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2호
비욘드 보더 외 1편
고현혜
비욘드 보더
나는 쓰고 싶다
시를 쓰는 나와
시를 읽는 그대
그 사이에
틈새 느껴지지 않는
언어로
그와 같은 일이 가능할까
내 안에서 늘 충돌하는
언어
문화
감성
내 안의 다른 두 사람
거울 보듯 마주 보고
서로의 감정을 검열한다
외국어로 번역된 그 감정
모국어로 쓴 내 시의 정서
그런 뜻이 전혀 아니었는데요
이해됩니까?
목에 생선 가시 걸린 것처럼 캑캑거리다가
내 대사를 꿀꺽 삼켜버리고 입을 다문다
나는 시를 쓰고 싶다
번역하지 않아도 되는
지도에 없는 언어로
지도에 없는 집에서
나 홀로 소꿉놀이하며
가위바위보 하면서
흥얼거리면서 쓰고 싶다
아무 의미도 감춰지지 않은
공기 속에서
천사가 읽을 수 있기 전에
사라진다고 해도
국경 너머
경계 없는
마음의 언어로
쓰고 싶다
우리 사이
틈새
느껴지지 않는
사랑이고
하나이고 싶어서
문을 여는 송가
1
비상구 옆에 앉은 나에게
승무원이 묻는다
그녀는 내가 웃으며
일어나 뒷자리 남자와
자리를 바꾸어주기를
바라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굳건히
내 자리를 지킨다
당신은 문을 열 수 있습니까?
나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보며
“예”라고 대답한다
내 옆에 앉은 미국인 남자는
질문도 받지 않았는데
“예”라고 대답한다
비행기 출발 소리가 들린다
몇 년 전 나는 이 문을 열 자신이 없어
스스로 자리를 옮겼다
긴급 상황 시 책임지고 싶지 않았다
그땐 나는 나 자신을 믿지 않은 것이다
비상구를 열어야 하는 사람은 넷
모두 건장한 남자들이다
“나도 문을 열 수 있어요”
얼마쯤 날았을까
창 덮개를 열어본다
하늘에도 시간이 있을까
뜬구름을 내려다본다
떠다니는 구름을 만지고 싶어
창문에 손을 대본다
이렇게 따뜻할 수가
태양의 온기에 나도 잠시 구름이 되어본다
나는 왜 그동안 창문을 만질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일까?
비상시 열어야 하는 문의 창은 따뜻했다
2
당신이 잠든 사이
그녀는 깨어나서 떠난다
이상한 동화의 나라를
이제 그녀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피고 싶으면 피고
지고 싶으면 지는
자신의 꽃이 된다
이제 그녀는
도달하기 위해 숨차게
달리지 않는다
내려가기도
올라가기도 하며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간다
기쁨은 어디에서 오는가
지치지도 않게 묻던 질문에
내일이면
내일이면
알 거야
주문하듯 외우던 대답
모두가 떠난
도시의 창밖
내리는 하얀 눈을 바라보며
소파 베드에 비스듬히 기대어
한 편의 시를 읽다
그녀는 행복하기 위해
내일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아버린다
이 도시에서 아무도 그녀를
기다리고 있지 않다는 걸
하나의 여행 가방을 가지고
여기 홀로 서 있다는 걸
그 아무도 그녀의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마음속 그녀의 음악은 멈추지 않고
눈이 내리지만
그녀의 발은 충분히 따뜻하고
두려움에 잃어버린 세계를
봄날처럼(그녀 스스로)
열 수 있다는 것을
1982년 미국으로 이주. 1991년 《한국시》를 통해 등단, 영어와 한국어로 시를 발표하고 있다. 바이올라 대학 사회학과(1992), 안티오크 대학교 대학원 문예 창작학과(2013), 안티오크 대학교 강의 교수법(2016)을 마쳤다. 저서로 영한시집 『일점오세(Generation One Point Five)』(1993), 『1.5세 엄마의 일기장』(2002), 『Yellow Flowers on a Rainy Day』(2003), 한국어 시집 『나는 나의 어머니가 되어』(2015), 영어시집 『The War Still Within』(2019) 등이 있다. 윤동주 미주문학상, 고원문학상 수상. 2022년 알바니아 국제 코르차 시인축제에서 시 「아직 봄을 믿습니까」로 드리트로 알고리상을 수상했으며 『The War Still Within』(2019)에 수록된 대표 작품인 「Comfort Woman(위안부)」을 주제로 뉴욕에서 단막극을 발표했으며 극본을 집필하고 있다.
* 사진제공_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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