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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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다정한 사람의 수기

강알렉산드르

   홍길동이 사라졌다!1)
   “혹시 떠나기로 한 걸 다시 생각해 볼 수 없니?”
   우리가 탄 버스가 큰길로 들어서자 내 어깨 너머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버지, 오셨군요!” 나는 미소를 지으며 아버지를 보았다. 버스 내부는 반쯤 비어 있었다. “아버지가 언제 나타나고 사라지는지 정말 알 수 없군요.”
   “아들, 이해 못할 게 뭐야? 내겐 너만 있는 게 아니잖니!”
   “뭐라고요?!”
   놀란 나는 기분이 나빠지려 했다.
   “우리같이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야. 말하자면 유령들이 한가득이지, 완전한 코러스2)처럼! 그래도 우리는 친지들을 정말 걱정해서 어떻게든 도우려고 애쓰지. 너같이 살아 있는 사람들은 누구도 우리에게 기쁨을 주지는 않지만 말이야.”
   “뭐, 너절한 놈들이 술이나 마시고, 빈둥거리고, 망나니짓이나 한다는 건가요?!”
   나는 웃었다.
   “바로 그거야! 게다가 배신하고 훔치고 서로 죽이잖아! 마치 미끄러운 얼음 위를 걸어가면서 계속 넘어지는 것 같지!”
   “그럼 망자들은 어떤 방식으로 그들을 돕나요?”
   “일깨우지……. 관계를 맺기도 하고. 네게 하는 것과 같아. 그런데 항상 효과가 있지는 않아!”
   그리고 그의 무거운 한숨에 나는 그것이 정말 힘들어서 실제로는 불가능한 것임을 알았다. 그사이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 우리를 곧장 공항으로 데려갈 다른 버스에 올랐다. 나는 자리에 앉았고, 옆자리에 아버지가 ‘앉을 수 있도록’ 가방을 두었다. 다행히 버스 안에는 사람이 적어 붐비지 않았고 자리를 내어달라고 소리치거나 요구하는 사람이 없었다. 버스가 출발한 다음에 내가 떠나려는 모스크바의 학교 친구들에 대해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마도 아버지도 그들에 대해 뭔가 알고 있었겠지만 결국 내 입으로 말했다.
   “사랑하는 아버지! 이건 정말 대단한 일이에요!” 나는 주제를 완전히 바꾸면서 갑자기 외쳤다. “부자가 함께 앉아 대화하고, 절박한 고민도 함께 나누고, 좋은 충고도 듣잖아요!”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저기 작은 소녀를 봐, 깜짝 놀란 표정으로 너를 보고 있어!” 갑자기 내 쪽으로 몸을 기울여 아버지가 말했다. “넌 혼잣말을 하고 있어, 미친 사람같이! 너는 처음엔 내가 언제 나타나고 사라지는지 규칙을 물었지…… 그러니 문제는 코러스가 아니야. 나는 네가 내 존재를 믿었으면 좋겠어!”
   “아버지, 무슨 말이세요?! 내가 아버지의 존재를 못 믿는다고 생각하시는군요?!”
   “너는 믿고 있어, 네가 믿는다는 걸 알아! 그렇지만 네 믿음은 더 강해야만 해!” 아버지가 소리쳤다. “다른 내 친구 유령들의 가족들은, 너처럼 소통했지만 무서워서 놀라고 말았어. 알겠니? 다음 날 아침에 잠에서 깨고선 스스로 말하지. 아냐, 이건 꿈일 뿐이야, 나는 미치지 않았어, 내 정신은 멀쩡해! 이게 얼마나 끔찍한지 아니?! 세계를 이성적으로 지각하는 것이 그들을 곤충이나 비현실적인 예술가, 작가, 철학자로 만들어 버리면서 그들을 짓누르고 어느 날 최종적으로 파멸시켜! 저승에서 우리는 이것에 대해 많이 말하지!”
