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 깊이읽기
2호
순교자
평론: 정은경
이중 언어 글쓰기의 맥락: 김은국의 『순교자』 읽기
정은경(문학평론가)
김은국(미국명 Richard E. Kim)은 1964년 영어로 쓴 첫 장편 『순교자(The Martyred)』로 미국에서 문명을 떨친 작가이다. 이 소설은 미국 전역에서 20주 연속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세계 10여 개 언어로 번역되어 널리 읽혔으며, 한국 작가로서는 처음으로 1969년에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김은국이 『순교자』를 통해 거둔 문학적 성취는 이전에 한국을 알린 한국계 미국 작가 강용흘과 김용익과는 다르다. 강용흘의 자전적 장편소설인 『초당』(1931)이나 김용익의 단편소설 「꽃신」(1956)이 이국적 동양 풍속과 정서를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에서 형상화하여 한국과 동양을 각인했다면, 김은국의 『순교자』는 이러한 동양적 색채와 무관한 ‘보편성’을 띤 세계적 작품으로 수용되고 각광받았기 때문이다.
김은국의 첫 장편 『순교자』(조지 브래질러 출판사)는 1964년에 처음 출간되었고 같은 해 장왕록이 번역한 국역본(삼중당)이 국내에 출간되었다. 이 소설은 이후 1978년에 도정일에 의해(시사영어사), 또 1990년에 김은국에 의해 다시 번역(을유문화사)되기도 했다. 도정일의 번역본은 2010년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시리즈의 하나로 재번역되었는데, 본고에서 저본으로 삼은 대상 텍스트는 도정일의 2010년 번역본이다.1)
『순교자』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한국전쟁 당시 평양을 점령한 유엔군은 전쟁 직전 공산당이 북한 기독교 목사 14명을 체포해 12명을 처형한 사실을 알게 된다. 육본 파견대 정치정보국장 장 대령은 이 12명의 죽음을 공산주의자들이 저지른 중대한 종교 탄압의 예로, 신앙을 위해 숭고하게 죽어간 기독교 희생자의 사례로 널리 알리기 위해 살아남은 목사 두 명을 찾는다. 두 생존 목사가 열두 순교자의 영웅성을 증언해 주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둘 중 하나인 ‘한 목사’는 그때의 충격으로 미쳐버렸고, ‘신 목사’는 침묵한다. 화자인 ‘나’(이 대위)는 사건 조사를 맡으면서 점차 이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게 된다. 그리고 처형된 12명은 모두 신을 부정하면서 죽어갔고, 살아남은 신 목사만이 유일하게 신을 부정하지 않았다는 진실이 학살극을 지휘한 북한군 정 소좌에 의해 폭로된다. 신 목사의 침묵은 이러한 비극적 진실을 가리기 위한 것이었고 정작 신 목사 자신은 신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서사적 갈등은 증폭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 목사는 장 대령이 마련한 추도 예배에서 신도들에게 자신이 순교자를 배반했다고 거짓 고백하고 회개함으로써 열두 목사를 순교자로 만드는 일에 앞장서게 된다.
결국 대중에게 진실은 은폐되고 열두 목사는 고귀한 순교자라는 것이 공식적 사실로 공표되지만, 이 소설이 제기한 문제의식은 여전한 논쟁거리를 남긴다. 즉 무신론자이면서도 진실을 은폐하면서까지 사람들에게 신에 대한 믿음을 전파하고 희망을 얘기하는 신 목사가 옳은가, 아니면 어떤 선전 목적을 위해서도 진실을 비틀 수는 없다고 주장하는 이 대위가 옳은가 하는 문제이다. 신 목사의 입장은 사실과 다르더라도 그것이 대중에게 도움이 된다면 환상과 이념도 적극적인 수단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휴머니즘에 입각한 것인데, 이것은 국가와 체제를 위해서는 진실과 상관없이 사건을 위장해서 대중 선전에 이용할 수 있다는 장 대령과 입장이 같은 것이다. 물론 신 목사든 장 대령이든 이들의 기만 전략은 진실을 견딜 수 없는 ‘허약한 대중’이라는 전제 위에서 작동한다.
