악을 깔아줘. 나를 똑바로 쳐다봐. 두려움을 갖지 마. 이제 너의 찌질함을 던져버릴 때야. 난 더 이상 두렵지 않아. 이렇게 더 이상 살 순 없기에 오늘 그 감옥을 부수고 나올 거야. 지금 나의 인생을 다시 돌려올 때가 됐어. 난 더 이상 무섭지 않아. 난 더 이상 무섭지 않아.

   9월 2일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온다. 왜 남편은 연고지도 없는 시애틀에서 살고 싶었을까? 언젠가 내가 물었더니 오퍼상 할 때 마이크로소프트사와 계약 한 번 하는 것이 소원이었고 컴퓨터 공학도 출신인 자신도 빌 게이츠처럼 되는 게 꿈이었다고 한다. 그런 꿈이 있어서였을까? 오퍼상 할 때 항상 컴퓨터에 매달려서 이마에 땀이 송송하게 맺힌 중년의 아저씨가 어느 날부터 무지하게 짠하게 보였다. 어찌 보면 남편은 그 꿈을 이루었는지 모른다. 빌 게이츠 집은 우리 집에서 10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어 그와 가까운 곳에 살고 있으니……. 그러나 나에겐 정말 시애틀은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은 도시일 뿐이다. 영태네 가게로 향하며 어떻게 영태 엄마를 위로할까 걱정이 안개처럼 모락모락 피어나 자꾸만 시야를 가렸다.
   의외로 영태 엄마는 담담했다. 영태 아빠의 절친이 엘에이에 사는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영태를 돌봐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지난번엔 몰랐지만 국화차 향기가 온몸으로 퍼지며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 “영태가 엘에이에 가면 저도 가게 몇 달 문 닫고 한국에 한 번 다녀오려고요. 가서 꼭 제 뿌리를 확인하고 싶어요.” 영태 엄마는 사실 일본에 있을 때 남편이랑 함께 한국에 가려고 했었는데 남편이 한국 비자를 못 받아, 못 갔다고 한다. 한때는 자신을 버린 엄마를 원망도 많이 했지만 일본에 있을 때 이미 사라져버린 나라인 조선이라는 나라를 가슴에 담고, 귀화하지 않고 평생을 꿋꿋하게 살아가는 남편을 비롯한 삼 만 명이 넘는 조선적을 보고, 자신도 꼭 뿌리를 찾아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리고 또 할 일이 있어요. 일생에 단 한 번만이라도 그렇게 가보고 싶어 했던 조국의 땅에 남편의 유골을 꼭 뿌려주고 싶어요.” 영태 엄마는 그렇게 말하며 영태 아빠의 영정 사진을 바라보며 잠시 눈시울을 붉혔는데 나는 그때 비로소 영태 아빠의 영정 사진 액자 밑에 하얀 보자기로 싼 상자가 영태 아빠의 유골함인 걸 알았다.

   오늘 밤에는 아무래도 상념이 상념을 물고 잠 못 이룰 것 같아서 영태 엄마가 정성껏 싸준 국화차를 다려 마시며 흠뻑 취해 볼 생각이다.

참고자료

1) 조승희는 2007년 재학 중인 버지니아 공대에서 총기 난사로 32명을 죽인 인물. 8세 때 부모를 따라 미국에 온 1.5세이다.

2) 에미넴의 「Not afraid」 가사 중 일부이다.

필자 약력
황숙진_프로필.jpg

1959년 경남 진해 출생. 1983년 고려대 불문과 졸업. 2008년 평론 「숨은 고향 찾기」로 미주문인협회 신인상 수상. 2013년 소설 「오래된 기억」으로 재외동포 문학상 소설 부문 최우수상 수상. 2015년 첫 단편집 『마이너리티 리포트』 출간. 2021년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한국문학번역원 주최의 제5회 한민족 이산문학 독후감 대회의 대상 도서로 선정.
*사진 출처: ©뉴스엠/필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