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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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상전이

김중명

   1.

   일요일인 만큼 연구실 안은 한산했다. 각자의 책상으로 향하고 있는 몇몇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며 황보지아(皇甫芝娥)는 안쪽에 있는 자신의 책상으로 향했다. 책장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마스코트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은 뒤, 컴퓨터를 켰다. 책상 위에 흩어져 있는 소품들을 피해 키보드를 눈앞에 가져왔다. 지아의 책상 위는 주변 책상에 비해 물건이 아주 많고 어수선하다. 원래부터 정리정돈이 서툴렀다. 작업을 시작하려는데 연구실 구석에 있는 실장의 책상에서 조교인 야스모토(保本)가 말을 걸어왔다.“오늘 꽤 치장 좀 했네. 오늘 무슨 일 있어?”넓은 이마가 얼굴 기름으로 번들거렸다. 40대 중반일 텐데 머리카락이 후퇴하기 시작했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일요일, 공휴일 관계없이 거의 매일 연구실에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연구실에서 묵는 일도 흔하다는 이야기였다.
   지아는 야스모토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친구 결혼식이 있어서…….”
   “그렇구나. 그런데 시뮬레이션은 어떤 상태야?”
   디스플레이 쪽으로 눈을 돌리며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별로 좋지 않아요.”
   “어느 정도 진행됐지?”
   “제가 맡은 부분은 중반 정도 끝났습니다. 결과는 참담합니다. 지금부터 다음 파라미터를 세팅하고 있습니다.”
   “음…… 노무라도, 사토도, 우치야마도 아직 결과를 내지 못한 것 같아. 이번 모델은 잘 될 거라 생각했는데…….”
   최근 세포에 열이나 압력 등의 스트레스를 가하면 액포가 생기는 현상이 주목받고 있었다. 액(液)-액(液)의 상전이(相転移)다. 상이라는 것은 물질의 안정된 상태를 의미한다. 전형적인 상전이로는 물이 얼음이 되거나 물이 수증기가 되는 현상이 있다. 세포 내에 생기는 액포는 액체에서 액체로의 상전이로 여겨진다. 그러나 어떤 구조로 액포가 형성되는지, 그리고 그 액포가 대체 무슨 도움이 되는지에 관해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세포 내에는 엄청난 양의 세포소기관이나 단백질 등의 거대분자가 존재하며 이들이 일으키는 화학 반응의 연쇄가 생명이라 할 수 있다.
   예전에는 IBM의 컴퓨터처럼 반응이 순차적으로 일어난다고 여겨졌다. 컨트롤센터의 지령에 따라 세포소기관이나 거대분자가 정연하게 반응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 지령은 자연도태에 의해 디버깅된 완벽하고 아름다운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진행된다. DNA가 발견됐을 때는 DNA야말로 컨트롤센터이고 DNA 안에 완벽한 프로그램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군대처럼 사령부의 명령에 따라 세포 내 소기관이나 거대분자가 정연하게 움직이는 것이 세포라는 것이 상식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알아봐도 세포 내에 컨트롤센터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DNA는 단순한 데이터뱅크일 뿐 반응을 통제하는 프로그램 같은 것은 거기 없었다. 엄청난 수의 세포소기관과 거대분자들이 각자 근방의 정보만을 바탕으로 제멋대로 하고 있을 뿐이다. 거기에 있는 것은 문자 그대로 혼돈이었고, 그곳에는 도저히 질서 같은 것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혼돈이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생명이었던 것이다. 도대체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근대 과학은 데카르트 이후 환원주의의 대승리로 크게 전진했다. 즉, 현상을 최대한 잘게 분해해 그 하나하나의 본질을 찾아내는 방향이다. 그러나 물리학에서 거침없이 활약했던 환원주의도 생명 같은 복잡한 현상에는 당해 낼 수 없었다. 생명 같은 복잡한 현상은 하나하나의 요소가 서로 영향을 미치며 전체를 형성한다. 그래서 그것을 하나하나의 요소로 분해해 버리면 열쇠가 되는 상호 영향을 무시하게 되기 때문에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엄청난 양의 요소가 서로 영향을 미쳐 전체를 형성하는 현상을 복잡계(複雑系)라 부른다. 환원주의로는 이해할 수 없는 복잡계의 존재를 인류가 알게 된 것은 반세기쯤 전의 일이다. 무수한 요소에 의해 형성되는 현상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부분 재미없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물 분자 집합의 경우 얼음처럼 고정되어 있어 변화가 거의 없는 상태이거나 혹은 액체인 물처럼 아무 질서도 없이 혼돈으로 변해 버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온도라는 파라미터가 융점 근처의 어떤 특정 조건을 충족했을 때, 눈(雪) 결정과 같이 예술적이라 불러야 할 놀라운 상태가 나타난다. 눈의 결정은 둘로서 같은 것은 없고, 무한한 저편까지 자기 상사를 반복하는 프랙털 구조로 되어 있다. 물 분자라는 동일한 요소의 모임에 불과한 것이 어떻게 이런 복잡한 구조를 갖게 되는지 참으로 신기한 현상이다. 이를 ‘창발(創發)’이라 하며, 창발이 일어나는 순간을 ‘카오스의 가장자리’라 부른다. 살아 있는 세포와 같은 복잡계는 스스로를 카오스의 가장자리로 몰아넣어 창발을 상태화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는 알 수 없다.
   세포를 살려두기 위해서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사소한 일로 세포는 죽고 만다. 죽은 직후의 세포와 살아 있을 때의 세포는 그것을 구성하는 물질이라는 관점에서는 거의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쪽은 죽었고 다른 한쪽은 살아 있다. 존재로서는 전혀 다른 것이다. 구성된 물질은 동일해도 물질 간의 관계는 다르다. 다만 어떻게 다른지는 전혀 알 수 없다.
   인류는 복잡계를 연구하는 방법론은커녕 복잡계를 표현하는 수학조차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복잡계를 연구하는 방법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 컴퓨터 시뮬레이션이다. 그러나 세포 내에 존재하는 세포소기관이나 거대분자의 수는 초천문학적인 양이 된다. 아무리 고성능의 컴퓨터를 가져와도 컴퓨터 안에서 그것들의 움직임을 완전히 재현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래서 어떤 현상에 주목해 그것을 모델링하는 방향으로 연구가 진행되는 것이 보통이다. 말하자면 컴퓨터 안에 장난감 세포를 만들고 그것을 해명함으로써 생명 현상의 수수께끼에 접근하려는 시도다. 액-액상 전환도 그 방향으로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야스모토가 어떤 모델을 제창했을 때, 연구실 내에서는 열광했다. 누구라도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액-액상 전환의 수수께끼가 풀릴 거라는 희망을 품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삼 년이 지났지만 야스모토 모델은 아직 작동하지 않고 있다. 몇 가지 문제점이 지적되며 수정이 거듭됐다. 그리고 지금 생각할 수 있는 다양한 파라미터에 실제로 야스모토 모델을 적용해 보는 작업이 노무라(野村), 사토(佐藤), 우치야마(内山) 그리고 황보지아, 네 사람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희미한 땀 냄새가 지아의 콧속을 덮쳤다. 야스모토가 지아의 디스플레이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제멋대로 난 수염이 눈에 띄었다. 어제도 샤워조차 하지 않은 채 연구실에서 묵은 것 같았다. 최근 야스모토의 얼굴에 초조한 기색이 역력히 드러나게 되었다.