   이렇게 인간의 운명과 사명에 대해 뜨겁게 논쟁하면서 우리는 공항에 도착했다. 아버지는 나를 탑승수속대까지 ‘데리고 갔고’ 우리는 다정하게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이 거대하고 터무니없지만, 여전히 멋있는 도시 모스크바에서 내게 가깝고 소중했던 사람 모두를 떠올리기 시작하면서 나는 갑자기 그들 모두가 자신을 믿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어떤 지시에 따라 마치 그래야 하는 것처럼 결혼하고 모스크바에 남거나, 아니면 자신의 뇌를 흐리게 하고 자신의 무력감을 정당화하는 포도주를 끊임없이 마셔댄 것이다. 나는 홀로 그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그래, 우리가 또 언제 볼지는 모르지만 울기라도 하자고! 누군가 내게 말을 걸어 정신을 차려보니, 얼굴이 발그스레한 긴 속눈썹의 스튜어디스가 안전띠를 매라고 부탁했다. 그러고서 나는 또 잠이 들었다. 요즘 내게 부족했던 깊고 평온한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알마아타의 집이었다. 내 여자 가족들인, 어머니와 어머니의 친구 데카 아주머니, 누이들이 나를 둘러싸고 소리 지르고 떠들어대면서 내 걱정을 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인간의 의식은 정말 기묘하게 작용한다.
   “이거야, 오로라!” 데카가 엄마에게 말했다. “러시아 여자애들이 우리 고려인 청년을 못살게 굴었어! 거기서 그 애들이 네 아들 호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얘가 학기 중에 학교를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왔잖아, 생각도 못했어!”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세요, 데카 아주머니?” 결국 나는 소리치고 말았다. “어떤 여자애들 말하는 거예요?”
   “난 알지! 정보원이 말해 줬어!” 그녀는 능글맞게 내게 눈짓을 했고, 나는 불안해져 우리 대학에서 공부한 알마아타 출신이 또 누가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이제 어쩌지?” 어머니는 무거운 짐을 대하듯 나를 바라보면서 지친 한숨을 내쉬었다.
   “친근한 한국적인 것, 뿌리로 되돌아가게 해!” 아주머니는 자신이 무엇을 말하는지도 모르면서 말을 내뱉었다.
   “그게 어딘데?”
   “맞아, 고려인 극장도 있지! 마침 집에서 멀지도 않네.” 그녀는 곰곰이 생각했다. “때마침 지난주에 친구들과 함께 「정조를 지킨 춘향」을 보러 갔었지. 그래, 괜찮았어. 완전히 좋았다니까! 별로일 것으로 생각했지만…….”
   “하지만 무슨 자격으로 거기에 갈 수 있을까? 이게 문제네!” 어머니가 냉철하게 되물었다.
   “내가 알아요!” 자기 일로 방을 들어왔다 나갔다 하던 누나가 갑자기 소리쳤다. “내가 거기 어린이 연극 학교에 갔었거든…… 배우를 하는 친구에게 물어봐야겠어. 하지만 거기엔 자기들 기술 요원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래, 정확하게 물어봐!” 데카가 기뻐했다. “호야, 너 배우는 안 할 거지?”
   “맞아! 배우가 되는 것도 있었지!” 어머니가 주저했다. “그래도 나는 결사반대야!”
   “내가 여러분들 극장으로 가서 일하길 원하는지 먼저 물어봐야 하는 거 아녜요?!” 여자들의 왕국인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깨달은 내가 드디어 반박했다.
   “넌 원해, 원하고말고!” 다른 도시에서 공부하려고 계획하는 누나가 웃었다. “글쎄, 내가 네게 좋은 일 하나 하게 해줘. 오랫동안 보지 못할 거잖니! 거기 정말 좋아, 항상 축제고 창의적인 분위기에다 흥미로운 사람들이 있어, 믿어봐!”
