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K-문화
5호
『파친코(Pachinko)』와 코리안 디아스포라 문학
이영호
2017년 2월, 재미 코리안 작가 이민진이 소설 『파친코(Pachinko)』를 발표한다. 낯선 일본어 제목의 소설이었지만 책을 읽은 뒤, 대중들은 열광한다. 소설 출간을 앞둔 2017년 1월 25일, 트럼프 대통령은 반이민 행정명령을 시행하며 미국의 이민자 문제가 사회적 화두가 된다. 이런 상황에서 『파친코』는 미국 사회에 큰 울림을 준다. 그 결과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뉴욕타임스》·BBC ‘올해의 책 10’에 선정되고, 미국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전미 문학상(National Book Award) 최종 후보에 오른다. 2022년에는 한국에서 만해문예대상을 수상하는 등 문학성을 인정받는다. 이 밖에도 35개국(2023년 9월 기준)에 번역본이 출간되며 『파친코』가 전 세계에 퍼져가고 있다. 소설의 인기에 힘입어 2022년 3월 25일에는 OTT 플랫폼 애플TV+에서 드라마 「파친코」가 공개된다. 코리안 디아스포라 서사가 소설과 영상의 형태로 국경을 초월해 퍼져 나가고 있는 것이다.
▲ 애플TV+ 드라마 「파친코」와 이민진의 『파친코』.
최근 K-컬처의 인기와 더불어 코리안 디아스포라 관련 콘텐츠들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 이민자를 소재로 한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 캐나다를 배경으로 한 앤소니 심 감독의 「라이스보이 슬립스」, 산드라 오 주연의 「더 체어」까지 코리안 디아스포라 콘텐츠는 세계적으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이는 영상에 국한되지 않는다. 미셸 자우너의 소설 『H마트에서 울다』 역시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가장 화제는 단연 『파친코』라 할 수 있다.
▲ 왼쪽부터 「미나리」, 「라이스보이 슬립스」, 「더 체어」, 『H마트에서 울다』.
소설 『파친코』는 총 3부 58장(1부 17장, 2부 20장, 3부 21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910년부터 1989년을 배경으로 4대에 걸친 재일 코리안 일가의 연대기를 그려낸다. 1부는 1910-1933년, 2부 1939-1962년, 3부 1962-1989년을 배경으로 평양, 부산, 오사카, 도쿄, 요코하마, 나가노, 뉴욕 등 한·미·일을 넘나든다. 『파친코』에서는 코리안 디아스포라 서사를 전면화한다. 재외동포청이 2021년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전 세계에 재외동포 약 732만 명1)이 거주하고 있다. 자국의 총인구 대비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치이다.
일제강점기는 코리안 디아스포라 형성의 결정적 계기였다.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국제적으로 제국주의와 서세동점(약육강식)의 논리가 횡행했던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 해방 조국, 한국전쟁, 근대산업화, 민주화운동, 글로벌 시대까지, 한국의 근현대 정치 이데올로기적 변곡점과 함께했다.” 2) 『파친코』는 일제강점기, 오사카에 정착한 선자 일가의 모습을 통해 재일 코리안의 모습을 보여 준다. 이 밖에도 3·1운동, 토지조사사업으로 땅을 잃은 이삭의 부모, 만주에서 위안부가 된 덕희와 복희 등 다양한 인물을 통해 한민족의 역사를 구현해 코리안 디아스포라 서사를 전면화한다.
『파친코』는 재일 코리안이 일본에서 경험하는 혐오와 차별을 구현한다. 3) 해방 이후 조선인들은 조선 국적을 부여받는다. 하지만 일본에서 조선 국적은 일본인과 재일 코리안을 구분하는 수단이자 부정적 민족의 상징으로 기능하게 된다. 재일 코리안을 향한 부정적 시선은 세대를 넘어 계승된다. 결국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한 재일 코리안들은 스스로 삶을 포기한다. 재일 코리안을 향한 혐오와 구조적 차별이 재일 코리안 스스로를 숨기고 삶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재일 코리안을 향한 편견은 후천적으로 학습되는 것으로 구체화된다. 솔로몬의 회사 동료 장칼로는 유럽에서 태어난 백인이며 일본에서 이십 년 가까이 살았다. 그는 재일 코리안 대다수가 야쿠자이자 불법적으로 부를 축적했다고 생각한다. 일본인들의 편견을 이탈리아계 백인이 그대로 갖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인물 존은 한국에서 태어나 신생아 때 미국에 입양된다. 존의 외형은 동양인이지만 내면에는 미국의 가치관이 자리 잡고 있다. 존과 장칼로의 모습에서 언어, 사고, 가치관이 후천적 요소임이 증명된다. 즉, 타자를 향한 혐오는 선천적인 것이 아닌 ‘학습’으로 습득되는 후천적인 것이자 세대를 넘어 계승되는 것이 된다.