   야스모토가 입을 열었다.
   “이걸로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나?”
   지아가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글쎄…… 이거라도 해보지 않으면 모르니까요.”
   “그 차이는 극히 미미하지만,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 그런 일의 반복이었으니까.”
   “그 하늘과 땅 사이 어딘가에 행복의 나라가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있어. 무조건 거기 있어!”
   지아는 야스모토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야스모토는 멋쩍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 결과가 나오는 건 언제지?”
   “다음 주 안에는, 어떻게든.”
   “제발. 이렇게 되면 하나님에게든 누구에게든 기도하고 싶은 기분이야.”
   후후 하고 웃으며 지아가 말했다.
   “기도드리는 신 같은 건 없으시잖아요.”
   야스모토의 종교 혐오는 유명했다. 어머니가 어떤 신흥 종교에 집착하는 바람에 가족이 무너진 사연을 들은 적이 있었다.
   “뭐, 그렇지?”
   가볍게 손을 들어 지아에게 답한 뒤 야스모토는 자신의 책상으로 돌아갔다.

   2.


   지아는 도쿄 동쪽에 위치한 미카와시마(三河島)역에 내렸다. 일요일 낮 역 앞은 한산했다. 김치 냄새가 풍겨왔다. 이 부근은 재일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오사카의 쓰루하시(鶴橋)와 함께 재일한국인 양대 집주 지역으로도 알려져 있다.
   최근 도쿄 서쪽 신오쿠보(新大久保) 코리아타운에 관광객이 몰려들어 화제가 되고 있었다. 신오쿠보는 최근 한국에서 온 뉴커머로 불리는 한국인들의 집주 지역이지만 미카와시마는 해방 전부터 많은 재일동포들이 살았던 지역이다.미카와시마 출신 친구의 말에 의하면 제주도의 한 지역 친목회 기록에 그 마을 출신이 처음 미카와시마에 정착한 것이 1920년대였다는 기술이 있다고 한다. 제주도 사람들은 친척과의 관계가 특히 강했고, 그래서 그 사람을 중심으로 많은 친척들이 미카와시마에 살게 된 것이 미카와시마 코리아타운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복잡계에서는 초기 조건의 미세한 차이가 엄청난 결과를 일으킬 수 있다. 이를 나비효과라 부른다. 나비효과를 발견한 에드워드 로렌츠의 강연 제목 ‘브라질에서 한 나비의 날갯짓이 텍사스에서 토네이도를 일으킬 것인가’에 의해 이렇게 명명됐다고 한다.
   처음에 어느 제주도 출신이 미카와시마에 정착한 것은 작은 우연에 불과했지만, 그것이 오사카 쓰루하시에 이은 일본 제2의 재일한국인 집주 지역을 형성한 커다란 결과를 초래했다 생각하면 이 또한 나비효과의 한 예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지아는 역 앞 택시 승강장으로 향했다. 예식장까지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조금 늦어져서 택시를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식장은 미카와시마의 재일한국인 집주 지역 외곽에 있다. 택시로 가면 5분 정도이다.
   접수를 마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벌써 식사가 시작되었다. 일본인의 결혼식과 한국인의 결혼식 모습은 상당히 다르다. 일본인의 경우 식에서 하객 자리 위치까지 세세하게 정해져 있지만, 한국인의 결혼식은 그 부분에선 아주 너그럽다. 여기저기서 한국어가 들려왔다. 신랑도 신부도 재일한국인이기 때문에 하객도 한국인이 많을 것이다. 학부생 시절 지아는 재일한국인 동아리에 참여했다. 정치적 동아리가 아닌 재일교포 간의 친목을 도모하는 느슨한 동아리였다. 신부와는 거기서 알게 된 사이다.
   중앙 정면 테이블에 신랑 신부가 나란히 선 채 하객들의 인사를 받고 있었다. 인사를 하기 위해 하객 몇 명이 그 주위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 신부에게 인사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우선 어디 빈자리가 없는지 주위를 둘러보는데 뒤에서 말을 걸어왔다.
   “황보지아, 이쪽!”
   뒤돌아보니 홍미자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손을 들고 있었다. 미자도 지아와 같은 대학에서 연구하다 석사과정을 마치고 연구원으로의 삶을 포기하고 외국계 증권사에 취직했다. 작고 귀여운 인상의 여자지만 지금은 수면 시간이 부족할 정도의 격무를 견디며 바삐 일하고 있다고 한다. 연봉 천만 엔이 넘는다는 소문을 듣기도 했다.
   미자와 하이파이브를 하며 지아가 말했다.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여전하지. 지아는?”
   “매일 연구 삼매경인데 좀처럼 결과가 나오지 않아서 말이야.”
   미자가 주위를 둘러본다. 미자의 테이블에는 비어 있는 자리가 없었다.
   “쌓인 이야기가 있으니 나중에 차 마시자. 지금은 그쪽에 앉고.”
   미자가 얼굴로 옆 테이블의 비어 있는 자리를 가리키고 있었다.
   “응, 그럼. 식 끝나고.”
   옆 테이블의 빈자리에 앉았다. 이곳은 신랑 신부의 친척이 많은지 연령대가 꽤 높다. 자리에 앉자 곧바로 오른쪽의 남성이 맥주를 따라주었다. 머리카락은 반백색이고 정수리 부근의 머리는 꽤 얇아져 있었다. 사진에서 본 김구를 연상시키는 동그란 안경을 쓰고 있었다. 정면에서는 하객의 축사가 이어지고 있었지만, 거기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눈앞에는 진수성찬이 즐비해 있었다. 오늘의 요리는 중화요리였는데 테이블 옆에는 김치가 준비되어 있었다. 식장이 아닌 신랑 신부측에서 준비했을 것이다.
   이 테이블에는 지인이 없었다. 이야기할 일도 없었기 때문에 먹는 데 집중했다. 가난한 학생 신분으로 평소 입에 댈 일이 없는 진수성찬을 만끽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남성이 말을 걸어왔다.