   그리하여 며칠 후 누나의 소개로 나는 무대에서 사용되는 음향이나 조명 같은 모든 기기를 수리하는 고려인 극장의 기사로 취직했다. 거기서 내게 방을 내주었는데, 기계 설비로 가득 찬 옷장 같은 작은 방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앰프나 반사등 같은 것을 한 번도 수리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나에겐 비밀이 하나 있었다. 나는 이런저런 기기들을 고치거나 조율하기 위해서는 인간적으로, 마음으로 그것들과 합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작동하는 모든 기기는 자신의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발견하고 어떻게 응답을 구하는지를 완전히 알지는 못했다. 또 가장 인적이 드문 곳에서 기계들을 살펴보고 다정하게 바라보고 조용히 만지는 동안, 그것들은 당황해서인지 아니면 상호교감이 일어나서인지 내게 마음을 열었다. 여자들처럼? 글쎄,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다! 작은 쇳덩어리들이 여자는 아니지만 둘 사이엔 어떤 공통점이 있었다.
   그리고 몇 분이 지나면 나는 장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왜 지금 작동하지 않는지, 어디서 고장 났는지, 고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이 교감이 된 기기를 조용히 수리하기 시작했고, 부품이 부족하면 연출부 책임자에게 알렸다. 그러면 그는 내게 돈을 주었는데 항상 부족한 금액이어서 나는 도시 변두리의 고물 시장으로 가서 흥정해야만 했다. 대개 여기서 반나절이 지나갔다.
   작은 방에는 창문이 없었기에 문을 열어놓고 일해야 했다. 남녀 배우들은 복도를 따라 분주히 오가면서 종종 내 방문 앞에 서서 나와 인사를 했고, 담배를 피우면서 대화를 나누곤 했다. 데카 아주머니가 나를 고려인 극장에 취직시켜 주려고 했던 이유 중 하나가 내가 뿌리를 찾기를 바랐던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실제 내가 여배우 중 고려인 아가씨와 만났으면 했다는 것이다. 어째서인지 데카 아주머니는 여배우들이 모두 착실해서 갑자기 부는 산들바람에도 진짜로 얼굴이 빨개진다고 생각했다.
   “아, 아주머니는 완전히 틀렸어!” 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기 시작했다. 먼저, 골초인 여배우들은 거의 남자 목소리같이 쉰 목소리로 말했는데, 이것은 그들의 귀여운 외모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두 번째로, 거의 모든 여자 대부분이 나이가 많을수록 더욱 말투를 자제하지 않았는데, 대개 자신들의 이런저런 동료에 대해 말하면서 되는 대로 욕을 해댔다. 세 번째는 여배우들 대부분은 두 명의 남편이 있었는데, 하나는 그들의 말을 빌리자면 저쪽에 있는 공식적인 남편이고, 다른 이는 그녀들과 순회공연을 함께 다니거나 그냥 극장에서 사귀는 극장의 남편이다. 만일 낙천적인 데카 아주머니가 이런 문화를 알았다면 여기서 기절초풍했을 것이다. 또 정신을 차리면 이 가식적인 세계에 대해 순진하면서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견해를 버렸을 것이다. 아버지가 옳았어요! 하지만 무엇보다 여자 배우들과 남자 배우들은 자신들의 예술 감독인, 극장의 총감독을 험담하곤 했다. 비록 매우 평범한 계기였지만 어느 날 결국 나는 그 사람과 알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극장에서는 손대는 모든 것을 되살리고 수리하는 나를 다정한 명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결국 이것은 총감독의 귀에 들어갔다. 그는 자기 집에 쌓인 모든 망가진 가전제품을 끌어모은 뒤 나를 불렀다.
   “어서 오게, 젊은이! 자, 앉아서 자신에 대해 말해 보시게. 자넨 누구고, 뭘 하는 사람이지?” 올레그 볼보노비치 김은 내가 찾아갔을 때, 편안하고 소탈하게 내게 말을 걸었다. 이 편안함 때문에 곧 격식이 없는 자유로운 대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특히, 큰 키와 날씬한 몸매, 하얀 얼굴의 잘생긴 올레그 씨는 로맨틱한 연애 주인공 역을 연기했던 전직 배우였다. 또 그는 그런 배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기도취에 빠진 나르시시스트가 아니라, 섬세하고 사려가 깊지만, 동시에 충동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내가 북한에서 태어난 사실이나 아버지와 헤어진 것, 모스크바 학교 생활, 영적 탐구에 대해 말할 때 깜짝 놀랐고, 심지어는 벌떡 일어나 몸짓을 하면서 걱정하기도 했다. 지상에서 생각하고 느끼면서 살아가는 사람 모두는 영적 탐구를 했거나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극장의 공연 목록으로 이어졌다.