일본 정부는 제도로 일본인과 외국인을 구분했다. “일본 정부는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 발효 직전인 1952년 4월 19일 법무부 민사국장 통달(法務部民事局長通達) 제438호에 따라 구 식민지 출신자의 일본 국적을 일제히 박탈함과 동시에 입관령의 대상으로 포함시켰다.” 4) 1955년부터 외국인 등록 과정에 지문 날인이 추가됐으며, 외국인등록증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과정을 거쳐야 했다. 외국인 등록은 외국인을 관리 대상으로 취급하는 정책이자 제도적, 행정적으로 일본인과 외국인을 구분하는 행위이다. 외국인 등록 과정에서 일본인과 비일본인이 구분되며 『파친코』는 외국인등록증을 ‘개 목걸이’라고 비판한다.
『파친코』는 혐오의 작동 방식을 구현함으로써 제도와 인간을 분리한다. 일본의 행정 제도는 일본인과 외국인을 구분하지만 일본인 에쓰코는 솔로몬을 외국인이 아닌 가족으로 대한다. ‘일본의 제도’와 ‘일본인’이 등치되지 않는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제도와 인간의 분리로 이어진다. 일본의 제도가 내국인, 외국인을 구분하지만, 개개인은 근본적 층위의 ‘인간’으로 존재한다. 즉, 집단, 제도와 같은 요인을 소거해 집단과 개인의 관계를 규정하는 것이다.
선자의 후손 노아, 모자수, 솔로몬은 각기 다른 과정을 거쳐 파친코에 도달한다. 가족을 떠나 나고야의 파친코장에 취업한 노아,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파친코에 뛰어든 모자수, 회사에 이용당한 뒤 아버지의 직업을 잇는 솔로몬까지 선자의 자손들은 모두 파친코로 귀결된다. 이들이 파친코에 도달하기까지 각자의 이유가 있었지만 궁극적으로 일본에서 살아남기 위해 파친코를 ‘선택’한 것이다. 재일 코리안에게 파친코란 어떠한 의미일까? 해방 이후 재일 코리안의 일본에서의 구직에는 많은 제약이 있었으며, 파친코는 소수의 선택지 중 하나였다. 5) 일본인에게 파친코가 도박을 상징하는 부정적 표상일지 몰라도 선자의 가족에게는 온 가족을 ‘구원’해 준 일이었다.
소설 종반부 선자는 이삭의 묘비에 찾아가 구덩이를 만들어 가족사진을 묻는다. 선자의 손톱에는 일본의 흙이 묻어 있다. 일본의 땅에 가족을 묻은 것이다. 일본에 뿌리내려 살겠다는 선택이자 결심을 보여 주는 것이다. ‘역사는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는 소설의 첫 문장처럼 자신의 위치에서 주체적으로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통해 디아스포라의 위치를 말하는 것이다.
『파친코』는 재일 코리안을 통해 디아스포라가 인류가 직면한 현실임을 보여 준다. 구체적으로 기독교와 유대인 등 서구적 요소에서 디아스포라의 기원을 찾아 재일 코리안과 일본인에게 접목한다. 소설에는 19세기에 콜롬비아로 이주한 일본인 이민자 와카무라가 등장한다. 콜롬비아에서 태어나 한 번도 조국에 가본 적 없는 그는 일본 이름으로 일본어를 말하며 스스로를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든 훌륭한 일본인”이라 지칭한다. 와카무라를 통해 일본 역시 디아스포라의 당사자임을 보여 준다.