   “혹시 자네의 아버지는 황보준남이 아닌가?”
   지아는 놀라서 얼굴을 들었다. 분명 지아의 아버지 이름은 준남이다.
   “네. 그런데요…….”
   옆자리의 남성이 빙그레 웃었다. 웃으면서 눈가에 주름이 생겼다. 그것이 사람이 좋아 보이는 인상을 주었다.
   “아니 아까 저기서 이야기 나누는 걸 들었는데……. 황보라는 성은 상당히 특이해서 말이야, 혹시 했지.”
   “저기…… 아버지를 아시나요?”
   “학창 시절 가장 친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자네가 황보지아인가? 그립군. 기저귀를 하고 있던 시절이라 기억할 리 없겠지만 자네를 안아본 적도 있다네.”
   그러자 남자는 지아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음, 눈가는 자네 어머니를 쏙 빼닮았군. 계희 씨는 잘 지내고 있나?”
   계희는 지아의 어머니다.
   “아, 네. 지금은 오빠와 함께 살고 있어요. 그런데 어머니도 아시다니…… 도대체 무슨 관계인가요? 성함을 여쭤봐도 될까요?”
   “아이고, 자기소개가 늦었군. 백도웅이라는 이름이네. 예전 재일한국인 학생 동아리가 있었는데, 준남과 계희 씨는 그곳에서 만났지. 계희 씨는 그 무렵 모든 사람들의 동경의 대상이었지. 빛나고 있었어. 준남과의 결혼이 결정되었을 때는 난리였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그 사건이 있을 때는 마침 해외에 있어서 말이야. 장례식에 참석할 수도 없었지.”
   지아가 어렸을 때, 지아의 아버지 준남은 마을 공장 사장으로 있었다. 할아버지가 일으킨 마을 공장인데, 대학 졸업 후 일을 이어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지아가 중학생 때, 제품을 납품하던 중 교통사고로 급사하고 말았다. 그 후 계희가 마을 공장을 어떻게든 꾸려 나갔고, 당시 대학생이던 오빠가 도우며 겨우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지금은 오빠가 그 마을 공장의 사장이 되었다.
   준남은 지아를 맹목적으로 사랑했다. 꾸중을 들었던 기억은 거의 없다. 함께 게임을 하거나 놀러 갔던 즐거운 기억뿐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도 했지만 지아가 아직 어려서인지 준남의 학창 시절 이야기는 전혀 들어본 적이 없었다.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도웅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자네는 아직 학생인가?”
   “생명과학 연구를 하고 있어요. 지금은 석사과정이에요.”
   지아가 대학 이름을 말하자 도웅은 눈을 크게 뜨고 미소를 지었다.
   “오, 그러면 자네는 내 후배군. 학부는 전혀 다르지만.”
   “선생님은 어떤 전공이셨어요?”
   “동양철학.”
   지아는 킥킥 웃어버렸고, 황급히 입가를 손으로 가렸다.
   지아의 대학은 제도가 조금 특이해 처음 2년은 교양과정으로 통합되어 있었고, 교양과정이 끝난 이후 진로를 정하게 되어 있었다. 입학할 때 대략 진로를 정해 두지만, 교양과정에서 전문과정으로 진학할 때 전혀 다른 학부로 옮기는 것도 가능했다. 극단적 경우에는 문학부에서 이학부나 공학부로 진학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교양과정에서의 성적순으로 허가를 받기 때문에 인기 있는 학과의 경우, 성적이 나쁘면 희망하는 학과에 진학할 수 없었다. 수많은 학과 중 가장 인기가 없는 것은 인도철학과였다. 실제로 인도철학과에 진학하는 사람은 절집 아들로 승려가 되길 희망하는 사람같이 극히 특수한 학생뿐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즉, 아무리 성적이 나빠도 인도철학과에는 진학할 수 있었다. 때문에 교양과정 학생들 사이에선 성적이 나쁜 학생을 야유할 때 ‘인도철학’을 짧게 한 ‘인철’이라는 은어가 쓰이곤 했다.
   현실에서 동양철학과의 인기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인도철학이 연상되어 무심코 웃어버린 것이었다. 지아가 웃는 것을 도웅은 눈치채지 못한 듯했지만, 어색함에 지아는 도웅의 컵에 맥주를 따랐다.
   “오, 고마워요. 그나저나 준남의 딸이 술을 따라주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네.”
   그렇게 말하며 도웅은 맛있게 맥주를 마셨다.
   “그때는 지금과 달리 차별이 상당히 심각했어. 재일 학생은 대학을 졸업해도 소위 대기업에는 취직할 수 없었지. 준남도 명문대를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동네 공장의 경영자가 될 수밖에 없었지. 본인은 바라던 바가 아니었을 거야. 나는 연구를 계속했지만, 역시 재일교포가 국립대학의 교수가 되는 길은 거의 막혀 있었지. 몇 번 좌절을 겪기도 했지만 운 좋게 사립대 교수가 될 수 있었어. 지금은 정년퇴직하고 유유자적한 나날을 보내고 있고.”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했다는 학생 동아리에서는 어떤 활동을 했었나요?”
   “당시 한국은 군사독재 정권하에 있었지. 일본 학생운동은 쇠퇴기에 접어들었지만 재일한국인 학생들은 한국의 민주화 운동에 연대한다면서 상당히 과격한 활동을 펼쳤었어.”
   “아버지나 어머니가 과격한 학생운동을 했다니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권력을 가지지 못한 자들의 운동은 의사 표시밖에 없을 거야. 집회나 데모로 자신들의 의사를 권력자에게 나타내는 거지. 한국에서는 심한 탄압 속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의사 표시를 행했어. 재일 운동도 기본적으로는 같지만, 일본에서 의사 표시를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은 항상 따라다녔지. 일본에서는 한국처럼 폭력에 의한 탄압은 없었지만, 겨우 백 명 남짓한 학생들이 모여 소란을 피운다고 한들 사회적으로 아무 영향력도 없는 것 아니냐는 공허함이 있었지. 가끔 도로에서 지그재그 데모를 해서 체포되는 사람도 나왔지만 말이야.”
   “선생님께서도 과격한 활동가셨나요?”
   “아니, 그게 그렇지도 않아. 계희 씨는 원래 운동에는 소극적이었고, 준남과 나는 전체 중에서는 겉도는 존재였어.”
   “겉도는 존재라니 무슨 뜻이에요?”