   “혹시 그런 연극도 있는지요?” 나는 마치 이 극장의 심사위원이자 관객인 것처럼 총감독에게 말했다. “소련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아닌 고려인, 즉 고려사람을 제대로 묘사하는 그런 연극 말입니다.”
   “사실은 중요한 질문이네.” 올레그 씨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요컨대, 우리 한국 고전들이 있지. 옛날 고전 소설이나 이야기들이야. 또 카자흐스탄에 살고 있어서 카자흐스탄 고전도 있어. 그러나 고려사람에 대한 연극은 없어…….”
   “어떻게 없을 수가 있죠?!” 나는 정말 놀랐다. 이건 마치 태양이 뜨지 않는다거나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다거나, 처녀가 사랑의 고민이 없다는 말을 들은 것만 같았다.
   “바로 그거야!” 총감독은 맞장구를 쳤다. 여배우들의 이야기가 갑자기 생각났다. 그는 겨우 1년 전에 책임자로 왔는데,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문화부 발령이 아니라 동료들의 자유 투표로 선발되었다. “잊지 말게, 호군, 바로 얼마 전에 모든 소수민족이 소외되었던 제국이 무너졌어. 우리 고려사람들은 도무지 어떤 창작도 생각하거나 상상할 수 없었지. 하지만 계획이 있어.”
   “있습니까? 다행입니다!” 나는 그와 고려인 극장을 위해 진심으로 기뻐했다.
   “이건 고전에 기초하고 있어서 문화부에서 허가를 쉽게 받을 수 있을 거야.” 올레그 씨는 혼잣말하듯이 말하더니 불현듯 물었다. “자네는 󰡔홍길동전󰡕을 읽어 보았는가?”
   “아닙니다!” 예전에 한국 작품은 하나도 읽지 않았기에 나는 솔직히 대답했다.
   “어떻게 안 읽을 수 있지? 자네는 고려인이잖아!!” 올레그 씨가 놀랐다. “이 명작을 서둘러 읽게나.” 그는 갑자기 일어나서 책장으로 가 선반에서 값비싼 책을 집었고, 내게 그것을 건넸다. “자네가 이걸 다 읽으면 우리 대화를 계속하지! 약속하겠나?” “예!” “그리고 또.” 총감독은 미안한 듯 말을 이으면서 책상 아래로 들어갔다. “여기 자네가 고칠 가전제품들을 모아두었네. 가져가겠나, ‘다정한 명인’ 양반? 여배우들이 자네를 이렇게 부르더군.” “주십시오. 모두 고치겠습니다!” “그래도 자네가 집까지 들고 가지 않게 차로 데려다주겠네.” 그는 잠깐 생각한 뒤 이렇게 말했다. 호출 버튼을 누른 뒤 그는 운전기사를 불렀다. 그렇게 해서 그날부터 나는 계속 허균의 󰡔홍길동전󰡕을 읽었다. 줄거리는 이러했다. 중세 조선에서 고관대작과 하녀 사이에서 태어난 홍길동은 신분이 낮은 중인 계급의 사람으로 인식되었고 전 생애 동안 저항하면서 자신이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라고 주장했다. 그는 부자를 약탈했고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었다. 그런 까닭으로 권력에 쫓기게 되었고, 결국 왕과 만나 자신의 전 생애를 이야기한다. 왕을 감동시킨 그는 그 후 고국을 떠나 두 명의 아름다운 아내와 추종자들과 함께 신비의 섬 저도에 자리 잡는다. 이 소설에는 요술과 신비주의가 가득 차 있는데, 길동은 조정을 피해 7명의 분신을 만들고 하늘을 날면서 바람을 이용하여 귀신들과 싸운 뒤 미녀와 다른 사람들을 괴물로부터 구해 낸다. 밤마다 저녁 이후 나는 좋아하는 작은 방에 숨어서 책을 읽었다. 옆에는 망자가 된 아버지가 함께 계셔서 내가 책을 읽으면서 감탄할 때 말을 덧붙이곤 했다. 아버지는 소설과 작가는 한국에서 큰 인기가 있으며, 내가 예전에 그것에 대해 아무 이야기도 듣지 못했던 것은 내 교육, 아니 러시아화된 고려인 모두가 가지는 교육의 문제라고 하셨다. 이 러시아화된 고려인들은 홍길동과 같이 취급되거나 신분이 낮은 사람들로 취급될 수 있으며, 자신의 모국어도 모르고 문화도 모르는 열등한 사람들이 될 수 있다고 하셨다. 맞아요, 맞아. 나는 아버지에게 맞장구치면서 책을 계속 읽었다.