글로벌 시대에 디아스포라는 전 세계적 현상이 되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재의 코리안 디아스포라 생태계가 구축된 것처럼,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는 전쟁, 기후 등 다양한 요인으로 디아스포라가 생겨나고 있다. 이 지점에서 『파친코』는 디아스포라를 국적, 경계, 인종을 초월한 인류 보편적 현상으로 귀결시킨다. 실제로 이민진은 우리 민족 역사를 활용한 이유를 “모든 독자를 한국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라고 밝혔다. “러시아 문학을 읽을 때 소설에 등장하는 러시아 인물에 감정 이입하듯, 세계의 독자들이 내 소설 속 한국인들의 마음이 되길 원한다. 고학력 백인 엘리트가 100년 전 문맹인 조선 여인(선자)의 아픔을 공감하는 식 말이다. 나는 지극히 한국적인 소재를 미국 언어인 영어로 미국적인 글쓰기로 다뤘다. 나처럼 미국과 한국이 조합된 글” 6)이라 말하며 디아스포라의 혼종성과 코리안 디아스포라 서사의 무한한 가능성을 말한다.
즉, 『파친코』는 디아스포라를 소수민족과 이민자에 접목해 국적, 인종, 민족을 초월한 서사로 문학적 공감과 보편성을 획득한다. 『파친코』를 통해 글로벌 시대 코리안 디아스포라 문학의 가치와 확장성 나아가 무한한 가능성이 증명되는 것이다.
1) 정확한 수는 2020년 기준으로 7,325,143명이며, 외국 국적 동포(시민권자) 4,813,622명, 재외국민 2,511,521명이다. 재외동포청, 「재외동포 현황」, http://www.oka.go.kr/oka/information/know/status/.
2) 김환기(2023),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문학지형」, 《너머》 3호, https://www.diasporabook.or.kr/M000466/S001/fw/bbs/board/00006/view.do?cate1=1&idx=126.
3) 이한정은 “부라쿠 출신에 대한 차별의 역사가 그대로 재일조선인에게 투영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헤이트스피치는 ‘본국 외 출신’에 그치지 않고 일본 사회와 문화에 내재하는 차별의 역사와 불가분의 관계를 지니고 있다” 말하며 전후 재일 코리안이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이한정(2023), 「‘재일조선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 《일본학보》 135, 한국일본학회, 55쪽.
4) 김웅기(2015), 「일본 출입국정책의 역사적 변천을 통해 보는 재일코리안의 위상」, 《일본학보》 102, 한국일본학회, 188쪽.
5) 대표적인 취업 차별의 사례는 1970년 박종석의 ‘히타치 투쟁’이 있다. 재일 코리안 2세 박종석은 히타치(日立) 지원 당시 이름란에 통명 아라이 쇼지(新井鐘司)를, 본적란에 출생지 아이치현(愛知県)을 기입했다. 합격 이후 히타치는 호적등본을 요청했으며 이후 박종석이 외국인임을 알고 채용을 취소한다. 이후 박종석은 히타치를 요코하마지방법원에 고소했으며 법원은 히타치가 박종석에게 보상금 50만 엔과 1970년 12월 17일 이후의 지연 손해금을 지불하라고 판결했다.
6) 이민진은 죽기 전까지 한국 관련 소설 5권을 쓰는 것이 목표이며, 자신이 한국을 다루는 이유는 “전 세계에 흩어진 한국 사람을 수없이 만나는 과정에서 그들이 고통받고 있지만 관심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았고 활동가, 개혁가로서의 면모를 발현해 그들이 주목받게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김미리(2022), 「만해대상 이민진 “세상 살기 좋다면 글의 감옥서 탈출, 케이크」, 《조선일보》 2022년 7월 21일 자, https://www.chosun.com/culture-life/culture_general/2022/07/19/3EE53XCDBZG5VOXHQDGETAGQ24/.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전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고려대학교 중일어문학과에서 일본근현대문학·문화 전공으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재일코리안, 고려인, 조선족 등 코리안 디아스포라 문학/문화 관련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대표 논문으로 「재일코리안과 고려인의 초국가적 교류와 디아스포라 문화지형」, 「재일코리안과 조선족의 초국가적 교류와 디아스포라 문화담론」, 「확장되는 민족 역사와 코리안 디아스포라 문학」, 「재편되는 디아스포라 세계와 재일코리안 문학」 「재일조선인 혐오의 계보와 인권운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배반당한 협상』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