실제 사건에서 모티프를 얻었다는 이 작품의 배경과 소재는 분명 한국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그리고 한국전쟁에서 정보장교로 군 복무한 김은국이 아니었더라면 불가능한 작품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과정을 통해 이 한국적 사건이 영어로 창작되고 발표된 것일까. 김은국의 생애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김은국은 1932년 함흥에서 김찬도와 이옥현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나 원산을 거쳐 간도 용정으로 건너간다. 김은국의 아버지 김찬도는 청년 시절 항일운동에 가담하여 옥고를 치르고 1933년 만주로 이주하여 윤동주와 문익환이 다닌 은진중학교에서 교사를 하다가 다시 1938년 김은국이 여섯 살 나던 해에 가족을 이끌고 고향인 황해도 황주로 돌아와 사과 농장을 경영한다. 김은국은 황주에서 소학교를 마치고 평양고등보통학교에 다니던 중 해방을 맞는다. 해방 후 지주이자 기독교 집안이던 김은국의 가족은 북한 공산주의 정권에 체포 구금되고 재산을 몰수당하는 등의 시련을 겪는다. 결국 공산 정권의 탄압에 못 이겨 김은국의 가족은 개별적으로 남한으로 내려오기 시작하고 목포에서 삶의 터전을 마련한다. 김은국은 목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0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에 입학해 학교에 다니던 중 전란을 맞게 되고, 한국군에 자원입대하여 연락장교와 통역장교, 보병 중위 등으로 전쟁을 겪는다. 군대에서 만난 상관과 인연의 도움으로 김은국은 1955년 미국으로 건너가 미들베리대학에서 역사학, 정치학을 공부한다. 미들베리대학을 수료하고 존스홉킨스대학에서 창작으로 문학 석사를, 아이오와대학에서 창작 석사 학위를 받는다. 『순교자』는 1962년 아이오와 대학 창작 석사 학위 작품으로 제출한 작품인 것이다.2)
김은국의 이러한 개인 이력 이외에 『순교자』와 관련하여 좀 더 살펴보아야 하는 사실들이 있다. 그것은 우선 김은국의 외할아버지 이학봉이 평양의 유명한 목사였다는 것이다. 강직하고 민족주의 기질이 강한 이학봉은 해방 이후에도 북한에 남아 목회 활동을 계속했고, 한국전쟁 직전 다른 목사들과 함께 검거되어 풀려났으나 1950년 10월 18일 대동강변에서 다른 목사들과 총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4) 이 사건은 훗날 『순교자』의 모티프가 된다.
둘째, 김은국이 월남 등의 과정에서 투철한 반공주의자가 되었다는 것과 그의 생애 이력에 드리워진 한국의 비극적 역사이다. 김은국은 북한에서 홀로 월남해서 서북청년회의 도움을 받았고 목포에서도 이 단체의 지원으로 목포고등학교에 다녔으며 목포 지부 단체 학생부장을 지내기도 했다. 공산주의자인 그의 작은아버지는 만주의 일본 관동군 장교로 근무하다가 1945년 만주에서 소련군에게 총살당했고, 막내 외삼촌인 이인형은 김일성대학교의 음대 교수를 지냈다. 분단 비극이 김은국의 가족사에 고스란히 얹혀있는 것이다.
1932년생인 김은국이 본격적으로 제도 교육을 받기 시작한 것은 간도 용정에 있을 때였지만, 1938년 황해도 황주로 건너오면서 폭압적인 일본어 교육 환경 속에서 자라난다. 일본어로만 이루어진 수업과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힘들었던 기억들은 자전적 소설인 『빼앗긴 이름』(1968)4)에 잘 드러나 있다. 특히 그가 만주에서 황주의 소학교로 전학한 날 아이들 앞에서 부른 아일랜드 민요 〈대니 보이〉가 만주의 송별회에서 아이들이 불러준 노래였다는 사실은 그의 언어적 변전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대목이다.