   다음날 나는 극장으로 곧장 뛰어가서, 올레그 씨를 그의 방에서 만나 허락도 구하지 않고 읽은 책에 대한 나의 감상을 기관총 쏘듯 바로 쏟아내기 시작했다.
   올레그 씨는 기뻐했다! 우리 고려사람들은 홍길동이며, 열등한 이류의 사람들이라는 내 생각에 그는 바로 동의했다. 그래서 그는 이 멋진 소설을 자기 경력에서 가장 중요한 공연으로 선택했다. 그러나 아직 여러 곳에서 소비에트식 검열이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그 주요 사상을 감추는 어떤 우화적 언어를 생각해 낼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그의 직업적 문제여서 그는 모든 작업을 실행하고 완수해 낼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공연 허가를 받고 이를 위한 자금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때때로 우리는 논쟁을 했지만, 항상 탄복하면서 서로 바라보았고 거의 모든 장면에 대해 생생하고 뜨겁게 의견을 나누었다. “자네는 홍길동과 임금의 대화 장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이렇게 묻고 올레그 씨는 표현성을 더 드러내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네 얼굴을 충분히 살펴볼 기회가 없었노라, 임금이 말했다. 달빛 아래지만, 지금이라도 나를 보시오. 길동은 얼굴을 들었지만, 눈을 뜨지는 않았다. 왜 너는 눈을 감고 있는 것이냐? 내가 눈을 뜨면 당신은 놀라 겁을 먹을 것이오. 그러자 임금은 이해했다. ‘이 자는 정말로 다른 세상에서 온 자가 분명하구나!’ 자?! 신비로운 의미들이 가득 찬 마법 같은 장면이지!! 그렇지 않아? 그럼 왜 길동이 눈을 뜨지 않았다고 생각해?” 올레그 씨는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자신의 정을 감추려는 것이죠.” 나는 조용히 말했다. “더 정확하게는, 정에서 생겨난 슬픔을!”
   그러자 올레그 씨는 감탄하여 나를 바라보고는 멈추었다. 침묵은 오래 지속되었고, 배우인 그가 무언가를 연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나는 불안해져 이 침묵을 깨고 싶었다. 그때 올레그 씨는 벌떡 일어나 내 어깨를 들어 올려 꽉 안았다.
   “정말 잘했어! 나도 그 생각을 못했는데! 들어봐!” 그는 내게서 한 발짝 떨어져서 나를 바라보았다. “네가 직접 홍길동 역을 하면 어떨까?”
   “제가요?! 근데 저는…….”
   “배우가 아니라고?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제한적인 연기 교육을 받은 아마추어 출신이야!”
   그런 다음 그는 정말 충동적으로 전화기 앞으로 달려가 전화를 걸어 밀라가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내가 이해하기로 그녀는 병원에 있다는 것 같았다.
   “젠장! 알았어, 괜찮아!” 그는 외쳤고, 나에게 내일 아침 10시에 찾아오라고 지시했다. 나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와 리허설을 하게 되었다.