   “지금으로서는 믿을 수 없겠지만, 당시에는 일본 사회에도 건전한 층이 존재했었지. 시민운동도 활발했고, 다양한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어. 일본 사회가 진정 백치가 된 것은 나카소네 총리 시대 이후라고 할 수 있을 거야. 참으로 비열한 방법으로 노조를 탄압하고 정당한 발언을 하는 시민들을 사회의 적으로 규탄했지. 그 결과 건전한 시민이라 할 수 있는 계층은 무너지고 정치적 무관심이 만연하게 되었지. 지금 일본 정치는 부패 타락해 정치라 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이에 항의하는 일본 시민은 거의 존재하지 않지. 하지만 그때는 제대로 된 사람들이 아직 남아 있었어. 당연히 한국의 민주화 운동에 연대하자는 그룹도 있었고, 재일 학생들과 함께 행동하기도 했지. 그런데 뭐라 해야 할까, 일본인 시민운동에는 과거의 과격한 학생운동 경험자가 많이 있었고, 그들 대부분이 마르크스주의를 신봉하고 있었어. 너는 마르크스를 읽어본 적이 있니?”
   지아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한 권도.”
   “뭐 읽을 필요까진 없지만 말이야. 근데 당시에는 『공산당선언』 같은 책은 학생들의 필독서였다. 조금 옛날이야기지만 요도호 사건을 들어본 적 있니?”
   지아는 또다시 고개를 저었다.
   “모르는구나. 뭐, 무리도 아니지. 우리들이 활동하던 시절보다 십 년 정도 전의 일이니까. 일본의 학생운동 중 가장 과격한 그룹이 요도호라는 비행기를 납치해 북한으로 망명한 사건이야.”
   “대체 뭘 위해서요?”
   “일본 혁명의 기지를 북한에 건설하자는 목적이었던 거 같아.”
   “믿을 수 없네요.”
   “북한을 지상낙원이라도 되는 걸로 믿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어쨌든 북한이나 중국 체제도 긍정적으로 보자는 분위기가 있었다. 재일 학생들도 그런 영향을 받고 있었지. 기본적으로 마르크스주의에 긍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나는 체질적으로 그런 건 받아들일 수 없어서 말이야. 소련은 물론 북한이나 중국, 쿠바 같은 체제를 보고 그게 이상적이라는 생각이 도저히 들지 않았어. 물론 주변에 있던 마르크스 신봉자들도 그런 체제를 그대로 긍정했던 것은 아니지만, 혁명 이후 어려운 정세의 과도기였고 곧 좋아질 거라 생각했었지. 그러나 이후 반세기가 지나려 하지만 사태는 점점 더 악화되고 있지 않나? 그 시점에 그 체제에 희망이 없다는 것은 명백했다.”
   지아는 고개를 갸웃하며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
   “근대 과학은 환원주의를 통해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특히 물리학에서 빛나는 승리를 달성했기 때문에 무엇이든 환원주의로 해명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어요. 그러나 생명을 상대로 했을 때 환원주의는 비참한 패배를 당했습니다. 예를 들어 세포를, 그것을 구성하는 하나하나의 요소로 분해해 해석해도 생명의 수수께끼를 풀 수는 없습니다. 세포를 구성하는 요소 간의 복잡한 관계성에 생명 활동의 비밀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요소끼리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하나하나의 요소를 보고만 있어도, 상상할 수 없는 활동을 전개하는 조직을 복잡계라 부릅니다. 인류가 복잡계의 존재를 깨달은 것은 20세기 말입니다. 생명은 물론 인간 사회도 복잡계입니다. 복잡계 교과서에서는 복잡계인 인간 사회를 환원주의로 억지로 해명하려다 실패한 예로 마르크스주의를 언급하는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즉, 복잡계 과학은 마르크스주의를 원리적으로 틀렸다고 사형을 선고했어요.”
   “나는 복잡계 과학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복잡계 과학에 의하면 마르크스의 이론은 원리적으로 틀렸다는 말인가?”
   “제 경우에는 마르크스의 이론을 거의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그걸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만……. 뉴턴의 미분 적분학이 천체의 운동을 완벽하게 해명했듯 마르크스는 사회의 운동을 과학적으로 해명하려 했던 게 맞나요?”
   “음, 뭐 그렇게 말하지 못할 것도 없지 않을까?”
   “어느 계몽서를 도용한 건데요……. 미분 적분학으로 천체의 운동이 완벽히 규명됐다고 당시 많은 사람들은 믿었지만, 푸앵카레 같은 수학자들은 이미 세 가지 질점(質點)에서 미분 방정식이 원리적으로 풀리지 않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방면에서는 서툴러서 말이야. 조금 이해가 안 되는데.”
   “예를 들어 지구와 태양이라는 두 가지 질점의 운동방정식은 비교적 쉽게 풀 수 있습니다. 즉, 현재의 정보가 있다면 미래도 과거도 완벽히 예상할 수 있어요. 하지만 거기에 화성이 더해지면, 운동방정식은 절망적으로 어려워지고 풀 수 없게 되는 거죠.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거예요.”
   “그건 의외인데. 그런 상태로 어떻게 인류를 달에 보낼 수 있었을까?”
   “운동방정식을 풀지 못하더라도 근사해를 구할 수는 있어요. 그래서 고성능 컴퓨터를 이용해 근사적으로 해법을 쌓아 궤도를 계산하고 있는 거죠.”
   “흠. 그래서 마르크스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는 말인가?”
   “그래서 뉴턴이 공 세 개의 행동을 해명할 수 없음을 알았더라면 마르크스는 세 사람의 행동을 해명하려 했을까와 같은 야유 비슷한 글이 복잡계 계몽서에 실려 있어요.”
   “재미있네. 복잡계 과학도 공부할 필요가 있을 것 같군. 하지만 복잡계 과학을 반세기 전에 알았다면 우리 삶도 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어.”
   후후 웃으며 지아가 물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로 체질적으로는 마르크스주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했나요?”
   도웅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아니, 준남의 경우는 좀 더 과격했지. 준남은 아나키스트라고 공언하면서 거리낌이 없었다.”
   “아나키스트……?”
   “사회에는 여러 문제가 있고, 그것들을 해결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 그리고 그 해결 방향은 자유와 인권을 존중하는 쪽이라고 말이다. 즉, 좌파적 지향이 있었던 셈인데 당시 좌파 운동에서는 마르크스주의가 크게 유행하고 있었지. 고등학생이었던 준남은 마르크스주의를 싫어했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여러 책을 섭렵하던 중 크로포트킨을 만났다고 한다. 크로포트킨이라고 들어봤니?”
   지아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고토쿠 슈스이(幸徳秋水)나 오스기 사카에(大杉栄)는?”
   “이름 정도는 들어봤어요. 고토쿠 슈스이는 대역 사건의 희생자였고 오스기 사카에는 분명 간토대지진의 혼란한 상태에 휩쓸려 학살당한 거죠.”