전후 세대에 해당하는 김은국의 언어 세계가 글말인 일본어에서 문학어인 영어로 변전하는 것은 그가 놓인 디아스포라의 이중, 삼중 언어 상황을 암시하고 있다. 1938년 이후 1945년 해방이 되기까지 김은국의 ‘글말’은 일본어였으며, 해방 이후 짧은 기간 동안 한글 글쓰기를 접했으나 본격적인 문학어를 접한 것은 도미 이후로 보인다. 대학 1학년인 1950년 전쟁 발발 후 군대에서 주로 통역 일을 하면서 영어를 익힌 김은국은 1955년 미국으로 건너가 본격적인 영어 글쓰기를 학습한다. 그리고 우연히 과학을 청강하기 위해 들른 하버드대학교(1959년)에서 콘래드에 대한 강의를 접한 그는 작가가 되기로 결심, 본격적인 문학 수업을 받는다. 존스홉킨스대학 문학 석사, 아이오와대학의 창작 석사를 취득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창작 수업은 미국의 문학 제도 속에서 이뤄진 것이다. 끊임없는 첨삭과 수정을 거쳐 탄생한 작품 중 하나가 『순교자』라고 볼 수 있다. 이렇듯 미국의 체계적이고 제도적인 창작 교육 속에서 김은국은 문학어를 배우고 익혔으며 ‘Richard E. Kim’이라는 작가로 탄생한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김은국의 문학은 미국 문학사와 문학장, 기대 지평에 의해 형성되고 구성된 미국 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탄생한 『순교자』는 출간 당시 미국에서 실존주의 사상을 보여주는 문학으로 읽혔다. 채드 월시5), 데이비드 갤러웨이6) 등의 글은 『순교자』를 성경의 욥(Job), 도스토옙스키, 카뮈, 니체 등과 관련하여 논의하면서 신 목사의 허위를 ‘부조리를 뛰어넘는 사랑의 중요성’(데이비드 갤러웨이)으로 강조한다. 이 맥락은 이들이 읽은 『순교자』의 ‘보편성’의 의미를 보여주는데 그것은 ‘신의 죽음’ 이후 서구 문학에 닥친 혼란에 대한 실존주의적 모색의 한 편린이다.
“한국이 낳은 베스트셀러, 현대 기독교의 서사시”7), “해외서 절찬받고 있는 한국 청년의 영문 소설”8)과 같은 기사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당시 한국 독자의 『순교자 독법은 아메리칸드림을 강조하면서 미국 문단의 해석을 따른다. “그 소설이 카뮈의 『흑사병』에 상당하는 것이라는 기대에 가슴을 설레면서 책장을 넘긴다”9)(정명환), 혹은 “카뮈의 상대주의와는 거리가 있지만, 자기희생 위에 더 큰 목적을 향해 간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반항적 인간”10)(이보영)과 같은 독법이 그 예이다. 그런데 이러한 미국의 ‘보편적’ 독법에는 한국의 국지적 맥락이 누락돼 있다. 그것은 『순교자』를 비롯하여 『심판자』, 『빼앗긴 이름』으로 이어지는 국가주의 맥락이다.
『순교자』는 신의 부재와 의미 없는 세계라는 실존주의적 문제의식을 담은 작품으로 읽히고 있으나, 이는 작가가 미국 대학에서 학습한 서구 문예 사상일 뿐, 한국에서 태어나 성장한 김은국의 핍진한 문제의식으로 볼 수는 없다.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을 경험하고 미국으로 건너간 작가 김은국이 사실 진리와 환상이라는 대립 구도 속에 내밀하게 건네는 것은 이데올로기와 현실의 대결이다. 즉 신 목사와 이 대위라는 『순교자』의 표면적 대결 구도는 장 대령과 이 대위의 대결이라는 심층적인 구조를 감추고 있다.
신문의 거짓 기사에 항의하는 이 대위에게 장 대령은 이렇게 답한다.