   “벌써?!” 놀란 나는 다른 기구들을 수리하러 자신의 작은 방으로 갔지만 생각이 오락가락했다. 거긴 어떨까? 어떻게 될까? 잘될까? 떨렸다. 그래서 점심을 먹고 나는 장비를 위한 부속을 구하려는 듯 집으로 갔고, 어떻게 작품을 연기할 건지 상상하면서 소설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 10시에 나는 이미 예술 감독의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나는 밤새도록 읽고 연습했는데, 더 정확하게는 올레그 씨가 어떤 부분을 선택할지 몰라 텍스트를 통째로 외웠다. 그래서 늦게 일어나 집에서 아침을 미처 못 먹었기에 상냥한 여비서가 내게 차를 권하자 나는 기꺼이 수락했다. 그리고 내가 뜨거운 차를 조금 마셨을 때 올레그 씨가 밀라로 보이는 어떤 귀여운 아가씨와 함께 들어왔다. 그는 나를 보고는 손을 흔들어 우리를 서로 인사시켰다. 우리는 다시 입구로 나가 리허설장으로 갔다. 가는 길에 올레그 씨는 우리에게 설명했다.
   “밀라는 ‘백룡’의 딸을 연기해. 그녀는 길동에게 고향으로 보내 달라고 부탁하고, 너, 길동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놀라 당연히 그녀에게 약속하는 거야.”
   “그럼! 시작합시다!” 올레그 씨가 강당에서 손을 흔들었다. “호, 너는 지금 처녀의 가면 밑에 율동 괴물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녀에게 칼을 휘두르는 거야. 그리고 밀라, 너는 애원하는 거고. 시작!”
   그리고 사나운 표정을 한 나는 아름다운 처녀에게 칼을 쳐들었고, 확실히 준비된 밀라는 몸을 웅크리고 손을 가슴에 올린 채 애원했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살려주세요! 우리는 사람입니다! 괴물들이 우리를 붙잡아 죽이려고 했어요. 그러나 하늘이 우리를 불쌍히 여겨 영웅이 와서 괴물들을 무찌르고 우리를 죽음에서 구해 주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사샤, 시작해!” 올레그 씨가 다시 손을 흔들었다.
   “뭘 말해야 하죠?” 혼란스러워진 나는 물었다. 이 장면에서 내 대사는 없었기 때문이다.
   “뭐든 나오는 대로! 즉흥적으로 해!” 그는 능글맞게 웃으면서 말했다. 즉, 수영을 할 줄 모르는 나를 바로 바다에 집어 던진 것이다.
   그리고 이때 공포에 사로잡힌 나는 말하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밀라, 괴물은 무엇보다 우리 안에 존재하고 있어. 아니 이건 부주의한 우리 부모들과 나쁜 환경, 기만적인 사회가 만들어 낸 우리의 공포이지. 기사이자 영웅인 나는 내게도 있는 이 공포를 네게 알려주고, 내면의 위험과 질병에서 너를 건져내서 서로 손을 잡고 구원의 길로 함께 갈 거야. 먼저 이 공포를 제거하고, 다음에는 서로의 사랑과 신뢰로, 서두르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씩…… 밀라를 바라보면서 나는 모스크바에 남겨둔 마리야를 상상했던 것 같았다. 아직도 그녀에 대한 정이 남아 있었기에 바로 잊을 수 없었던 그녀를. 독백을 마치며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땐, 여배우와 올레그 씨는 놀라서 입을 벌린 채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브라보!” 올레그 씨가 박수를 치기 시작하자 밀라도 그 뒤를 따랐다. “모든 것이 잘될 거야! 이제 확실히 알겠어!”
   여기서 리허설은 끝났다. 올레그 씨는 우리에게 이제 기다리기만 하라고 지시했다. 곧 한국에서 영향력 있는 사업가와 극장 연출자 대표단이 올 텐데, 올레그 씨는 그들을 마중하고 극장으로 안내해서 고전 연극 「춘향전」을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공동 계획을 논의할 것이다. 물론 올레그 씨는 자신의 주요 기획인 홍길동 공연을 소련 고려인의 처지에서, 그리고 최근에 밝혀진 고려인 생존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들과 함께 설명할 것이다.