   “응. 아나키즘이란 게 보통 무정부주의로 번역되는데 그다지 좋은 번역은 아니지. 딱히 당장 정부를 없애자고 주장하는 건 아니니까. 아나키즘에는 마르크스주의같이 확정된 강령 같은 것은 없어. 아나키스트가 열 명 있으면 열 가지 아나키즘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보텀업(bottom-up)에 의한 의사결정, 권위의 부정, 자유 평등, 학대당한 자에 대한 사랑, 뭐 이 정도 조건을 만족한다면 충분히 아나키스트라고 할 수 있을 거야.”
   “그래서 아버지의 아나키즘은 받아들여졌나요?”
   “역사적으로 아나키스트를 가장 미워한 것은 마르크스주의자였다. 마르크스주의 국가에서 아나키스트는 철저히 탄압받았지. 예를 들어 북한에서는 일본의 지배에 저항하며 독립운동을 벌인 무정부주의자들은 해방 이후 조국에서 동포들의 손에 살해당했지. 진짜 너무한 거지. 준남이 아나키즘에 대해 언급해도 제대로 귀담아들은 사람은 없더군. 준남의 아나키즘을 받아들인 건 나 정도였어. 아, 물론 계희 씨도 준남의 편이었지만.”
   “그런데 왜 그 동아리 활동을 계속했죠?”
   “우리가 참여했던 재일한국인 학생 동아리의 목적은 정치적인 것만이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의 정체성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있었지. 예를 들어 나는 고등학교까지 ‘시라이 미치오’라는 일본 이름을 사용하며 일본인으로 살아왔지.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주변 친구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있었다. 백도웅이라는 이름을 쓴 건 대학에 들어가면서지만, 처음에는 꽤 용기가 필요했어. 법적으로는 한국인으로 되어 있지만, 한국어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한국의 문화나 습관에도 완전 무지했지. 도대체 나는 한국인일까, 일본인일까. 그때는 다들 그 일을 심각하게 고민했었어.”
   어렸을 때, 아버지의 친척들이 아버지를 ‘도시짱’이라 부르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다. 그게 아버지의 일본 이름 ‘도시오’에서 유래한 호칭임을 알게 된 것은 아버지 사후였다. 아버지 또한 어렸을 때는 일본 이름을 사용했던 거야.
   도웅은 앞접시에 듬뿍 딤섬을 쌓았다. 아버지와 같은 세대라면 칠십 대는 되었을 텐데 꽤 대식가다. 맥주도 상당한 양이다. 이미 지아의 세 배는 마셨을 것이다.
   앞접시의 딤섬을 맛깔나게 입으로 옮기고 나서 도웅이 말을 이었다.
   “너의 이름은 일본인 여자애 이름이 아니야. 억지로 일본어로 발음하면 ‘시가’가 되려나? 한국어 소리로는 귀엽게 느껴지지만, 일본어 소리로는 꽤 기묘하군. 너는 일본 이름을 가지고 있지 않니?”
   지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릴 때부터 줄곧 지아로 불렸다. 주위에는 일본인뿐이어서 왜 나만 다를까 생각했지만,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의문을 가져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일본 이름을 사용하며 일본인으로 살아왔다는 도웅의 말을 실감할 수 없었다.
   “너는 ‘민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즉, 내가 한국인이라는 데 의문 같은 걸 느껴본 적이 없느냐는 건데.”
   “태어날 때부터 한국인으로 살았고 지아라는 이름이어서 주변 사람들도 다 내가 한국인인 줄 알았어요. 그래서 그걸 당연하게 생각했고 그 일을 고민했던 기억은 없어요. 그냥 뭐라고 해야 하지. 내가 한국인임을 부정할 생각은 아니지만, 기분은 ‘We are all Africans’인 거죠.”
   “그게 뭐야?”
   “진화생물학자 도킨스가 제창하는 슬로건인데, 아세요?”
   “도킨스라고 하면, 『이기적 유전자』를 쓴……?”
   “네. 인류의 기원에는 여러 설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프리카 단일 기원설로 거의 확정됐어요. 즉, 현존하는 인류는 모두 아프리카에서 비롯되었다는 거죠. 역사적으로는 네안데르탈인 등 우리 외의 인류도 존재했지만, 그들은 모두 멸망하고 말았어요. 인종이라는 말은 현재도 많이 쓰이지만, 현존하는 인종은 우리 호모사피엔스 한 종뿐이에요. 비유가 아니라 지금 현실에 사는 인류는 모두 피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We are all Africans’이죠.”
   “그렇구나, 재미있네. 뭐, 우리 때와는 시대가 다르다는 건가. 우리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대화해 왔어. 내가 동양철학을 배우려 했던 것도 그 문제의 해답을 찾고 싶어서였다. 즉 민족을, 역사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단으로 생각한 결과지. 조선의 역사를 생각하기 위해서는 조선 유교를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
   “아, 유교요? 유교는 뭔가 진부해서 배울 필요가 없는 이미지인데요. 여자와 소인은 어떻다 하는 건, 유교에서 나온 말이죠? 즉 여성 차별의 상징과도 같은…….”
   “뭐 그런 면을 부정할 수는 없지.”
   “게다가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버린 원인 중 하나도 유교에 있지 않나요? 조선 왕조가 정체되면서 근대화가 더딘 것은 유교 탓 아닌가요?”
   “그런 말을 들어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완용은 노론의 우두머리였으니까. 이완용은 알고 있지?”
   “오적의 한 사람이잖아요. 자세한 건 모르지만. 근데 노론이 뭐예요?”
   “조선 유학자들은 여러 계파로 나뉘어 정쟁을 거듭해 왔다. 조선의 유학은 정치와 직결되어 있었으니까. 노론은 그중 최대이자 가장 보수적인 계파다. 조선의 꼰대 집단으로 생각하면 되지. 그리고 조선 말기에 정권을 잡은 것이 이 노론이지. 그래서 조선 왕조 멸망의 책임이 노론에 있다고 할 수도 있지. 그러나 그것만이 조선 유교였던 것은 아니야. 애초에 조선 왕조가 정체돼 있었다는 것은 일본 역사가들이 만들어낸 망상이지 사실이 아니다. 일본에 비해 근대화가 늦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조선 유교 때문이 아니다. 예를 들어 불교는 살생을 금하고 있지만, 국가권력과 결부되면서 전승을 기원하고 사람들을 전쟁으로 몰아가는 역할을 하게 되었지. 그렇다고 그런 호국불교를 불교의 전부로 볼 수는 없을 거야. 마찬가지로 노론만 보고 조선 유교를 말할 수도 없는 거지.”
   사회가 슬슬 마칠 시간이라고 말을 이었다. 도웅과의 이야기에 빠져버려 아직 신부에게 인사도 하지 않았다.
   “아, 신부에게 인사를 좀 하고 와야겠어요…….”
