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넘는 작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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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넘는 작가들

입장과 관점에 따른 역사 선택과 인식, 조선족 작가 리근전

차희정

▲ 리근전 작가 © 모동필 작가 제공

  리근전(李根全, 1929-1997, 본명 리근혁)은 평안북도 자성군 삼풍면 운봉동 매상골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1937년 길림성 서란현 북대촌에 정착했다. 1939년 소학교에 입학하여 1944년 졸업했다. 1945년 동북민주연군 60단 의용군 전사로 참가하여 해방전쟁에 참전했고, 1948년 9월 14일 공산당에 입당했다. 길림시위상무위원회 비서, 길림일보 농촌조 조장, 길림일보 연변주재소 소장, 연변일보 주필, 연변주위선전부 부부장, 연변문학예술계련합회 주석, 연변작가협회 주석 등 역임했다. 대부분의 작품을 중국어로 창작한 후에 조선어로 번역하여 출간했다. 장편소설 『범바위』(연변인민출판사, 1962, 수개본,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 1986), 『고난의 년대』(연변인민출판사, 상(1982), 하(1984)), 『창산의 눈물』(민족출판사, 1988)과 중편소설 「호랑이」(요녕인민출판부, 1960) 외 3편과 10여 편의 단편소설, 산문 등이 있다.
  리근전의 소설은 여타 중국 조선족 작가처럼 조선인의 중국 이주와 정착, 삶의 현실을 형상화하고 있다. 더불어 발표 시기에 따라 시대적 배경이 현재에서 과거로 진행되는 특징을 보여준다. 1952년 창작을 시작한 이후 발표된 초기 단편소설들은 당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1962년 출간된 『범바위』는 일제 패망 후 해방전쟁기를 배경으로 한다. 각각 1982년과 1984년에 발간된 『고난의 년대』 상하권은 19세기 말부터 일제 패망까지를 배경으로 간도 지역으로 이주한 1세대 조선인의 생존의 고난과, 2세대의 친일과 항일투쟁의 역사를 전면화한다. 이는 리근전이 당대 현실에서 특정 사실을 선택하고, 이를 소설의 제재로 삼아 민족의 문제로 주제를 확장해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자신의 체험과 이념적 지향에 따라 역사와 현실의 주요 사건을 선택하고 의미화하는 창작 방식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고난의 년대』 하권에서는 1930년대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중국공산당 중심의 항일 투쟁의 역사를 상세하게 언급한다. 주인공 ‘박윤민’과 그의 친구 ‘왕주’를 비롯한 용정의 공산주의자들이 중국 공산당의 지도 아래 일으킨 1930년 ‘5월 폭동’에 대한 구체적 서술과 “‘5·30’날 밤의 폭동은 옹근 간도 땅을 뒤흔들었고 일본제국주의를 전율케 했다”(『고난의 년대』 하, 411쪽)는 박윤민의 고백은 5월 폭동의 성과와 그 의미를 크게 평가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1919년 ‘3·13 만세운동’ 이후 절정을 이룬 조선인의 무장 항일 투쟁의 서사는 없다. 소설은 1920년 ‘봉오통 전투’와 ‘청산리 전투’의 승리는 서술하지 않으면서 일제가 조선인 무장세력을 궤멸하고자 훈춘 지역 마적단을 색출하겠다고 획책했던 ‘경신참변’ 등의 문제는 간략하게 서술하고 있을 뿐이다. 이는 리근전이 1930년대 중국공산당의 지도로 왕성해진 항일 무장 투쟁을 항일 투쟁 역사의 핵심으로 파악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장편소설 『범바위』는 주인공 ‘김치백’과 ‘김근택’, ‘호랑이’ 등이 중국공산당의 지도로 사회주의적 전사로 성장하는 서사다. 소설은 해방전쟁에서 국민당을 물리치고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에 기여함으로써 공민으로서의 자격을 부여받으려는 동북 지역 조선인의 의지를 표출한다. 이는 광복 직후 재중 조선인이 중국공산당을 선택하는 것이야말로 역사적 필연에 의한 것임을 강조하는 동시에 해방전쟁에 참전하고 중국공산당 간부로서 역할한 리근전의 이념이 투영된 중국공산당 이념의 절대화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리근전의 인식은 반우파 투쟁, 민족정풍운동, 지방민족주의 반대 운동 등 당시 엄혹한 정치 상황 속에서 살아내기 위한 담대한 “민족적 발화”1) 로도 해석할 수 있다. 여하튼 동북민주연군으로 투쟁했던 리근전의 체험 등이 그의 문학의 원형이 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리근전 소설은 중국공산당 민족 간부 입장에서 생각하고 창작한 결과물로서 그의 정치적 감각을 보여주고 있다는 해석이 주요하다. 그러나 중국 공민 자격을 부여받고, 이주해 정착한 곳을 ‘고향’으로 삼으려는 민족적 선택과 지향의 의지를 표출하고 있다는 해석 또한 타당하다. 두 해석은 이주민으로서 중국인 ‘되기’를 기대했던 조선인의 인식이라는 점에서 접점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리근전의 입장과 관점에 따른 역사 선택과 인식은 왜, 어떻게란 질문 속에 더 많은 해석의 길을 가지고 있을 듯하다. 그 길은 한민족문학으로서 중국 조선족 문학을 이해하고 그 의의를 구명하는 구체적인 방법일 것이다.

▲ 리근전 작가 © 채국범 작가 제공

참고자료

리근전, 「『고난의 년대』를 쓰게 된 동기와 경과」, 『문학예술연구』, 연변사회과학원 문학예술연

구소 기관지, 1983.1, 50-55쪽.

윤병석, 『간도 역사의 연구』, 국학자료원, 2003.

최병우, 『조선족 소설사』, 푸른사상, 2022.

필자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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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출생, 아주대와 경희대, 경찰대에서 문화예술비평, 글쓰기를 강의하고 있다. 중국 조선족을 비롯해 장애인 등 소수자 문학에 관심을 갖고 연구 중이다. 저서로 장애인문학 평론집 『상실의 욕망』과 공저 『중국 조선족 문학의 탈식민주의 연구』, 『만주, 경계에서 읽는 한국문학』, 『중국에서의 조선족 문학』, 『한국문학 속의 중국 담론』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