   우리는 참을성 있게 그냥 기다리기로 했다. 모든 것은 2주 안에 결정될 것이다. 나는 다시 기기를 수리하는 일상의 일로 되돌아갔다. 나는 생각했다. 만일 인간도, 인간의 뇌나 영혼이나 의식도 이렇게 간단하게 수리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내 작은 방이 가장 외진 곳에 있었기 때문에 여배우들은 다시 내 방문 앞을 오가면서 담배를 피웠고, 극장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말했다. 특별히 호기심을 가지고 이곳저곳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었기에 이건 매우 편리했다. 여배우들은 내일 그 대표단이 온다는 둥, 극장에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난다는 둥, 모두가 닦고 광을 내고 씻고 있다는 둥, 불필요한 사람들은 오지 말라고 했다는 둥, 공연이 있을지 모른다는 둥 떠들어댔다. 그리고 그날이 되었고, 모든 것이 잠잠해졌다. 나는 항상 그렇듯이 문을 활짝 열어놓고 다음 차례의 앰프를 고치고 있었다. 그러나 종일 아무도 내게 들르지 않았고,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나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무대나 행정실로 직접 가지는 않았다. 누구도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음날이 되어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올레그 씨가 아니라도 대기실에서 나오는 누구든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그의 사무실 방향으로 가 보았다. 실제로 나는 복도에서 밀라를 만났는데, 어떤 걱정에 휩싸인 그녀는 처음에는 나를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다.
   “밀라!” 나는 그녀를 불러 세웠다. “당신의, 아니 우리의 일이 어떻게 되어가나요?”
   밀라는 나를 보고는 재빨리 다가와서 눈도 마주치지 않고 나를 꽉 껴안더니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그녀의 말에 따르면 모든 것은 조금도 틀림없이 계획대로 되어가고 있었다. 존경하는 대표단을 위해 관객 없이 특별 연극이 상연되었고 모두가 좋아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 고무된 올레그 씨가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하자, 대표단은 그의 말을 끊고 먼저 한국의 대표단이 제안하는 연극을 공연하라고 말했다. 한국 대표단이 이제 극장을 후원하고 지역 협력자들을 통해 극장을 운영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만일 비용이 남는다면 그때 「홍길동전」 공연을 위해 주겠다는 것이다. 또 그들은 발언 마지막에 「홍길동전」은 낡고 오래되어 정말 긴요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어떻게 긴요하지 않다는 것인가? 올레그 씨가 그들에게 반론하려 했으나 누구도 그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이제 뭘 해야 하죠?” 실망한 내가 물었다. 그녀가 말없이 머리를 숙이고 있는 것을 보면서 덧붙였다. “올레그 씨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보드카를 마시고 있어요…….” 밀라는 작게 말한 뒤 울기 시작했다. 인사도 없이 그녀는 가버렸고, 나는 내 작은 방에 돌아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니, 나는 물론 무언가를 했었고, 누군가와 대화도 나누었다. 하지만 이제 무엇을 기대해야 하고 꿈꿔야 할지 모른 채 내적으로 얼어붙고 말았다. 며칠 후 나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분장한 여배우가 갑자기 나를 찾아와 지껄이기 시작했다.
   “뉴스 들었어? 끔찍해, 끔찍해! 정말 끔찍해!”
   “뭐야? 말해 봐! 무슨 일이야?”
   “우리의 홍길동이 도망쳤어!”
   “어디로 도망쳤다는 거야? 왜 도망쳤어?” 나는 손에서 인두기를 떨어뜨렸다.
   “한국 돈을 가지고 밀라와 함께!”
   “무슨 돈?”
   “한국 사람들이 제작비로 준 돈 말야!”
   “맙소사!” 프로젝트 전체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자 신음이 나왔다. 긴장하여 작은 방에서 이리저리 서성이다 더 이상 일할 기분이 아니어서 집으로 가버렸다. 다음 날, 권투 선수처럼 보이는 운동복을 입은 건장한 남자들이 나를 찾아와 내 방을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죄송하지만 무슨 일이죠?” 건방지고 거만한 그들은 내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에 나는 겨우 용기를 내어 물어보았다.
   “공돌이 동지…….” 마침내 외모와 옷차림으로 볼 때 책임자로 보이는 누군가가 대답했다. 그는 재킷을 입은 유일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한국 사업가들의 파트너이며 오늘부터 극장의 새로운 경영진을 대표해. 나는 채 씨고 이쪽은 내 팀이지.”