“
우리가 이 전쟁을 하고 있는 이유는 독립과 자유, 그 영광스런 대의명분을 위해서이고(거기다 한술 더 떠서) 우리의 민주주의 정부 체제를 지키기 위해서이다 ― 이런 따위의 얘기를 떠들고 선전해대는 일을 해낼 수 있겠어? (……) 아니면, 이 전쟁 역시도 바보 같은 인간들의 똥냄새 풍기는 역사 속의 다른 모든 전쟁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이 전쟁도 짐승 같은 국가들과 썩은 정치인들 사이의 눈먼 권력투쟁이 빚어낸 구역질 나는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 이렇게 말할 참인가?11)
”
위의 글에서 장 대령은 한국전쟁의 본질이 장사이고 정치 싸움에 불과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피력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인인 자신들은 그러한 본질을 은폐하고 국민들에게 거룩하고 신성한 이데올로기를 주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전쟁의 참상을 은폐하려는 장 대령의 의지는 정확히 신 목사의 환상으로서 믿음과 일치하는 것이다. 참상과 진실을 옹호하는 이 대위는 물론 김은국의 또 다른 내면이자 번민의 표출이기도 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영웅화되는 신 목사는 결국 국가주의와 이데올로기의 승리를 의미한다. 그렇게 본다면 『순교자』의 핵심으로 읽히는 신의 부재와 실존주의란 미국 독자들을 위한 외피에 불과하고 오히려 핵심은 장 대령과 이 대위의 심층적인 대결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작품에서 이 대위의 진정한 고뇌와 항의는 신앙을 향한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이 무의미한 전쟁을 향한 것이기 때문이다.
“
그들에게 필요한 건 진실이야. (……) 난 지쳤어. 이 모든 가식, 이 모든 고상한 거짓말, 국민의 이름으로 국민을 위해 저질러지는 이 모든 것이 이젠 역겨워 견딜 수 없어. 그래 그동안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고난에 시달리고 여전히 죽어가란 말이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속고 기만당한 채?12)
”
위에서 이 대위는 국가와 국민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전쟁 뒤에 은폐된 정치 싸움에 대한 진실을 폭로한다. 그러나 이 대위의 이러한 항변은 직접적으로는 장 대령에 의해, 또 대위에 의해, 궁극적으로는 신 목사의 실천적 설득과 감화로 인해 묵살되고 개종된다.
“
이 비린내 나는 전쟁에서 자네의 그 양심이 그토록 확실하단 말인가? 자네도 이 전쟁의 땀을 핥았고 피를 빨았어. 안 그래? 안 그랬냐 말야! (……) 자네도 죽였고 나도 죽였어! 우린 살인자들이야! 그걸 잊지 말라고! 우린 목구멍에 차고 넘치도록 잔혹한 짓들을 많이 했어! 나도 죄를 지었고 교수, 자네도 역시 죄를 지었어!13)
”
위의 글은 이 대위의 항변에 대한 장 대령의 일갈이다. 국가, 국민을 위한다는 전쟁이란 사실 거짓이었을 뿐이라는 통렬한 지적에 대해 장 대령은 ‘그럼, 너는 그 거짓에서 자유로운가, 그 죄에서 자유로운가’ 묻는다. ‘살인의 죄’를 함께 짊어진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결국 대의명분이고 이데올로기이다. 열두 목사들이 신을 부정하면서 죽어간 배교자라는 것, 신 목사 역시 신을 믿지 않는 배교자였다는 것, 그럼에도 그들이 다른 각도에서 ‘순교자’로 구제되는 것은 장 대령과 이 대위의 면죄를 위해서다. ‘죄지은 성자’라는 이 기독교적 비의는 사실 ‘살인한 애국자’라는 비극적 사실을 위한 수사일 수 있다. 살인한 애국자는 진실을 견딜 수 없는 민중의 눈을 가리고 그들을 위한 폭력이었다고 국가 이념을 선전한다. 그것은 이 작품이 신을 믿지 않지만 진실을 원치 않는 민중을 위해 신앙을 강조하는 신 목사를 영웅화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독립과 해방 전쟁이라는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에는 반공주의도 포함된다.
장 대령의 반공주의는 신 목사의 환상과 동일한 것으로, 전쟁의 살인과 폭력을 은폐하고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이다. 이 이데올로기에 항의하는 이상주의자 이 대위는 장 대령이라는 명령 체계에 의해 굴복당하고, 친구 박 대위의 간증에 의해 다시 한 번 설득당한다. 처형된 열두 목사 중에 아버지가 있는 박 대위는 신앙에 회의적이었으나 신 목사의 행위에 감화하여 그를 옹호하는 편에 서고 결국에는 전쟁의 영웅으로 죽는다. 그리고 이 대위도 궁극적으로는 ‘사랑’이라는 대의명분으로 환상을 실천하는 신 목사에게 감동하여 주체성을 몰각하고 진실 주장을 폐기해 버린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에 대한 옹호는 쿠데타를 미화하는 『심판자』에까지 이어지는 작가의 신념이다.