   일어서려는 지아에게 도웅이 명함을 내밀었다.
   “너에게 좀 줄 게 있으니 연락해. 조선 유교에 대한 오해도 풀어두고 싶기도 하고.”
   지아는 명함에 시선을 떨구었다. 직함은 모 유명 사립대 명예교수로 되어 있다.
   “주고 싶은 게 뭐예요?”
   “준남의 소설이다.”
   “네? 아버지가 소설을 쓰셨어요?”
   “완성은 아니야. 첫 부분만이야. 구상은 아마도 장편소설이었던 거 같다.”
   느긋하게 이야기하고 있을 시간은 아니었다. 지아는 나중에 메일을 보내겠다고 약속하고 신부가 있는 메인 테이블로 향했다.
   식이 끝나자 홍미자와 함께 근처 선술집에 가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미자와 이야기를 하면서도 지아는 지금까지 몰랐던 아버지의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마음이 들떴다. 특히 아버지가 썼다는 소설이 어떤 것일지 신경 쓰여 어쩔 줄 몰랐다.

   3.


   지아는 땅거미 속에서 혼고도오리(本郷通り)를 내려갔다.
   결혼식 이후 몇 번 정도 메일을 주고받았고, 오늘 도웅과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도웅이 정한 곳은 대학 근처의 고깃집이었다. 지아도 몇 번인가 그 앞을 지나긴 했었지만 안에 들어가 본 적은 없었다. 가난한 학생 신분으로 고깃집에 가는 호사는 허용되지 않았다. 친구와 식사할 때도 대부분 학생이나 샐러리맨들이 이용할 법한 저렴한 선술집에 갔다.
   약속 시간 오 분 전이었지만, 도웅은 이미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도웅은 점원과 친근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 가게의 단골인 걸까. 인사를 마치고 지아는 바로 그걸 물었다.
   “이 가게엔 자주 오세요?”
   “응. 누가 뭐래도 이 가게 고기는 일품이니까. 조용하고 분위기가 차분해서 느긋하게 이야기할 수도 있거든.”
   지아의 대학에서 오 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예전에는 도웅도 이 대학에 다녔다.
   “혹시 대학 시절부터 단골이세요?”
   “어림없지. 가난한 학생이 이런 가게에서 고기를 먹을 리가. 매일 학교에 다니면서 가게 앞을 지나며 냄새를 맡는 걸로 만족해야만 했지.”
   지금의 자신과 똑같다 생각한 지아는 씩 웃었다.
   도웅이 가방에서 커다란 봉투를 꺼냈다.
   “이게 준남의 소설이다.”
   봉투를 받았다. 안에는 원고용지 뭉치가 있었다.
   지아는 꽤 악필이었다. 자신이 쓴 글자도 나중에 다시 읽으면 해독이 어려울 정도였다. 그 원고에 쓰인 글씨도 꽤 난잡했다. 틀림없이 준남의 친필 원고였다.
   “사백자 원고지로 팔십 장 정도 된다. 그게 원본이지. 물론 복사는 해두었다.”
   읽기 시작하려는데 점원이 와인병과 고기를 담은 접시를 가져왔다. 고기를 판에 올리며 도웅이 말했다.
   “읽는 건 집에서 하고, 지금은 먹는 데 집중하자.”
   와인으로 건배를 했다.
   “그 소설은 첫 부분뿐이었다. 언젠가 이어서 계속 쓰겠다고 했는데, 그 사고가 없었다면 계속 썼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유감이다. 문학으로서 어떤지 내가 평가할 수 없지만, 당시 재일한국인 젊은이들에게 절실했던 문제들이 거론되고 있었다. 긴 대사나 독백이 계속되었지만, 그 부분은 도스토옙스키를 의식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때 준남은 도스토옙스키에 푹 빠져 있었으니까.”
   “집에 가서 천천히 읽어볼게요.”
   “준남도 네가 읽기를 바란다고 생각해.”
   차례차례 고기를 가져왔다. 도웅의 먹성이 새삼 놀라웠다. 와인 마시는 속도도 빨랐다. 준남도 술을 상당히 좋아했다. 학생 때는 둘이서 꽤 마셨겠지, 라고 상상해 본다.
   “대충 시켰는데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사양 말고 주문해.”
   맛있게 구워진 고기를 상추에 싸서 마늘 조각 등을 넣고 입에 넣었다. 육즙이 입안에 퍼지면서 갖가지 향신료가 절묘한 선율을 연주한다.
   “마테오 리치라는 예수회 선교사가 중국에 갔다. 그리고 중국의 종교는 유교라고 이해했지. 유교가 종교인지 아닌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그건 접어두자. 어쨌든 마테오 리치는 유교에서 말하는 상제나 천제가 기독교의 신과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데우스, 이건 라틴어로 신을 뜻하는 말인데, 그 데우스의 역어를 천주로 삼았다. 기독교의 신은 유대교의 신에서 유래했지. 이슬람교의 신 알라도 마찬가지야. 이들 신은 모두 이 세계를 창조한 전지전능한 인격신이다. 그러나 유교에는 기독교의 신과 같은 개념이 존재하지 않지. 공자가 ‘괴력난신을 말하지 말라’고 했듯, 유교는 세계의 창조 같은 것에 흥미를 보이지 않아. 유교는 지극히 현실적인 사상 체계야. 기독교 신을 닮은 것으로 유교에서도 하늘을 말하기는 하지만, 유교에서 말하는 하늘은 기독교의 신과는 전혀 달라. 민심이 천심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거야. 기독교 신에게는 이런 발상이 나오지 않는다. 기독교 신은 어디까지나 인간과 대치하는 존재이기 때문이지.”
   그렇게 말하고 도웅은 와인잔을 들었다. 지아는 조용히 듣고 있었다.
   “민심이야말로 천심이라는 것은 곧 백성이 하늘이라는 뜻이 된다. 기독교처럼 어딘가에 절대적 존재인 신이 존재한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실을 사는 사람들, 백성들이야말로 신이다. 맹자는 ‘민위귀 사직차지 군위경(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 즉 ‘백성이 가장 소중한 것이며, 국가가 그 다음이고, 그에 비하면 왕의 가치는 가벼운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
   “정말 맹자가 그런 말을 했나요? 좀처럼 믿기지 않네요.”
   “폭군이라 불리던 하(夏)나라의 걸왕(桀王)을 은(殷)나라의 탕왕(湯王)이 물리치고, 은나라 주왕(紂王)을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베어 죽인 것에 대해, ‘신하이면서 주군을 죽여도 되겠느냐’는 물음에 맹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인(仁)을 해치는 것을 적이라 하고, 의(義)를 어기는 것을 잔(残)이라고 한다. 그리고 잔적인 사람을 일부(一夫)라고 한다. 일부인 주(紂)를 주살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주군을 시해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아, 즉 임금이 횡포를 부린다면 쓰러뜨려도 된다는 거네요. 뭔가 존 로크의 저항권 같네요.”