   그러고 나서 그들은 무언가를 논의하기 시작했는데, 대화의 요지는 공간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장비를 수리하기 위해 그대로 둘 것인지 따위였다.
   “노년층을 위한 작은 강당으로 만드는 것은 어떻습니까?” 무리 중 누군가가 제안했다. 나는 강도들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이건 그냥 작은 창고잖아요!”
   “넌 노인들이 극장에 간다고 생각해? 글쎄, 아직 살아 있다면 두세 명일 테고, 이 방이면 충분할 거야.”
   “그럼 지금 무대는 어쩌려고요?”
   “거기엔 카지노를 만들기로 했어!” 채 씨가 외쳤다. “극장은 수익이 있어야지! 극장 휴게실에는 디스코장도 설치할 거야!”
   “의상실과 소품실도 있지요!” 권투 선수처럼 머리를 민 다른 사람이 참견했다.
   “뭐라고요?”
   “저 안에 데이트 룸도 만들 거야! 말하자면 섹스를 위한 것이지! 이 공간들이 벌 돈을 생각해 봐!”
   그러자 모두가 이미 그렇게 되기라도 한 듯 웃었다.
   “아무렴, 너희들은 씩씩한 진짜 채씨파지! 내가 너희를 괜히 훈련시켰겠어? 만족한 채 씨는 권투 선수의 자세를 취하면서 주먹을 날렸다. 이건 분명히 세리머니였고, 모두가 그의 기분을 맞추었다. “이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의 문화부에 새로운 연극 프로그램을 교양 있게 알리는 거지.”
   “장관에게 돈을 좀 줘, 여기서 바로 교양을 빼앗길 거야!” 대머리가 말하자 모두가 다 함께 웃었다.
   마침내 패거리는 내게 조금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방을 나갔다. ‘공돌이’인 나는 마치 쥐, 바퀴벌레처럼 짓밟고 던져버려도 되는, 그들이 무서워 벌벌 떠는 사람 같았다. 그리고 나는 정신을 차리려고 몇 분 동안 기다렸다가 극장으로 갔다. 먼저 강당을 어떻게 정비할지 논의하고 있던 또 다른 ‘권투 선수’들이 있는 무대를 바라보고는 다른 채씨파 무리가 들어간 사무실로 갔다. 그들의 수는 정말 많았다. 새 가구와 책상, 의자, 책장과 금고가 들어서 있었다. 어쩐 일인지 이전 직원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이것은 공포였다. 그들 모두는 변화의 거센 바람에 휩쓸려 사라진 것 같았다.

참고자료

1) 이 글은 미발표 중편 소설 「다정한 사람의 수기」 중에서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2) 여기서 코러스는 오늘날의 합창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 등장하는 여론을 전달하는 합창단을 의미한다. 합창단에 의해 주인공의 행동이 결정된다. 여기서 유령-망자들은 살아 있는 사람의 주위에 머물면서 코러스처럼 주인공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

번역정보

번역 : 김홍중 (러 → 한)

필자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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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르 강은 1960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알마아타 국립 물리 및 수학 학교, 모스크바 전자 기술 대학, 고리키 문학 대학을 졸업했으며, 『가족의 시대』, 『태어나지 않은 자의 꿈』, 「보이지 않는 섬」, 『한낮의 책』, 『조국』 등 산문 작품을 발표했다. 여러 국제 문학상을 수상했다. 1993년 러시아에서 『의상사』, 「새로운 이름」, 「바냐 아저씨 선집」이 최우수 단편소설 수상, 1999년 독일 Nipkow Programm에서 『다른 하늘』이 러시아인 독일 이주자의 삶에 관한 최우수 각본상 수상, 2003년 대한민국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연기』가 해외 동포의 삶에 관한 최우수 각본상 수상, 2006년 미국 미시간대학교 한국학센터로부터 「제3의 햄릿」이 고려인에 대한 최우수 수필, 2013년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로부터 『영속적인 호출: 북한으로의 귀향』이 고려인에 대한 최우수 수필상을 수상했다. 현재 알마아타에 살고 있다.
* 사진제공_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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