1968년 출판된 『심판자』14)는 한국의 5·16 쿠데타를 소재로 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는 쿠데타의 주역인 민 대령을 긍정적으로 그리면서 『순교자』와 유사한 대결 구도가 펼쳐진다. 이상주의자 이 소령과 역사적 과업을 위해서는 살인, 폭력과 같은 수단도 허용되어야 한다고 믿는 쿠데타 주역 민 대령의 갈등이다. 작가는 신 목사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민 대령을 옹호함으로써 쿠데타의 정당성을 이야기한다. 미국에서 혹평을 받은 『심판자』는 한국에서도 주목받지 못했다. 김은국 작품에 대한 더 친근한 한국적 수용은 일제 강점기를 다룬 『빼앗긴 이름』15)에서 이루어진다. 김현이나 김병익은 한국의 비극적 수난을 자기를 통해 육화하고 역사의 패배주의를 극복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을 고평하면서 한국의 현실적 자장 안에서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김은국의 『순교자』는 디아스포라 작가의 성공의 한 사례로 각인되었고, 또 이 작품의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그것이 ‘부조리를 넘어선 사랑’일지, 아니면 ‘무의미한 전쟁’을 가리기 위한 거짓 명분일지는 문학 장-독자의 맥락에 따라 다르게 읽힐 수 있다. ‘더 큰 역사, 더 큰 목적을 위해 작은 역사는 희생될 수 있고’16)에서 작가가 묻는 ‘더 큰 역사, 더 큰 목적’이 무엇일지는 김은국뿐 아니라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다시 물어져야 할 것이다.
1) 도정일의 번역본은 2010년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시리즈의 하나로 재번역되었는데, 본고에서 저본으로 삼은 대상 텍스트는 도정일의 2010년 번역본이다.
2) 김은국의 생애 사항은 김욱동의 『김은국 그의 삶과 문학』(서울대 출판부, 2007)에서 발췌·요약한 것이다.
3) 김욱동, 같은 책, 17-19쪽.
4) 김은국, 도정일 옮김, 『빼앗긴 이름』(시사영어사, 1970).
5) Chad Walsh, “Another war raged within”, The New York Book Review, 1964.2.16.
6) David D. Galloway, “The Love Stance: Richard E. Kim’s The Martyred”, Critique, Winter 1964.
7) 「한국이 낳은 베스트셀러 김은국 작 『순교자』」, 《경향신문》, 1964.3.26.
8) 「해외서 절찬받고 있는 한국청년의 영문소설 순교자」, 《동아일보》, 1964.2.29.
9) 정명환, 「고난의 의미―김은국의 『순교자』와 카뮈」, 《문학춘추》 1964.9(『한국작가와 지성』, 문학과 지성사, 1978).
10) 이보영, 「기묘한 숙명―김은국론」, 《현대문학》, 1969.9.
11) 김은국, 도정일 옮김, 『순교자』(문학동네, 2010), 173-174쪽.
12) 김은국, 같은 책, 213쪽.
13) 김은국, 같은 책, 175쪽.
14) Richard E. Kim, The Innocent, Boston: Houghton Mifflin, 1968.
15) Richard E. Kim, Lost Names: Scenes from a Korean Boyhood, New York: Praeger, 1970.
16) 김은국, 「인간은 무엇으로 되어야 하는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서문당, 1985). 송창섭, 「김은국의 ‘진리’와 한국 현대사」, 『재외한인작가연구』(고려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01) 159쪽에서 재인용.
『순교자』 작품 정보
저자: 김은국 번역: 도정일 출판: 문학동네 출간: 2010.8.23.
(표지제공: 문학동네)
문학평론가. 저서로 『디아스포라 문학』, 『기도이거나 비명이거나』 등이 있다.
* 사진제공_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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