   “조선 왕조 말기에 활약한 정약용이라는 대학자가 있는데, 정약용에게는 이 맹자의 논의를 부연한 『탕론』이라는 논문이 있다. 거기서 정약용은 본래 왕이란 백성이 추대한 것이니 백성이 왕을 바꾸는 것도 백성의 자유라 말하고, 이를 농악대에 비유하고 있어. 농악이라는 건 알지?”
   “네, 문화제 같은 곳에서 본 적이 있어요.”
   “정원에서 춤추는 사람이 64명 있다고 정약용은 이야기를 시작한다. 한 사람을 선발하고, 그자를 앞세워 전체를 지휘하도록 한다. 그자가 춤을 잘 추면 사람들은 존경의 뜻을 담아 ‘우리 무사’라고 부른다. 그러나 춤을 잘 추지 못하면 그자는 대열로 돌아가야 해. 그리고 다른 사람을 골라 그 사람이 춤을 잘 추면 그자를 ‘우리 무사’라고 부르지. 즉, 무사의 위치에서 끌어내리는 것도 대중이고 무사로 존경하는 것도 대중이라는 이야기다.”
   “조선시대에 그런 주장을 했던 사람이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요.”
   “조선의 유교를 다시 볼 생각이 들었어?”
   “좀 너무 의외라 뭐라 해야 할지…….”
   “아이가 우물에 빠질 뻔한 것을 보면 누구나 불쌍해 도와주려 할 거야. 맹자는 이를 측은의 마음이라 부르며 이것이 인의 단(端), 즉 인의 싹이라 했지. 마찬가지로 사람에게는 자신의 불선(不善)을 부끄러워하고, 타인의 불선을 증오하는 마음이 있는데 이것이 의(義)의 단이다. 나아가 서로 양보하는 마음이 있는데, 이는 예(礼)의 단이다. 사물을 이해하고 그 선악을 변별하는 마음이 있는데 이는 지(智)의 단이다. 맹자는 이들을 4단(四端)이라 부르는데, 인간은 선천적으로 양손과 두 발이 있듯이 모든 사람은 타고난 인의예지(仁義禮智) 사단이 갖추어져 있다고 주장했지. 이런 것에 관해서 요즘 새로운 진화론에서 재미있는 연구가 있지 않을까 싶은데.”
   “네, 이기적인 유전자에 의해 어떻게 이타적인 마음이 진화해 가는지, 수학적 모델이 만들어지는 것 같은 여러 가지 재미있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어요.”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인의예지는 하늘의 원리라는 점이야. 즉, 하늘의 원리가 인간의 마음속에 선천적으로 갖추어져 있다는 것이 맹자의 주장이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어떻게 될까?”
   “잘 모르겠어요…….”
   “이쯤에서 최제우를 소개하지. 최제우는 조선 왕조 말기, 양반가에서 태어나 당연하게도 유교를 공부하다 나중에 동학의 시조가 되지. 동학이라는 건 들어봤어?
   “자세히는 모르지만, 청일전쟁의 원인이 된 농민 반란의…….”
   “그래, 갑오농민전쟁의 사상적 기초가 된 것이 동학이다. 동학의 가르침의 근본은 사람이 곧 하늘, 즉 모든 사람 안에 하늘이 있다는 사상이다. 때문에 하늘을 섬기듯 사람을 대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그리고 당시 인간 취급을 받지 못했던 여성이나 아이도 한 사람으로 정중히 대해야 한다고 가르쳤지. 내 안에도, 네 안에도 하늘이 있다, 이것이 맹자의 4단설을 부연한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요…….”
   “기독교 신에게서는 이런 사상이 나오지 않아. 그래서 서양에서 자유, 인권, 민주주의 사상이 자라는 과정에서 신과 날카롭게 대립하게 되었지. 반대로 유교의 하늘은 자유, 인권, 민주주의 사상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인류의 근대가 유교 문화권에서 시작되었다면 훨씬 더 재밌었을 거라 꿈꿔 보고 싶어지네.”
   이야기가 너무 벗어나 지아는 따라가기 급급했다.
   도웅이 말을 이었다.
   “준남은 더 나아가 맹자는 무정부주의로 통한다고 말했지. 준남이 높이 평가하던 고토쿠 슈스이도, 오스기 사카에도 어린 시절 철저히 유학을 주입받았지. 특히 맹자를 깊이 읽었다고도 전해진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고 들은 고토쿠 슈스이는 이런 시를 지었지. ‘삶을 버리고 의를 취하고’, ‘죽더라도 인을 이룬다, 안군일거 천지개진.’ 이 시 속에 있는 ‘삶을 버리고 의를 취하고’는 맹자, ‘죽더라도 인을 이룬다’는 논어에서 인용한 거지. 그리고 준남이 존경해 마지않았던 것이 신채호다. 알고 있어?”
   “아니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에요.”
   “열네 살에 사서오경을 마치고 신동이라 불리던 남자이지.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자 중국에 망명해 적빈여세(赤貧如洗)와 같은 생활 속에서 독립운동에 몸을 던지고, 동시에 조선사를 연구했지. 신채호는 나라가 망하더라도 영혼이 남으면 권토중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영혼은 민족의 역사이다. 그리고 아나키즘을 만나고 아나키즘에 심취했어. 크로포트킨이 죽었을 때는 그 추모문을 발표했지. 최후에는 일본 경찰에 체포돼 뤼순감옥에서 옥사했다.”
   도웅은 잘 먹고, 잘 마시고, 그리고 계속 이야기했다. 지아는 그 박람강기(博覽強記)에 압도당할 뿐이었다.

   4.


   지아는 대학 근처의 원룸 맨션에 살고 있었다. 그래서 도웅과 만났던 고깃집에서 걸어 돌아갈 수 있었다. 도웅과 헤어지고 맨션에 돌아온 지아는 밤늦게까지 준남의 소설을 탐독했다. 상당한 양의 와인을 마셨지만 취기는 남아 있지 않았다.
   다음날에도 대학을 쉬고 하루 종일 그 소설과 씨름했다. 살아 있는 세포를 사용한 실험에서는 세포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매일 연구실에 얼굴을 내밀어야 했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준남의 악필 때문에 처음에는 읽는 데 애를 먹었지만, 금방 그런 것은 신경 쓰이지 않게 되었다. 3인칭 시점으로 묘사되어 있고, 이른바 사소설이 아니었다. 그러나 소설 속 주인공의 모습은 준남과 겹쳐 있었다. 주인공의 이름은 유정인(柳正仁)이지만 어릴 때는 ‘야나이 마사히토’라는 이름을 대며 일본인처럼 살아왔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야 비로소 유정인이라 자칭하게 되었는데, 그 일을 본인은 상당히 고민하고 있다. 한국어를 말할 줄도 모르고, 한국의 문화 습관에 무지해 일본인과 똑같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이라는 정체성 혼란에 유정인은 계속 고민한다. 눈에 띄는 스토리 전개 없이 이른바 청춘의 방황이 그려진다. 여성도 등장해 사랑의 시작이 엿보이지만, 이 단계에서는 그 이상의 진전이 없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만남도 이런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지아는 무심코 미소를 지었다. 장편소설로 쓰기 시작했다고 하니 이것이 제1장인 셈일 것이다. 그 이후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구상됐을지 모르지만, 현재로서는 그게 어떤 것인지 전혀 알 수 없다.
   유정인이 극복하려는 정체성 혼란을 지아는 실감하지 못했다. 지아 자신은 태어날 때부터 한국인으로 자라 한국인임을 당연시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서 자신을 향한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과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일본 이름이라고 할 수 없는 지아라는 이름에서도 그것이 드러난다. 어렸을 때 아버지나 어머니와의 대화가 생각난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지아가 정체성 혼란에 시달리는 일이 없도록 세심하게 키워준 것이다.
   다음날 아침에는 상쾌하게 눈이 떠졌다. 도웅과 만나고 나서 여러 가지를 알게 되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과거 재일한국인 청년들의 고민도 알게 됐다. 지아의 경우 아버지와 어머니의 배려 덕분에 정체성 혼란에 시달리지 않았지만, 다른 많은 청년들은 지금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조선 왕조가 정체되었다는 것은 일본 역사학자들의 망상이라고 도웅이 말했다. 지아 자신도 그 망상에 꽤나 빠져 있었던 듯하다. 조선의 역사를 배울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지아가 연구하고 있는 복잡계 과학은 근대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일본에 의한 조선의 근대화도 지금까지는 복잡계 과학의 관점에서 보았지만 도웅 덕분에 다른 시각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의 유교라는 시각이다. 그 점에 생각이 미치자 무심결에 지아는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지금까지 유교라고 하면 꼰대들의 망상이자, 여성 차별의 상징으로 여겨 괜히 싫어했기 때문이다. 그런 지아가 새삼 조선의 유교를 배우려 하다니 믿을 수 없는 심정이다. 지아는 자신의 마음에 “상전이”가 일어난 것처럼 느꼈다.
   연구실에 가서 야스모토 모델의 파라미터를 조절했다. 파라미터에는 무한한 조합이 있어 어떤 파라미터의 설정이 어떻게 작용할지는 컴퓨터를 작동해 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복잡계 과학이 발달하면, 파라미터 설정 결과를 미리 아는 방법도 찾을 수 있겠지만, 지금은 어쨌든 실행해 보는 수밖에 없다. 새로운 설정을 마치고 야스모토 모델을 가동한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알기까지 시간이 좀 걸린다.
   지아는 사물함에 항상 준비된 수영복을 꺼내 연구실을 나섰다. 바로 근처에 있는 수영장에 가서 한바탕 수영을 했다. 몸을 움직이면 머릿속이 개운해진다.
   연구실로 돌아온 지아는 별 기대 없이 컴퓨터 화면을 보았다. 야스모토 모델이라 해도 세포소기관이나 거대 단백질 등이 그래픽화되어 있지는 않다. 그렇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것에 노력을 들일 수는 없다. 디스플레이에는 초보자에게 의미 불명인 숫자가 나열돼 있고, 또 몇 개의 그래프가 그려져 있을 뿐이다. 변화하고 있는 수치를 본 지아는 고함을 질렀다.
   “뭐야?”
   “무슨 일이야?”
   주위의 연구자들이 달려왔다. 지아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디스플레이를 가리켰다.
   “오오!”
   “이건!”
   연구자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디스플레이상에서 격렬히 변하는 수치가 지아의 머릿속에서 활동하는 세포소기관이나 거대 단백질 이미지로 전환됐다. 휘황찬란한 세계가 그곳에 전개되고 있었다. 거기에 컨트롤타워나 중앙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어떤 요소가 다른 요소에게 일을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 화학물질을 방출한다. 그 화학물질은 특정 수용체에만 결합한다. 그 수용체를 가진 요소가 화학물질과 결합하면 정해진 작업을 시작한다. 각각의 요소가 각 자리에서 멋대로 활동할 뿐, 전체를 통제하거나 지휘하는 요소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를 혼돈이라 불러야 할까. 분명히 혼돈은 아니다. 이 시스템에는 방향성이 있고 목적이 있다. 그렇다면 질서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니다. 질서라는 말로 이미지화되는 고정된 시스템이 아니다.
   준남이 이 광경을 보면 크게 소리 내 웃지 않을까 하고 지아는 생각했다. 이것이야말로 아나키스트의 천국이라고. 도웅이라면 이것이야말로 하늘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바로 이 시스템은 내 안에도, 당신 안에도 존재하고 있다.
   이로써 액-액 상전이의 수수께끼가 규명된 것은 아니다. 이 모델을 이용해 그 수수께끼를 추구해 가는 길고 힘든 싸움이 남아 있다. 이는 첫걸음에 불과하다. 그러나 실로 커다란 한 걸음이다.
   후끈한 땀 냄새에 돌아보니 야스모토였다. 야스모토는 가만히 디스플레이를 응시하고 있었다. 잠시 후 야스모토가 중얼거렸다.
   “살아 있다, 살아 있어.”
   뒤돌아본 야스모토가 지아의 손을 잡았다. 땀으로 끈적끈적하다.
   “고마워.”
   야스모토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번역정보

번역 : 이영호 (일 → 한)

필자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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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도쿄(東京) 출생. 도쿄 대학을 중퇴했다. 『산학무예장(算学武芸帳)』(朝日新聞社)으로 1997년 제8회 아사히신인문학상, 『항몽의 오름(抗蒙の丘)』(新人物往来社)으로 2005년 제30회 역사문학상, 『열세 살 딸에게 가르치는 갈루아 이론』(岩波書店、한국어판 승산)으로 2014년 일본수학회출판상을 수상했다. 그 외에도 장편소설 『배반당한 협상』(보고사), 『대국수』(新幹社, 한길사), 『장보고의 백성』(講談社), 『이야기 조선왕조의 멸망』(岩波新書), 『소설 청일전쟁: 갑오년의 봉기』(影書房), 『수학왕 가우스의 황금정리』(岩波書店, Gbrain), 『「복잡계」입문』(講談社, blue backs) 등 다수의 저서를 냈다.
* 사진제공_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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